2014년 7월 9일 수요일

역학원론 <삼화서당>


                   

自 序
역학(易學)은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생존법칙(生存法則)을 탐색(探索)하여 우리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을 행(行)하는 정치원리(政治原理)를 천명(闡明)한 학문(學問)이다.
역학(易學)에 의(依)하면 정치(政治)라는 것은 사회(社會)의 문물(文物)을 개명(開明)하고 세무(世務)를 성수(成遂)하여 민중(民衆)의 필부필부(匹夫匹婦)에 이르기까지 모두 즐겁게 생활(生活)하게 하는 사업(事業)이니, 이 사업(事業) 이외(以外)에 따로 정치(政治)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이 사업(事業)을 성수(成遂)함에는 정령(政令)을 민중(民衆)에 발시(發施)함이 가장 평이(平易)하고, 민심(民心)이 정령(政令)을 승수(承受)함이 가장 간약(簡約)하여, 정령(政令)과 민심(民心)이 서로 감응(感應)하고 서로 치일(致一)하여, 정령(政令)이 곧 민심(民心)이오 민심(民心)이 곧 정령(政令)이 되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니, 이를 이간원리(易簡原理)라 하고 이간원리(易簡原理)가 곧 정치(政治)의 원리(原理)이다.
우리 인생(人生)은 정치(政治)의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생활(生活)하기 위(爲)하여 물자(物資)를 생산(生産)하는 것도 정치(政治)이오, 그를 교역(交易)하고 소비(消費)하는 것도 정치(政治)이오, 어린 자녀(子女)들이 학교(學校)로 내왕(來往)하는 일, 청년(靑年)장정(壯丁)들이 군문(軍門)으로 출입(出入)하는 일 등(等), 일상생활(日常生活)의 어느 것이 정치(政治)아님이 없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일동정(一動靜) 일호흡(一呼吸)이 정치(政治)와 관련(關聯)되어 있지 아니한 것이 없거늘, 만약에 정령(政令)이 가험(苛險)하여 민심(民心)에 순응(順應)치 못하고, 민심(民心)이 폐조(閉阻)하여 정령(政令)을 열종(悅從)치 아니한다고 하면, 이는 이간원리(易簡原理)에 어그러져서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을 완수(完遂)치 못하는 것이다.
지금 세계인류(世界人類)의 정치원리(政治原理)는 자본주의(資本主義)와 공산주의(共産主義)의 두 가지로 대별(大別)되어 있다. 역리(易理)로써보면 자본주의사회(資本主義社會)는 자본가계급(資本家階級)이 정권(政權)을 잡고 사람을 황금(黃金)에 예속(隸屬)시키고 있으므로 정치(政治)가 이간(易簡)할 수가 없고 지금에 와서는 그 진로(進路)가 궁(窮)하고 있으니, 궁(窮)이라 함은 성장(成長)할 전도(前途)가 막혀서 더 발전(發展)치 못하고 스스로 변화(變化)함을 말함이며, 진로(進路)가 궁(窮)함으로 그 정표(政標)를 민주주의(民主主義)로 바꾸고 있으나 그 본질(本質)은 역시(亦是) 자본주의(資本主義)로서 자본가계급(資本家階級) 중심(中心)의 정치(政治)를 행(行)하고 있는 것이다. 공산주의(共産主義)는 자본주의(資本主義)타도(打倒)를 표방(標榜)하고 나온 것이라, 처음에 지하운동(地下運動)으로 잠행(潛行)하던 시대(時代)에는 그 교묘(巧妙)한 선전술(宣傳術)을 통(通)하여 근로계급(勤勞階級)과 약소민족(弱小民族)에게 지대(至大)한 영향력(影響力)을 미치더니 일단(一旦) 지상(地上)에 출현(出現)하여 정권(政權)을 잡은 연후(然後)에는 일당독재(一黨獨裁)를 강행(强行)하여 민중(民衆)의 천부(天賦)한 자유(自由)를 짓밟아서 노예(奴隸)상태(狀態)로 만들고, 독재(獨裁)지배층(支配層)과 피지배민중(被支配民衆)이 대립(對立)하여 공연은연(公然隱然)한 투쟁(鬪爭)이 일어나고 민중(民衆)들은 불안(不安)과 공포(恐怖)에 떨고 있으니, 이 주의하(主義下)의 정치(政治)는 이간(易簡)은 커녕, 최대(最大)의 험조(險阻)로 되어있다. 공산주의(共産主義)도 이미 궁(窮)에 달(達)한지라. 지금에 비록 민주주의(民主主義)를 자칭(自稱)하고 있으나, 그 본질(本質)은 민주주의(民主主義)를 가장(假裝)하고 독재군(獨裁群) 중심(中心)의 정치(政治)를 강행(强行)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일부(一部)에는 자본주의(資本主義)와 공산주의(共産主義)를 절충(折衷) 또는 구합(苟合)하는 중간로선(中間路線)을 취(取)하려는 경향(傾向)도 없지 아니하나, 물(物)이 궁(窮)한 자(者)는 그 본질(本質)이 변화(變化)한 연후(然後)에 전로(前路)가 벽통(闢通)하는 것이오, 만일 변화(變化)치 아니하면 궁(窮)을 아무리 절충구합(折衷苟合)하더라도 결국(結局) 궁(窮)밖에는 되지 못하는 것이니, 소위(所謂) 중간로선(中間路線)도 자본(資本) 공산(共産)의 두 주의(主義)와 함께 궁(窮)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 명일(明日)의 정치원리(政治原理)는 어디서 찾아야할 것인가 하면, 오직 한 가지 찾아볼 수 있는 길은 이때까지 세인(世人)의 시청계(視聽界)로부터 멀리 격리(隔離)를 당(當)하고 있는 동양(東洋)의 역학(易學)이 있을 뿐이니, 이는 역학(易學)은 천지(天地)대자연(大自然)의 생존법칙(生存法則)에 의(依)하여 만물(萬物)이 자연(自然)스럽게 생생존존(生生存存)하고 있는 이간원리(易簡原理)를 정치(政治)의 원리(原理)로 삼는 까닭이다. 이간원리(易簡原理)는 천지(天地)의 생존법칙(生存法則)에 그 이론(理論)의 근거(根據)를 두고 있으므로, 그를 실천(實踐)하기 가장 평이(平易)하고 가장 간약(簡約)하여 조금도 가험(苛險)하다거나 폐조(閉阻)한 것이 없고, 마치 초목(草木), 충어(蟲魚), 조수(鳥獸) 등(等) 만물(萬物)이 생존법칙(生存法則)의 속에서 자연(自然)스럽게 번식(繁殖), 성장(成長)함과 같이 민중전체(民衆全體)가 순리(順理)로운 정치(政治)속에서 스스로 일심동체(一心同體)가되어, 지위(地位), 직업(職業)의 여하(如何)와 남녀로소(男女老少)를 막론(莫論)하고 모두 생활(生活)의 즐거움을 향유(享有)할 수 있는 것이다. 역학중(易學中)에 나타난 정치이론(政治理論)은 모두 이간원리(易簡原理)에 귀일(歸一)되는 것이니, 역(易)의 계사(繫辭)상전(上傳)의 첫머리에 이간정치(易簡政治)를 말하고 또 계사(繫辭)하전(下傳)의 초장(初章)에 이간원리(易簡原理)를 말하고 다시 그 종장(終章)에 이간(易簡)과 험조(險阻)의 이(理)를 말한 것은 반드시 심의(深意)가 있는 것이다. 저자(著者)는 이 원리(原理)를 정치연구(政治硏究)의 자료(資料)를 삼기 위(爲)하여 스스로 천학단식(淺學短識)함을 무릅쓰고 감(敢)히 이 일문(一文)을 초(草)하는 바이다.
끝으로 이 글의 초안(草案)을 작성(作成)함으로부터 금일(今日)에 이르기까지 무릇 칠년(七年)에, 그동안 글의 내용(內容)에 대(對)하여 친절(親切)한 지도(指導)와 귀중(貴重)한 조언(助言)을 베풀어주신 여러 선배(先輩)를 비롯하여, 이글의 완성(完成)을 후원(後援)하는 호의(好意)로 저자(著者)의 피난(避難)생활중(生活中)에 물질적(物質的)으로 막대(莫大)한 원조(援助)를 보내주신 여러 친우(親友)와 정치원리(政治原理)로서의 역학(易學)을 세상(世上)에 소개(紹介)하려는 특지(特志)로써 이해관계(利害關係)를 불관(不關)하고 이의 출판(出版)을 인수(引受)하여 주신 이우(李友) 종열씨(鍾烈氏)에게 심심(甚深)한 사의(謝意)를 표(表)하는 바이다. 더욱이 세간(世間)에서는 역학(易學)이라고 하면 의례(依例)히 점서(占書)인줄로만 알고 있는 금일(今日)에, 이 글이 처음으로 정치원리(政治原理)의 학문(學問)으로서 세상(世上)에 나오는 것은 결(決)코 저자(著者) 일인(一人)의 힘이 아니오, 오로지 여러 선배(先輩)와 제우(諸友)들의 계도(啓導)․ 성원(聲援)하여주신 결실(結實)임을 독자(讀者)여러분에게 알리는 바이다.
단기(檀紀)사이팔칠년(四二八七年)갑오(甲午)십이월(十二月) 일(日)
서울 신촌(新村)에서 저자(著者) 識
범례(凡例)
一. 이글에 물(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설명(說明)함에, 사시기후(四時氣候)의 변화(變化)와 생물(生物)의 생(生)․ 장(長)․ 수(收)․ 장(藏)하는 상태(狀態)는 북위(北緯) 온대지방(溫帶地方)을 표준(標準)한 것은, 역학(易學)이 이 지방(地方)에서 발생(發生)한 까닭이오. 절후(節候)는 양력(陽曆)을 쓰고 일년월(一年月)은 음력(陰曆)을 쓴 것은, 역학(易學)이 일월운행(日月運行)의 이(理)를 취(取)한 까닭이다.
一. 이글에 공자(孔子)의 학설(學說)을 많이 인용(引用)한 것은 역학중(易學中)에서 특(特)히 공자(孔子)의 소작(所作)인 익전(翼傳)의 이론(理論)을 취(取)한바, 논어(論語) 기타서(其他書)에 있는 공자(孔子)의 학설(學說)은 모두 역리(易理)와 맥락(脈絡)이 상통(相通)하는 까닭이다. 세간(世間)에는 역(易)의 익전(翼傳)이 공자(孔子)의 소작(所作)이 아닌 듯 하다는 말도 있으나, 논어(論語)를 위시(爲始)하여 공자(孔子)의 여러 글 가운데에 있는 공자(孔子) 학설(學說)은 모두 익전(翼傳)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하고 있으므로 저자(著者)는 이 익전(翼傳)이 공자(孔子)의 글인 것을 조금도 의심(疑心)치 아니하는 바이다.
一. 이글에 소강절(邵康節)과 서화담(徐花潭)의 학설(學說)을 많이 인용(引用)한 것은, 강절(康節)과 화담(花潭)은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에 대(對)하여, 주(主)로 물(物)로써 물(物)을 관(觀)하는 반관적(反觀的)(객관적(客觀的))방법(方法)을 써서 진리(眞理)의 구명(究明)에 힘쓰고, 환경(環境)에 추종(追從)하거나 시대성(時代性)에 구니(拘泥)된 일이 없는 까닭이다.
一. 이글의 구성(構成)은 역학(易學)의 단전(彖傳)과 대상전(大象傳)의 예(例)를 본받아서, 먼저 천도(天道)를 말하고 다음에 인사(人事)를 말하니, 이는 모든 이론(理論)이 그를 실천(實踐)에 옮겨서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실생활(實生活)에 적용(適用)되어야하는 까닭이며, 사실(史實)은 전(專)혀 아국(我國)역사(歷史)를 인용(引用)한 것은 우리가 과거(過去)를 회고(回顧) 반성(反省)하면서 광명(光明)의 명일(明日)을 창조(創造)하기를 희망(希望)하는 미충(微衷)에서 나온 일이다.
一. 이글에 한의학(漢醫學)을 많이 인용(引用)한 것은, 한의학(漢醫學)은 주(主)로 역리(易理)를 응용(應用)하여 약재(藥材)의 미(味)․ 색(色)․ 향(香)․ 형(形) 등(等) 상(象)을 보아서 그 효력(效力)을 알고, 인신(人身)을 통일체(統一體)로 보아 병(病)의 소자출(所自出)한 근원(根源)을 탐색(探索)하는 역학적(易學的) 방법(方法)인 까닭이다.
一. 이글의 용어(用語)에는 현대(現代)에서 항용(恒用)치 아니하는 것과 현행(現行)하는 한자용법(漢字用法)에 맞지 아니하는 것이 많은데, 이는 원문(原文)의 본지(本旨)를 상(傷)할가 염려(念慮)하여 현행어(現行語)로 바꾸지 못하고 부득이(不得已) 그대로 쓴 것이다. 그러나 이 용어(用語)를 숙독(熟讀)하여 보면 현행용어(現行用語)가 간명(簡明)․ 직절(直截)한 서양식(西洋式) 표현법(表現法)인 느낌을 가짐에 반(反)하여, 이 용어(用語)는 유심(幽深)․ 혼원(渾圓)한 동양특유(東洋特有)의 함축미(涵蓄味)를 느끼게 될 것이니, 이는 서양(西洋)의 학문(學問) 특(特)히 과학(科學)은 부분(部分)의 해부(解剖)와 분석(分析)을 주(主)로하고, 동양(東洋)의 학문(學問) 특(特)히 역학(易學)은 전체(全體)의 상호관련(相互關聯)과 종합(綜合)을 주(主)로하는 까닭이다.
一. 이글을 지음에 당(當)하여 절실(切實)히 느낀 것은, 자연과학(自然科學)의 이론(理論), 특(特)히 생물학(生物學)과 물리학(物理學)의 조력(助力)을 빌어야 한다는 일이다. 저자(著者)는 스스로 여기에 어두움을 한탄(恨歎)한다. 만일 자연과학(自然科學)의 이론(理論)을 기초(基礎)로하여 역학(易學)을 연구(硏究)한다면 반드시 전인미도(前人未到)의 대경지(大境地)가 개척(開拓)됨이 있을줄로 믿는다. 저자(著者)는 이러한 학문(學問)이 나올 것을 심절(深切)히 대망(待望)하는 바이다.
- 요(了)-
<目 次>
第一章 총론(總論)
第一節 상(象)과 법칙(法則)
‣천지(天地)는 한 태일체(太一體)13
‣상(象)과 자연법칙(自然法則)과의 관계(關係)15
‣사회(社會)와 생존법칙(生存法則)17
‣천지(天地)와 일월(日月)은 만상(萬象)의 대종(大宗)19
‣역리(易理)와 정치(政治)22
第二節 조직(組織)과 운행(運行)
‣천지(天地)와 일월(日月)의 작용(作用)26
‣조직(組織)의 음양성(陰陽性)29
‣운행(運行)의 사시성(四時性)31
‣조직(組織)∙운행(運行)의 계통(系統)35
第二章 대대원리(對待原理)
第一節 통일(統一)과 대대(對待)
‣일이이(一而二) 이이일(二而一)의 작용(作用)38
‣유물론(唯物論)과 유심론(唯心論)42
‣대대(對待)의 분포(分布)44
‣통관(通觀)과 동관(童觀)47
第二節 대대(對待)와 운동(運動)
‣대대(對待)의 호근(互根)52
‣대대(對待)의 균등(均등(等))55
‣사회(社會)의 신진대사(新陳代謝)59
第三節 대대(對待)와 삼재(三才)
‣대대조직(對待組織)과 삼재운행(三才運行)64
‣삼색(三索)과 삼극(三極)66
‣능동(能動)과 수동(受動)68
‣개체(個體)와 통체(統體)69
‣안정(安貞)과 발용(發用)71
‣삼대용(三對用)의 착종(錯綜)72
第三章 대시(大始)와 정(情)
第一節 삼정(三情)(삼본능(三本能))
‣본능(本能)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의 발단(發端)74
‣본능(本能)과 선악문제(善惡問題)76
‣선악(善惡)과 미추(美醜)78
‣악(惡)의 발생(發生)하는 까닭81
第二節 感應
‣감응(感應)은 괴위중(乖違中)의 상교(相交)83
‣일음일양(一陰一陽)의 상배(相配)86
‣이간(易簡)의 이(理)87
第三節 萃聚
‣췌취(萃聚)는 분산중(分散中)의 통합(統合)91
‣점지진(漸之進)의 리(理)94
‣식물(食物)과 학문(學問)의 췌취(萃聚)96
‣권세(權勢)와 재화(財貨)의 췌취(萃聚)98
第四節 항구(恒久)
‣항구(恒久)는 변화중(變化中)의 불변(不變)103
‣진화론(進化論)과의 관계(關係)105
‣항구(恒久)는 생존(生存)의 기초(基礎)109
第五節 삼정(三情)과 사정(四情)
‣정대본능(正大本能)116
‣사람과 동식(動植)과의 비교(比較)117
‣삼정(三情)과 생활(生活)과의 관계(關係)121
‣정치(政治)의 삼정작용(三情作用)123
第四章 유형(流形)과 시용(時用)
第一節 삼시용(三時用)과 사시의(四時義)
‣상반(相反)의 속에 상제(相濟)가 있다127
‣규이(睽異)의 시용(時用)128
‣함험(陷險)의 시용(時用)130
‣건난(蹇難)의 시용(時用)131
‣시용(時用)과 시의(時義)133
第二節 차등(差등(等))과 균평(均平)
‣호대호소(互大互小)의 원리(原理)137
‣현대(現代) 정치사상(政治思想)의 발원(發源)141
‣사회(社會)의 균평운동(均平運動)145
第三節 투쟁(鬪爭)과 조화(調和)
‣조화(調和)를 얻기 위(爲)한 투쟁(鬪爭)150
‣투쟁(鬪爭)과 조화(調和)의 반복(反復)154
‣악(惡)의 극제(克制)가 곧 투쟁(鬪爭)이다157
‣지도자(指導者)의 시범(示範)161
第四節 안정(安定)과 유동(流動)
‣안정(安定)은 방(方)하고 유동(流動)은 원(圓)하다165
‣방(方)과 원(圓)의 호근(互根)167
‣환주운동(圜周運動)과 직선운동(直線運動)171
‣자전(自轉)과 공전(公轉)175
第五章 변화(變化)와 역(易)
第一節 삼역(三易)
‣궁변통구(窮變通久)180
‣삼역(三易)의 혼륜(渾淪)183
第二節 변역(變易)
‣소장운동(消長運動)186
‣보수(保守)와 혁신(革新)188
‣양극(兩極)과 중간(中間)193
第三節 교역(交易)
‣정위적(定位的) 질서(秩序)와 교체적(交體的) 질서(秩序)197
‣권력(權力)과 도덕(道德)201
第四節 반역(反易)
‣만물(萬物)은 모두 반생(反生)208
‣신(新)이란 무엇인가211
‣성반제(成反齊)의 이(理)215
第六章 대화(大和)와 중(中)
第一節 중(中)과 절(節)
‣대대(對待)․ 중심(中心)․ 통일(統一)218
‣태극(太極)이란 무엇인가220
‣한도(限度)와 절(節)224
‣삼현일장(三顯一藏)의 이(理)227
第二節 중(中)과 화(和)
‣화(和)는 중운동(中運動)의 극치(極致)231
‣이간(易簡)의 우로(憂勞)233
‣전례(典禮)와 경건(敬虔)235
‣언사(言辭)와 풍악(風樂)237
‣예악(禮樂)의 근본정신(根本精神)239
第七章 운명(運命)과 자유의지(自由意志)
‣운명(運命)은 선천(先天)이오 자유의지(自由意志)는 후천(後天)이다241
‣천명(天命)과 운명(運命)과의 관계(關係)244
‣관상학(觀相學)의 원리(原理)248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의 교호작용(交互作用)251
第八章 결론(結論)
‣사람의 생존(生存)하는 목적(目的)253
‣본능(本能)은 생존목적(生存目的)을 달성(達成)하는 수단(手段)254
‣무한(無限)한 즐거움256
‣즐거움도 만인만색(萬人萬色)258
‣근심과 즐거움260
【附錄 一】
역학(易學)과 우리 국문(國文)과의 관계(關係)
‣제자원리(制字原理)263
‣초성(初聲)은 사시(四時)의 이(理) 초성(初聲)은 십칠자(十七字)265
‣中聲은 三才의 理 中聲은 十一字267
‣초(初)와 종(終)의 순환(循環)269
‣만성(萬聲)의 생생(生生)270
【附錄 二】
역학(易學)으로 본 귀신문제(鬼神問題)
‣귀신(鬼神)의 유무(有無)271
‣사람의 생사(生死)와 귀신(鬼神)273
‣신(神)․인(人)․동(動)․식(植) 의 사등류(四등(等)類)278
‣귀신(鬼神)의 이(理)와 정치(政治)282
【附錄 三】
역학(易學)으로 본 수(數)와 상(象)과의 관계(關係)
‣수(數)와 상(象)285
‣하도(河圖)와 낙서(洛書)299
‣구륙(九六)과 칠팔(七八)290
‣구륙칠팔(九六七八)은 생명(生命)의 호흡(呼吸)296
【附錄 四】
역학(易學)으로 본 시운(時運)의 변천(變遷)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는 시운(時運)의 상징(象徵)299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생(生)․장(長)․성(成)304
‣삼도(三圖)와 시운(時運)의 상(象)310
‣지금은 인류역사(人類歷史)의 전환기(轉換期)317
‣대운중(大運中)의 소운(小運)과 지역(地域)의 기운(氣運)322
第一章 총론(總論)
第一節 상(象)과 법칙(法則)
‣천지(天地)는 한 태일체(太一體)
우리 인생(人生)은 만물(萬物)의 하나로서 만물(萬物)과 함께 천지(天地)의 중간(中間)에 위(位)하여, 상(上)으로 태허(太虛)의 기(氣)를받고 하(下)로 대지(大地)의 정(精)을 취(取)하여 써 생존(生存)하고 있으니, 역리(易理)에 태허(太虛)를 천(天)이라하고 대지(大地)를 지(地)라한다. 천(天)이라함은 기(氣)의 유행(流行)하는 연(淵)(공중(空中))으로서 만물(萬物)을 고무(鼓舞)하는 강건(剛健)한 힘을 말함이니, 거기에는 일월(日月) 등(等)이 의착(依着)하여 유명(幽明)․한열(寒熱) 등(等)의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지(地)라함은 정(精)의 응결(凝結)한 구체(球體)로서 만물(萬物)을 함장(含藏)하는 유순(柔順)한 질(質)을 말함이니, 거기에는 뇌풍(雷風)․수화(水火)․산택(山澤) 등(等)이 의착(依着)하여, 동(動)하고 산(散)하고 윤(潤)하고 조(燥)하고 성(成)하고 자(滋)하는 등(等)의 작용(作用)을 행(行)하여 써 만물(萬物)을 생성(生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천(天)과 지(地)는 한 태일체(太一體)를 이루고 있으되 그 작용(作用)은 판연(判然)히 상이(相異)하니, 이것을 물성(物性)에 의(擬)하면 천(天)은 양성(陽性)의 성능(性能)을 가지고 있고 지(地)는 음성(陰性)의 성능(性能)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에 천지(天地)를 흔히 우주(宇宙)라고 이르고 있는데, 우주(宇宙)라함은 상하(上下)․좌우(左右)의 공간(空間)과 고왕금래(古往今來)의 시간(時間)을 총칭(總稱)하는 말이라, 역학(易學)은 만물(萬物)의 생존(生存)하는 원리(原理)를 구명(究明)하는 학문(學問)이므로, 그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계선(界線)과 범위(範圍)를 구분(區分)하기 위(爲)하여, 우주(宇宙)라는 말을 쓰지 아니하고 전(專)혀 천지(天地)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이다.
천지(天地)는 그 광대(廣大)함이 끝이 없고 그 속에 포함(包涵)되어 있는 만물(萬物)은, 비록 천수만분(千殊萬分)하여 삼라만상(森羅萬象)하고 있으되, 모두 천지(天地)로 더불어 한 태일체(太一體)를 이루고 있어, 그 원(源)이 동일(同一)하고 그 근(根)이 상련(相連)하여, 동일(同一)한 계통(系統)으로 조직(組織)되고 일련(一聯)한 궤도(軌道)로 운행(運行)하고 있으므로, 어느 일물(一物)도 이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의 범위(範圍)를 벗어나서 독립독행(獨立獨行)하는 것이 없으며, 따라서 소(小)하기는 세초미충(細草微虫)으로부터, 대(大)하기는 우리 인생(人生)에 이르기까지 모두 공통(共通)한 조직요소(組織要素)를 가지고 통일적(統一的)으로 질서정연(秩序整然)히 운행(運行)하고 있으니, 만물(萬物)의 사이에 상호의존(相互依存)․식물연쇄(食物連鎖) 등(等) 관계(關係)가 있어 어느 것이 서로 관섭(關涉)되지 아니한 것이 없음은 그 조직계통(組織系統)이 동일(同一)한 까닭이오, 만물(萬物)의 운동(運動)은 모두 한가지로 소장(消長)․성쇠(盛衰) 등(等)의 경로(徑路)를 밟고 또 그 경로(徑路)가 모두 공통(共通)되어 있음은 그 운행궤도(運行軌道)가 일련(一聯)한 까닭이니, 역(易)에「天下之動 貞夫一者也 = 천하(天下)의 동(動)함은 정(貞)히 그 일(一)한 것이라」【註一】함은, 천지만물(天地萬物)이 모두 통일(統一)된 태일체(太一體)를 이루고 항상(恒常) 통일적(統一的)으로 운행(運行)하고 있음을 말함이다.
‣상(象)과 자연법칙(自然法則)과의 관계(關係)
이와 같이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그 조직계통(組織系統)이 동일(同一)하고 그 운행궤도(運行軌道)가 일련(一聯)하여 비록 부단(不斷)히 변화(變化)하고 있으되 거기에는 반드시 일정(一定)한 규준(規準)과 순서(順序)가 있어 차위(差違)치 아니하니, 역(易)에는 이를「법(法)」또는「칙(則)」이라 하며 지금의 소위(所謂) 자연법칙(自然法則)이다. 역학(易學)은 이 법칙(法則)을 천명(闡明)하기 위(爲)하여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상(象)을 취(取)하여 써 이론(理論)의 근거(根據)를 삼으니, 상(象)이라 함은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조직(組織)․운행(運行)하는 형태(形態)가 우리의 인식(認識)할 수 있는 형(形)으로 표현(表現)됨을 말함이오, 법칙(法則)이라 함은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조직(組織)되고 운행(運行)하는 자연적(自然的)․필연적(必然的)인 규준(規準)․순서(順序) 등(等)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상(象)과 법칙(法則)은 서로 표리(表裏)가 되고 있어 법칙(法則)을 유추(類推)하여 상(象)을 알 수가 있고 또 상(象)을 관찰(觀察)하여 법칙(法則)을 찾을 수가 있으며, 따라서 만사만물(萬事萬物)이 그 상(象)이 준사(準似)한 자(者)는 그 조직(組織)․운행(運行)의 법칙(法則)이 또한 상사(相似)한 것이다. 역(易)은「易者象也 象也者像也 = 역(易)이라 함은 상(象)이오 상(象)이라 함은 상(像)이라」【註二】함은, 역학(易學)은 물(物)의 상(象)을 취(取)한 학문(學問)이오 상(象)이라 함은 그 물(物)과 준사(準似)한 초상(肖像)이라 함을 말함이니, 그러므로 상(象)과 법칙(法則)을 동일물(同一物)의 표리관계(表裏關係), 또는 일물(一物)의 양면작용(兩面作用)으로 보는 것은, 역학(易學)의 가장 주요(主要)한 원리(原理)이다.
그런데 상(象)이 준사(準似)한 자(者)가 어찌하여 그 법칙(法則)이 또한 준사(準似)한가 하면 만사만물(萬事萬物)은 그 조직체(組織體)의 형태(形態)가 준사(準似)하면 그 표현(表現)되는 작용(作用)이 또한 준사(準似)하며, 그 표현(表現)되는 작용(作用)이 준사(準似)하면 그 운동(運動)․ 유행(流行)․변화(變化)하는 규준(規準)과 순서(順序)가 또한 준사(準似)한 것이다. 그 일(一) 이(二) 예(例)를 들건대, 역리(易理)에 물(物)의 운동(運動)이 일정(一定)한 한도(限度)를 넘으면 궁(窮)에 이르러 도리어 자체(自體)의 생존(生存)을 조해(阻害)한다는 법칙(法則)이 있는데, 한도(限度)를 넘는다 함은 상(象)의 표현(表現)됨이라, 그러므로 만사만물(萬事萬物)의 운행과정(運行過程)에 이러한 상(象)이 나타나는 때는 반드시 자체(自體)의 생존(生存)을 조해(阻害)하는 궁(窮)의 지경(地境)에 이르는 것이며, 또 역리(易理)에 원(圓)한 자(者)는 동(動)하고 방(方)(평(平))한 자(者)는 정(靜)한다는 법칙(法則)이 있는데, 원(圓)과 방(方)이라 함은 상(象)의 표현(表現)됨이라, 그러므로 만사만물(萬事萬物)의 조직형태(組織形態)에 이러한 상(象)이 있는 때는 반드시 동정(動靜)하는 작용(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니, 이것이 모두 상(象)이 준사(準似)한 자(者)는 그 조직(組織) 운행(運行)의 법칙(法則)이 또한 준사(準似)한 것이다. 지금의 생물학(生物學)에 동식물(動植物)은 그 과(科)․유(類) 등(等)에 따라서 공통(共通)한 형태(形態)와 공통(共通)한 생리(生理)가 있으니, 과(科)․유(類)는 상(象)이오 생리(生理)는 생존법칙(生存法則)이라, 그 상(象)이 준사(準似)한 까닭에 그 생리(生理)가 또한 준사(準似)한 것이며, 한의학(漢醫學)에 약재(藥材)의 미(味)․색(色)․향(香)․형(形) 등(等)이 인체(人體)의 어느 기관(器官)과 준사(準似)한 자(者)는 그 약재(藥材)는 그 기관(器官)의 약(藥)으로 사용(使用)되고 있으니, 미색향형(味色香形)은 상(象)이오 약효(藥效)는 운행법칙(運行法則)이라, 그 상(象)이 준사(準似)한 까닭에 그 기관(器官)의 보강(補强) 또는 치병(治病)에 유효(有效)한 것이니, 지금 서양의학(西洋醫學)은 약재(藥材)를 분석(分析)하여 그 성분(成分)을 아는 것이로되, 한의학(漢醫學)은 상(象)으로써 그 작용(作用)을 아는 것은 이 상리(象理)를 응용(應用)한 것이다.
‣사회(社會)와 생존법칙(生存法則)
또 역학(易學)은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시현(示現)하는 상(象)과 법칙(法則)이 스스로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生存)하는 법칙(法則)과 준사(準似)하고 있음을 말하니, 이러한 상(象)과 법칙(法則)이 어찌하여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법칙(生存法則)과 준사(準似)한가하면,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의 상(象)과 법칙(法則)이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법칙(生存法則)과 준사(準似)하다는 것은 역학(易學)의 특수(特殊)한 원리(原理)인데, 이것이 아직 세간(世間)에 널리 알려지지 아니하고 있다. 원래(元來) 사람은 자유의지(自由意志)를 가지고 대자연(大自然)속에 살고 있는지라, 그러므로 사람들은 흔히 자유의지(自由意志)의 힘으로써 자연법칙(自然法則)을 극제(克制)할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자연법칙(自然法則)과 자연계(自然界)를 혼동(混同)함에서 나온 생각이다. 자유의지(自由意志)와 자연계(自然界)는 서로 대대(對待)하여, 사람의 의지(意志)가 자연계(自然界)에 작용(作用)하는 동시(同時)에 자연계(自然界)가 또한 사람의 의지(意志)에 작용(作用)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법칙(自然法則)이라 함은 천지(天地) 태일체(太一體)를 일환(一圜)으로 하여 조직(組織)․운행(運行)하는 통일적(統一的)인 규준(規準)과 순서(順序)이라, 태일체(太一體)의 속에 존재(存在)하고 있는 만물(萬物)은, 일물(一物)도 또 일보(一步)도 그 법칙(法則)의 범위외(範圍外)를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의 육체(肉體)가 이미 자연법칙(自然法則)에 의(依)하여 생성(生成)되고, 그 의지(意志)가 또한 자연법칙(自然法則)에 의(依)하여 발생(發生)한 것이라, 기갈(飢渴)한 자(者)가 음식(飮食)을 구(求)하고 남녀(男女)가 서로 연모(戀慕)하고 생장로사(生長老死)가 모두 일정(一定)한 순서(順序)가 있고 이해(利害)가 상반(相反)하는 때에 서로 투쟁(鬪爭)하고 사상(思想)이 동일(同一)한 자(者)가 서로 결합(結合)하는 것 등(等)은, 비록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속(屬)하는 일인 듯하나, 실(實)은 자연법칙(自然法則)이 스스로 그와 같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사회(社會)가 비록 복잡(複雜)하고 주(主)로 사람의 의지(意志)에 의(依)하여 운영(運營)되는 듯하나, 역시(亦是) 자연인(自然人)의 집합체(集合體)로서 개인(個人)의 의지(意志)가 이미 자연법칙(自然法則)의 속에 있고, 또 그 소위(所謂) 복잡(複雜)은 개인생활(個人生活)의 집합적(集合的) 표현(表現)에 불과(不過)하여, 사회(社會)는 스스로 자연법칙(自然法則)의 속에 살고 있으니, 이가 곧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상(象)과 법칙(法則)이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법칙(生存法則)으로 통용(通用)되는 소이(所以)이다.
고래(古來)로 소위(所謂) 비유법(譬喩法)이 있으니, 예(例)컨대 초목(草木)은 그 근본(根本)이 고착(固着)치 못하면 지엽(枝葉)이 무성(茂盛)치 못한다는 이(理)로써, 국가(國家)는 민생(民生)이 안정(安定)치 못하면 국세(國勢)가 흥왕(興旺)치 못함을 설명(說明)하고, 수(水)는 수원(水源)이 탁(濁)하면 하류(下流)가 청정(淸淨)치 못하다는 이(理)로써, 사회(社會)는 지도층(指導層)이 청백(淸白)치 못하면 하층부(下層部)가 염결(廉潔)치 못함을 설명(說明)하니, 이는 상리(象理)를 응용(應用)하여 자연법칙(自然法則)의 표현(表現)된 상(象)으로써, 정치운영(政治運營)의 법칙(法則)을 설명(說明)한 것이다. 또 얕은 물이 소리가 높고 깊은 물이 소리가 적다는 이(理)로써 마음이 얕은 사람은 자기(自己)를 자랑하기를 좋아하고, 마음이 깊은 사람은 말이 적다함을 설명(說明)하고, 물은 백도(百度)에서 비로소 비등(沸騰)한다는 이(理)로써 사회사물(社會事物)은 그 발전(發展)이 어느 한도(限度)에 달(達)하는 때에 비약(飛躍)의 상(象)이 나타남을 설명(說明)하니, 이도 또한 상리(象理)를 응용(應用)한 비유법(譬喩法)이다. 만일 만물(萬物)의 상(象)과 법칙(法則)이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生存)하는 법칙(法則)과 준사(準似)치 아니하다고 하면, 이러한 비유법(譬喩法)은 모두 성립(成立)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상(象)과 법칙(法則)은 스스로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生存)하는 법칙(法則)이 되는 것이오, 사람들의 생활(生活)은 부지불식중(不知不識中)에 역학(易學)의 상리(象理)를 응용(應用)하고 있는 것이다.
‣천지(天地)와 일월(日月)은 만상(萬象)의 대종(大宗)
그러면 역학(易學)은 지잡(至雜)․지동(至動)하는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속에서 특(特)히 어떠한 상(象)을 취(取)하여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법칙(生存法則)을 삼은 것인가 하면,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조직(組織)되고 운행(運行)하는 형태(形態)에는, 기(奇)와 우(偶), 강(剛)과 유(柔), 남(男)과 여(女), 주(晝)와 야(夜), 한(寒)과 서(暑), 상(上)과 하(下), 진(進)과 퇴(退) 등(等), 어느 것이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으로 대대(對待)되지 아니한 것이 없음으로 역학(易學)은 먼저 음양(陰陽)의 상(象)을 취(取)하고, 다시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속에서 초목(草木)․조수(鳥獸)․인신(人身) 등(等)의 물상(物象)을 취(取)하지 아니함은 아니나, 주(主)로 초목(草木)․조수(鳥獸)․인신(人身) 등(等)을 생성(生成)하는 본원(本源)이되고 있는 천지(天地)․뇌풍(雷風)․수화(水火)․ 산택(山澤) 등(等) 팔물(八物)의 상(象)을 취(取)한 것이다. 역(易)에「法象莫大乎天地 縣象著明莫大乎日月 = 법(法)과 상(象)이 천지(天地)보다 대(大)함이 없고 상(象)을 현(縣)하여 저명(著明)함이 일월(日月)보다 대(大)함이 없다」【註三】함은, 역학(易學)이 천지(天地)와 일월(日月)의 상(象)을 취(取)함을 말함인바, 뇌풍(雷風)은 기(氣)로서 천(天)의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수화(水火)는 정(精)으로서 일월(日月)의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산택(山澤)은 형(形)으로서 지(地)의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있으므로 뇌풍(雷風)․수화(水火)․산택(山澤)은 천지일월(天地日月)의 상(象)의 속에 포함(包含)되는 것이다. 또 지(地)와 산(山)이 동일(同一)하고 수(水)와 택(澤)이 동일(同一)한 것이나, 이것을 모두 양물(兩物)로 구분(區分)한 것은, 산(山)은 지력(地力)의 발로(發露)하는 면(面)을말함이오 택(澤)은 수정(水精)의 응결(凝結)하는 면(面)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지(地)라함은 만물(萬物)을 함용(含容)치 아니함이 없고 만물(萬物)을 생성(生成)치 아니함이 없는 대지(大地)를 말함이오, 산(山)이라함은 강해(江海)와 대칭(對稱)하는 육지(陸地)의 뜻으로서 융고(隆高)․돈실(敦實)하여 만물(萬物)이 이에서 생(生)하고 이에서 종(終)하는 지표(地表)를 말함이며, 水라함은 상(上)의 운우(雲雨)와 하(下)의 강해(江海) 등(等) 유행(流行)하는 수(水)를 말함이오, 택(澤)이라함은 관개(灌漑) 진액(津液) 등(等) 자익(滋益)하는 저수(貯水)를 말함이다.
또 역학(易學)은 이 팔물(八物)을 인사(人事)에 의(擬)하여 천지(天地)를 부모(父母)라 하고 뇌풍(雷風)을 장남장녀(長男長女)라 하고 수화(水火)를 중남중녀(中男中女)라 하고 산택(山澤)을 소남소녀(少男少女)라 한바, 물(物)의 화생(化生)하는 순서(順序)는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이 상교(相交)하는 때에 처음에 양성(兩性)의 기(氣)가 상감(相感)하고 다음에 양성(兩性)의 정(精)이 상취(相聚)하고 그 다음에 차세대(次世代)의 형(形)이 응성(凝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에 상감(相感)하는 기(氣)를 장남장녀(長男長女)라 하니 뇌풍(雷風)은 기(氣)이므로 장남장녀(長男長女)가 되고, 다음에 상취(相聚)하는 정(精)을 중남중녀(中男中女)라 하니, 수화(水火)는 정(精)이므로 중남중녀(中男中女)가 되고, 그 다음에 응성(凝成)한 형(形)을 소남소녀(少男少女)라 하니 산택(山澤)은 형(形)이므로 소남소녀(少男少女)가된다. 부(父)와 삼남(三男)은 양성(陽性)의 노장중소(老長中少)이오 모(母)와 삼녀(三女)는 음성(陰性)의 노장중소(老長中少)이니, 천지간(天地間)에 생장로사(生長老死)하고 있는 만물(萬物)을 분류(分類)함에, 양성(陽性)의 노장중소(老長中少)와 음성(陰性)의 노장중소(老長中少)의 팔류(八類)는 만물(萬物)의 전형모(全形貌)를 상(象)한 것이다.
이와 같이 천지(天地)․일월(日月)․뇌풍(雷風)․수화(水火)․산택(山澤)은 만물(萬物)을 생성(生成)하는 본원(本源)이 되는 동시(同時)에 또한 만물(萬物)의 생성상태(生成狀態)를 상(象)한 전형모(全形貌)가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역학(易學)이 취(取)한바의 팔물(八物)의 상(象)은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조직(組織)되고 운행(運行)하는 자연법칙(自然法則)의 대종(大宗)이 되는 것이다.【註四】종래(從來)에 역학(易學)이 세인(世人)의 관심(關心)으로부터 소원(疏遠)된 것은 그가 점서(占書)로 알려진 때문이다. 역학중(易學中)에 문왕(文王)의 괘사(卦辭)와 주공(周公)의 효사(爻辭)는 점서(占書)로 되어있다. 그러나 역(易)에「夫易開物成務 = 그 역(易)은 물(物)을 개(開)하고 무(務)를 성(成)한다」【註五】하여, 역학(易學)은 사회(社會)의 문물(文物)을 개명(開明)하고 세무(世務)를 성수(成遂)하는 학문(學問)임을 말하며, 또 그 점사(占辭)는 속간(俗間)에 유행(流行)하는 점술(占術)의 유(類)와는 그 취지(趣旨)가 전연(全然) 다르다. 역(易)의 점사(占辭)는 시(時)와 처소(處所)에 따라서 사람의 처신(處身)하는 방도(方途)를 지시(指示)하고, 비록 과구(過咎)가 있더라도 회개(悔改)하면 점차(漸次)로 길(吉)에 나아가고, 비록 경상(慶祥)이 있더라도 근신(謹愼)치 아니하면 점차(漸次)로 흉(凶)에 향(向)한다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항상(恒常) 계구(戒懼)하여 과오(過誤)를 범(犯)치 아니하게 함이 점사(占辭)의 본지(本旨)이니 이 점사(占辭)는 심신수련(心身修鍊)의 성훈(聖訓)이오 의혹부정(疑惑不定)한 일을 부석비판(剖析批判)하여 정중(正中)한 향로(向路)를 지시(指示)하는 양사(良師)이다. 더욱이 공자(孔子)가 여러 익전(翼傳)을 지어 괘사(卦辭)와 효사(爻辭)의 뜻을 해설(解說)하여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진퇴소장(進退消長)과 성쇠존망(盛衰存亡)하는 법칙(法則)을 천명(闡明)함으로부터, 역학(易學)은 완전(完全)히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법칙(生存法則)과 정치원리(政治原理)를 개시(開示)하는 학문(學問)이 된 것이다.
‣역리(易理)와 정치(政治)
그러므로 역학(易學)은 천지만물(天地萬物)이 공간적(空間的)으로는 여하(如何)히 구성(構成)되고 여하(如何)히 운동(運動)하고 또 여하(如何)히 서로 관섭(關涉)하고 있으며, 시간적(時間的)으로는 여하(如何)히 운행(運行)하고 여하(如何)히 변천(變遷)하고 또 여하(如何)한 단계(段階)로 추이(推移)하고 있는가를 관찰(觀察)하여, 그 상(象)으로써 조직(組織)․운행(運行)의 법칙(法則)을 밝히고, 그 법칙(法則)을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에 적용(適用)하여 인생사회(人生社會)로 하여금 천지(天地)로 더불어 함께 영원(永遠)히 생존(生存)케 하는 것이니, 이것이 역학(易學)의 본지(本旨)이다. 소위(所謂) 학술(學術)이나 정치(政治)같은 것도, 그것이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영원(永遠)한 생존(生存)을 도모(圖謀)하고, 그 사회내(社會內)에서 필부필부(匹夫匹婦)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생존(生存)의 즐거움을 안향(安享)케하는 사업(事業)이오, 이 사업이외(事業以外)에 따로 학술(學術)이나 정치(政治)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역학(易學)은 사람으로 하여금 천지(天地)의 법(法)과 상(象)을 본받아서 사람된 도리(道理)를 다하고 삼재(三才)의 위(位)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삼재(三才)라 함은 상(上)에 천(天)이 있고 하(下)에 지(地)가있고 그 중간(中間)에 사람이 직립(直立)하여 천지(天地)를 연결(連結)하고 있으므로 천(天)․지(地)․인(人)을 삼재(三才)라 하는데, 원래(元來) 만물(萬物)은 모두 천(天)을 부(父)로 하고 지(地)를 모(母)로 하고 그 중간(中間)에 자녀(子女)로서 출생(出生)함으로 부모(父母)인 천지(天地)와 자녀(子女)인 만물(萬物)을 합(合)하여 삼재(三才)라 하는 것이나, 동식물(動植物)은 우매(愚昧)하여 천지(天地)의 법상(法象)을 본받지 못하고 오직 사람이 최령(最靈)하여 능(能)히 천지(天地)의 생존법칙(生存法則)을 본받을 수 있으므로 만물중(萬物中)의 최장자(最長者)로서 삼재(三才)의 위(位)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람의 형체(形體)를 가지고 있는 것만이 사람된 도리(道理)를 다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천지(天地)의 생존법칙(生存法則)을 본 받아서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을 개성(開成)하는 때에 비로소 삼재(三才)의 位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학(易學)은 역(易)에「觀乎天文 以察時變 觀乎人文 以化成天下 = 천문(天文)을 관(觀)하여 써 시변(時變)을 살피고 인문(人文)을 관(觀)하여 써 천하(天下)를 화성(化成)한다」【註六】함과 같이, 천지(天地)의 운행(運行)․변화(變化)하는 상(象)을 살피는 천문학(天文學)인 동시(同時)에 또한 인세(人世)의 생활(生活)․문화(文化) 등(等)을 보아서 써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을 성수(成遂)하는 인문학(人文學)이다. 천지(天地)의 자연법칙(自然法則)은 지공무사(至公無私)하고 지미지선(至美至善)하여 능(能)히 미리(美利)로써 천하만물(天下萬物)을 이(利)하게 하고 있는지라,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 특(特)히 전국민(全國民)의 살림을 맡아 보는 정치(政治)는 반드시 이 법칙(法則)을 본받은 연후(然後)에 비로소 영원(永遠)히 생생(生生)․존존(存存)할 사회(社會)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註一. 繫辭下傳 第一章
註二. 繫辭下傳 第三章
註三. 繫辭上傳 第十一章
註四. 팔물(八物)의 이(理)를 인신(人身)의 병리(病理)에 응용(應用)한 것은 한의학(漢醫學)의 음양(陰陽)․허실(虛實)․한열(寒熱)․표리(表裏)의 팔요(八要)이니, 천(天)은 양(陽)이오 지(地)는 음(陰)이므로 음양(陰陽)은 천지(天地)의 이(理)를 취(取)한 것이오, 허(虛)라함은 정기(正氣)의 부족(不足)함이오 실(實)이라함은 병사(病邪)의 기(氣)의 유여(有餘)함이니 허실(虛實)은 기(氣)의 작용(作用)이므로 뇌풍(雷風)의 이(理)를 취(取)한 것이오, 한열(寒熱)은 수화(水火)의 이(理)를 취(取)한 것이오, 표(表)라함은 병사(病邪)가 외부(外部)에 있음이오 이(裏)라함은 병사(病邪)가 내부(內部)에 있음이니, 표리(表裏)는 병사(病邪)의 소재(所在)한 위치(位置)의 형(形)을 말함이므로 산택(山澤)의 이(理)를 취(取)한 것이다.
註五. 繫辭上傳 第十一章
註六. 賁卦彖傳
    
第二節 조직(組織)과 운행(運行)
‣천지(天地)와 일월(日月)의 작용(作用)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지(大地)에는 만물(萬物)이 만영(滿盈)하여 각기(各其) 독자(獨自)한 조직(組織)을 가지고 영원(永遠)히 자체(自體)를 존속(存續)하려 하나니, 역(易)에는 이를「존존(存存)」【註一】이라 하고, 존존(存存)한 만물(萬物)은 시(始)하면 종(終)하고 종(終)하면 시(始)하는 운행(運行)으로써 세세(世世)로 계승(繼承)하려 하나니, 역(易)에는 이를「생생(生生)」【註二】이라 하니, 존존(存存)하면서 생생(生生)하고 생생(生生)하면서 존존(存存)하는 것이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전형(全形)이다. 그리하여 대지상(大地上)에 생존(生存)하고 있는 만물(萬物)은 공간적(空間的)으로는 천종만류(千種萬類)가 미만충실(彌漫充實)하여 착종(錯綜)히 조직(組織)되고 있으니 역(易)에는 이를「부유(富有)」라 하고, 시간적(時間的)으로는 부단(不斷)히 변변화화(變變化化)하여 항상(恒常) 신단계(新段階)로 운행(運行)하고 있으니, 역(易)에는 이를「일신(日新)」이라 한다.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자체(自體)를 무한(無限)히 번식(蕃殖)하고 무한(無限)히 확대(擴大)하고 또 무한(無限)히 연장(延長)하려 하여 전(專)혀 부유(富有)와 일신(日新)의 작용(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므로, 역(易)에는 부유(富有)를 상(象)하여「대업(大業)」이라 하고, 일신(日新)을 상(象)하여「성덕(盛德)」이라 하니【註三】,이는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인사(人事)에 의(擬)하여, 물(物)을 부유(富有)하느니 보다 더 큰 공업(功業)이 없고 물(物)을 일신(日新)하느니 보다 더 성대(盛大)한 도덕(道德)이 없음을 말함이다.
만물(萬物)은 모두 지(地)에 의착(依着)하고 지(地)는 또한 천(天)에 근저(根柢)하니, 천(天)은 기(氣)의 유행(流行)함이오 지(地)는 정(精)의 응주(凝做)함이라, 그러므로 천지간(天地間)에 생존(生存)하고 있는 만물(萬物)은 일물(一物)의 예외(例外)도 없이 모두 천(天)의 기(氣)를 부(父)로하고 지(地)의 정(精)을 모(母)로 하여 精과 氣가 聚合하여 이루어진 것이니, 易에「精氣爲物 = 精과 기(氣)가 물(物)이 된다」【註四】함은 이를 말함이다. 정(精)이라 함은 만물(萬物)의 형체(形體)를 조직(組織)하는 질(質)이오 기(氣)라함은 만물(萬物)이 (생명(生命)의) 운행(運行)하는 힘이니, 정(精)은 음성(陰性)을 띠고 취응(聚凝)하는 작용(作用)을 가지고 있고 기(氣)는 양성(陽性)을 띠고 고무(鼓舞)(동(動))하는 작용(作用)을 가지고 있는지라,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반드시 정(精)과 기(氣)의 양요소(兩要素)와 음(陰)과 양(陽)의 양성(兩性)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이(理)를 인신(人身)으로써 보면, 혈액근육(血液筋肉) 등(等)은 정(精)이오 활동(活動)하는 힘은 기(氣)이며,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하는 피부(皮膚)는 음(陰)이오 발동작용(發動作用)을 행(行)하는 혈관(血管)은 양(陽)이다.
천지(天地)의 사이를 운행(運行)하면서 주야(晝夜)․사시(四時)․삭망(朔望) 등(等)을 생(生)하여 만물(萬物)을 생성(生成)하는 자(者)는 일(日)과 월(月)인데, 일월(日月)의 정체(正體)는 역리(易理)로써 보면, 일(日)은 양정(陽精)이 취결(聚結)한 것으로서 화(火)의 상(象)이 되고, 월(月)은 음정(陰精)이 취응(聚凝)한 것으로서 수(水)의 상(象)이 되어, 천상(天上)의 일월(日月)은 지상(地上)의 수화(水火)와 같으므로, 일(日)은 화구(火球)이오 월(月)은 수구(水球)이다. 화(火)는 반드시 음성(陰性)의 물질(物質)에 의착(依着)한 연후(然後)에 형체(形體)를 이루는 것이므로, 일(日)도 또한 어떠한 음성(陰性)의 물질(物質)에 의착(依着)하여 광명(光明)을 발(發)하고 염열(炎熱)의 작용(作用)을 행(行)하는 것이오, 음성(陰性)의 물질(物質)에 의착(依着)한 까닭에 화(火)와 일(日)이 모두 외면(外面)은 광명(光明)하되 내부(內部)는 혼암(昏暗)하여 투명(透明)치 못하며, 수(水)는 기(氣)를 함장(含藏)하고 취응(聚凝)하여 액체(液體)를 이룬 것이므로 월(月)도 또한 수(水)와 준사(準似)하여 내부(內部)는 투명(透明)하되 외면(外面)은 혼암(昏暗)하여 일광(日光)을 받지 아니하면 광명(光明)을 발(發)치 못하는 것이다.【註五】일(日)이 지상(地上)에 향(向)하여 화(火)의 작용(作用)을 행(行)함과 같이 월(月)은 지상(地上)에 대(對)하여 수(水)의 작용(作用)을 행(行)하나니, 지상(地上)의 조석간만(潮汐干滿)이 주(主)로 월(月)의 인력(引力)으로써 행(行)하고, 여성(女性)의 매월경도(每月經度)가 월(月)의 행도(行度)와 관련(關聯)되고 있는 것이 그 일례(一例)이다. 그러므로 월(月)은 대지(大地)의 위성(衛星)이 되어, 이 대지(大地)에 태양(太陽)의 열(熱)이 과도(過度)한 때에 수구(水球)의 냉(冷)으로써 그를 조절(調節)하고, 태양(太陽)의 광명(光明)이 없는 야간(夜間)에 그 경면체(鏡面體)로써 태양(太陽)의 광명(光明)을 지상(地上)에 반영(反映)하나니, 이 까닭에 이 대지상(大地上)에는 한서(寒暑)․조습(燥濕)이 교착(交錯)하여 운우(雲雨)가 생기고 회(晦)․삭(朔)․현(弦)․망(望)이 반복(反復)하여 야간(夜間)에 광명(光明)을 받는 것이다. 이 이(理)를 인신(人身)으로써 보면, 한의학(漢醫學)에 말한 바와 같이, 열(熱)의 발원(發源)이 되는 심장군화(心臟君火)는 태양(太陽)의 상(象)이오, 수(水)를 주관(主管)하는 신장(腎臟)은 월(月)의 상(象)이오 명문(命門)의 상화(相火)는 지면(地面)이 태양(太陽)의 열(熱)을 받는 상(象)이오, 삼초(三焦)를 통(通)한 수승화강(水昇火降) 작용(作用)은 태허중(太虛中)의 운우(雲雨)의 상(象)이오, 간(肝)․심(心)․폐(肺)․신(腎)의 각기(各其) 특수(特殊)한 기능(機能)은 태양(太陽)의 운행(運行)에 의(依)하여 생기는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상(象)이오, 비위(脾胃)의 중앙적(中央的) 기능(機能)은 사시(四時)를 일통(一統)한 일세(一歲)의 상(象)이다.
천지일월(天地日月)은 거대(巨大)한 형체(形體)의 조직(組織)이오 또 거대(巨大)한 힘의 운행(運行)이라, 그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의 상(象)이 곧 만물(萬物)의 생존(生存)하는 법칙(法則)이 되는 것이며, 만물(萬物)은 이 법칙(法則)의 속에서 생존(生存)하고 또 부단(不斷)히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스스로 그 법칙(法則)을 본받은 조직체(組織體)와 운행력(運行力)을 가지지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일월(天地日月) 내지(乃至) 만물(萬物)의 조직(組織)․운행(運行)은 모두 통일(統一)되고 있어, 천지일월(天地日月)로써 만물(萬物)을 보면 천지일월(天地日月)은 만물(萬物)의 생존(生存)하는 본원(本源)이 되고 있으나, 법칙(法則)으로써 천지일월(天地日月)을 보면 천지일월(天地日月)도 또한 만물(萬物)의 하나이다. 그리고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은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하여 그러한 조직체(組織體)를 가지고 있는 까닭에 그러한 운행력(運行力)이 생(生)하고, 그와 반대(反對)로 그러한 운행(運行)을 하기 위(爲)하여 그러한 조직체(組織體)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는 반드시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의 상이(相異)한 양작용(兩作用)이 있으되, 또한 서로 혼륜(渾淪)하고 있어, 별개(別個)로 분립(分立)된 양물(兩物)이아니오 곧 일물(一物)의 양면작용(兩面作用)이다.
‣조직(組織)의 음양성(陰陽性)
만물(萬物)은 모두 천(天)의 기(氣)와 지(地)의 정(精)이 상교(相交)하여 형체(形體)(생물(生物))를 이루는 것이니, 정(精)은 음성(陰性)이오 기(氣)는 양성(陽性)이라, 정(精)이 있으므로 써 능(能)히 응주(凝做)하여 형체(形體)를 이루고, 기(氣)가 있으므로 써 능(能)히 발용(發用)하여 유행(流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精)에는 유순(柔順)․지정(止靜)․안정(安定)․승수(承受)․수용(受容)․수동(受動)․포함(包含)․소극(消極)․퇴굴(退屈)․ 염장(斂藏)․응결(凝結) 등(等) 음성작용(陰性作用)이 있고, 기(氣)에는 강건(剛健)․유동(流動)․고무(鼓舞)․발시(發施)․주류(周流)․능동(能動)․분약(奮躍)․적극(積極)․추진(推進)․출현(出顯)․발산(發散) 등(等) 양성작용(陽性作用)이 있는데, 이 양성(兩性)의 작용(作用)은 유순(柔順)과강건(剛健) 지정(止靜)과유동(流動) 안정(安定)과고무(鼓舞) 승수(承受)와발시(發施) 수용(受容)과주류(周流) 수동(受動)과능동(能動) 포함(包含)과분약(奮躍) 소극(消極)과적극(積極) 퇴굴(退屈)과추진(推進) 염장(斂藏)과출현(出顯) 응결(凝結)과발산(發散) 등(等) 매매(每每) 상반(相反)하고 있다. 그러나 기(氣)는 정(精)에 의착(依着)한 연후(然後)에 그 부거(附據)할 곳을 얻어서 존재(存在)할수 있고, 정(精)은 기(氣)에 근저(根柢)한 연후(然後)에 그의 고무(鼓舞)에 의(依)하여 동작(動作)할수 있어, 양성(兩性)의 작용(作用)은 또한 매매(每每) 상합(相合)하고 있다.
천지(天地)․뇌풍(雷風)․수화(水火)․산택(山澤)의 팔물(八物)에는 모두 음양성(陰陽性)이 있으니, 천(天)은 양(陽)이오 지(地)는 음(陰)이라, 음양(陰陽)의 위(位)가 상하(上下)에 각정(各定)함은 상반(相反)이오, 이기(二氣)가 상교(相交)하여 만물(萬物)을 생성(生成)함은 상합(相合)이며, 전기(電氣)는 수렴작용(收斂作用)이 있어 음(陰)이 되고 공기(空氣)는 발산작용(發散作用)이 있어 양(陽)이 되는지라, 전기(電氣)와 공기(空氣)가 상충(相衝)함은 상반(相反)이오 양물(兩物)이 함께 대기중(大氣中)에 혼륜(渾淪)하여 상여(相與)함은 상합(相合)이니, 역(易)에「雷風相薄 = 뇌(雷)와 풍(風)이 서로 박(薄)한다」【註六】함은 양자(兩者)의 상반(相反)을 말함이오,「雷風不相悖 = 뇌(雷)와 풍(風)이 서로 패(悖)치 아니 한다」【註七】함은 양자(兩者)의 상합(相合)을 말함이며, 수(水)는 윤하작용(潤下作用)이 있어 음(陰)이 되고 화(火)는 염상작용(炎上作用)이 있어 양(陽)이 되는지라, 수화(水火)가 서로 극제(克制)함은 상반(相反)이오 양자(兩者)가 서로 의부(依附)하여 그 기능(機能)을 발휘(發揮)함은 상합(相合)이니, 역(易)에「水火不相射 = 수(水)와 화(火)가 서로 사(射)치 아니 한다」【註八】함은 양자(兩者)의 상반(相反)을 말함이오,「水火相逮 = 수(水)와 화(火)가 서로 및는다」【註九】함은 양자(兩者)의 상합(相合)을 말함이며, 산(山)은 지(止)하여 정(靜)함으로 음(陰)이 되고 택(澤)은 동(動)하여 유(流)함으로 양(陽)이 되는지라, 산택(山澤)이 비고(卑高)로 각진(各陳)함은 상반(相反)이오 산(山)은 택(澤)을 흡수(吸收)하고 택(澤)은 산(山)을 상승(上升)함은 상합(相合)이니 역(易)에「山澤通氣 = 산(山)과 택(澤)이 기(氣)를 통(通)한다」【註十】함은 양자(兩者)가 상반(相反)하면서 또한 상합(相合)함을 말함이다. 이와 같이 만물(萬物)의 조직(組織)에는 모두 음양성(陰陽性)이 있는데, 역리(易理)에 음성(陰性)을 상(象)하여「체(體)」라 하고 양성(陽性)을 상(象)하여「용(用)」이라 하며, 체(體)와 용(用)이 일면(一面)으로는 상반(相反)하면서 다른 일면(一面)으로는 상합(相合)하는 작용(作用)을「대대(對待)」라 하나니, 체용(體用)과 대대(對待)는 만물(萬物)의 조직형태(組織形態)를 설명(說明)하는 역리(易理)의 특수용어(特殊用語)이다.
‣운행(運行)의 사시성(四時性)
천지일월(天地日月)이 운행(運行)하여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사시(四時)가 유역(流易)하고 있으므로, 만물(萬物)은 모두 사시(四時)의 순서(順序)를 따라서 생(生)․장(長)․성(成)․장(藏)하고 있으니, 역(易)에는 춘(春)의 생(生)함을「대시(大始)」라 하고 하(夏)의 장(長)함을「유형(流形)」이라 하고 추(秋)의 성(成)함을「변화(變化)」라 하고 동(冬)의 장(藏)함을「태화(太和)」라 한다.【註十一】(대화(大和)는 태화(太和)로 읽는다)
대시(大始)라 함은 춘(春)에 해동(解冬)하여 칩장(蟄藏)하던 물(物)이 생의(生意)를 발(發)하여, 초목(草木)의 신아(新芽)가 맹동(萌動)하고 칩충(蟄蟲)이 계출(啓出)함과 같음이니, 이는 물(物)의 발현단계(發顯段階)에 스스로 폐칩상태(閉蟄狀態)를 깨트리고 발동(發動)하는 시단(始端)이오, 유형(流形)이라 함은 하(夏)에 운행우시(雲行雨施)하여 시생(始生)한 물(物)이 유행(流行)하여 본래(本來)의 형상(形象)을 현현(顯現)하여, 초목(草木)의 간(幹)․경(莖)․지(枝)․엽(葉) 등(等)이 창무(暢茂)하고 자실(子實)이 결성(結成)되어 현재(現在)의 모체(母體)와 미래(未來)의 모체(母體)(발육중(發育中)의 자실(子實))가 그 대대작용(對待作用)이 모두 상견(相見)함과 같음이니, 이는 물(物)의 생장단계(生長段階)에 스스로 본유(本有)한 형태(形態)․성정(性情) 등(等)과 내포(內包)하고 있는 모든 모순(矛盾)․대립(對立)이 외현(外顯)함이오, 변화(變化)라 함은 추(秋)에 양기(凉氣)가 생(生)하여 이미 유형(流形)한 물(物)이 생장(生長)을 정지(停止)하고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하여 초목(草木)의 모수(母樹)는 노쇠(老衰)하고 자실(子實)이 성숙(成熟)하여 차대(次代)의 모체(母體)로 됨과 같음이니, 이는 물(物)의 수렴단계(收斂段階)에 폐고(弊故)한 자(者)가 퇴거(退去)하고 세대(世代)가 변혁(變革)함이오, 대화(大和)라함은 동(冬)에 천지(天地)의 기(氣)가 폐색(閉塞)하여 춘하추(春夏秋)에 벽통(闢通)한 물(物)이 내부(內部)에 귀장(歸葬)하고 모든 상반(相反)하는 생리(生理)가 통일체내(統一體內)에 화흡(化洽)하여 백곡과실(百穀果實)의 자인(子仁)이 피각중(皮殼中)에 굳게 포장(包藏)되고 백충(百虫)이 체내(體內)에 정기(精氣)를 심장(深藏)하고 칩거(蟄居)함과 같음이니, 이는 물(物)의 응장단계(凝藏段階)에 후일(後日)의 새로운 발동(發動)을 위(爲)하여 그 내부(內部)에 정기(精氣)가 회합충화(會合沖和)하여 통일적(統一的)으로 응결(凝結)함이다.
사시(四時)의 대시(大始)․유형(流形)․변화(變化)․대화(大和)의 상(象)은 모두 독자(獨自)한 변통작용(變通作用)을 행(行)하고 있는 것이니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는 일정(一定)한 한도(限度)가 있는데 그 한도(限度)를 넘으면 궁극(窮極)에 이르러 도리어 그 생존(生存)을 조해(阻害)하는 것이므로, 사시(四時)의 유역(流易)에 의(依)하여 그를 변통(變通)하는 것이오, 소위(所謂) 변통(變通)이라 함은 전단계(前段階)와는 대대(對待)되는 작용(作用)을 행(行)하여 새로운 단계(段階)를 건설(建設)하는 것이다. 초목(草木)의 예(例)로 써 보건대, 대시단계(大始段階)는 생의(生意)가 발동(發動)하여 신아(新芽)가 급속(急速)히 발육(發育)하니 이는 전(專)혀 용(用)의 발현(發顯)이라, 용(用)의 발현(發顯)이 급속(急速)하고 또 과대(過大)하면 체(體)가 태완(怠緩)하고 연약(軟弱)하여 스스로 지탱(支撑)치 못함으로 유형단계(流形段階)로 이행(移行)한다. 유형단계(流形段階)는 지엽(枝葉)이 점차(漸次)로 충실(充實)하면서 자체(自體)의 본형(本形)이 완전(完全)히 나타나고 자실(子實)을 장육(長育)하는 것인데, 자실(子實)이 장육(長育)만 있고 수렴(收斂)이 없으면 차세대(次世代)를 성수(成遂)치 못함으로 변화단계(變化段階)로 이행(移行)한다. 변화단계(變化段階)는 지엽(枝葉)이 이미 노쇠(老衰)하고 자실(子實)이 성숙(成熟)하여 그 내부(內部)에 후일(後日)에 발생(發生)할 신생명(新生命)을 함유(含有)하고 모수(母樹)로부터 이탈(離脫)하여 차세대(次世代)의 부모(父母)로 화(化)하는 것인데, 만물(萬物)은 폐합(閉合)함이 견고(堅固)치 아니하면 후일(後日)의 신생명(新生命)의 발동력(發動力)이 강성(强盛)치 못하나니, 하추(夏秋)에 수확(收穫)한 곡물(穀物)의 종자(種子)를 당년(當年)에 파종(播種)하느니 보다, 일동(一冬)을 경과(經過)하여 파종(播種)하는 것이 그 발아력(發芽力)이 일층(一層) 강성(强盛)한 것은 이 까닭이라, 그러므로 변화단계(變化段階)는 대화단계(大和段階)로 이행(移行)한다. 대화단계(大和段階)는 자실(子實)을 굳게 염장(斂藏)하여 그 생의(生意)가 응축(凝蓄)되어 삼루(滲漏)치 아니함으로 폐합(閉合)함이 더욱 견고(堅固)한 것인데, 대화단계(大和段階)가 변통(變通)되지 아니하면 생생작용(生生作用)이 행(行)치 못함으로 다시 대시단계(大始段階)로 이행(移行)하는 것이니, 이가 곧 사시(四時)의 각단계(各段階)는 모두 전단계(前段階)와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하는 소이(所以)이다.
사시유역(四時流易)의 상(象)은 만사만물(萬事萬物)의 운행(運行)하는 법칙(法則)이 되는지라, 이를 모든 사물(事物)에 의(擬)하여 보건대 대시(大始)는 물(物)이 칩장(蟄藏)한 자(者)는 영원(永遠)히 폐색(閉塞)되는 것이 아니오, 그「정(情)」이 스스로 발동(發動)하여 외부(外部)에 출현(出現)치 아니할 수 없음이니, 정(情)이라 함은 소위(所謂) 생존본능(生存本能)이라 생활(生活)의 창조(創造)는 항상(恒常) 본능(本能)으로부터 시발(始發)하는 것이오, 유형(流形)은 물(物)이 이미 출생(出生)한 자(者)는 성장(成長)치(자라지) 아니할 수 없고 그 성장(成長)하는 과정(科程)에는 거기에 내포(內包)되어 있는 모든 상반(相反)되는 관계(關係)가 외현(外現)하는데, 그 상반(相反)의 속에는 또한 그를 제(濟)하여 상화상합(相和相合)으로 전화(轉化)하는 작용(作用)이 있으니, 이 작용(作用)을「시용(時用)」이라 하는 것이오, 변화(變化)는 물(物)의 성장(成長)이 일정(一定)한 한도(限度)에 이르면, 그 생(生)을 성수(成遂)하고 그 이상(以上) 더 발전(發展)할 수 없는 궁극(窮極)에 도달(到達)하여 스스로 변화(變化)를 일으켜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하면서 그 내부(內部)에 새로운 대대작용(對待作用)을 배태(胚胎)하나니, 이 변화(變化)의 상(象)을「역(易)」이라 하는 것이오, 대화(大和)는 물(物)이 이미 종(終)을 이루면 다시 시(始)치 아니함이 없고, 장차(將且) 시(始)하려 하는 절(節)에서 모든 상반작용(相反作用)이 통일(統一)되어 후일(後日)에 출생(出生)할 신생명(新生命)의 발동력(發動力)을 강성(强盛)하게 하나니, 이 통일(統一)의 상(象)을「중(中)」이라 한다. 이 사시유역(四時流易)의 이(理)를 상(象)한 정(情)․시용(時用)․역(易)․중(中)은 또한 만물(萬物)의 운행형태(運行形態)를 설명(說明)하는 역리(易理)의 특수용어(特殊用語)이다.
‣조직(組織)∙운행(運行)의 계통(系統)
이와 같이 만물(萬物)의 조직(組織)에는 음양성(陰陽性)이 있고 운행(運行)에는 사시성(四時性)이 있는데, 이것이 스스로 질서(秩序)가 정연(整然)한 한 계통(系統) 한 궤도(軌道)로 연계(連繫)되어 만물(萬物)의 생존법칙(生存法則)이 되고 있다. 역(易)에「言天下之至賾而不可惡也 言天下之至動而不可亂也 = 천하(天下)의 지잡(至雜)함을 말하되 가(可)히 염(厭)치 못하고 천하(天下)의 지동(至動)함을 말하되 가(可)히 난(難)치 못한다」【註十二】하니, 이는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이 일정(一定)한 계통(系統)과 궤도(軌道)가 있으므로, 만물(萬物)의 조직(組織)은 각기(各其) 독수(獨殊)한 형체(形體)를 가지고 천차만별(千差萬別)하여 실(實)로 천하(天下)의 지잡(至雜)이로되 조금도 염오(厭惡)할 바가 없고, 그 운행(運行)은 주류변동(周流變動)하여 잠시(暫時)도 지식(止息)치 아니하여 실(實)로 천하(天下)의 지동(至動)이로되 조금도 분란(紛亂)치 아니함을 말함이다. 우리 인생사회(人生社會)도 또한 만물(萬物)의 일부(一部)이라, 그 생존작용(生存作用)이 비록 지잡지동(至雜至動)하고 있으되 그 생존(生存)하는 법칙(法則)은 이 만물(萬物)의 생존법칙(生存法則)을 사류(事類)에 따라서 인신(引伸)․연장(延長)함에 불외(不外)하며 또 사람에게 비록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있어 자주적(自主的)으로 동정(動靜)하고 있으되, 사람의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이 이미 자연법칙(自然法則)에 의(依)하여 생긴 것이라, 그 동정자체(動靜自體)가 또한 생존법칙(生存法則)의 범위(範圍)에 포함(包含)되어 일보(一步)도 그 범위외(範圍外)로 나가지 못하고, 사람의 행위(行爲)에 소위(所謂) 선(善)과 악(惡)이 있는데, 이 선악(善惡)도 또한 생존법칙(生存法則)의 범위(範圍)에 속(屬)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생존법칙(生存法則)의 범위(範圍)에 계속(繫屬)되어 있으므로, 그 출생이전(出生以前)에 형성(形成)된 체질(體質)․성정(性情) 등(等) 천품(天稟)이 있고, 출생이후(出生以後)에 이미 정(定)하여진 자연환경(自然環境)이 있으니, 이 기성(旣成)한 천품(天稟)과 기정(旣定)한 환경(環境)이 있는 까닭에 소위(所謂) 운명(運命)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는 운명(運命)으로 더불어 대대(對待)하고 있는지라, 그러므로 사람의 일생활동(一生活動)은 생존법칙(生存法則)의 속에서 그 자신(自身)의 생존(生存)을 위(爲)하여 자유의지(自由意志)의 힘으로 써 운명(運命)을 개척(開拓)함에 있는 것이다.
註一. 繫辭上傳 第七章에「成性存存 道義之門=성(性)을 성(成)하고 존존(存存)함이 도의(道義)의 문(門)이라」하니, 존존(存存)은 존재(存在)하고 또 존재(存在)하여 영구(永久)히 그치지 아니함이오, 문(門)은 출입(出入)하는 곳이오, 도(道)는 운행(運行)하는 뜻이오, 의(義)는 재제(裁制)하는 뜻이라, 이는 만물(萬物)이 본연(本然)한 성(性)을 이루고 존지우존(存之又存)하여 그치지 아니한 연후(然後)에 운행(運行)과 재제(裁制)의 작용(作用)이 일출일입(一出一入)하고 일현일장(一顯一藏)함을 말함이니 존존(存存)은 영구(永久)히 존재(存在)한다는 뜻이다.
註二. 繫辭上傳 第五章「生生之謂易」
註三. 同上「富有之謂大業 日新之謂盛德=부유(富有)함을 대업(大業)이라 이르고 일신(日新)함을 성덕(盛德)이라 이른다」함을 해설(解說)한 것이다. 역학(易學)에는 덕(德)과 업(業)을, 사람의 행(行)할바의 최중(最重)한 일이라고 하니, 乾卦文言에「君子進德修業=군자(君子)가 덕(德)을 진(進)하고 업(業)을 수(修)한다」하고, 繫辭上傳 第一章에「可久則賢人之德 可大則賢人之業=가(可)히 구(久)한즉 현인(賢人)의 덕(德)이오, 가(可)히 대(大)한즉 현인(賢人)의 업(業)이라」하고 繫辭上傳 第七章에「夫易 聖人所以崇德而廣業也=그 역(易)은 성인(聖人)이 써 덕(德)을 높히고 업(業)을 넓히는바라」함은, 모두 덕(德)과 업(業)의 중요성(重要性)을 말함이다.
註四. 繫辭上傳 第四章
註五. 역괘(易卦)에 감괘(坎卦)는 수(水)가 되고 월(月)이 되며 이괘(離卦)는 화(火)가 되고 일(日)이 되니, 감(坎)은 일양(一陽)이 이음(二陰)의 속에 함(陷)함으로 내명외암(內明外暗)하고, 이(離)는 일음(一陰)이 이양(二陽)의 속에 근(根)함으로 외명내암(外明內暗)한 것이다.
註六. 說卦傳 第三章
註七. 說卦傳 第六章
註八. 說卦傳 第三章
註九. 說卦傳 第六章
註十. 說卦傳 第三章
註十一. 乾卦彖傳에「大哉乾元 萬物資始=대(大)하다 건원(乾元)이여 만물(萬物)이 자(資)하여 시(始)한다」함은 춘(春)의 상(象)이오,「雲行雨施 品物流形 = 운(雲)이 행(行)하고 우(雨)가 시(施)하여 품물(品物)이 유(流)하여 형(形)한다」함은 하(夏)의 상(象)이오,「乾道變化 各正性命 = 건도(乾道)가 변화(變化)하여 각각(各各) 성(性)과 명(命)을 정(正)한다」함은 추(秋)의 상(象)이오,「保合大和=대화(大和)를 보(保)하여 합(合)한다」함은 동(冬)의 상(象)이다. 건괘(乾卦)는 천(天)의 운행(運行)을 상(象)함으로 그 단전(彖傳)에 사시운행(四時運行)의 상(象)을 말한 것이다.
역(易)에는 또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상(象)을 원(元)․형(亨)․이(利)․정(貞)으로써 표시(表示)하니, 乾卦文言에「元者善之長也 亨者嘉之會也 利者義之和也 貞者事之幹也 君子 體仁足以長人 嘉會足以合禮 利物足以和義 貞固足以幹事 = 원(元)은 선(善)의 장(長)함이오 형(亨)은 가(嘉)의 회(會)함이오 이(利)는 의(義)의 화(和)함이오 정(貞)은 사(事)의 간(幹)이라, 군자(君子)가 인(仁)을 체(體)함이 족(足)히 써 인(人)을 장(長)하고 가회(嘉會)함이 족(足)히 써 예(禮)에 합(合)하고, 물(物)을 이(利)함이 족(足)히 써 의(義)를 화(和)하고 정고(貞固)함이 족(足)히 써 사(事)를 간(幹)한다」한바, 원(元)이라 함은 물(物)의 시생(始生)함이니, 천지(天地)의 생생작용(生生作用)은 모두 여기서 출발(出發)함으로, 시(時)에 있어서는 춘(春)이 되고, 만물(萬物)이 부모(父母)를 계(繼)하여 생(生)하는 자(者)는 선(善)치 아니 함이 없으므로, 인사(人事)에 있어서는 선(善)과 인(仁)이 되고, 운행(運行)에 있어서는 생장(生長)하는 뜻이 되는 것이다. 형(亨)이라 함은 생물(生物)의 통태(通泰)함이니, 천지(天地)의 생생작용(生生作用)은 모두 여기서 창달(暢達)함으로, 시(時)에 있어서는 하(夏)가 되고, 만물(萬物)이 창달(暢達)하는 자(者)는 자체내(自體內)의 가미(嘉美)가 모두 도회(都會)하여 절문(節文)을 채식(彩飾)하는 것이므로 인사(人事)에 있어서는 가(嘉)와 예(禮)가 되고, 운행(運行)에 있어서는 취회(聚會)의 뜻이 되는 것이다. 이(利)라 함은 생물(生物)이 생(生)을 성수(成遂)하여 수렴(收斂)함이니, 천지(天地)의 생생작용(生生作用)은 모두 여기서 적의(適宜)히 재제(裁制)되므로, 시(時)에 있어서는 추(秋)가 되고, 만물(萬物)의 재제(裁制)는 모두 각각(各各) 그 소의(所宜)를 얻는 것이므로 인사(人事)에 있어서는 의(義)가 되고, 운행(運行)에 있어서는 재성(裁成)의 뜻이 되는 것이다. 정(貞)이라 함은 생물(生物)이 이미 종(終)을 성(成)하여 견고(堅固)함이니, 천지(天地)의 생생작용(生生作用)은 모두 여기서 폐장(閉藏)함으로, 시(時)에 있어서는 동(冬)이 되고, 만물(萬物)이 폐장(閉藏)하는 자(者)는 체(體)를 완성(完成)하여 본간(本幹)이 식립(植立)하는 것이므로, 인사(人事)에 있어서는 사업(事業)이 되고, 운행(運行)에 있어서는 간사(幹事)하는 뜻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物)이 시생(始生)하는 원(元)은 대시(大始)가 되고 통태(通泰)하는 형(亨)은 유형(流形)이 되고 수렴(收斂)하는 이(利)는 변화(變化)가 되고 견고(堅固)하는 정(貞)은 대화(大和)가 되는 것이다.
註十二. 繫辭上傳 第八章
   
第二章 대대원리(對待原理)
第一節 통일(統一)과 대대(對待)
‣일이이(一而二), 이이일(二而一)의 작용(作用)
만물중(萬物中)에 포장(包藏)되어 있는 체(體)와 용(用)은 서로 혼륜묘합(渾淪妙合)하여 일물(一物)로 통일(統一)되어 상리(相離)치 못하면서 또한 상반(相反)하는 작용(作用)을 행(行)하여 완연(宛然)한 이물(二物)로 되어 서로 협잡(挾雜)치 못하니, 체용(體用)의 이러한 작용(作用)이 곧 대대(對待)이다. 대(對)는 상반상적(相反相敵)하는 뜻이오, 대(待)는 상합상수(相合相需)하는 뜻이라.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그 단일(單一)한 개체내(個體內)에서거나 또는 여러 개체(個體)의 집성(集成)된 통체내(統體內)에서거나를 막론(莫論)하고, 반드시 체(體)와 용(用)의 관계(關係)를 가진 양작용(兩作用)이 있어 어느 것이 상반상적(相反相敵)하지 않는 것이 없고 또 어느 것이 상합상수(相合相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예(例)컨대 태양(太陽)과 대지(大地)의 사이에는 향심력(向心力)과 이심력(離心力)이 있어 향심력(向心力)은 서로 향응(向應)하려 하고 이심력(離心力)은 서로 격리(隔離)하려하여 양력(兩力)이 상지(相持)하면서 항상(恒常) 일정(一定)한 궤도(軌道)를 보유(保有)하니, 이 이심력(離心力)의 작용(作用)은 상반상적(相反相敵)하는「대(對)」이오 향심력(向心力)의 작용(作用)은 상합상수(相合相需)하는「대(待)」이다.
천지(天地)의 대대관계(對待關係)에 대(對)하여「서화담(徐花潭)」은 말하되「天運其氣 地凝其形 氣之性動 騰上者也 形之質重墜下者也 氣包形外 形在氣中 騰上墜下之相停 是則懸於太虛之中而不上不下 左右圜轉 亘古今而不墜者也 = 천(天)은 그 기(氣)를 운(運)하고 지(地)는 그 형(形)을 응(凝)하니, 기(氣)의 성(性)은 동(動)하여 등상(騰上)하는 자(者)이오, 형(形)의 질(質)은 중(重)하여 추하(墜下)하는 자(者)이라, 기(氣)는 형외(形外)를 포(包)하고 형(形)은 기중(氣中)에 재(在)하여 등상(騰上)과 추하(墜下)가 상정(相停)하니 이가 곧 태허중(太虛中)에 현(懸)하여 상(上)하지도 아니하고 하(下)하지도 아니하고, 좌우(左右)로 환전(圜轉)하여 고금(古今)에 긍(亘)하여 추(墜)치 아니하는 자(者)이라」【註一】하니, 기(氣)와 형(形)이 서로 의부(依附)함이 곧 향심력(向心力)과 이심력(離心力)의 대대작용(對待作用)이니, 지금에 소위(所謂) 만유인력설(萬有引力說)도 또한 향심력(向心力)에 의(依)한 견인작용(牽引作用)과 이심력(離心力)에 의(依)한 추척작용(推斥作用)을 말한 것이다. 만물(萬物)에는 모두 체용(體用)의 대대(對待)가 있으므로 또한 모두 견인(牽引)과 추척(推斥)의 양력(兩力)이 아울러 작용(作用)하나니, 식물(植物)과 토양(土壤)과의 관계(關係)로써 보면 식물(植物)의 근(根)은 하향(下向)하여 토중(土中)에 투입(透入)하되 그 지엽(枝葉)은 토양(土壤)을 등지고 상행(上行)하며, 또 토양(土壤)은 식물(植物)의 근(根)을 수장(收藏)하되 양분(養分)․수분(水分) 등(等)을 간경(幹莖)에 발시(發施)하니, 이는 식물(植物)은 일입일출(一入一出)․일향일리(一向一離)함이오, 토양(土壤)은 일인일추(一引一推)․일수일발(一收一發)함이다. 그러므로 초목(草木)의 지엽(枝葉)이 반드시 천(天)을 향(向)하여 상승(上升)하는 것은 다만 그 지엽자체(枝葉自體)의 배토성(背土性)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오, 또한 토양(土壤)의 추척력(推斥力)을 받는 까닭이오, 초목(草木)의 근(根)이 지중(地中)을 향(向)하여 투입(透入)하는 것은, 다만 그 근자체(根自體)의 향토성(向土性)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오, 또한 토양(土壤)의 견인력(牽引力)을 받는 까닭이다.
모든 생물(生物)이 음성(陰性)은 체(體)이오 양성(陽性)은 용(用)이라 음양성(陰陽性)의 양물(兩物)이 그 체(體)의 구조(構造)가 서로 괴위(乖違)함은「대(對)」이오 그 체(體)의 구조(構造)가 괴위(乖違)함으로써 그 지(志)가 상감상통(相感相通)하여 교여작용(交與作用)이 행(行)함은「대(待)」이며,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에도 각기(各其) 자기(自己)를 중심(中心)으로하여 동작(動作)하고 배타성(排他性)을 가지고 있음은「대(對)」이오, 공동생활체(共同生活體)의 속에서 서로 의존(依存)하고 서로 부조(扶助)하고 있음은,「대(待)」이며, 동일(同一)한 신체내(身體內)에서도 육체(肉體)는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하여 체(體)가 되고 기(氣)는 유행작용(流行作用)을 행(行)하여 용(用)이 되는지라, 하나는 수렴(收斂)하려 하고 하나는 유행(流行)하려 하여 두 작용(作用)이 상반(相反)함은「대(對)」이오 양자(兩者)가 비록 상반(相反)하고 있으되 혼륜일체(渾淪一體)가 되어 자체(自體)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수행(遂行)함은「대(待)」이다. 지금의 학문(學問)에 소위(所謂)「이율배반성(二律背反性)」․「모순(矛盾)의 통일성(統一性)」같은 것은 모두 이 대대작용(對待作用)의 일현상(一現象)을 말함이다.
체(體)와 용(用)은 이미 통일물(統一物)의 속에 혼륜(渾淪)하여 상리(相離)치 못하고, 또 양물(兩物)의 작용(作用)은 판연(判然)히 상이(相異)하여 상합(相合)치 못하니, 상리(相離)치 못함으로 일(一)이 되고, 상합(相合)치 못함으로 양(兩)이 된다. 역(易)에「陰陽不測之謂神 = 음(陰)하고 양(陽)함을 측(測)치 못함을 신(神)하다 이른다.」【註二】한바,『장횡거(張橫渠)』는 이를 주석(註釋)하되「兩在故不測 一故神 = 양재(兩在)한 고(故)로 측(測)치 못하고 일(一)한 고(故)로 신(神)하다」하니, 이는 음양(陰陽)의 양개작용(兩個作用)이 일물(一物)의 속에 포함(包涵)되어 신묘(神妙)한 통일작용(統一作用)을 행(行)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일(一)과 양(兩)은 별개(別個)의 이물(異物)이 아니라 일(一)은 양(兩)으로써 성립(成立)되어 양(兩)의 권외(圈外)에 따로 일(一)이 있는 것이 아니오, 또 양(兩)은 일물(一物)의 양면작용(兩面作用)으로서 일(一)을 떠나서 양(兩)이 별물(別物)로 존재(存在)하는 것이 아니니, 이를「一而二 二而一 = 일(一)하면서 이(二)하고, 이(二)하면서 일(一)한다」하는 일양작용(一兩作用)이라 한다. 역(易)에「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 = 형(形)하여 상(上)한 자(者)를 도(道)라 이르고, 형(形)하여 하(下)한 자(者)를 기(器)라 이른다.」【註三】하니, 도(道)라함은 운행(運行)을 말함이오, 기(器)라 함은 조직(組織)을 말함이라, 이는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의 한 면(面)은 형이상(形而上)한 운행력(運行力)이 되고, 한 면(面)은 형이하(形而下)한 조직체(組織體)가 되어, 비록 그 형현(形現)함이 상하(上下)의 계분(界分)은 있으나, 본원(本源)이 일(一)하고 파분(派分)이 이(二)하여 일양작용(一兩作用)을 행(行)함을 말함이며, 또「一陰一陽之謂道」「一闔一闢謂之變」=「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함을 도(道)라 이르고」【註四】「한번 합(闔)하고 한번 벽(闢)함을 변(變)이라 이른다」【註五】하니, 이것도 일물(一物)의 운동변화(運動變化)가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며, 한번 합(闔)하고 한번 벽(闢)하여, 일양작용(一兩作用)을 행(行)함을 말함이다. 여기에 일음일양(一陰一陽)이라 함은 한번 한(寒)하고 한번 서(暑)하며, 한번 야(夜)하고 한번 주(晝)하는 유(類)이오, 일합일벽(一闔一闢)이라 함은 한번 생장(生長)하고 한번 수장(收藏)하며, 한번 정지(靜止)하고 한번 동작(動作)하는 유(類)이다.「서화담(徐花潭)」은 태허(太虛)의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을 말하되「語其淡然之體曰一氣 語其混然之周曰太一 旣曰一氣 一自含二 旣曰太一 一便涵二 一不得不生二 二自能生克 生則克 克則生 氣之自微 二至鼓盪 其生克使之也 一非數也 數之體也 = 그 담연(淡然)한 체(體)를 말하여 가로되 일기(一氣)라 하고, 그 혼연(混然)한 주(周)를 말하여 가로되 태일(太一)이라 한다. 기(旣)히 일기(一氣)라 하니 일(一)이 스스로 이(二)를 함(含)하고, 기(旣)히 태일(太一)이라 하니 일(一)이 곧 이(二)를 함(涵)한지라, 일(一)은 이(二)를 생(生)치 아니할 수 없고 이(二)는 스스로 능(能)히 생(生)하고 극(克)하여, 생(生)하면 곧 극(克)하고 극(克)하면 곧 생(生)하나니, 기(氣)의 미(微)로부터 써 고탕(鼓盪)함에 지(至)함은 그 생(生)과 극(克)이 사연(使然)케 함이며, 일(一)이라 함은 수(數)가 아니오 수(數)의 체(體)라」【註六】하니, 이는 일(一)이라함은 통일체(統一體)의 명명(命名)이오 이(二)라함은 생(生)과 극(克)의 대대작용(對待作用)으로서, 태허(太虛)는 통일(統一)과 대대(對待)가 일이이(一而二)․이이일(二而一)의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있음을 말함이다.
‣유물론(唯物論)과 유심론(唯心論)
지금의 서양철학(西洋哲學)에 소위(所謂) 일원론(一元論)과 이원론(二元論)이 있고, 또 일원론중(一元論中)에 유물론(唯物論)과 유심론(唯心論)이 있는데 역리(易理)로써 보면 일원론(一元論)은 통일(統一)의 일(一)을 주(主)하고, 이원론(二元論)은 대대(對待)의 이(二)를 주(主)함이며, 또 유물론(唯物論)은 체(體)를 주(主)하고 유심론(唯心論)은 용(用)을 주(主)함이니, 이는 모두 생존작용(生存作用)의 반면(半面)을 말한 것이다. 특(特)히 유물론(唯物論)과 유심론(唯心論)은 물질(物質)과 정신(精神)의 생성(生成)에 선후(先後)의 순차(順次)와 주종관계(主從關係)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역리(易理)로써 보면 체(體)와 용(用)은 일물(一物)의 양면작용(兩面作用)이므로 물(物)이 생성(生成)하는때에 이미 체(體)와 용(用)이 함께 생성(生成)하는 것이오, 체(體)가 먼저 생성(生成)한 연후(然後)에 용(用)이 스스로 발생(發生)하는 것도 아니며, 또 용(用)이 먼저 발동(發動)한 연후(然後)에 체(體)를 조작(造作)하는 것도 아니니, 이는 만물(萬物)의 생성(生成)에 본체(本體)의 조직(組織)은 반드시 운행(運行)하는 작용(作用)을 수반(隨伴)하는 까닭이다. 물질(物質)은 체(體)이오, 작용(作用)은 용(用)이라, 물질(物質)과 작용(作用)의 발생(發生)에 선후(先後)의 순차(順次)가 있을 수 없고, 또 주종관계(主從關係)가 있을 수 없으니, 비록 일세초(一細草) 일미충(一微虫)이라 하더라도 그 물체(物體)가 있는 때에 반드시 자체(自體)가 운동(運動)할만한 힘과 작용(作用)이 부여(賦與)되는 것이오, 또 그만한 힘과 작용(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그에 적응(適應)한 신체(身體)의 구조(構造)를 가지는 것이다. 인체(人體)의 물심조직(物心組織)으로 써 보더라도 육체(肉體)는 정(精) 즉(卽) 물질(物質)이니 체(體)가 되고, 정신(精神)은 기(氣)의 작용(作用) 즉(卽) 심(心)이니 용(用)이 되는지라, 육체(肉體)가 없으면 정신(精神)이 의착(依着)할 체(體)를 얻지 못하여 그 존재(存在)가 있을 수 없고, 정신(精神)이 없으면 육체(肉體)가 고무(鼓舞)하는 용(用)을 얻지 못하여 아무런 활동(活動)도 행(行)치 못하는 것이니 정신(精神)과 육체(肉體)는 그 생성(生成)에 선후(先後)의 순차(順次)가 있을 수 없으며, 또 신체(身體)의 조직면(組織面)으로 볼 때에는 육체(肉體)가 주(主)가 되고 정신(精神)이 종(從)이 되는 것이나, 그 운행면(運行面)으로 볼때에는 정신(精神)이 주(主)가 되고 육체(肉體)가 종(從)이 되나니 물(物)과 심(心)은 서로 주(主)가 되고 서로 종(從)이 되므로 양자(兩者)는 균등(均等)하여 주종관계(主從關係)가 없다. 생물(生物)의 생식작용(生殖作用)으로써 보더라도 음성(陰性)은 체(體)이오, 양성(陽性)은 용(用)이라, 음성(陰性)이 없으면 양성(陽性)은 독양(獨陽)이 되어 생(生)치 못하고 양성(陽性)이 없으면 음성(陰性)은 독음(獨陰)이 되어 성(成)치 못하나니, 독음독양(獨陰獨陽)은 모두 세세계승(世世繼承)의 공(功)을 이루지 못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이 폐절(廢絶)되는지라, 식물(植物)의 음양성(陰陽性)은 대체(大體)로 동일화중(同一花中)에 자웅양성(雌雄兩性)이 있거나 또는 동일경내(同一莖內)에 웅화(雄花)와 자화(雌花)가 있으며, 동물중(動物中)에도 동일체내(同一體內)에 음양양성(陰陽兩性)을 함유(含有)한 자(者)가 있으니 이는 모두 음양성(陰陽性)의 발생(發生)에 선후(先後)의 순차(順次)와 주종(主從)의 구별(區別)이 없음을 보임이다. 역(易)에「仁者見之謂之仁 知者見之謂之知 = 인(仁)한 자(者)가 견(見)하매 인(仁)하다 이르고, 지(知)한 자(者)가 견(見)하매 지(知)하다 이른다」【註七】하니, 인(仁)이라함은 물(物)을 애육(愛育)하는 작용(作用)이니 체(體)가되고, 지(知)라 함은 물(物)에 주류(周流)하여 적의(適宜)히 재제(裁制)하는 작용(作用)으로서 곧 의(義)의 정(精)함이니 용(用)이 되는지라, 천지(天地)가 만물(萬物)을 생육(生育)하는 작용(作用)에는 인(仁)과 지(知)의 양면(兩面)이 있는데 이 생육작용(生育作用)을 관찰(觀察)하고 있는 사람중(中)에는 그 기질(氣質)의 相異함을 따라서 그 所見이 또한 不同하여, 氣質이 인(仁)한 자(者)는 인(仁)의 면(面)만을 보고 기질(氣質)이 지(知)한 자(者)는 지(知)의 면(面)만을 보나니, 공자(孔子)가 역학(易學)을 지은 당시(當時)에 이미 체(體)를 주(主)하는 주인론(主仁論)과 용(用)을 주(主)하는 주지론(主知論)이 있은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에 체(體)를 주(主)하는 유물론(唯物論)은 주인론(主仁論)이라 할 수 있고, 용(用)을 주(主)하는 유심론(唯心論)은 주지론(主知論)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대대(對待)의 분포(分布)
만물(萬物)의 체용관계(體用關係)는 물(物)과 물(物)의 상대(相對)하는 형태(形態)에 따라서 생(生)하는 것이오, 고정불변(固定不變)하는 것은 아니다.『소강절(邵康節)』은 말하되「體無定用 唯變是用 用無定體 唯化是體 = 체(體)에는 정(定)한 용(用)이 없고 오직 변(變)함을 용(用)으로 하며, 용(用)에는 정(定)한 체(體)가 없고 오직 화(化)함을 체(體)로 한다」【註八】하니, 변(變)이라 함은 화(化)의 점진(漸進)함이오, 화(化)라함은 변(變)의 완성(完成)함이라, 이는 만물(萬物)의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이 모두 체용(體用)의 양면(兩面)을 가지고 있으므로 물(物)과 물(物)이 상대(相對)하는 때에 양성(陽性)을 띤 자(者)는 용(用)이 되고 음성(陰性)을 띤 자(者)는 체(體)가 됨을 말함이다. 이를 법칙(法則)과 사물(事物)과의 관계(關係)로써 보건대 조직면(組織面)으로는 사물(事物)은 체(體)가 되고 그 발현(發顯)하는 법칙(法則)은 용(用)이되며, 운행면(運行面)으로는 법칙(法則)은 체(體)가 되고 그 생장수장(生長收藏)하는 사물(事物)은 용(用)이 되어, 법칙(法則)과 사물(事物)이 서로 체(體)가 되고 서로 용(用)이 되어 무한(無限)한 교호작용(交互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다. 수화(水火)의 예(例)로써 보건대 수(水)와 화(火)가 상대(相對)하는 때에는 수(水)는 수축작용(收縮作用)이 있으므로 체(體)가 되고 화(火)는 발산작용(發散作用)이 있으므로 용(用)이 되는 것이지만, 수(水)와 육(陸)이 상대(相對)하는 때에는 육(陸)은 지정(止靜)함으로 체(體)가 되고 수(水)는 유동(流動)함으로 용(用)이 되는 것이니 원래(元來) 수(水)의 성(性)은 음성(陰性)으로서 유하(流下)하는 것이로되 육(陸)에 대(對)하여는 용(用)이 되므로 능(能)히 역상(逆上)하여 산정(山頂)에 이르러 지택(池澤)이 되며 수(水)가 초목(草木)의 말초(末梢)에까지 상승(上昇)하는 것도 동일(同一)한 이(理)이니, 이는 동일(同一)한 수(水)가 그 상대(相對)하는 대대물(對待物)에 따라서 체(體)도 되고 용(用)도 되는 것이다. 또 물(物)의 현상(現狀)은 지정작용(止靜作用)이 있으므로 체(體)가 되고 물(物)의 변통(變通)은 유동작용(流動作用)이 있으므로 용(用)이 되는지라, 전(前)에 예거(例擧)한 수화(水火)의 관계(關係)에는 비록 수(水)는 체(體)가 되고 화(火)는 용(用)이 되나, 화재(火災)가 있는 경우(境遇)에 수(水)를 관주(灌注)하여 식멸(息滅)하는 때는, 화재(火災)는 현상(現狀)이므로 체(體)가 되고, 관주(灌注)는 변통(變通)이므로 용(用)이 되는 것이며, 수륙(水陸)의 관계(關係)에는 비록 육(陸)은 체(體)가 되고 수(水)는 용(用)이 되나, 홍수(洪水)가 있는 경우(境遇)에 토사(土砂)를 구축(構築)하여 제방(堤防)하는 때는, 홍수(洪水)는 현상(現狀)이므로 체(體)가 되고 축토(築土)는 변통(變通)이므로 용(用)이 되는 것이니, 이는 수화(水火)와 수륙(水陸)이 그 대대(對待)하는 시(時)와 위(位)의 변화(變化)함에 따라서 그 체용관계(體用關係)가 또한 변화(變化)하는 것이다. 음(陰)과 양(陽)의 관계(關係)에 있어서도 일년중(一年中)의 음양(陰陽)의 소장관계(消長關係)로써 보면 동지(冬至)에 일양(一陽)이 생(生)한 이후(以後)에 음(陰)은 현상(現狀)이므로 체(體)가 되고 양(陽)은 변통(變通)이므로 용(用)이 되며, 하지(夏至)에 일음(一陰)이 생(生)한 이후(以後)에는 양(陽)은 현상(現狀)이므로 체(體)가 되고 음(陰)은 변통(變通)이므로 용(用)이 되는 것이니, 이것이 또한 시(時)와 위(位)에 따라서 체용관계(體用關係)가 호역(互易)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만물(萬物)은 모두 체용량면(體用兩面)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 물(物)이 있는 때는 반드시 그 속에 체(體)와 용(用)이 있고, 또 체(體)의 속에도 체(體)와 용(用)이 있고 용(用)의 속에도 체(體)와 용(用)이 있어, 체용(體用)이 한(限)없이 분포(分布)하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천지간(天地間)에는 지대지광(至大至廣)한 자(者)로부터 지세지미(至細至微)한 자(者)에 이르기까지 평면적(平面的)으로는 서로 체용관계(體用關係)로써 연계(連繫)되고, 입체적(立體的)으로는 수지상(樹枝狀)의 체용(體用)이 분포(分布)․미만(彌滿)하고 있는 것이다.
아국(我國)에서 발생(發生)한『이동무(李東武)』의 사상의학(四象醫學)은【註九】사람의 체질(體質)을 음인(陰人)과 양인(陽人)으로 구분(區分)하고, 다시 그것을 소음인(少陰人)․소양인(少陽人)․태음인(太陰人)․태양인(太陽人)의 사상(四象)으로 구분(區分)하여 양생치병(養生治病)의 원리(原理)를 삼으니, 이는 역학(易學)의 상리(象理)와 대대(對待)의 이(理)를 응용(應用)한 것이다. 사상의학(四象醫學)은 한의학(漢醫學)의 일부(一部)이라, 그러나 종래(從來)의 중국의학(中國醫學)과 상이(相異)한 바는, 중국의학(中國醫學)은 병리(病理) 즉(卽) 병세(病勢)의 운행면(運行面)을 중시(重視)하고, 사상의학(四象醫學)은 생리(生理) 즉(卽) 체질(體質)의 조직면(組織面)을 중시(重視)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상의학(四象醫學)은 의학(醫學)의 체(體)이오 중국의학(中國醫學)은 의학(醫學)의 용(用)이니, 두 의학(醫學)이 상수상제(相須相濟)하는 때에 비로소 통일(統一)된 완전(完全)한 의학(醫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류계(人類界)에도 한(限)없는 대대(對待)가 분포(分布)되어 있으니, 동양(東洋)과 서양(西洋)은 동서량극(東西兩極)에 위(位)하여 주야(晝夜)가 상반(相反)하고 남위(南緯)와 북위(北緯)는 남북량극(南北兩極)에 위(位)하여 한서(寒暑)가 상반(相反)함으로 그 일상생활(日常生活)에 있어서 좌(左)하고 우(右)하고 전(前)하고 후(後)하는 등(等) 동작(動作)이 상반(相反)하는 것이 적지 아니하니 이는 우연(偶然)이 아니오, 천지(天地)의 자연법칙(自然法則)이 스스로 그와 같이 되는 것이다.
‣통관(通觀)과 동관(童觀)
인생사회(人生社會)에는 공간(空間)과 시간(時間), 환경(環境)과 사람의 의식(意識), 민중(民衆)과 정령(政令), 현실(現實)과 이상(理想), 보수(保守)와 혁신(革新) 등(等), 어느 것이 체용관계(體用關係)로써 대대(對待)되지 아니한 것이 없으니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을 행(行)함에는 이 대대(對待)되는 양면사물(兩面事物)을 통관(通觀)한 연후(然後)에 그 속에 함장(含藏)되어 있는 이해(利害)․득실(得失)․선악(善惡)․미추(美醜) 등(等)의 전형(全形)이 요연(暸然)히 나타나는 것이다.『소강절(邵康節)』은 말하되 「聖人之所以能一萬物之情者 謂其聖人之能反觀也 所以謂之反觀者 不以我觀物也 不以我觀物者 以物觀物之謂也 以物觀物 性也 以我觀物 情也 性公而明 情偏而暗 = 성인(聖人)이 써 능(能)히 만물(萬物)의 정(情)을 일(一)하게 하는 바는 성인(聖人)이 능(能)히 반관(反觀)함을 이름이라, 써 반관(反觀)이라 이르는 바는 아(我)로써 물(物)을 관(觀)치 아니함이오, 아(我)로써 물(物)을 관(觀)치 아니한다 함은 물(物)로써 물(物)을 관(觀)함을 이름이다. 물(物)로써 물(物)을 관(觀)함은 성(性)이오 아(我)로써 물(物)을 관(觀)함은 정(情)이니 성(性)은 공(公)하고 명(明)하며, 정(情)은 편(偏)하고 암(暗)하다」【註十】하니, 성(性)은 이성(理性)이오 정(情)은 감정(感情)이라, 이는 반관(反觀)이라 함은 이성적(理性的) 관찰(觀察)로서 지금의 소위(所謂) 객관(客觀)이니, 사물(事物)을 반관적(反觀的)으로 관찰(觀察)하면 일점(一點)의 사사(私邪)가 없이 공정(公正)하고 현명(賢明)하여 능(能)히 만민(萬民)의 심정(心情)을 통일(統一)할 수 있으니 이가 곧 통관(通觀)이오 아관(我觀)이라 함은 감정적(感情的) 관찰(觀察)로서 지금의 소위(所謂) 주관(主觀)이니, 아관(我觀)은 자아(自我)의 이해(利害)를 중심(中心)으로한 관찰(觀察)이므로, 편사(偏私)하고 혼암(昏暗)하여 사물(事物)의 일부분(一部分)밖에는 보지 못하나니 이가 곧 동관(童觀)이다.
고래(古來)로 비록 용군암주(庸君暗主)라 하더라도 그 군주(君主)에게 일기일예(一技一藝)의 능(能)이 없는 것이 아니니 혹(或)은 시문(詩文)에 우수(優秀)하고 혹(或)은 서화(書畵)에 특장(特長)하고 혹(或)은 변론(辯論)에 능숙(能熟)하여 그 재능(才能)의 가칭(可稱)할 바가 있다. 그러나 그 소견(所見)이 편국(偏局)하여 국사(國事)의 전체(全體)를 통관(通觀)치 못하고 부분(部分)에는 현명(賢明)하나 대체(大體)에 혼암(昏暗)한 까닭에, 마침내 국가대사(國家大事)를 그르친 것이다. 손자병법(孫子兵法)에「智者之慮 必雜於利害 雜於利而務可伸也 雜於害而患可解也 = 지자(智者)의 여(慮)는 반드시 이해(利害)를 잡(雜)할지니 이(利)를 잡(雜)하면 무(務)를 가(可)히 신(伸)할지오, 해(害)를 잡(雜)하면 환(患)을 가(可)히 해(解)할지라」【註十一】하니, 잡(雜)이라함은 이해량면(利害兩面)을 아울러 참작(參酌)함이라, 이는 모든 사물(事物)에는 이해(利害)가 병존(倂存)하여 서로 의복(倚伏)하고 있으므로, 지자(智者)는 이(利)를 만난 곳에 그 사려(思慮)가 반드시 이중(利中)의 해(害)를 생각하여 이(利)를 탐(貪)내어 해(害)를 유망(遺忘)치 말 것이오, 또 해(害)를 만난 곳에 그 사려(思慮)가 반드시 해중(害中)의 이(利)를 생각하여, 해(害)를 두려워하여 이(利)를 일실(逸失)치 말 것이라 함을 말함이다. 제이차(第二次) 세계대전중(世界大戰中)에 미국(美國)과 일본(日本)은 구적(仇敵)이오, 미국(美國)과 소련(蘇聯)은 연합(聯合)이러니, 겨우 종전(終戰)한 후(後)에, 구적(仇敵)이던 미일(美日)은 친우(親友)가 되고, 연합(聯合)이던 미소(美蘇)는 적대(敵對)하고 있는 것이 그 일례(一例)이다. 그러므로 사회(社會)의 생존(生存)을 위(爲)하는 사업(事業), 특(特)히 정치(政治)에 있어서 동관(童觀)에 빠지지 말고 항상(恒常) 대대(對待)되는 양면(兩面)을 통관(通觀)하며 부분(部分)에 구니(拘泥)치 말고 힘써 대체(大體)를 파지(把持)치 아니하면 안 되는 소이(所以)는, 실(實)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금에 모든 학문(學問)이 전문적(專門的)으로 분화(分化)하고 있는데 이는 사물(事物)을 깊이 연구(硏究)함에는 극(極)히 필요(必要)한 일이나, 학문(學問)이 분화(分化)하면 분화(分化)할수록 부분(部分)에 편경(偏傾)하여 통일성(統一性)을 상실(喪失)하기 쉬우며 따라서 사람의 두뇌기능(頭腦機能)도 전문화(專門化)하고 편국화(偏局化)하여 사물(事物)의 전체(全體)를 통관(通觀)치 못하는 폐(弊)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더욱이 정치(政治)같은 것은 먼저 국가통체(國家統體)를 운영(運營)하는 통일적(統一的)․항구적(恒久的)인 대책(大策)를 수립(樹立)하고, 그 대책(大策)에 의(依)하여 대체(大體)로부터 세부(細部)에 나누어 법령(法令)을 정(定)하고 이무(吏務)를 분장(分掌)하는 것이니, 만일 정치(政治)에 이 분화(分化)된 전문방법(專門方法)을 쓰고 또 정치(政治)를 운영(運營)하는 사람의 두뇌(頭腦)가 편국화(偏局化)한다고 하면, 대대(對待)의 이(理)를 알지 못하여 그 정치(政治)는 면전(面前)만을 보고 월편(越便)을 보지 못하며, 금일(今日)만을 알고 명일(明日)을 알지 못하여, 크게 사회(社會)의 생존(生存)을 조해(阻害)하는 것이다. 공자(孔子)의 정치론(政治論)에「無欲速 無見小利 欲速則不達 見小利則大事不成 = 속(速)함을 욕(欲)하지 말고 소리(小利)를 견(見)하지 말라, 속(速)하고저 하면 달(達)치 못하고, 소리(小利)를 견(見)하면 대사(大事)가 성(成)치 못한다」【註十二】하니, 이는 정치(政治)의 운행(運行)하는 도정(途程)은 장원(長遠)하고 영역(領域)은 광대(廣大)한지라, 급속(急速)하고저 하면 겨우 근지(近地)에는 도달(到達)할 수 있으나 원방(遠方)에는 도달(到達)치 못하고, 소리(小利)에 착안(着眼)하면 비록 소사(小事)는 성취(成就)할 수 있으나 대사(大事)는 성취(成就)치 못함을 말함이니, 이것도 또한 원근(遠近)․대소(大小) 등(等) 모든 대대(對待)를 통관(通觀)하여야 할 것을 경고(警告)함이오, 역(易)에「開國承家 小人勿用 = 국(國)을 개(開)하고 가(家)를 승(承)함에 소인(小人)을 용(用)치 말라」하고, 그의 소상전(小象傳)에「小人勿用必亂邦也 = 소인(小人)을 용(用)치 말라 함은 반드시 나라를 어지럽게 함일 새라」【註十三】하니, 소인(小人)이라 함은 소견(所見)이 편국(偏局)하여 소체(小體)만을 보고 대체(大體)를 보지 못하며 자기일신(自己一身)의 이해(利害)에 절근(切近)한 일만을 알고 국가통체(國家統體)의 안위(安危)에 관(關)한 대사(大事)를 알지 못하는 동관자(童觀者)를 말함이니, 이러한 소인(小人)은 이권(利權)을 보면 자기(自己)가 먼저 먹으려하고, 위난(危難)한 일을 당(當)하면 먼저 몸을 피(避)하는 까닭에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易)에「以前民用 = 써 민(民)의 용(用)에 앞서 한다」【註十四】하니, 이는 위정자(爲政者)의 총명(聰明)이 광대(廣大)하고 명조(明照)하여, 공간적(空間的)으로는 만민(萬民)의 실정(實情)을 살피고 시간적(時間的)으로는 미래(未來)를 예측(豫測)하는 선견(先見)의 명(明)이 있어 사전(事前)에 미리 조처(措處)함을 말함이니, 임진란전(壬辰亂前)에『이율곡(李栗谷)』의 십만양병론(十萬養兵論)과『이충무(李忠武)』의 구선예비책(龜船豫備策) 같은 것이 곧 이전민용(以前民用)이 되는 것이다. 정치운영자(政治運營者)의 총명(聰明)의 대소(大小)와 혼명(昏明)은 직통(直通)으로 국가(國家)의 안위(安危)와 민중(民衆)의 생명보호(生命保護)에 관계(關係)되는 것이니, 역학전체(易學全體)를 통(通)하여 대인(大人)과 성인(聖人)이 대위(大位)에 이처(履處)하여야 할 것을 말함은 이 까닭이다.
註一.『徐花潭』先生集 原理氣中에서 要點을 초출(抄出)한 것이다.
註二. 繫辭上傳 第五章
註三. 繫辭上傳 第十二章
註四. 繫辭上傳 第五章
註五. 繫辭上傳 第十一章
註六. 『徐花潭』先生集 原理氣中에서 要點을 抄出한 것이오,「一非數也數之體也」라 함은 先生의 自註中에서 取한 것이다.
註七. 繫辭上傳 第五章
註八. 皇極經世觀物內篇之二
註九.『李濟馬』箸 東醫壽世保元
註十. 皇極經世觀物內篇之十二인데「以物觀物」以下는 同書 觀物外篇上
註十一. 孫子九變篇
註十二. 論語 子路篇
註十三. 師卦上六爻辭와 그 小象傳
註十四. 繫辭上傳 第十一章
第二節 대대(對待)와 운동(運動)
‣대대(對待)의 호근(互根)
만물(萬物)은 그 조직체(組織體)가 있는 동시(同時)에 반드시 운행력(運行力)이 있고 운행(運行)은 물(物)의 운동(運動)으로부터 생(生)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어떠한 형태(形態)로든지 하나도 운동(運動)치 아니하는 것이 없고 또 일순간(一瞬間)도 운동(運動)을 계속(繼續)치 아니하는 것이 없으니, 운동(運動)이 지식(止息)되면 신단계(新段階)로 넘어가지 못하고 생존작용(生存作用)이 행(行)치 못한다. 역(易)에「終止則亂 = 종(終)하여 지(止)한즉 난(亂)한다」【註一】하니, 사물(事物)이 이미 종(終)하여 궁극(窮極)하려하는 때에 운동(運動)이 계속(繼續)하면 변화(變化)가 일어나서 전사(前事)의 종단(終端)이 곧 후사(後事)의 발단(發端)이 되어 다시 시작(始作)하는 것이오, 만일 지식(止息)하여 운동(運動)치 아니하면 전사(前事)가 양패(壞敗)하고 후사(後事)가 계속(繼續)치 못하여 스스로 패란(敗亂)하는 것이다. 그런데 종지(終止)와 정(靜)은 그 뜻이 상이(相異)하니 정(靜)은 종지(終止)함이 아니오 능동(能動)에 대(對)한 수동(受動)의 상(象)을 말함이니, 마치 사람의 활동(活動)은 능동(能動)이오 휴식(休息)은 수동(受動)이므로 휴식(休息)을 정(靜)이라 함과 같음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잠시(暫時)도 지식(止息)하는 것이 없고 그 조직(組織)이 스스로 운동(運動)을 일으키지 아니할 수 없도록 구성(構成)되어 있으니 그 조직(組織)이라 함은 곧 대대(對待)의 호근(互根)이다. 호근(互根)이라 함은 용(用)은 체(體)에 의착(依着)하여 능동작용(能動作用)을 행(行)하고, 체(體)는 용(用)의 고무(鼓舞)를 승수(承受)하여 수동작용(受動作用)을 행(行)하여, 상리(相離)하지도 못하고 상합(相合)하지도 못함이다. 그러므로 호근(互根)하고 있는 양물(兩物)은 하나는 동작(動作)하려 하고 하나는 정지(靜止)하려 하며, 하나는 발현(發顯)하려 하고 하나는 수렴(收斂)하려 하여, 거기에 스스로 작용(作用)과 반작용(反作用), 견인(牽引)과 추척(推斥), 압제(壓制)와 분기(奮起) 등(等)에 의(依)한 동작(動作)이 생(生)치 아니할 수 없으니, 이러한 동작(動作)이 곧 운동(運動)이다. 역(易)에「尺蠖之屈 以求伸也 龍蛇之蟄 以存身也 = 척확(尺蠖)의 굴(屈)함은 써 신(伸)함을 구(求)함이오, 용사(龍蛇)의 칩(蟄)함은 써 신(身)을 존(存)함이라」【註二】하니, 굴(屈)은 수렴작용(收斂作用)이므로 체(體)가 되고 신(伸)은 발서작용(發舒作用)이므로 용(用)이 되어 서로 대대(對待)하여, 굴(屈)치 아니하면 신(伸)할 수가 없고 신(伸)치 아니하면 굴(屈)할 수가 없으며, 또 이미 굴(屈)하면 다시 신(伸)치 아니할 수가 없고, 이미 신(伸)하면 다시 굴(屈)치 아니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반드시 하나는 굴(屈)하려 하고 하나는 신(伸)하려 하며, 또 한번은 굴(屈)하려 하고 한번은 신(伸)하려 하여, 굴(屈)하는 작용(作用)은 능(能)히 신(伸)하는 작용(作用)을 제어(制御)하고 신(伸)하는 작용(作用)은 능(能)히 굴(屈)하는 작용(作用)을 추척(推斥)하여, 굴신(屈伸)이 상감(相感)하여 스스로 운동(運動)치 아니할 수 없는 것이며, 동칩(冬蟄)하는 용사(龍蛇)는 체(體)만 있고 용(用)이 고무(鼓舞)치 못함으로 운동(運動)이 없으니, 이는 체내(體內)에 정(精)과 기(氣)의 대화(大和)를 보합(保合)하기 위(爲)하여 지정(止靜)한 것이오, 지식(止息)함은 아니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대대(對待)가 있으면 운동(運動)이 생(生)하고 대대(對待)가 없으면 운동(運動)이 생(生)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대(對待)와 운동(運動)은 어느 것이 선(先)하고 어느 것이 후(後)한다는 선후(先後)의 구별(區別)이 없나니, 이미 말한바와 같이 대대(對待)가 있은 연후(然後)에 운동(運動)이 생(生)하는 것이지만, 또한 그와 반대(反對)로 운동(運動)이 대대(對待)를 생(生)하여 운동(運動)이 있으면 대대작용(對待作用)이 행(行)하고 운동(運動)이 없으면 대대작용(對待作用)이 폐절(廢絶)되는 것이다. 역(易)에「乾坤 其易之縕耶 乾坤成列而易立乎其中矣 乾坤毁則 無以見易 易不可見則 乾坤或幾乎息矣 = 건곤(乾坤)은 그 역(易)의 온(縕)인저 건곤(乾坤)이 열(列)을 성(成)하매 역(易)이 그 중(中)에 입(立)하나니 건곤(乾坤)이 훼(毁)하면 써 역(易)을 견(見)치 못하고 역(易)을 가(可)히 견(見)치 못하면 건곤(乾坤)이 혹(或) 거의 식(息)한다」【註三】하니, 건(乾)은 양물(陽物)이오 곤(坤)은 음물(陰物)이며 온(縕)이라 함은 포축(包蓄)하는 뜻이오 역(易)이라 함은 운동변화(運動變化)의 뜻이라, 모든 운동변화(運動變化)는 음양(陰陽)의 대대(對待)와 서로 포축(包蓄)하고 있으므로, 음양(陰陽)의 대대작용(對待作用)이 양편(兩便)에 위열(位列)을 지은 연후(然後)에 운동변화(運動變化)가 그 중(中)에 행(行)하나니, 음양(陰陽)이 훼기(毁棄)하여 독음(獨陰)이나 독양(獨陽)이 되면 운동변화(運動變化)가 생(生)치 못하고 또 운동변화(運動變化)가 생(生)치 못하면, 양물(陽物)은 독양(獨陽)이 되고 음물(陰物)은 독음(獨陰)이 되어, 생생(生生)의 공(功)이 지식(止息)하는 것이니, 이것이 운동(運動)과 대대(對待)의 관계(關係)를 가장 명확(明確)히 표시(表示)함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는 반드시 운동(運動)과 대대(對待)가 병행(竝行)하나니, 식물(植物)의 동일체내(同一體內)에 뿌리의 배일성(背日性) 및 향토성(向土性)과 지엽(枝葉)의 향일성(向日性) 및 배토성(背土性)이 대대(對待)하고 있으므로 능(能)히 그 발육(發育)을 이루고, 동물(動物)의 동일체내(同一體內)에 피부(皮膚)의 수렴작용(收斂作用)과 혈액(血液)의 고동작용(鼓動作用)이 대대(對待)하고 있으므로 신체(身體)의 활동(活動)이 생(生)하고, 동일(同一)한 혈관(血管)에 동맥(動脈)과 정맥(靜脈)이 대대(對待)하고 있으므로 능(能)히 순환작용(循環作用)을 행(行)하고, 어느 지방(地方)에 특수(特殊)한 풍토병(風土病)이 있으면 그 지방(地方)에는 반드시 그 병(病)을 극복(克服)하는 약재(藥材)가 생(生)하고, 와류(蛙類)가 동면(冬眠)하는 까닭에 그를 식물(食物)로 하는 사류(蛇類)가 대대(對待)의 대상(對象)을 상실(喪失)하여 또한 동면(冬眠)치 아니할 수 없고, 어느 사물(事物)에 한 세력(勢力)이 이루어지면 그 반면(反面)에 반드시 그에 대항(對抗)하는 신세력(新勢力)이 발생(發生)하나니, 이것이 모두 대대작용(對待作用)에 의(依)하여 운동(運動)이 일어나고 또 운동(運動)이 있으므로 써 대대(對待)가 생(生)하는 것이다.
‣대대(對待)의 균등(均等)
체(體)와 용(用)은 일물(一物)의 양면작용(兩面作用)이므로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하여 체(體)가 용(用)에 작용(作用)하는 동시(同時)에 용(用)이 또한 체(體)에 작용(作用)하며, 그 기능(機能)은 서로 균등(均等)하여 우열(優劣)․강약(强弱) 등(等) 차등(差等)이 없으니, 마치 이심력(離心力)과 향심력(向心力), 작용(作用)과 반작용(反作用)이 그 역량(力量)이 상등(相等)함과 같음이다. 만일 양자(兩者)에 우열(優劣)․강약(强弱)의 차등(差等)이 있다고 하면 혹(或) 체(體)가 우강(優强)하고 용(用)이 열약(劣弱)한 때에 체(體)는 용(用)에 작용(作用)할 수가 있으되 용(用)은 체(體)에 작용(作用)치 못하며, 또 혹(或) 용(用)이 우강(優强)하고 체(體)가 열약(劣弱)한 때에 용(用)은 체(體)에 작용(作用)할 수가 있으되 체(體)는 용(用)에 작용(作用)치 못하여 대대(對待)의 교호작용(交互作用)이 행(行)치 못하나니, 교호작용(交互作用)이 행(行)치 못하면 그 운동과정(運動過程)에 스스로 편승편패(偏勝偏敗)가 생(生)하여 운동(運動)이 지식(止息)되는 것이다. 물(物)의 소장과정(消長過程)에는 어느 일편(一便)이 현저(顯著)히 우강(優强)하고 다른 일편(一便)이 현저(顯著)히 열약(劣弱)한 현상(現象)이 나타나지 아니함은 아니나, 그것은 편승편패(偏勝偏敗)가 아니오 한서(寒暑)․주야(晝夜)가 서로 대사(代謝)함과 같이 일왕일래(一往一來)․일진일퇴(一進一退)하는 소장운동(消長運動)이다.
원래(元來) 체(體)는 조직(組織)이니 조직(組織)은 지세(地勢)를 상(象)하여 돈후(敦厚)하여야 하나니, 역(易)에「坤厚載物 = 곤(坤)은 후(厚)하여 물(物)을 재(載)한다」【註四】함은 이를 말함이오, 용(用)은 운행(運行)이니 운행(運行)은 천행(天行)을 상(象)하여 강건(强健)하여야 하나니, 역(易)에「天行健 = 천행(天行)이 건(健)하다」【註五】함은 이를 말함이다. 조직(組織)이 돈후(敦厚)치 못하면 흠결(欠缺)하기 쉽고, 운행(運行)이 강건(强健)치 못하면 체색(滯塞)하기 쉬우니 흠결(欠缺)과 체색(滯塞)은 모두 생존작용(生存作用)의 병적현상(病的現象)으로서 반드시 편승편패(偏勝偏敗)의 폐(弊)를 생(生)하는 것이다. 체용(體用)의 편승편패(偏勝偏敗)에 대(對)하여 역(易)에는「소과(小過)」와「대과(大過)」로써 상(象)하니 역리(易理)에 음(陰)은 수렴작용(收斂作用)이 있으므로 소(小)라 하고 양(陽)은 발현작용(發顯作用)이 있으므로 대(大)라 하는지라, 소과(小過)라 함은 음(陰)이 과성(過盛)함이니, 체(體)가 과중(過重)하고 용(用)이 부족(不足)하여 약동(躍動)하는 힘이 강건(强健)치 못함으로 상(上)에 등상(騰上)치 못하고 하(下)에 추하(墜下)하는 상(象)이 되는 것이니, 역(易)에「上逆而下順 = 상(上)하면 역(逆)하고 하(下)하면 순(順)한다」【註六】함은 이를 말함이며, 상역하순(上逆下順)은 체승용패(體勝用敗)라, 모든 사물(事物)이 질량(質量)이 태중(太重)하고 활동력(活動力)이 약(弱)하여 주류방행(周流旁行)치 못함은 소과(小過)의 상(象)이 되는 것이오, 대과(大過)라 함은 양(陽)이 과성(過盛)함이니 용(用)이 과대(過大)하고 체(體)가 부족(不足)하여 지탱(支撑)하는 토대(土臺)가 돈후(敦厚)치 못함으로 요동(搖動)하여 전도(顚倒)하는 상(象)이 되는 것이니, 역(易)에「棟撓 本末弱也 = 동(棟)이 요(撓)함은 본말(本末)이 약(弱)함이라」【註七】함은 이를 말함이며 동요본말약(棟撓本末弱)은 용승체패(用勝體敗)라, 모든 사물(事物)이 기초(基礎)가 박약(薄弱)하고 상층구조(上層構造)가 과대(過大)하여 전복(顚覆)의 환(患)이 있음은 대과(大過)의 상(象)이 되는 것이니 소과(小過)와 대과(大過)는 모두 체용(體用)이 균등(均等)치 못하여 운동(運動)이 행(行)치 못하는 것이다. 한의학(漢醫學)에 편승편절(偏勝偏絶)의 이(理)가 있으니 어떤 병(病)에 대(對)하여 단약(單弱)을 복용(服用)하는 때에 병(病)이 제거(除去)되면 곧 중지(中止)하여야 하고, 만일 계속장복(繼續長服)하면 그 약(藥)이 작용(作用)하고 있는 장부(臟腑)는 강(强)하여지나, 그와 대대(對待)되는 장부(臟腑)는 도리어 약(弱)하여져서 마침내 절기(節氣)하기에 이르나니, 이를 장절(臟絶)이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감초(甘草)와 같은 중화성(中和性)의 약(藥)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단약(單藥)으로 장복(長服)치 아니하며, 약(藥)의 조제(調劑)에는 반드시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을 배합(配合)하는 것이다. 또 수화호택(水火互宅)의 이(理)가 있으니 이는 역학(易學)의 대대호근(對待互根)의 이(理)에 의(依)한 것이다. 수(水)는 화(火)의 고무(鼓舞)에 의(依)하여 유행(流行)하고, 화(火)는 수(水)에 의착(依着)하여 존재(存在)하나니, 수화(水火)는 곧 혈(血)과 기(氣), 냉(冷)과 열(熱) 등(等)이라, 그러므로 기약(氣藥)을 쓸 때에도 반드시 혈약(血藥)을 가(加)하고 혈약(血藥)을 쓸때에도 반드시 기약(氣藥)을 가(加)하며, 냉열(冷熱)의 약(藥)에도 또한 중화제(中和劑)를 가(加)하는 것이오, 다만 그 분량(分量)에 있어서 주종좌사(主從佐使)의 구별(區別)이 있을 뿐이니, 이것이 모두 편승편절(偏勝偏絶)의 해(害)를 막기 위(爲)함이다.
공자(孔子)의 문질론(文質論)에「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然後君子 = 질(質)이 문(文)을 승(勝)한즉 야(野)이오, 문(文)이 질(質)을 승(勝)한즉 사(史)이오 문질(文質)이 빈빈(彬彬)한 연후(然後)에 군자(君子)이라」【註八】하니, 질(質)은 체(體)이오 문(文)은 용(用)이라 야(野)는 체승용패(體勝用敗)의 상(象)이오 사(史)는 용승체패(用勝體敗)의 상(象)이오, 군자(君子)는 문(文)과 질(質)이 잡채(雜彩)하여 체용(體用)이 균등(均等)한 상(象)이다. 또 공자(孔子)의 학문론(學問論)에「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 학(學)하고 사(思)치 아니한즉 망(罔)하고 사(思)하고 학(學)치 아니한즉 태(殆)하다」【註九】하니, 사(師)로부터 학습(學習)함은 체(體)가 되고, 이미 학습(學習)한 것을 기초(基礎)로 하여 스스로 사색(思索)함은 용(用)이 되는지라, 학습(學習)만하고 사색(思索)치 아니하면 체승용패(體勝用敗)함으로 혼암(昏暗)하여 각득(覺得)함이 없고, 사색(思索)만 하고 학습(學習)치 아니하면 용승체패(用勝體敗)함으로 학문(學問)의 기초(基礎)가 박약(薄弱)하여 안정(安定)치 못한 것이다. 사람이 마음은 성실(誠實)하나 재능(才能)이 부족(不足)하여 작사(作事)가 민첩(敏捷)치 못함은, 체승용패(體勝用敗)의 상(象)이오, 역(易)에「德薄而位尊 知小而謀大 力少而任重 鮮不及矣 = 덕(德)이 박(薄)하되 위(位)가 존(尊)하고 지(知)가 소(小)하되 모(謀)가 대(大)하고 역(力)이 소(少)하되 임(任)이 중(重)하면 화(禍)에 급(及)치 아니함이 적다」【註十】함은, 그 실력(實力)이 책임(責任)을 감승(堪勝)치 못하여 용승체패(用勝體敗)하는 상(象)이다.
사람의 성격(性格)에는 냉정(冷靜)과 열렬(熱烈)이 있는데, 냉정(冷靜)은 체(體)이오 열렬(熱烈)은 용(用)이라, 냉정(冷靜)한 체(體)는 열렬(熱烈)로써 용(用)을 삼은 연후(然後)에 진취(進取)의 기(氣)와 추행(推行)하는 힘이 있어 능(能)히 전도(前途)의 험난(險難)을 개척(開拓)하는 것이오, 열렬(熱烈)한 용(用)은 냉정(冷靜)으로써 체(體)를 삼은 연후(然後)에 냉정(冷靜)한 자기비판(自己批判)과 반성(反省)이 있어 진퇴(進退)함이 그 정도(正道)를 잃지 아니하는 것이다. 또 사람의 사상(思想)에는 현실(現實)을 주(主)하는 자(者)와 이상(理想)을 주(主)하는 자(者)가 있는데, 현실(現實)은 체(體)이오 이상(理想)은 용(用)이라, 사람이 현실(現實)에 만족(滿足)하여 더 향상(向上)할 이상(理想)을 가지지 못하면, 혹(或)은 인순고식(因循姑息)하고 혹(或)은 안일(安逸)을 탐(貪)하여 아무 진취(進就)가 없는 것이니, 이는 체승용패(體勝用敗)함이오, 또 이상(理想)의 추구(追求)에 급급(汲汲)하여 현실사회(現實社會)가 착종(錯綜)한 전통(傳統)과 무한(無限)한 관련(關聯)의 환경(環境)속에 있음을 알지 못하면, 혹(或)은 공상(空想)에 흐르고 혹(或)은 모험돌진(冒險突進)하다가 패사(敗事)하는 일이 적지 아니하니, 이는 용승체패(用勝體敗)함이다.
‣사회(社會)의 신진대사(新陳代謝)
인생사회(人生社會)는 부단(不斷)히 운동(運動)하여 일반생물(一般生物)과 같은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이(理)가 있으므로, 거기에는 현실(現實)과 이상(理想), 보수(保守)와 혁신(革新) 등(等) 대대작용(對待作用)이 생(生)하고, 또 이러한 대대작용(對待作用)이 있으므로 써 부단(不斷)히 운동(運動)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社會)의 성장(成長)이 어느 한도(限度)에 이르면 스스로 생장(生長)을 정지(停止)하고 경화(硬化)․정체(停滯)․폐색(閉塞) 등(等) 수장현상(收藏現象)이 나타나서, 인심(人心)이 구안(苟安)을 탐(貪)하고 만무(萬務)가 해이(解弛)하여 장래(將來)할 화환(禍患)을 원려(遠慮)치 아니하나니, 신라(新羅)가 삼한(三韓)을 통일(統一)한 후(後)에 승평(昇平)이 일구(日久)하여 귀족계급(貴族階級)이 향락(享樂)과 부패(腐敗)의 생활(生活)에 빠진 것이 그 일예(一例)이오, 또 사회(社會)가 시(時)로 더불어 진전(進展)하는 도중(途中)에는 스스로 거기에 동반(同伴)치 못하는 낙오자(落伍者)가 생(生)하나니, 지금 우리 사회(社會)에 봉건시대(封建時代)의 관존민비(官尊民卑)의 잔재(殘滓)가 남아 있는 것이 그 일예(一例)이다. 그런데 사회(社會)에는 반드시 현실(現實)을 유지(維持)하려 하는 세력(勢力)이 있어 그 현실(現實)을 옹호(擁護)하기 위(爲)하여 보수작용(保守作用)을 행(行)하고 또 한편(便)에는 반드시 현실(現實)을 변통(變通)하려 하는 이상(理想)이 있어 보수세력(保守勢力)을 추척(推斥)하고 사회(社會)를 일신(日新)하려 하는 혁신작용(革新作用)을 행(行)하나니, 역(易)에「革去故也 鼎取新也 = 혁(革)은 고(故)를 거(去)함이오 정(鼎)은 신(新)을 취(取)함이라」【註十一】함은, 구폐(舊弊)를 혁거(革去)하여 물(物)을 일신(日新)하는 혁신작용(革新作用)을 말함이다. 보수(保守)는 체(體)가 되고 혁신(革新)은 용(用)이 되는지라, 보수사회(保守社會)의 속에는 반드시 폐고(弊故)한 폐물(廢物)이 생(生)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조해(阻害)하는 부면(部面)이 있으므로 사회(社會)는 자체(自體)의 생존(生存)을 위(爲)하여 고(故)를 버리고 신(新)을 취(取)하려 하는 혁신작용(革新作用)이 일어나지 아니할 수가 없으니, 마치 생물체(生物體)의 신진대사(新陳代謝)와 사시(四時)의 서(序)에 성공자(成功者)가 거(去)함과 같은 것이오, 이것이 사회내(社會內)의 운동(運動)이 신고(新故)의 대대(對待)를 생(生)하는 동시(同時)에 또한 신고(新故)의 대대(對待)가 사회내(社會內)의 운동(運動)을 일으키는 소이(所以)이다.
고래(古來)로 전제독재(專制獨裁)의 정치(政治)를 행(行)하는 사회(社會)는 국내(國內)에 일원적(一元的) 지배세력(支配勢力)을 수립(樹立)하려 하여 모든 대대세력(對待勢力)을 억제(抑制)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사회(社會)에는 지배세력(支配勢力)에 대(對)한 혁신운동(革新運動)이 일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정체(停滯)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대작용(對待作用)은 천지(天地)의 생존법칙(生存法則)이라, 현실(現實)의 지배세력(支配勢力)과 대대(對待)하고 있는 혁신세력(革新勢力)이 비록 표면(表面)에 나타나서 활발(活潑)히 동작(動作)치 못한다 하더라도, 사회(社會)의 깊은 오저(奧底)에는 역시(亦是) 대대력(對待力)이 잠행암류(潛行暗流)하여 은연(隱然)히 지배층(支配層)에 대항(對抗)하고 이 잠행력(潛行力)이 축적(蓄積)하여 일시(一時)에 용출(湧出)하는 때는 사회(社會)의 대변동(大變動)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배층(支配層)들은 항상(恒常) 자기(自己)들에게 향래(向來)하는 대항세력(對抗勢力)의 봉인(鋒刃)이 있을 것을 예상(豫想)하고, 그 봉인(鋒刃)을 타(他) 방면(方面)으로 전환(轉換)시키기 위(爲)하여 권모(權謀)와 술책(術策)으로써 인위적(人爲的) 대대작용(對待作用)을 조작(造作)하나니, 그 관용(慣用)하는 수단(手段)으로는 혹(或)은 외국(外國)에 대(對)한 강경외교(强硬外交)의 기치(旗幟)를 고게(高揭)하고 때때로 폭탄적(爆彈的) 선언(宣言)을 발(發)하여 국민(國民)의 주의(注意)를 대외관계(對外關係)에 전환(轉換)시키는 동시(同時)에 외국(外國)에 대(對)한 적개심(敵愾心)을 환기(喚起)하여 자기(自己)들에게 향래(向來)하는 반항력(反抗力)을 마비(麻痺)시키고, 혹(或)은 국내(國內)에 어떤 사건(事件)이 발생(發生)함을 교묘(巧妙)히 이용(利用)하여 고의(故意)로 과장선전(誇張宣傳)하여 국민(國民)의 이목(耳目)을 그 방면(方面)에 집주(集注)시켜 그 사건(事件)과의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케 하는 것이니, 이가 모두 인생사회(人生社會)에는 대대작용(對待作用)이 없지 못한 소이(所以)이오, 지금 공산주의(共産主義) 국가(國家) 같은 것이 전제독재정치(專制獨裁政治)의 산 표본(標本)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조대대(人造對待)는 사회(社會)의 자연(自然)스러운 생존작용(生存作用)으로 부터 출래(出來)한 것이 아니므로, 그 사회내부(社會內部)에는 지배층(支配層)에 대(對)한 항쟁세력(抗爭勢力)이 부단(不斷)히 움직이고 있어, 사회(社會)에는 운동(運動)이 지식(止息)치 아니하는 것이다.
더욱이 사회(社會)는 거대(巨大)한 조직(組織)이라 편승편패(偏勝偏敗)하는 일이 거의 없고, 혹시(或是) 일시적(一時的)으로 그러한 현상(現狀)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이 항구(恒久)히 계속(繼續)되는 것이 아니며, 또 혹(或)은 자체(自體)의 내부(內部)에서 분열작용(分裂作用)이 일어나서 다시 대대양면(對待兩面)을 생(生)하는 일도 있는 것이다. 사회(社會)에 양세력(兩勢力)이 상쟁(相爭)하다가 어느 일편(一便)이 폐절(廢絶)되는 때에 독존(獨存)한 세력(勢力)은 독음(獨陰)이 되고 다시 대대(對待)되는 세력(勢力)이 생(生)치 못하면 사회(社會)의 생존운동(生存運動)이 행(行)치 못하여 침체(沈滯) 부패(腐敗)하는 것이나 사회(社會)는 생생(生生)하여 궁(窮)치 아니하는지라, 반드시 그 독음체내(獨陰體內)에서 상반(相反)되는 양작용(兩作用)이 생(生)하여 필경(畢竟) 분열(分裂)에 의(依)하여 운동(運動)을 행(行)하는 것이다. 생물(生物)의 생식작용(生殖作用)으로써 보면 고등생물(高等生物)은 모두 음양성(陰陽性)이 이체(異體)로 되어 서로 대대(對待)하여 생식(生殖)의 공(功)을 이루고 있지만 저급생물중(低級生物中)에는 음양성(陰陽性)이 동체내(同體內)에 병존(竝存)한 것도 있고 최하층생물(最下層生物)에 이르러서는 자체(自體)의 분열작용(分裂作用)에 의(依)하여 생식(生殖)하고 있는지라, 사회(社會)도 민도(民度)가 높은 곳에서나 또는 높은 시대(時代)에는 대대(對待)되는 양세력(兩勢力)이 존립(存立)하여 사시(四時)의 서(序)가 자연(自然)스럽게 대사(代謝)함과 같이, 어느 일세력(一勢力)이 정권(政權)을 잡고 있다가 인심(人心)이 향응(向應)치 아니하면 곧 정권(政權)을 대대(對待)되는 세력(勢力)에게 양도(讓渡)하고 야(野)에 내려와서 실력(實力)을 양성(養成)한 후(後)에 다시 출발(出發)하여 사시순환(四時循環)의 이(理)를 몸소 실천(實踐)하는 것이며, 민도(民度)가 저하(低下)한 사회(社會)나 시대(時代)에는, 한번 정권(政權)을 잡으면 인민(人民)의 향배여하(向背如何)를 불문(不問)하고 한 사유기(私有器)의 소유권(所有權)으로 생각하여 수중(手中)의 권력(權力)을 이용(利用)하여 백년독점(百年獨占)을 몽상(夢想)하는 것이니, 이러한 사회(社會)에는 순리(順理)로운 정권수수(政權授受)가 있을 수 없고 마침내 유혈(流血)의 혁명(革命)이 일어나거나 그러하지 아니하면 자체(自體)의 분열(分裂)에 의(依)하여 대대세력(對待勢力)이 생(生)하는 것이니, 아국(我國)의 이조정쟁사(李朝政爭史)같은 것은 귀족사회(貴族社會)의 대대운동(對待運動)의 자취를 확실(確實)히 보여주는 것이다.【註十二】
註一. 旣濟卦彖傳
註二. 繫辭下傳 第五章
註三. 繫辭上傳 第十二章
註四. 坤卦彖傳
註五. 乾卦大象傳
註六. 小過卦彖傳
註七. 大過卦彖傳
註八. 論語雍也篇
註九. 論語爲政篇
註十. 繫辭下傳 第五章
註十一. 離卦傳
註十二. 이조(李朝)의 파당대대(派黨對待)의 투쟁(鬪爭)은 멀리 세조(世祖)가 단종(端宗)과 육신(六臣)을 죽이고 탈위(奪位)한데서 발단(發端)하니, 당시(當時) 유신파(儒臣派)의 분노(憤怒)는 主로 공신척리파(功臣戚里派)를 향(向)하여 발사(發射)하고 성종(成宗)일대중(一代中)의 정치투쟁(政治鬪爭)은 전(專)혀 유신파(儒臣派)의 대(對) 공신척리파(功臣戚里派) 공격(攻擊)이다. 이 투쟁(鬪爭)이 연산시대(燕山時代)에 이르러 공신척리파(功臣戚里派)가 유신파(儒臣派)를 일망타진(一網打盡)하는 무오사화(戊午士禍)를 양성(釀成)하고 중종반정후(中宗反正後)에 조광조(趙光祖)등(等) 유신파(儒臣派)가 다시 등장(登場)하여 공신척리파(功臣戚里派)와의 격렬(激烈)한 투쟁(鬪爭)을 전개(展開)하더니 마침내 공신(功臣)삭탈문제(削奪問題)로 인(因)하여 기묘사화(己卯士禍)를 보게 되고 중종(中宗)말년(末年)에 유신파(儒臣派)가 다시 거두(擧頭)하더니 명종(明宗)초년(初年)에 또 척리파(戚里派) 윤씨(尹氏)와 충돌(衝突)이 생(生)하여 을사사화(乙巳士禍)를 만난 것이다. 선조(宣祖)이후(以後)에 비로소 유신파(儒臣派)의 천하(天下)가 되어 오랜동안의 숙분(宿憤)을 쾌설(快雪)하기는 하나 아직 척리파(戚里派)에 대(對)한 숙감(宿憾)이 풀리지 아니하던중(中) 사적(私的)으로는『김효원(金孝元)』대(對)『심의겸(沈義謙)』 공적(公的)으로는 유신파(儒臣派)대(對) 척리파(戚里派)의 대(對) 결전(決戰)이 일어나서 드디어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이라는 양당(兩黨)을 생(生)한 것이다. 그러나 세조(世祖)이후(以後) 백수십년간(百數十年間)의 정쟁(政爭)은 서로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하여 정쟁(政爭)의 의의(意義)가 있고 따라서 그 운동(運動)도 활기(活氣)를 띤 것이러니 동서분당(東西分黨)이후(以後)에 척리파(戚里派)는 다시 지평선(地平線) 상(上)에 올라오지 못하고 유신(儒臣)일색(一色)으로 정치(政治)를 운영(運營)하니, 이 때로 부터의 정쟁(政爭)은 종래(從來)와 같은 투쟁(鬪爭)대상(對象)이 있는 것도 아니오, 또 현실(現實)과 이상(理想)의 대립(對立)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정쟁(政爭)의 의의(意義)를 전연(全然) 상실(喪失)하니, 의의(意義)없는 정쟁(政爭)은 다만 권력(權力)과 모략(謀略)으로써 상대방(相對方)을 공파(攻破)하고 정권(政權)을 잡는 것이 유일(唯一)한 목표(目標)이라, 그러므로 동인(東人)은 마침내 서인(西人)을 구축(驅逐)하고 독천하(獨天下)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독천하(獨天下)는 또한 대대(對待)의 대상(對象)이 없는지라, 이에 자체(自體)분열(分裂)에 의(依)한 생식작용(生殖作用)을 행(行)하여 동인(東人)은 남인(南人)과 북인(北人)으로 분파(分派)되고 북인(北人)은 다시 대북(大北)과 소북(小北)으로 분열(分裂)된 것이다. 인조반정(仁祖反正)이후(以後)에 서인(西人)과 남인(南人)이 조정(朝廷)에 공립(共立)하더니, 서인(西人)은 남인(南人)을 타도(打倒)한 후(後)에 다시 자체(自體)분열(分裂)에 의(依)하여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을 생(生)하여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한 것이다. 영조(英祖)이후(以後)에 소위(所謂) 탕평책(蕩平策)을 써서 당쟁(黨爭)의 휴전(休戰)을 도모(圖謀)하나 여의(如意)치 못하고, 주(主)로 노론(老論)이 용사(用事)하여 거의 독천하(獨天下)가 되더니, 이에 무당무파(無黨無派)를 표방(標榜)한 속칭(俗稱) 탕평당(蕩平黨)이 새로 출현(出現)하여 홍씨(洪氏)를 중심(中心)으로한 척리파(戚里派)가 재차(再次) 등장(登場)하니, 이 세력(勢力)은 비록 오래지 아니하여 제거(除去)된 것이나 척리파(戚里派)의 재등장(再登場)의 뿌리는 이미 부식(扶植)되고, 역사(歷史)는 여기서 일대환전(一大圜轉)하여 이래(爾來) 근백년간(近百年間) 왈조(曰趙), 왈김(曰金), 왈민(曰閔), 등(等) 척리(戚里)천하(天下)를 현출(現出)하고 유신파(儒臣派)는 다시 거두(擧頭)치 못하며, 척리(戚里)천하(天下)는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치 못하고 운동(運動)이 지식(止息)하여 퇴폐(頹廢)와 부패(腐敗)의 일로(一路)를 향진(向進)한 것이다. 한편으로 이조(李朝)의 학술(學術)은 정주학(程朱學)이 독세력(獨勢力)을 차지하여 대대작용(對待作用)이 없고 사상계(思想界)의 침체(沈滯)를 초래(招來)하더니, 여러 차례의 정쟁(政爭)에서 패배(敗北)를 당(當)한 남인(南人)들은 새로운 방면(方面)에 진로(進路)를 개척(開拓)하여, 국리(國利)민생(民生)에 실천(實踐)할 수 있는 실사구시학(實事求是學) 즉(卽) 실학(實學)으로써 종래(從來)에 공리공론(空理空論)에 흐르고 있는 소위(所謂) 성리학(性理學)과 대대(對待)하니, 정치(政治)와 사회(社會)가 천부만패(千腐萬敗)한 이조(李朝)말기(末期)에 있어서 실학(實學)의 발생(發生)은 실(實)로 유일(唯一)한 생기(生氣)의 약동(躍動)이었다.
   
第三節 대대(對待)와 삼재(三才)
‣대대조직(對待組織)과 삼재운행(三才運行)
만물(萬物)의 조직(組織)은 모두 대대양물(對待兩物)로 되어 있으므로 대대(對待)가 운동(運動)하여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하는 때는 반드시 새로운 일물(一物)을 생(生)하여 생생불궁(生生不窮)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만물(萬物)의 운동(運動)은 양작용(兩作用)이 상가(相加)하는 때에 반드시 새로운 일작용(一作用)을 생(生)하고 양사(兩事)가 상여(相與)하는 때에 반드시 새로운 일사(一事)를 생(生)한다. 그리하여 조직체(組織體)의 대대(對待)로부터 운행력(運行力)이 발동(發動)하여 신사물(新事物)을 생(生)하는 때는 그 수(數)가 삼(三)이 되어「삼재(三才)」의 상(象)을 나타내나니, 역(易)에「天地絪縕 萬物化醇 男女構精 萬物化生 = 천지(天地)가 인온(絪縕)하매 만물(萬物)이 화(化)하여 순(醇)하고 남녀(男女)가 정(精)을 구(構)하매 만물(萬物)이 화(化)하여 생(生)한다」【註一】한바, 인온(絪縕)은 교밀(交密)함이오 화순(化醇)은 기(氣)가 화응(化凝)함이오 화생(化生)은 형(形)이 화성(化成)함이니, 이는 천지(天地)의 기(氣)가 교밀(交密)하여 만물(萬物)의 기(氣)가 화응(化凝)하고 만물(萬物)의 음양성(陰陽性)이 정(精)을 상교(相交)하여 형(形)을 화성(化成)함을 말함인데, 천지(天地)의 중간(中間)에 사람이 생(生)하여 만물중(萬物中)의 최령최장(最靈最長)으로서 위(位)를 이루고 있으므로 천지(天地)와 사람을 병칭(倂稱)하여 삼재(三才)라 하나니, 이 이(理)에 의(依)하여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이 상교(相交)하여 후계자(後繼者)를 생(生)하는 것이 모두 삼재(三才)의 도(道)이다.
물(物)의 조직(組織)은 대대(對待)로써 구성(構成)되어 그 상(象)이 이(二)하니 이(二)는 우(偶)하고 우(偶)한 자(者)는 수용작용(受容作用)이 있으므로 그 형(形)이 광(廣)하여 지잡지동(至雜至動)한 물(物)을 포장(包藏)하는 것이오, 물(物)의 운행(運行)은 삼재(三才)의 도(道)로써 발전(發展)하여 그 상(象)이 삼(三)하니 삼(三)은 기(奇)하고 기(奇)한 자(者)는 추진작용(推進作用)이 있으므로 그 형(形)이 대(大)하여 무한(無限)히 확대(擴大)하고 무궁(無窮)히 추이(推移)하는 것이니, 천(天)은 운행(運行)의 상징(象徵)이오, 지(地)는 조직(組織)의 상징(象徵)이므로, 역(易)에는「廣大配天地 = 광(廣)하고 대(大)함은 천지(天地)에 배(配)한다」【註二】하여, 천(天)을 대(大)하다 하고 지(地)를 광(廣)하다 하며 또「參天兩地 = 천(天)을 삼(參)으로 하고 지(地)를 양(兩)으로 한다」【註三】하여, 천수(天數)를 삼(三)이라 하고 지수(地數)를 이(二)라 한 것이다.
삼천양지(參天兩地)의 이(理)에 의(依)하여 양성(陽性)과 음성(陰性)의 수(數)의 비교(比較)는, 항상(恒常) 그 상(象)이 양성(陽性)은 삼(三)이 되고 음성(陰性)은 이(二)가 되나니 동식물(動植物)의 생식기(生殖器)로써 보면 음성(陰性)은 수용(受容)하기 위(位)하여 대대(對待)의 형태(形態)와 같이 우(偶)함으로 그 상(象)이 이(二)하고 양성(陽性)은 발시(發施)하기 위(爲)하여 삼재(三才)의 형태(形態)와 같이 기(奇)함으로 그 상(象)이 삼(三)하며, 사람의 생식(生殖)유효(有效)연령(年齡)의 기간(期間)도 대체(大體)로 남삼여이(男三女二)의 비(比)이다. 식물체(植物體)의 구조(構造)로써 보면 이미 체(體)를 완성(完成)한 근간(根幹) 등(等)은 음성(陰性)을 띠고 있으므로 중공(中空)하여 그 상(象)이 우(偶)하고, 성(成)의 용(用)이 되는 지초(枝梢) 등(等) 성장점(成長點)은 양성(陽性)을 띠고 있으므로 그 상(象)이 기(奇)하며, 마류(馬類)는 양물(陽物)이므로 그 제(蹄)가 기(奇)하여 중실(中實)하고, 우류(牛類)는 음물(陰物)이므로 그 제(蹄)가 우(偶)하여 중공(中空)하니, 중실(中實)과 중공(中空)이 또한 삼(三)과 이(二)의 상(象)이다.
그러나 대대(對待)와 삼재(三才)는 각기(各其) 별물(別物)로 존재(存在)하는 것이 아니오, 대대(對待)가 삼재(三才)를 생(生)하고 삼재(三才)의 속에 대대(對待)를 포함(包含)하고 그 대대(對待)가 다시 삼재(三才)를 생(生)하여 서로 착종(錯綜)하고 서로 인과(因果)하며, 대대(對待)와 삼재(三才)의 한(限)없는 교호작용(交互作用)에 의(依)하여 만물(萬物)은 생생(生生)하면서 존존(存存)하고 존존(存存)하면서 생생(生生)하며, 또 그 만물(萬物)은 비록 삼라만상(森羅萬象)하고 있으되 모두 태일체(太一體)의 통일(統一)에 귀(歸)하는 것이니, 老子가「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 일(一)이 이(二)를 생(生)하고 이(二)가 삼(三)을 생(生)하고 삼(三)이 만물(萬物)을 생(生)한다」【註四】함은, 통일(統一)․대대(對待)․삼재(三才)의 이(理)를 간명(簡明)하게 표현(表現)한 것이다.
▶삼색(三索)과 삼극(三極)
원래(元來) 천(天)․지(地)․인(人)을 삼재(三才)라 함은, 상(上)의 천(天)과 하(下)의 지(地)와 그 중간(中間)에 생(生)한 만물(萬物)을 합(合)하여 말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동적(動的)으로 볼 때에는 천(天)은 기(氣)의 유행(流行)함이오, 지(地)는 정(精)의 응주(凝做)함이오, 만물(萬物)은 형(形)의 결성(結成)함이니, 기(氣)․정(精)․형(形)의 삼자(三者)가 또한 삼재(三才)의 형태(形態)이다. 그러므로 물(物)과 물(物)이 상여(相與)하여 삼재(三才)로 발전(發展)하는 과정(過程)에는 정(精)과 기(氣)의 혼륜착종(渾淪錯綜)한 작용(作用)을 일으켜 삼색(三索)과 삼극(三極)의 상(象)을 생(生)하는 것이다.
삼색(三索)의 상(象)이라 함은 시간적(時間的)․입체적(立體的) 또는 종적(縱的)으로 발전(發展)함이니, 천지(天地)가 상교(相交)하여 물(物)을 생(生)하는 순서(順序)는, 일색(一索)하여 뇌풍(雷風)의 기(氣)를 득(得)하니 이를 인사(人事)에 의(擬)하여 장남(長男)․장녀(長女)라 하고, 재색(再索)하여 수화(水火)의 정(精)을 득(得)하니 이를 인사(人事)에 의(擬)하여 중남(中男)․중녀(中女)라하고, 삼색(三索)하여 산택(山澤)의 형(形)을 득(得)하니, 이를 인사(人事)에 의(擬)하여 소남(少男)․소녀(少女)라 하니, 이것을 삼색(三索)이라 한다.【註五】 그러므로 만물(萬物)의 음양성(陰陽性)의 대대(對待)가 신물(新物)을 생(生)하는 순서(順序)는, 먼저 양성(兩性)의 기(氣)가 상감(相感)하고 다음에 양성(兩性)의 정(精)이 상취(相聚)하고 그 다음에 정(精)과 기(氣)가 상응(相凝)하여 신물(新物)의 형(形)이 생성(生成)하나니, 이가 곧 삼색(三索)의 상(象)이다. 생물(生物)의 생식작용(生殖作用)에 있어서는 처음에 양성(兩性)의 기(氣)가 상감(相感)하여 연모(戀慕)가 생(生)하고, 다음에 양성(兩性)의 정(精)이 상취(相聚)하여 잉태(孕胎)가 되고, 그 다음에 정(精)과 기(氣)가 응결(凝結)하여 차세대(次世代)의 형(形)이 생성(生成)하는 것이며, 사람의 사업(事業)같은 것도 처음에 계획(計劃)의 수립(樹立)은 기(氣)의 감응(感應)함이고, 다음에 기구(機構)의 조직(組織)은 정(精)의 취합(聚合)함이오, 그 다음에 실천(實踐)의 결실(結實)은 형(形)의 생성(生成)함이니, 만사만물(萬事萬物)의 발생(發生)에는 어느 하나도 이 삼색(三索)의 순서(順序)를 밟지 아니하는 것이 없다.
삼극(三極)의 상(象)이라 함은 공간적(空間的)․평면적(平面的) 또는 횡적(橫的)으로 관섭(關涉)함이니, 여기에는 기(氣)와 기(氣)의 상감(相感), 정(精)과 정(精)의 상취(相聚), 정(精)과 기(氣)의 상합(相合) 등(等), 세 가지 형태(形態)가 있다. 천지인(天地人)의 삼재(三才)에는 모두 양극(兩極)이 있으니, 유(幽)와 명(明)은 지(地)의 주야(晝夜)의 양극(兩極)이오, 사(死)와 생(生)은 인(人)의 일생(一生)의 양극(兩極)이오, 귀(鬼)와 신(神)은 천(天)의 조화(造化)의 양극(兩極)이며, 또 음(陰)과 양(陽)은 천(天)의 도(道)의 양극(兩極)이오, 유(柔)와 강(剛)은 지(地)의 도(道)의 양극(兩極)이오, 인(仁)과 의(義)는 인(人)의 도(道)의 양극(兩極)이니【註六】, 물(物)의 운동(運動)이 천지인(天地人)의 각(各) 양극(兩極)의 사이를 왕래(往來)하는 것을 삼극(三極)의 도(道)라 한다.【註七】
‣能動과 受動
기(氣)와 기(氣)의 상감(相感)이라 함은, 만물(萬物)의 기(氣)는 모두 발동작용(發動作用)을 행(行)함으로 기(氣)와 기(氣)가 상대(相對)하는 때는 양자(兩者)가 서로 발동(發動)하려하여 스스로 서로 추척(推斥)하고 서로 견인(牽引)하나니 역(易)에「雷風相薄 = 뇌(雷)와 풍(風)이 서로 박(薄)한다」【註八】함은, 기(氣)와 기(氣)의 상감(相感)하는 작용(作用)을 말함이오, 또「動靜有常 = 동(動)하고 정(靜)함이 상(常)이 있다」【註九】함은, 동(動)은 능동(能動)이오 정(靜)은 수동(受動)으로서 동정(動靜)함이 상도(常道)가 있다 함을 말함이라, 그러므로 추척(推斥)과 견인(牽引)과의 상대(相對)는 또한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관계(關係)로 되어, 기(氣)의 운동(運動)은 능동(能動)과 수동(受動)의 양극(兩極)의 사이를 왕래(往來)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수동(受動)은 체(體)가 되고 능동(能動)은 용(用)이되어, 능동(能動)이 없으면 수동(受動)이 있을 수 없고 또 수동(受動)이 없으면 능동(能動)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만물(萬物)은 그 위(位)가 상역(相易)하면 그 작용(作用)이 또한 변화(變化)하나니, 역(易)에「剛柔相易 不可爲典要 惟變所適 = 강유(剛柔)가 서로 역(易)하여 가(可)히 전요(典要)를 삼지 못하고 오직 변(變)의 적(適)하는 바이라」【註十】하니, 전요(典要)라 함은 상례(常例)의 뜻이라, 역(易)의 도(道)는 강유(剛柔)의 위(位)와 작용(作用)이 서로 환역(換易)하여 고정(固定)한 상례(常例)가 없고 오직 변화(變化)함을 따른다 함이 이 뜻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능동(能動)과 수동(受動)은 고정불변(固定不變)하는 것이 아니오, 아(我)가 능동(能動)하여 타(他)에 발시(發施)하면 타(他)는 수동(受動)하여 그를 승수(承受)하고, 그 승수(承受)하는 작용(作用)이 다시 능동(能動)으로 전화(轉化)하여 아(我)에 발시(發施)하고 아(我)는 수동(受動)으로 변화(變化)하며, 이리하여 동일물(同一物)인 아(我)는 한번은 능동(能動)의 위(位)에 입(立)하고 한번은 수동(受動)의 위(位)에 입(立)하여 소위(所謂) 작용(作用)과 반작용(反作用)이 서로 반복(反復)하면서 한(限)없는 운동(運動)을 계속(繼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이나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소장(消長)․성쇠(盛衰)와 왕고래금(往古來今)의 역사(歷史)의 발전(發展)은 이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반복(反復)이다.
‣개체(個體)와 통체(統體)
정(精)과 정(精)의 상취(相聚)라 함은 만물(萬物)의 정(精)은 모두 지정작용(止靜作用)을 행(行)함으로 정(精)과 정(精)이 상대(相對)하는 때는 서로 적응(適應)하여 相與치 못하고, 오직 부분(部分)과 전체(全體)와의 교호작용(交互作用)으로써 서로 관섭(關涉)이 생(生)하나니, 역(易)에「水火不相射 = 수(水)와 화(火)가 서로 사(射)치 아니한다」【註十一】함은, 정(精)과 정(精)의 상취(相聚)하는 작용(作用)을 말함인데, 정(精)의 작용(作用)은 취합(聚合)하면 형(形)을 이루어 통체(統體)가 되고 발산(發散)하면 기(氣)로 화(化)하여 개체(個體)가 되는 것이므로 역(易)에「方以類聚 物以群分 = 방(方)에는 유(類)로써 취(聚)하고 물(物)은 군(群)으로써 분(分)한다」【註十二】하니 유(類)로써 취(聚)함은 통체(統體)를 이루는 것이오, 군(群)으로써 분(分)함은 개체(個體)로 화(化)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부분(部分)과 전체(全體)와의 상대(相對)는 스스로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관계(關係)로 되어, 개체(個體)는 물(物)의 구성요소(構成要素)가 되고 통체(統體)는 각개체(各個體)가 취합(聚合)하여 통일작용(統一作用)을 행(行)하는 통일체(統一體)가 되는 것이며, 정(精)의 운동(運動)은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의 양극(兩極)의 사이를 내왕(來往)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개체(個體)는 체(體)가 되고 통체(統體)는 용(用)이 되어 개체(個體)가 없으면 통체(統體)는 성립(成立)되지 못하고 또 통체(統體)가 없으면 개체(個體)는 고립(孤立)하여 생존(生存)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물(萬物)은 그 위(位)가 상역(相易)하면 그 작용(作用)이 또한 변화(變化)하는지라, 개체(個體)와 통체(統體)는 시(時)와 처지(處地)의 변화(變化)에 따라서 주객(主客)의 위(位)가 항상(恒常) 이역(移易)하나니, 만물(萬物)은 모두 한편으로는 개체(個體)의 위(位)에 입(立)하고, 한편으로는 통체(統體)의 위(位)에 입(立)하는데, 개체(個體)의 위(位)에 입(立)한 때는 개체(個體)는 주(主)가 되고 통체(統體)는 객(客)이 되며, 통체(統體)의 위(位)에 입(立)한 때는 통체(統體)는 주(主)가 되고 개체(個體)는 객(客)이 되며, 이리하여 동일물(同一物)이 한편으로는 주(主)의 위(位)에 입(立)하고 한편으로는 객(客)의 위(位)에 입(立)하여 주객(主客)의 위(位)가 서로 전도(轉倒)되는 것이니, 지금에 소위(所謂) 사적생활(私的生活)이라 함은 개체(個體)의 위(位)이오, 공적생활(公的生活)이라 함은 통체(統體)의 위(位)이니, 이 사적생활(私的生活)과 공적생활(公的生活)의 착종(錯綜)으로 인(因)하여 지잡(至雜)한 양상(樣相)과 지동(至動)하는 변화(變化)를 생(生)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이나 인생사회(人生社會)의 모든 분합(分合)․취산(聚散) 등(等)은 이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교착(交錯)이다.
‣안정(安貞)과 발용(發用)
정(精)과 기(氣)의 상합(相合)이라 함은, 정(精)은 지정(止靜)하고 기(氣)는 발동(發動)함으로 기(氣)는 정(精)에 의착(依着)하고 정(精)은 기(氣)의 고무(鼓舞)로써 동작(動作)하여 호상의부(互相依附)하여 형체(形體)를 이루는 것이니 역(易)에「山澤通氣 = 산(山)과 택(澤)이 기(氣)를 통(通)한다」【註十三】함은, 정(精)과 기(氣)의 상합(相合)하는 작용(作用)을 말함이오, 또「卑高以陳 = 비(卑)와 고(高)가 써 진(陳)한다」【註十四】함은 산(山)은 고(高)하고 택(澤)은 비(卑)하여 고저(高低)의 차등(差等)이 있으나 산(山)은 안정(安貞)하고 택(澤)은 발용(發用)하여 수(水)가 산정(山頂)에까지 통(通)함을 말함이라, 그러므로 형체(形體)의 조직(組織)은 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호근관계(互根關係)로 되어 안정(安貞)은 현상(現狀)을 항구(恒久)히 유지(維持)하려 하여 지정작용(止靜作用)을 행(行)하고 발용(發用)은 현상(現狀)을 부단(不斷)히 변개(變改)하려하여 유행작용(流行作用)을 행(行)하여, 정(精)과 기(氣)의 운동(運動)은 안정(安貞)과 발용(發用)의 양극(兩極)의 사이를 내왕(來往)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안정(安貞)은 체(體)가 되고 발용(發用)은 용(用)이 되어, 안정(安貞)만 있고 발용(發用)이 없으면 물(物)의 운동(運動)이 지식(止息)되고, 또 발용(發用)만 있고 안정(安貞)이 없으면 물(物)이 항구성(恒久性)을 상실(喪失)하여 자체(自體)를 유지(維持)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만물(萬物)은 그 위(位)가 상역(相易)하면 그 작용(作用)이 또한 변화(變化)하는지라, 현상(現狀)인 현실(現實)은 안정(安貞)의 위(位)이오, 시(時)의 추이(推移)에 의(依)하여 부단(不斷)히 발전(發展)하고 나가는 미래(未來)는 발용(發用)의 위(位)인데, 만물(萬物)은 현실(現實)을 떠날 수가 없고 또 미래(未來)를 향진(向進)치 아니할 수도 없어, 동일(同一)한 물(物)이 한편으로는 안정(安貞)의 위(位)에 입(立)하고 한편으로는 발용(發用)의 위(位)에 입(立)하여, 안정(安貞)의 위(位)에 입(立)한 때에는 발용(發用)하는 작용(作用)을 견제(牽制)하고 발용(發用)의 위(位)에 입(立)한 때에는 안정(安貞)하는 작용(作用)을 추척(推斥)하며, 이리하여 현실(現實)은 정지(停止)하고 이상(理想)은 행진(行進)하며 다시 정지(停止)하던 현실(現實)은 행진(行進)하고 행진(行進)하던 이상(理想)은 정지(停止)하여 무한(無限)히 앞으로 행진(行進)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과 인생사회(人生社會)의 모든 진퇴(進退)․굴신(屈伸) 등(等)은 이 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관련(關聯)이다.
‣삼대용(三對用)의 착종(錯綜)
이와같이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삼재운행(三才運行)에 의(依)하여 삼색(三索)과 삼극(三極)의 작용(作用)을 생(生)하는데, 양기(兩氣)의 상감(相感)․양정(兩精)의 상취(相聚)․정기(精氣)의 성형(成形) 등(等) 삼대용(三對用)은 비록 그 형태(形態)는 서로 다르나, 삼대용(三對用)의 본원(本源)이 되고 있는 정(精)과 기(氣)가 서로 혼륜(渾淪)하고 있으므로 삼대용(三對用)도 각기(各其) 독립(獨立)한 것이 아니오 서로 착종(錯綜)하고 있으니,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대대(對待)의 속에도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대대(對待)가 포함(包涵)되어 있고,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대대(對待)의 속에도 능동(能動)과 수동(受動)․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대대(對待)가 포함(包涵)되어 있고, 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대대(對待)의 속에도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대대(對待)가 포함(包涵)되어 있는 것이다. 이 삼대용(三對用)의 혼륜(渾淪)한 상(象)을 사회생활(社會生活)의 예(例)로 써 보건대, 개인(個人)과 사회(社會)가 혼륜(渾淪)하고 있음은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관계(關係)가 되고, 세력(勢力)과 세력(勢力)이 교호작용(交互作用)함은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관계(關係)가 되고, 현실(現實)과 이상(理想)과의 호근(互根)은 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관계(關係)가 되는 것이다.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운행과정(運行過程)에 천태만상(千態萬象)의 변이(變異)와 왕래불측(往來不測)하는 흥폐(興廢)․존망(存亡)이 생(生)하는 것은 실(實)로 이 삼대용(三對用)이 통일체내(統一體內)에 착종(錯綜)되어 있는 까닭이다.
註一. 繫辭下傳 第五章
註二. 繫辭上傳 第六章
註三. 說卦傳 第一章
註四. 老子道德經
註五. 說卦傳 第十章의 뜻을 해설(解說)한 것이니, 乾坤震巽坎離艮兌의 팔괘(八卦)를 인사(人事)에 의(擬)하여 건(乾)을 부(父)라 하고, 곤(坤)을 모(母)라 하고, 진(震)을 장남(長男)이라 하고, 손(巽)을 장녀(長女)라 하고, 감(坎)을 중남(中男)이라 하고, 이(離)를 중녀(中女)라 하고, 간(艮)을 소남(少男)이라 하고, 태(兌)를 소녀(少女)라 하니, 장(長)은 선(先)에 생(生)함을 상(象)함이오 중(中)은 중(中)에 생(生)함을 상(象)함이오 소(少)는 말(末)에 생(生)함을 상(象)함이라, 장남(長男)․장녀(長女)는 뇌(雷)와 풍(風)이니 곧 기(氣)이오 중남(中男)․중녀(中女)는 수(水)와 화(火)이니 곧 정(精)이오 소남(少男)․소녀(少女)는 산(山)과 택(澤)이니 곧 형(形)이다. 이 장중소(長中少)의 선(先) 중(中) 말(末) 순서(順序)는 또한 기(氣)․정(精)․형(形)의 출생순서(出生順序)와 명합(冥合)하는 것이다.
註六. 繫辭上傳 第四章의 幽明․死生 鬼神과 說卦傳 第二章의 陰陽․柔剛․仁義
註七. 繫辭上傳 第二章
註八. 說卦傳 第三章
註九. 繫辭上傳 第一章
註十. 繫辭下傳 第八章
註十一. 說卦傳 第三章
註十二. 繫辭上傳 第一章
註十三. 說卦傳 第三章
註十四. 繫辭上傳 第一章
第三章 대시(大始)와 정(情)
第一節 삼정(三情)(삼본능(三本能))
‣본능(本能)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의 발단(發端)
만물(萬物)이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행위(行爲)는 항상(恒常) 생존(生存)의 삼정(三情)으로 부터 발단(發端)하나니, 정(情)은 즉(卽) 본능(本能)이다. 삼정(三情)은 정(精)과 기(氣)의 교호작용(交互作用)하는 삼대용(三對用)으로써 발(發)하여 아무 면강(勉强)과 조작(造作)이 없이 스스로 발로(發露)하는데, 기(氣)에는 발동(發動)하는 작용(作用)이 있고 정(精)에는 응주(凝做)하는 작용(作用)이 있고 정(精)과 기(氣)는 합(合)하여 형체(形體)를 이루는 작용(作用)이 있는지라, 그러므로 발동(發動)하는 기(氣)는 능동(能動)과 수동(受動)으로써 신사물(新事物)을 생(生)하는 작용(作用)이 있어 그 상괴상위(相乖相違)한 체(體)의 속에서 상인상합(相引相合)하는 용(用)을 구(求)하여 항상(恒常) 외물(外物)과 상감상응(相感相應)하려 함으로 감응(感應)의 정(情)이 되나니, 역(易)에「觀其所感 而天地萬物之情 可見矣 = 그 감(感)하는 바를 관(觀)하매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정(情)을 가(可)히 견(見)한다」【註一】 함은 감응작용(感應作用)이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정(情)이 됨을 말함이오, 응주(凝做)하는 정(精)은 개체(個體)와 통체(統體)가 상여(相與)하여 분산(分散)되어 있는 개체(個體)를 취(聚)하여 통체(統體)를 이루는 작용(作用)이 있어 항상(恒常) 자체(自體)의 성장(成長) 확대(擴大)를 도모(圖謀)하여 개체(個體)를 취(聚)하려 함으로 췌취(萃聚)의 정(情)이 되나니, 역(易)에「觀其所聚 而天地萬物之情 可見矣 = 그 취(聚)하는 바를 관(觀)하매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정(情)을 가(可)히 견(見)한다」【註二】 함은 췌취작용(萃聚作用)이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정(情)이 됨을 말함이오, 정(精)과 기(氣)로써 구성(構成)된 형체(形體)는 안정(安貞)과 발용(發用)이 서로 의부(依附)하는 작용(作用)이 있어,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변화(變化)하는 속에서 항상(恒常) 그 형체(形體)를 영구(永久)히 존속(存續)하려 함으로 항구(恒久)의 정(情)이 되나니, 역(易)에「觀其所恒 而天地萬物之情 可見矣 = 그 항(恒)하는 바를 관(觀)하매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정(情)을 가(可)히 견(見)한다 【註三】함은, 항구작용(恒久作用)이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정(情)이 됨을 말함이다. 이 삼정(三情)은 물(物)의 자체생존(自體生存)을 위(爲)하여 반드시 가지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므로 물(物)의 모든 동작(動作), 행위(行爲)는 이 삼정(三情)의 어느 하나로부터 시발(始發)하는 것이다. 지금에 생물(生物)의 본능(本能)을 여러 가지로 규정(規定)하는 일이 있으나, 물(物)의 조직원리(組織原理)로써 보면 실(實)은 이 삼정(三情)에 불외(不外)한 것이다.
삼정(三情)은 만물(萬物)이 생존(生存)하기 위(爲)하여 생(生)한 것이므로 삼자중(三者中) 하나도 흠결(欠缺)할 수가 없고 또 거기에는 경중(輕重), 후박(厚薄) 등(等)의 구별(區別)이 있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정(情)의 소자출(所自出)하는 정기(精氣)가 일물중(一物中)에 혼륜(渾淪)되어 선후(先後)의 순차(順次)와 시종(始終)의 단(端)이 없고, 교호(交互)로 관련(關聯)하여 서로 전제(前提)가 되고 서로 성과(成果)가 되어 있으므로, 생물(生物)의 생존본능(生存本能)도 서로 관련(關聯)하여 있으니, 감응(感應)이 있으므로 써 음양성(陰陽性)이 상교(相交)하여 생생(生生)의 사공(事功)이 이루어져서 췌취(萃聚)와 항구(恒久)의 작용(作用)이 행(行)하고, 췌취(萃聚)가 있으므로 써 본체(本體)가 성장(成長)하여 감응(感應)과 항구(恒久)의 작용(作用)이 행(行)하고, 항구(恒久)가 있으므로 써 형체(形體)가 존존(存存)하여 감응(感應)과 췌취(萃聚)의 작용(作用)이 행(行)하는 것이다.
   
‣본능(本能)과 선악문제(善惡問題)
생존본능(生存本能)이라 함은 정(情)의 발로(發露)함이오 사람의 정신작용(精神作用)에는 성(性)․정(情)․의(意)․지(志)․심(心) 등(等)의 구별(區別)이 있으니, 성(性)이라 함은 천품(天稟)한 정신작용(精神作用)의 본체(本體)를 말함이오, 정(情)이라 함은 성(性)이 물(物)에 감촉(感觸)하여 아무런 면강(勉强)과 조작(造作)이 없이 스스로 발로(發露)하는 것이니 희(憙)․노(怒)․애(哀)․낙(樂)․애(愛)․오(惡)․수(羞)․욕(欲) 등(等)과 같은 것이오, 의(意)라 함은 이미 발로(發露)한 정(情)에 대(對)하여 계교상량(計較商量)하여 결단(決斷)을 내리는 것이오, 지(志)라 함은 이미 결단(決斷)한 의(意)를 실행(實行)에 옮기기 위(爲)하여 어느 방향(方向)으로 향발(向發)하는 것이오, 심(心)이라 함은 생각하는 작용(作用)의 본체(本體)를 말함이다. 고래(古來)로 소위(所謂)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이 있는데, 성(性)에 선악(善惡)이 있다고 하면 정(情)에도 선악(善惡)이 있을 것이오, 따라서 본능(本能)에도 선악(善惡)이 있을 것이다. 만일 본능(本能)을 선(善)하다고 하면 본능(本能)에 의(依)한 행동(行動)은 모두 선(善)이 될 것이니, 이는 본능생활(本能生活)을 하고 있는 우리 인류(人類)의 행동(行動)은 모두 선(善)이 될 것이오, 또 만일 본능(本能)을 악(惡)하다고 하면 이는 본능(本能)의 발로(發露)는 모두 악(惡)이 되어 이 인류사회(人類社會)는 악(惡)으로 충만(充滿)될 것이다. 그러나 인류생활(人類生活)은 모두 선(善)한 것도 아니오 인류사회(人類社會)는 악(惡)으로 충만(充滿)된 것도 아니니, 그러므로 본능(本能)에는 선악(善惡)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성(性)에도 선악(善惡)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대체(大體) 선악(善惡)이라 함은 무엇인가, 이것을 역리(易理)로써 보건대, 천지(天地)의 운동(運動)은 오직 생존작용(生存作用)이 있을 뿐이니, 만일 천지(天地)로부터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제외(除外)하고 보면 거기에는 운행(運行)도 없고 변화(變化)도 없고 만물(萬物)도 없고 오직 암흑(暗黑)한 공허(空虛)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는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체(體)이오, 천지(天地)의 운동(運動)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용(用)이라, 역(易)에 「元者善之長也 = 원(元)은 선(善)의 장(長)함이라」【註四】한바, 원(元)은 물(物)의 시생(始生)하는 상(象)이오, 또 「繼之者善 = 계(繼)하는 자(者)가 선(善)하다」【註五】한바, 계(繼)는 물(物)을 시생(始生)하는 양(陽)의 작용(作用)을 상(象)함이니, 이는 모두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용(用)이 되는 천지(天地)의 운동(運動)을 선(善)하다고 한 것이다. 사람이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함에는 성(性)은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와 같이 체(體)가되고 행위(行爲)는 천지(天地)의 운동(運動)과 같이 용(用)이 되는지라,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에 선(善)이 있는 것이 아니오, 물(物)을 생생(生生)하는 천지(天地)의 운동(運動)이 곧 선(善)이 됨과 같이 사람의 성(性)은 다만 천품(天稟)한 정신작용(精神作用)의 본체(本體)가 될 뿐이오 거기에 선악(善惡)이 있을 수가 없으며, 그 성(性)이 물(物)에 감촉(感觸)하여 정(情)으로 발로(發露)하고 다시 의지(意志)의 과정(過程)을 밟아서 행위(行爲)로 나타나는 때에 비로소 선악(善惡)의 구별(區別)이 생(生)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제활(濟活)함을 선(善)이라 하고 자기(自己)의 생명(生命)을 내걸고 사회(社會)의 복리(福利)를 위(爲)하는 행위(行爲)를 최대(最大)의 선(善)이라 하는 것도 모두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행위(行爲)가 곧 선(善)이 됨을 말함이오, 이와 반대(反對)로 개체(個體)의 사욕(私慾)을 위(爲)하여 사회(社會)의 생존(生存)을 해독(害毒)하고 타인(他人)의 생명(生命)․재산(財産)을 상해(傷害)함과 같은 것은, 그 타인(他人)을 상해(傷害)하는 행위(行爲)가 곧 악(惡)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행위(行爲)가 타(他)를 이(利)하고 해(害)하는 데서 선악(善惡)의 구별(區別)이 생(生)하고 또한 그것이 선악(善惡)을 판단(判斷)하는 표준(標準)이 되는 것이다.
‣선악(善惡)과 미추(美醜)
이와 같이 선악(善惡)이라 함은 행위(行爲)에서 생(生)하는 것이므로 사람의 행위(行爲)에는 또한 선악(善惡)과 미추(美醜)의 구별(區別)이 있다. 사람의 행위(行爲)가 전(專)혀 개체(個體)에 국한(局限)하여 사회(社會)나 타인(他人)에게 아무런 영향(影響)을 미치지 아니하는 자(者)는 선행(善行)도 되지 아니하고 악행(惡行)도 되지 아니한다. 사람의 행위(行爲)는 직접(直接) 혹(或)은 간접(間接)으로 사회(社會)에 영향(影響)치 아니하는 것이 없으나, 그 중(中)에는 또한 개체(個體)에 국한(局限)한 것이 없지 아니하니, 이러한 행위(行爲)에는 선악(善惡)이 없고 오직 미추(美醜)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 행위(行爲)가 비록 가찬(可讚)할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社會)를 이(利)함이 없으면 미행(美行)은 되나 선행(善行)은 되지 못하나니, 공자(孔子)가 제순(帝舜)의 음악(音樂)을 듣고 「盡美矣 又盡善矣 = 미(美)하고 또 다 선(善)하다」【註六】하고, 주무왕(周武王)의 음악(音樂)을 듣고 「盡美矣 未盡善也 = 다 미(美)하되 다 선(善)치 못하다【註七】하니, 이는 제순(帝舜)의 음악(音樂)은 자체(自體)의 미(美)와 사회(社會)를 화성(化成)하는 선(善)을 겸유(兼有)하고 있으되 주무왕(周武王)의 음악(音樂)은 자체(自體)는 미(美)하나 은국(殷國)을 멸(滅)한 살벌(殺伐)의 기(氣)가 있으므로 진선(盡善)치 못하다 함이며, 역(易)에 양(陽)의 작용(作用)에는 흔히 선(善)을 말하고 음(陰)의 작용(作用)에는 흔히 미(美)를 말한 것은, 양(陽)은 발현(發顯)하여 행위(行爲)가 생(生)하고, 음(陰)은 함축(含蓄)하여 행위(行爲)가 외현(外現)치 아니하는 까닭이니, 이가 곧 미(美)와 선(善)을 구별(區別)하는 표준(標準)이다. 또 비록 가책(可責)할 행위(行爲)라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社會)를 해(害)함이 없으면 추행(醜行)은 되나 악행(惡行)은 되지 아니하나니, 역(易)에 「老婦士夫 亦可醜也 = 노부(老婦)와 사부(士夫)가 또한 가(可)히 추(醜)하다」【註八】하여, 노부(老婦)와 소남(少男)이 결혼(結婚)함이 추(醜)하다 함을 말하고, 또 「闚觀 亦可醜也 = 규관(闚觀)하니 또한 可히 추(醜)하다」【註九】하여, 광대(廣大)한 경역(境域)을 보지 못하고 겨우 간극(間隙)으로부터 일부분(一部分)을 규견(窺見)함이 추(醜)하다 함을 말하니, 이러한 일은 추행(醜行)은 되나 죄(罪)를 범(犯)한 악행(惡行)은 되지 아니하나니, 이가 곧 악(惡)과 추(醜)를 구별(區別)하는 표준(標準)이다. 그러므로 국가(國家)의 상벌제도(賞罰制度)같은것도 선행(善行)은 포상(褒賞)하되 선(善)을 반수(伴隨)치 아니한 미행(美行)은 포상(褒賞)치 아니하며, 악행(惡行)은 처벌(處罰)하되 악(惡)에 흐르지 아니한 추행(醜行)은 처벌(處罰)치 아니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래(古來)로 선악(善惡)에 상대성(相對性)이 있어 동일(同一)한 행위(行爲)가 시대(時代)의 변천(變遷)으로 인(因)하여 고(古)에 선(善)한 자(者)가 금(今)에 불선(不善)하고 금(今)에 선(善)한 자(者)가 고(古)에 불선(不善)한 일도 있고, 혹(或)은 처지(處地)의 상이(相異)로 인(因)하여 차(此)에 선(善)한 자(者)가 피(彼)에 불선(不善)하고, 피(彼)에 선(善)한 자(者)가 차(此)에 불선(不善)한 일도 있으며, 종교(宗敎)의 상이(相異), 정책(政策)의 상위(相違) 등(等)이 또한 모두 아선피악(我善彼惡)을 주장(主張)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선악(善惡)의 규준(規準)은 시대(時代)와 처지(處地)를 따라서 변화(變化)하여, 자고급금(自古及今)에 이미 그러하고 자금이후(自今以後)에 또한 그러할지라, 그러나 선악(善惡)의 규준(規準)이 변화(變化)하는 속에는 또한 변화(變化)치 아니하는 항구(恒久)가 있으니, 그것은 곧 사람의 생존(生存)을 위(爲)하는 행위(行爲)는 항구불변(恒久不變)하는 선(善)이 되고, 그에 반(反)하는 행위(行爲)는 악(惡)이 되는 것이다.
소위(所謂) 도덕(道德)이라 하는 것도 이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행위(行爲)를 말함이니, 도(道)라 함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용(用) 즉(卽) 운행(運行)이오, 덕(德)이라 함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체(體) 즉(卽) 조직(組織)이다. 천지(天地)에 있어서는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여 물(物)을 생생(生生)하는 운행(運行)을 도(道)라 하고, 물(物)을 생생(生生)하도록 구성(構成)되어 있는 조직(組織)을 덕(德)이라 하며, 사람에 있어서는 사람을 제활(濟活)하는 마음의 운행(運行)을 도(道)라 하고, 그 마음의 조직(組織)을 덕(德)이라 하니, 도(道)는 덕(德)의 용(用)이오 덕(德)은 도(道)의 체(體)이다. 그런데 선악(善惡)과 도덕(道德)이 여하(如何)히 다른가 하면, 선악(善惡)이라 함은 사람의 행위(行爲)가 실제(實際)로 사물(事物)에 나타나서 타인(他人)이나 사회(社會)에 이해(利害)를 미치게 한 때에 그 행위(行爲)의 결과(結果)를 말함이오, 도덕(道德)이라 함은 선악(善惡)을 발생(發生)하는 마음의 운행(運行)․조직(組織)의 형태(形態)를 말함이다.
‣악(惡)의 발생(發生)하는 까닭
그러므로 선악(善惡)이라 함은 타(他)를 이(利)하고 해(害)하는 행위(行爲)를 말함이니, 정신작용(精神作用)의 본체(本體)로서 외부(外部)에 발로(發露)치 아니한 성(性)에 선악(善惡)이 있을 수 없고, 또 희(憙)․노(怒)․애(愛)․욕(欲) 같은 정(情)의 발로(發露)에도 선악(善惡)이 있을 수 없으니, 유쾌(愉快)한 일을 기뻐하고 억울(抑鬱)한 일을 노(怒)하고 이성(異性)을 연모(戀慕)하고 음식(飮食)을 욕(欲)하는 것이 아무런 선(善)도 되지 아니하고 악(惡)도 되지 아니하며, 이러한 정(情)이 발로(發露)하는 때에 의지(意志)의 계교상량(計較商量)하는 과정(過程)을 밟아서 행위(行爲)로 이행(移行)한 후(後)에 비로소 선악(善惡)의 구별(區別)이 생(生)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무슨 까닭에 타(他)를 해(害)하는 악(惡)을 행(行)하는가, 사람의 생존본능(生存本能)은 자체(自體)를 무한(無限)히 계승(繼承)하고 무한(無限)히 성장확대(成長擴大)하고 무한(無限)히 연장(延長)하려 하여 구획(區劃)된 계한(界限)이 없고, 이 계한(界限)이 없는 까닭에 능(能)히 생활(生活)의 더 일층(一層) 향상(向上)과 새로운 발달(發達)을 도모(圖謀)하여 자기(自己)를 이(利)하고 아울러 사회(社會)를 이(利)하나니, 만일 어느 계한(界限)에 정지(停止)하여 더 향상발달(向上發達)할 욕망(欲望)을 가지지 못하면 개인(個人)이나 사회(社會)는 스스로 정체(停滯)하는 것이니, 이로 써 보면 생존본능(生存本能)은 선(善)의 발원(發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향상발달(向上發達)을 위(爲)하여 계한(界限)이 없는 욕망(欲望)은 흔히 타인(他人)의 생존령역(生存領域)을 침범(侵犯)하는 일이 있으니, 이 타역침범(他域侵犯)이 곧 악(惡)의 발생(發生)하는 시단(始端)이다. 사람의 생존본능(生存本能)이라 함은 이를 억제(抑制)하지 못하나니 이를 억제(抑制)하면 그 생존(生存)을 완수(完遂)치 못하는 것이며, 더우기 생존본능(生存本能) 자체(自體)에는 선(善)도 없고 악(惡)도 없다. 다만 본능(本能)으로부터 발생(發生)하는 행위(行爲)가 타(他)를 이(利)하는 때는 선(善)이되고 타역(他域)을 침범(侵犯)하는 때는 악(惡)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공자(孔子)의 말에「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勿施於人 = 자공(子貢)이 문(問)하여 가로되 일언(一言)이 가(可)히 써 종신(終身)토록 행(行)할 자(者)가 있으리까, 자(子) 가라사대 그 서(恕)인저, 자기(自己)의 하고자 아니하는 바를 사람에게 베풀지 말지니라」【註十】하니, 타인(他人)이 자기(自己)의 생존영역(生存領域)을 침범(侵犯)하는 때에 그를 배제(排除)치 아니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 자기(自己)의 마음을 추(推)하여 자기(自己)도 결(決)코 타역(他域)을 침범(侵犯)치 아니하는 것이 곧 서(恕)이라, 이는 서(恕)를 종신(終身)토록 행(行)하면 일생중(一生中)에 악(惡)을 범(犯)하는 일이 없으리라 함을 말함이다. 지금 속어(俗語)에 「내가 나의 자유(自由)를 존중(尊重)하려 하면 먼저 타인(他人)의 자유(自由)를 존중(尊重)하라」함은, 서(恕)로써 타인(他人)의 생존영역(生存領域)을 존중(尊重)하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고금(古今)의 역사(歷史)를 보건대, 국민(國民) 각자(各者)가 타인(他人)의 생존권(生存權)을 존중(尊重)하는 사회(社會)는 도덕(道德)의 세상(世上)이 되고, 권력(權力)을 배경(背景)으로하여 자기개인(自己個人)의 생존본능(生存本能)을 방종자자(放縱自恣)히 행사(行使)하여 자기(自己)의 생존영역(生存領域)내(內)에는 타인(他人)의 입족(入足)을 엄금(嚴禁)하면서, 자기(自己)의 마제(馬蹄)는 잔민(殘民)의 생존영역(生存領域)을 임의(任意)로 유린(蹂躪)하는 사회(社會)는 죄악(罪惡)의 세상(世上)이 되는 것이다.
註一. 咸卦彖傳
註二. 萃卦彖傳
註三. 恒卦彖傳
註四. 乾卦文言
註五. 繫辭上傳 第五章
註六. 論語 八佾篇
註七. 論語 八佾篇
註八. 大過卦 九五爻 小象傳
註九. 觀卦 六二爻 小象傳
註十. 論語 衛靈公篇
第二節 감응(感應)
‣감응(感應)은 괴위중(乖違中)의 상교(相交)
감응(感應)은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이 그 형체(形體)는 상괴상위(相乖相違)하면서 그 기(氣)는 상감상응(相感相應)하여 새로운 일물(一物)을 생(生)함이니, 천지(天地)의 이기(二氣)가 감응(感應)하여 만물(萬物)을 화순(化醇)하고 빈모자웅(牝牡雌雄)이 상교(相交)하여 차세대(次世代)를 창조(創造)하고 만사만물(萬事萬物)의 능동(能動)과 수동(受動)이 상응(相應)하여 신사물(新事物)을 생(生)하는 것 등(等)이 모두 감응(感應)의 정(情)에 의(依)함이오, 만물(萬物)은 이 정(情)의 발로(發露)에 의(依)하여 항상(恒常) 감응(感應)의 대상(對象)을 구(求)하여 발동(發動)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의 운행(運行)은 생생불궁(生生不窮)하기 위(爲)하여 부모(父母)를 계대(繼代)할 신물(新物)을 생(生)치 아니할 수 없고, 신물(新物)을 생(生)하기 위(爲)하여는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의 대대작용(對待作用)이 행(行)치 아니할 수 없으니,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의 대대(對待)라 함은 그 체(體)는 서로 괴위(乖違)하면서 그 정(情)은 서로 교합(交合)하는 것이라,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그 체(體)가 괴위(乖違)한 때에 그 용(用)이 상교(相交)하고 체(體)의 괴위(乖違)가 없으면 용(用)의 상교(相交)도 없나니, 이 괴위중(乖違中)의 상교(相交)가 곧 감응(感應)이다. 남성(男性)과 여성(女性)은 그 신체(身體)의 구조(構造)가 서로 괴위(乖違)함으로 그 지(志)가 상통(相通)하고, 자기(磁氣)와 전기(電氣) 등(等)이 동일(同一)한 음극(陰極)과 동일(同一)한 양극(陽極)은 그 체(體)가 상동(相同)함으로 그 용(用)이 상척상배(相斥相背)하고 있으나, 음극(陰極)과 양극(陽極)은 그 체(體)가 괴위(乖違)함으로 그 용(用)이 감응(感應)하여 상인(相引)하는 것이 그 일례(一例)이며, 감응(感應)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정(情)이 되고 있으므로 비록 우매무지(愚昧無知)한 충어조수(虫魚鳥獸)도 능(能)히 교정(交情)의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아무 의식(意識)이 없는 초목(草木)도 능(能)히 교배(交配)의 기능(機能)을 다하여 차세대(次世代)를 생(生)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은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이 상교(相交)하는때에 가장 화기(和氣)를 생(生)하는 것이므로 감응작용(感應作用)이 행(行)한 연후(然後)에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조화(調和)를 생(生)하나니, 역(易)에「日往則月來 月往則日來 日月相推而明生焉 寒往則暑來 暑往則寒來 寒暑相推而歲成焉 往者屈也 來者伸也 屈伸相感而利生焉 = 일(日)이 왕(往)한즉 월(月)이 내(來)하고 월(月)이 왕(往)한즉 일(日)이 내(來)하여 일월(日月)이 상추(相推)하여 명(明)이 생(生)하고, 한(寒)이 왕(往)한즉 서(暑)가 내(來)하고 서(暑)가 왕(往)한즉 한(寒)이 내(來)하여 한서(寒暑)가 상추(相推)하여 세(歲)가 성(成)하나니, 왕(往)하는 자(者)는 굴(屈)함이오 내(來)하는 자(者)는 신(伸)함이니 굴신(屈伸)이 상감(相感)하여 이(利)가 생(生)한다」【註一】 하니, 이(利)라 함은 의(義)의 화(和)함이니 곧 사물(事物)이 적의(適宜)히 재성(裁成)되어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조화(調和)를 얻음이라, 이는 일월(日月)과 한서(寒暑)의 왕래굴신(往來屈伸)이 상감(相感)하는 까닭에 광명(光明)이 생(生)하고 일세(一歲)가 이루어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이 모두 조화(調和)한다 함을 말함이오, 또「聖人感人心而天下和平 = 성인(聖人)이 인심(人心)을 감(感)하매 천하(天下)가 화평(和平)하다」【註二】하여, 성인(聖人)의 정치(政治)가 인심(人心)을 감응(感應)시킴으로 천하(天下)의 인심(人心)이 감응(感應)하여 화평(和平)함을 얻음을 말함이다. 그리하여 천하(天下)의 인심(人心)을 감응(感應)케 함에는「君子居其室 出其言 善則千里之外應之 况其邇者乎 居其室出其言 不善則千里之外違之 况其邇者乎 言出乎身加乎民 行發乎邇見乎遠 言行君子之樞機 樞機之發 榮辱之主也 言行君子之所以動天地也 可不愼乎 = 군자(君子)가 그 실(室)에 거(居)하여 그 언(言)을 출(出)하매 선(善)한즉 천리(千里)의 외(外)가 응(應)하곤 하물며 그 이(邇)한 자(者)이랴, 그 실(室)에 거(居)하여 그 언(言)을 출(出)하매 불선(不善)한즉 천리(千里)의 외(外)가 위(違)하곤 하물며 그 이(邇)한 자(者)이랴, 언(言)은 신(身)에서 출(出)하여 민(民)에 가(加)하고 행(行)은 이(邇)에서 발(發)하여 원(遠)에 나타나나니, 언행(言行)은 군자(君子)의 추기(樞機)오 추기(樞機)의 발(發)함은 영욕(榮辱)의 주(主)이라, 언행(言行)은 군자(君子)가 써 천지(天地)를 동(動)하는 바이니 가(可)히 신(愼)치 아니하랴」【註三】하니, 이는 정치(政治)를 운영(運營)하는 사람의 언동(言動)과 행위(行爲)는 인심(人心)을 감응(感應)케 하는 추(樞)가 되고 기(機)가 되어, 추(樞)가 동(動)하매 호(戶)가 개(開)하고 기(機)가 동(動)하매 시(矢)의 발(發)함과 같이, 그의 언행(言行)은 비록 자기(自己)의 일신(一身)에서 출발(出發)하되 그 언성(言聲)과 행적(行迹)은 멀리 민중(民衆)에 향응(響應)하는지라, 그 언행(言行)의 선불선(善不善)은 곧 민심(民心)에 감응(感應)되어 소(小)하기는 일신(一身)의 영욕(榮辱)을 초래(招來)하고, 대(大)하기는 능(能)히 천지(天地)를 감동(感動)함을 말함이다.
‣일음일양(一陰一陽)의 상배(相配)

그런데 감응작용(感應作用)은 오직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이 대대(對待)하여 하나는 발시(發施)하고 하나는 승수(承受)함으로써 행(行)하고, 만일 그 중간(中間)에 제삼자(第三者)가 개입(介入)하여 삼각관계(三角關係)를 이루면 대대작용(對待作用)이 파괴(破壞)되어 감응(感應)이 행(行)치 못하고 시의(猜疑)가 생(生)하며 따라서 화기(和氣)를 손상(損傷)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이 조해(阻害)되나니, 역(易)에 음양(陰陽)의 상여관계(相與關係)를 말하되 「三人行則損一人 一人行則得其友 言致一也 = 삼인(三人)이 행(行)한즉 일인(一人)을 손(損)하고, 일인(一人)이 행(行)한즉 그 우(友)를 득(得)하나니 이는 치일(致一)함을 말함이라」【註四】하고, 또 「三則疑也 = 삼(三)한즉 의(疑)한다」【註五】하니, 이는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의 양인(兩人)이 상여(相與)하는 때에 그 심지(心志)가 일치(一致)하고 그 행동(行動)함이 전일(專一)한 것이오, 만일 삼각(三角)이 되면 한편으로는 그 상여(相與)할바를 미혹(迷惑)하고 한편으로는 서로 시의(猜疑)를 생(生)하여 감응작용(感應作用)이 행(行)치 못함을 말함이다. 가정(家庭)의 예(例)로써 보면 남성(男性)은 용(用)이오 여성(女性)은 체(體)이라, 부부(夫婦)의 감응(感應)은 오직 체용(體用)이 대대(對待)하는 일부일부(一夫一婦)제(制)가 있을 뿐이오, 그 사이에 제삼자(第三者)가 개입(介入)하면 간위(姦僞)가 되어 가정(家庭)의 화기(和氣)를 파괴(破壞)하는 것이며, 사회(社會)에 있어서는 행정부(行政府)는 용(用)이오, 민중(民衆)은 체(體)이라, 정치(政治)는 오직 행정부(行政府)와 민중(民衆)이 대대(對待)하여 상의(上意)가 하달(下達)하고 하의(下意)가 상창(上暢)하여 서로 감응(感應)하여 고락(苦樂)과 안위(安危)를 한가지로 할 것이오, 만일 그 중간(中間)에 권력(權力)이나 부력(富力)을 가진 소위(所謂) 특권계급(特權階級)이 존재(存在)하여, 행정부(行政府)와 민중(民衆)으로 더불어 삼각형태(三角形態)를 이루면, 그것이 상(上)으로 상부(上部)에 아첨(阿諂)하여 정령(政令)의 발시(發施)를 견제(牽制)하고 하(下)로 하민(下民)을 억압(抑壓)하여 민심(民心)의 창달(暢達)을 장색(障塞)하여, 써 상하(上下)의 감응작용(感應作用)을 조해(阻害)하고 크게 사회(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조화(調和)를 파괴(破壞)하나니, 이는 곧 사회(社會)의 간위(姦僞)이다. 고래(古來)의 정치탁란사(政治濁亂史)를 더듬어 보면 그 원인(原因)이 군주(君主)의 포학(暴虐)․혼암(昏暗)에 있느니보다 오히려 이러한 특권계급(特權階級)이 중간(中間)에 개재(介在)하여 상(上)으로 군주(君主)의 총명(聰明)을 옹폐(壅蔽)하여 간부(姦婦)노릇을 하고 하(下)로 민중(民衆)의 의사(意思)를 억제(抑制)하여 간부(姦夫)노릇을 한데에 그 원인(原因)이 더 많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간(易簡)의 이(理)
그러므로 감응작용(感應作用)에는 「이간(易簡)」의 이(理)가 있으니, 역(易)에 「乾知大始 坤作成物 乾以易知 坤以簡能 易則易知 簡則易從 易知則有親 易從則有功 有親則可久 有功則可大 可久則賢人之德 可大則賢人之業 = 건(乾)은 지(知)하여 대시(大始)하고 곤(坤)은 작(作)하여 물(物)을 성(成)하며, 건(乾)은 이(易)로써 지(知)하고 곤(坤)은 간(簡)으로써 능(能)하며, 이(易)한즉 지(知)하기 쉽고 간(簡)한즉 종(縱)하기 쉬우며, 지(知)하기 쉬운즉 친(親)함이 있고 종(從)하기 쉬운즉 공(功)이 있으며 친(親)함이 있은 즉 가(可)히 구(久)하고 공(功)이 있은 즉 가(可)히 대(大)하며, 가(可)히 구(久)한즉 현인(賢人)의 덕(德)이오, 가(可)히 대(大)한즉 현인(賢人)의 업(業)이라」【註六】하니, 지(知)라 함은 의(義)의 정(精)함이니 만물(萬物)에 주편(周遍)하여 적의(適宜)히 재성(裁成)하는 뜻이라, 이는 양성(陽性)의 작용(作用)은 만물(萬物)에 주편(周遍)하여 물(物)을 대시(大始)하고, 음성(陰性)의 작용(作用)은 물(物)을 작위(作爲)하여 형질(形質)을 조성(造成)하는데, 양성(陽性)은 평이(平易)한 작용(作用)으로 써 주편(周遍)하고 음성(陰性)은 간약(簡約)한 작용(作用)으로 써 능사(能事)하는지라, 평이(平易)하면 주편(周遍)하기 쉽고 간약(簡約)하면 응종(應從)하기 쉬우며, 주편(周遍)하기 쉬우면 더불어 동심(同心)하는 자(者)가 많음으로 친화(親和)가 있고, 응종(應從)하기 쉬우면 더불어 협력(協力)하는 자(者)가 많음으로 실공(實功)이 있으며, 친화(親和)가 있으면 서로 잔해(殘害)함이 없음으로 가(可)히 장구(長久)하고, 실공(實功)이 있으면 사업(事業)이 점점(漸漸) 적성(積成)함으로 가(可)히 확대(擴大)하는 것이니, 이러한 연후(然後)에 비로소 일신(日新)의 성덕(盛德)이 행(行)하고 부유(富有)의 대업(大業)이 이루어짐을 말함이니, 곧 음양작용(陰陽作用)의 이간(易簡)의 이(理)를 인사(人事)에 의(擬)함이다. 발시(發施)하는 정령(政令)이 평이(平易)하고 가번(苛繁)치 아니하면 민중(民衆)에 주편(周遍)하기 쉬워서 상하(上下)가 친화(親和)하여 사회(社會)가 일신(日新)하고, 승수(承受)하는 민심(民心)이 간약(簡約)하고 번요(煩擾)치 아니하면 정령(政令)을 응종(應從)하기 쉬워서 실천(實踐)의 공(功)이 이루어, 사회(社會)가 부유(富有)하는 것이다. 역(易)에는 다시 이간(易簡)의 뜻을 말하되 「夫乾 其靜也專 其動也直 是以大生焉 夫坤 其靜也翕 其動也闢 是以廣生焉 廣大配天地 易簡之善配至德 = 그 건(乾)은 그 정(靜)하매 전(專)하고 그 동(動)하매 직(直)한지라 이로써 대(大)가 생(生)하고, 그 곤(坤)은 그 정(靜)하매 흡(翕)하고 그 동(動)하매 벽(闢)한지라 이로써 광(廣)이 생(生)하나니, 광대(廣大)는 천지(天地)에 배(配)하고 이간(易簡)의 선(善)은 지덕(至德)에 배(配)한다」【註七】하니, 건곤(乾坤)이라 함은 천지(天地)․남녀(男女) 등(等) 모든 음양성(陰陽性)의 체성(體性)을 상(象)함이라, 양성(陽性)의 작용(作用)은 그 정(靜)하매 전일(專一)하여 하등(何等)의 사사(私邪)가 없고 그 동(動)하매 강직(剛直)하여 하등(何等)의 왜곡(歪曲)이 없으므로 발시작용(發施作用)이 극(極)히 평이(平易)하여 만물(萬物)에 주편(周遍)하는 대(大)를 생(生)하고, 음성(陰性)의 작용(作用)은 그 정(靜)하매 보흡(保翕)하여 스스로 염장(斂藏)하고 그 동(動)하매 벽통(闢通)하여 스스로 수용(受容)함으로 승수작용(承受作用)이 극(極)히 간약(簡約)하여 만물(萬物)을 포함(包涵)하는 광(廣)을 생(生)하는데, 이간작용(易簡作用)의 광대(廣大)함은 천지(天地)와 같고 그 선(善)함은 천지(天地)의 지덕(至德)과 같다 함을 말함이다.
천지(天地)가 만물(萬物)을 생생(生生)하는 작용(作用)은 오직 이간(易簡)의 이(理)가 있을 뿐이라 사회(社會)에 있어서도 정령(政令)이 전직(專直)하여 일호사곡(一毫私曲)의 형(形)이 없으면 스스로 평이(平易)하고, 민심(民心)이 흡벽(翕闢)하여 일점강작(一點强作)의 적(迹)이 없으면 스스로 간약(簡約)하나니 이를 이간정치(易簡政治)라 하고, 이간정치(易簡政治)는 사회(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최대(最大)의 선(善)이되고, 최성(最盛)의 도덕(道德)이 되는 것이다. 정치(政治)가 이간(易簡)치 못하면 감응작용(感應作用)이 행(行)치 못하여 스스로 험조(險阻)가 생(生)하나니, 험조(險阻)라 함은 역(易)에「夫乾 天下之至健也 德行恒易而知險 夫坤 天下之至順也 德行恒簡而知阻 = 그 건(乾)은 천하(天下)의 지건(至健)이라 덕행(德行)이 항상(恒常) 이(易)하여 험(險)함을 지(知)하고, 그 곤(坤)은 천하(天下)의 지순(至順)이라 덕행(德行)이 항상(恒常) 간(簡)하여 조(阻)함을 지(知)한다」【註八】하니. 양성(陽性)은 건(健)함으로 직(直)하여 간험(艱險)함이 없이 평이(平易)하니 양성(陽性)의 동(動)함이 직(直)치 못하면 험(險)이 되고, 음성(陰性)은 순(順)함으로 벽(闢)하여 조색(阻塞)함이 없이 간약(簡約)하나 음성(陰性)의 동(動)함이 벽(闢)치 아니하면 조(阻)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政治)가 이간(易簡)할수록 법령(法令)의 조문(條文)이 평이(平易)하고 간약(簡約)하여 민중(民衆)에게 주편(周遍)되기 쉽고, 또 민중(民衆)도 법령(法令)을 이해(理解)하여 실천(實踐)하기 쉬운 것이며, 정치(政治)가 험조(險阻)할수록 법령(法令)이 번가(繁苛)하여 천장만조(千章萬條)의 법문(法文)과 호분루석(毫分縷析)한 규정(規定)이 민중(民衆)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고래(古來)로 법령(法令)이 평이(平易)․간약(簡約)함으로 인(因)하여 정치(政治)가 선행(善行)치 못한 예(例)가 없으니, 이는 민중(民衆)은 항상(恒常) 법령(法令)을 두려워하고 있으므로 법령(法令)이 아무리 이간(易簡)하더라도 그를 농간(弄奸)하는 자(者)는 민중(民衆)이 아니라, 도리어 법령(法令)을 만들어 내고 법병(法柄)을 잡고 있는 자(者)가 먼저 농간(弄奸)하는 것이니 집법자(執法者)가 직(直)하고 정치(政治)가 또 직(直)하면 아무런 농간(弄奸)도 없이 스스로 이간정치(易簡政治)가 행(行)하여 지는 까닭이다. 공자(孔子)의 정치론(政治論)에「擧直錯諸枉則民服 擧枉錯諸直則民不服 = 직(直)을 거(擧)하고 왕(枉)을 버린즉 민(民)이 복(服)하고 왕(枉)을 거(擧)하고 직(直)을 버린즉 민(民)이 복(服)하지 아니한다」하니, 이는 정직(正直)함을 좋아하고 왕곡(枉曲)함을 싫어함은 천하(天下)의 지정(至情)이라, 이 인정(人情)에 순응(順應)하여 정직(正直)한 사람을 거용(擧用)하고 정직(正直)한 일을 행(行)하면 민심(民心)이 스스로 통개(通開)하여 복종(服從)하고, 그와 반대(反對)로 인정(人情)에 역행(逆行)하여 왕곡(枉曲)한 사람을 거용(擧用)하고 왕곡(枉曲)한 일을 행(行)하면 민심(民心)이 스스로 폐격(閉隔)하여 복종(服從)치 아니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정치(政治)가 직(直)한 연후(然後)에 능(能)히 민심(民心)에 직통(直通)하는 것이다.
註一. 繫辭下傳 第五章
註二. 咸卦彖傳
註三. 繫辭上傳 第八章
註四. 繫辭下傳 第五章
註五. 損卦六三爻 小象傳
註六. 繫辭上傳 第一章
註七. 繫辭上傳 第六章
註八. 繫辭下傳 第十二章
註九. 論語 爲政篇
第三節 췌취(萃聚)
‣췌취(萃聚)는 분산중(分散中)의 통합(統合)
췌취(萃聚)는 만물(萬物)이 각기(各其) 분산(分散)한 개체(個體)를 취합(聚合)하여 통체(統體)를 이루고 또 성장확대(成長擴大)함이니, 만물(萬物)의 사이에 동류(同類)가 서로 결합(結合)하여 박후(博厚)하려 하고 모든 생물(生物)이 영양분(營養分)을 섭취(攝取)하여 자체(自體)를 성장(成長)시키고, 사람이 그 활동범위(活動範圍)를 넓히고 지식(知識)․기능(技能) 등(等)을 축적(蓄積)하여 자신(自身)을 부단(不斷)히 확대(擴大)하는 것 등(等)이 모두 췌취(萃聚)의 정(情)에 의(依)함이며, 만물(萬物)은 이 정(情)의 발로(發露)에 의(依)하여 항상(恒常) 췌취(萃聚)의 대상(對象)을 구(求)하여 발동(發動)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은 개체(個體)로써 보면 어느 것이 분산(分散)되어 있지 아니함이 없으나, 분산(分散)의 중(中)에는 스스로 각기(各其) 유(類)를 췌취(萃聚)하여 통체(統體)를 만드는 작용(作用)이 있으므로, 대(大)하기는 일월대지(日月大地)로부터, 소(小)하기는 일충(一虫) 일초(一草)에 이르기까지 모두 분산(分散)된 개체(個體)를 취합(聚合)하여 성장(成長)한 것이니 역(易)에「方以類聚 = 방(方)에는 유(類)로써 취(聚)한다」【註一】하고, 또 「同聲相應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燥 雲從龍 風從虎 聖人作而萬物覩 本乎天者親上 本乎地者親下 則各種其類也 = 동성(同聲)이 상응(相應)하고 동기(同氣)가 상구(相求)하고 수(水)는 습(濕)에 유(流)하고, 화(火)는 조(燥)에 취(就)하고 운(雲)은 용(龍)을 종(從)하고, 풍(風)은 호(虎)를 종(從)하고, 성인(聖人)이 작(作)하매 만물(萬物)이 도(覩)하고 천(天)에 본(本)한 자(者)는 상(上)을 친(親)하고 지(地)에 본(本)한 자(者)는 하(下)를 친(親)하나니 곧 각각(各各) 그 유(類)를 종(從)함이라」【註二】 함은, 만물(萬物)이 모두 기류(其類)를 좇아서 상취(相聚)함을 말함이오, 「서화담(徐花潭)」은 「氣之淡一淸虛者 彌滿無外之遠 聚之大者爲天地 聚之小者爲萬物 聚散之勢 有微著久速耳 = 기(氣)의 담일청허(淡一淸虛)한 자(者)가 외(外)가 없는 원(遠)에 미만(彌滿)하여 취(聚)의 대(大)한 자(者)는 천지(天地)가 되고 취(聚)의 소(小)한 자(者)는 만물(萬物)이 되며, 취(聚)하고 산(散)하는 세(勢)는 은미(隱微)하고 현저(顯著)하고 구(久)하고 속(速)함이 있을 뿐이라」【註三】하여, 천지만물(天地萬物)이 모두 기(氣)를 췌취(萃聚)하여 이루고 췌취(萃聚)한 자(者)는 반드시 분산(分散)하는데, 그 취산(聚散)하는 형세(形勢)는 물(物)의 대소(大小)에 따라서 은현구속(隱顯久速)의 차(差)가 있다 하니, 이는 천지만물(天地萬物)이 췌취(萃聚)가 있으면 분산(分散)이 있고 분산(分散)이 있으면 췌취(萃聚)가 있는 이(理)를 말함이다. 이 천지(天地)는 한 태일체(太一體)를 이루고 있어 태일체(太一體)의 이외(以外)에 별구(別區)로 조직(組織)된 천지(天地)가 있을 수 없고, 태일체(太一體)의 속에 따로 독립(獨立)한 일물(一物)도 있을 수 없는지라, 태일체(太一體)의 전체(全體)로써 보면 그 속에 포함(包涵)되어 있는 만물(萬物)은 더 증가(增加)하지도 아니하고 더 멸손(滅損)하지도 아니하고, 차(此)에 생(生)함이 있으면 피(彼)에 멸(滅)함이 있고 차(此)에 소(消)함이 있으면 피(彼)에 장(長)함이 있으니 이가 소위(所謂) 우주(宇宙)의 불생불멸(不生不滅)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한편에 분산(分散)된 개체(個體)가 있으므로 써 다른 한편에 췌취(萃聚)되는 통체(統體)가 있는 것이니 이 분산중(分散中)의 통합(統合)이 곧 췌취(萃聚)이다.
모든 생물(生物)이 후계자(後繼者)를 생성(生成)하면서 자체(自體)가 스스로 노쇠(老衰)로 향(向)하고 모든 동물(動物)이 식물(植物)을 식료(食料)로 하면서 또 자체(自體)가 죽어서 토중(土中)에 귀장(歸藏)하고 공중(空中)에 유산(遊散)하여 다시 식물(植物)의 양분(養分)이 되는 것 등(等)이 모두 취산작용(聚散作用)에 의(依)함이다.
그런데 감응(感應)과 췌취(萃聚)는 모두 아(我)와 타(他)의 서로 응여(應與)하는 작용(作用)이로되, 그 상이(相異)한 바는 감응(感應)은 음성(陰性)과 양성(陽性)과의 사이에 행(行)하여 괴위(乖違)한 체(體)로 써 서로 응여(應與)하여 새로운 일물(一物)을 생(生)함이오, 췌취(萃聚)는 분산(分散)된 여러 개체(個體)가 서로 응여(應與)하여 통체(統體)를 성육확대(成育擴大)함이니, 가정(家庭)의 예(例)로 써 보면 부부(夫婦)가 상배(相配)하여 자손(子孫)을 생(生)함과 같음은 감응작용(感應作用)이오, 부부(夫婦)․부자(父子)․형제(兄弟) 등(等)이 취합(聚合)하여 가족(家族)이라는 집단(集團)을 구성(構成)함과 같음은 췌취작용(萃聚作用)이며, 사회(社會)로써 보면 행정부원(行政府員)과 민중(民衆)의 마음이 서로 감응(感應)하여 상하(上下)의 지(志)가 상통(相通)함과 같음은 감응작용(感應作用)이오, 사상(思想)이 동일(同一)한 동지(同志)가 상합(相合)하여 단체(團體)를 조직(組織)함과 같음은 췌취작용(萃聚作用)이다. 지금 우리가 남북(南北)으로 양단(兩斷)된 국토(國土)와 각분(各分)된 동포(同胞)를 통일(統一)하려 하는 것은 우리 민족(民族)의 생존상(生存上) 스스로 발로(發露)치 아니할 수 없는 췌취(萃聚)의 정(情)이며 아국(我國)의 삼국초기(三國初期)로부터 야전공성(野戰攻城)의 싸움이 자못 허일(虛日)이 없은 것은, 평화(平和)를 애호(愛好)하는 우리 선조(先祖)들에게 상무(尙武)․호전(好戰)의 기풍(氣風)이 있어서가 아니오. 실(實)로 췌취작용(萃聚作用)에 의(依)한 민족통일(民族統一)운동(運動)의 한 산물(産物)이다. 【註四】
‣점지진(漸之進)의 리(理)
물(物)이 췌취(萃聚)하는 자(者)는 생장(生長)이 되고 분산(分散)하는 자(者)는 소멸(消滅)이 되나니, 모든 생물(生物)이 정(精)과 기(氣)가 취합(聚合)하면 생(生)이 되고 그것이 서로 유리(遊離)하면 사(死)가 되며 사회(社會)도 민중(民衆)의 개체(個體)가 췌취(萃聚)하여 통체(統體)를 구성(構成)한 것이므로 민심(民心)이 췌취(萃聚)하는 사회(社會)는 생발(生發)의 기(氣)가 약동(躍動)하여 흥왕(興旺)하고 민심(民心)이 이산(離散)하는 사회(社會)는 생기(生氣)가 소침(銷沈)하여 쇠약(衰弱)하며, 단체(團體)같은 것도 구성원(構成員)의 인심(人心)이 취합(聚合)하면 조직(組織)이 강고(强固)하고 인심(人心)이 분산(分散)하면 스스로 해체(解體)가 되는 것이니, 지금에 흔히 쓰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속어(俗語)도 또한 이 췌취(萃聚)의 이(理)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물(物)이 췌취(萃聚)하여 성장(成長)함에는「점지진(漸之進)」【註五】의 이(理)가 있으니 점지진(漸之進)이라 함은 물(物)의 성장(成長)이 점(漸)을 따라서 승진(升進)한다 함이라, 역(易)에 「聚而上者 謂之升 = 취(聚)하여 상(上)하는 자(者)를 승(升)이라 이른다」하고, 또『地中生木升 君子以 積小而高大 = 지중(地中)에 목(木)이 생(生)함이 승(升)이니 군자(君子)가 써 하여 소(小)를 적(積)하여 써 고대(高大)한다」【註六】하니, 이는 물(物)이 췌취(萃聚)하여 생장(生長) 상승(上升)함은 지중(地中)에서 수목(樹木)이 생(生)하여 점승(漸升)하는 상(象)과 같은데, 승(升)은 일조일석(一朝一夕)에 되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점(漸)을 따라서 상진(上進)하는 것이니, 사람이 사업(事業)을 행(行)함에는 이 상(象)을 본받아서 소(小)를 취적(聚積)하여 점차(漸次) 고대(高大)로 승진(升進)하여야 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물(物)의 생장(生長)은 자체(自體)의 능동력(能動力)으로 써 일정(一定)한 순서(順序)와 시간(時間)을 경과(經過)하여 점진(漸進)치 아니하면 안되고, 비록 동식물(動植物) 같은 것을 속성양육법(速成養育法)으로 써 그 생장기간(生長期間)을 다소(多少) 단축(短縮)할 수는 있으되, 역시(亦是) 점진(漸進)하여 어느 기간(期間)을 경과(經過)치 아니하면 안되고, 사람의 사업(事業)이나 사회(社會)의 건설(建設)같은 것도 반드시 점(漸)을 따라서 췌취(萃聚)치 아니하면 안된다. 그러나 물(物)의 소산(消散)함은 능동력(能動力)을 상실(喪失)하고 수동(受動)의 지위(地位)에 입(立)하는 것이므로, 비록 성장(成長)하는 능동과정(能動過程)에 있다 하더라도 혹시(或是) 강대(强大)한 외력(外力)의 침해(侵害)를 받는 때는 곧 수동(受動)으로 변(變)하여 저항력(抵抗力)을 상실(喪失)하고 장세월간(長歲月間)의 생장(生長)한 사공(事功)이 일조(一朝)에 소진(消盡)하는 일이 있는 것이니, 이가 소(小)하기는 일신일가(一身一家)로 부터 대(大)하기는 일국가(一國家)에 이르기까지 건설(建設)되기는 어렵고 파괴(破壞)되기는 쉬운 소이(所以)이다.
더욱이 본능(本能)에는 제한(際限)이 없는지라, 사람이 체력(體力)을 더 증강(增强)하고 지식(知識)을 더 습득(習得)하고 재화(財貨)을 더 축적(蓄積)하고 지위(地位)를 더 향상(向上)하려 하는 등(等)의 췌취작용(萃聚作用)에는 항상(恒常) 분산작용(分散作用)이 수반(隨伴)하고 있으므로 일면(一面)으로는 그 분산(分散)되는 부면(部面)을 보급(補給)하고 일면(一面)으로는 점진적(漸進的)으로 새로운 성장확대(成長擴大)를 도모(圖謀)치 아니하면 안되나니, 이 까닭에 삼본능(三本能) 중(中)에 췌취작용(萃聚作用)이 가장 간험(艱險)과 위난(危難)이 많고 또 가장 다대(多大)한 노력(努力)을 요(要)하는 것이다.
‣식물(食物)과 학문(學問)의 췌취(萃聚)
췌취작용중(萃聚作用中)에 가장 긴중(緊重)한 것은 식물(食物)의 췌취(萃聚)이니 식물(食物)은 일일(一日)에 재식(再食)치 아니하면 기아(飢餓)하고, 기아(飢餓)가 정도(程度)를 넘으면 생명(生命)을 유지(維持)치 못하는 것이므로 사람의 일상활동(日常活動)하는 시간(時間)과 노력(努力)의 대부분(大部分)이 식물(食物)의 구득(求得)에 소비(消費)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식물(食物)이 있는 곳에 반드시 사람이 췌취(萃聚)하고 식물(食物)이 없으면 사람이 이산(離散)하나니, 역(易)에「何以聚人曰 財 = 무엇으로 써 사람을 취(聚)할고, 가로되 재(財)라」【註七】 함은 재(財)가 있는 곳에 사람이 취(聚)함을 말함이오, 이 까닭에 고래(古來)로 국가정책중(國家政策中)에 재정경리(財政經理)가 그 중심(中心)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역(易)에는 고대성인(古代聖人)이 괘상(卦象)을 취(取)하여 재(財)를 경리(經理)함을 말하되 「作結繩而爲網罟 以佃以漁 斲木爲耟 揉木爲耒 耒耨之利 以敎天下 日中爲市 致天下之民 聚天下之貨 交易而退 各得其所 刳木爲舟 剡木爲楫 舟楫之利 以濟不通 致遠以利天下 服牛乘馬 引重致遠 以利天下 斷木爲杵 掘地爲臼 臼杵之利 萬民以濟 = 결승(結繩)을 지어 그물을 만들어 써 사냥하고 써 고기를 잡으며 나무를 깎아 쟁기를 만들고 나무를 굽혀 따비를 만들어 뇌누(耒耨)의 이(利)로써 천하(天下)를 가르치며, 일중(日中)에 시장(市場)을 만들어 천하(天下)의 민(民)을 이르게 하고 천하(天下)의 재화(財貨)를 모여서 교역(交易)하여 물러가서 각각(各各) 그 소(所)를 얻게 하며, 나무를 파서 배를 만들고 나무를 깎아서 노를 만들어 주즙(舟楫)의 이(利)로 써 불통(不通)함을 건너고 원방(遠方)을 이르게 하여 써 천하(天下)를 이(利)하며, 소를 부리고 말을 타서 무거움을 이끌고 먼 곳을 이르게 하여 써 천하(天下)를 이(利)하며, 나무를 끊어서 공이를 만들고 땅을 파서 호악을 만들어 구저(臼杵)의 이(利)로 만민(萬民)이 써 제(濟)한다」【註八】하니, 그물은 수렵(狩獵)과 어업(漁業)이오. 뇌누(耒耨)는 농업(農業)이오, 시장(市場)은 교역(交易)이오, 주즙(舟楫)과 우마(牛馬)는 수송(輸送)과 무역(貿易)이오, 저구(杵臼)는 정미(精米)이라, 이는 고대(古代) 성인(聖人)이 민생(民生)에 필수(必需)한 물자(物資)와 기용(器用)을 풍후(豊厚)하게 하기 위(爲)하여 기물(器物)을 발명(發明)하고 제도(制度)를 창설(創設)함을 말함이다.
그런데 역(易)에는 그물․농구(農具)․주즙(舟楫)․저구(杵臼) 등(等)의 기물(器物)을 제작(製作)하고, 교역(交易)․교통(交通) 등(等)의 제도(制度)를 창설(創設)함에 있어서 대개(大槪) 괘상(卦象)을 취(取)함이라 하고, 또 「以制器者 尙其象 = 써 기(器)를 제(制)하는 자(者)는 그 상(象)을 상(尙)한다」【註九】한바, 예(例)컨대 그물은 이괘(離卦)의 상(象)을 취(取)하고, 농구(農具)는 익괘(益卦)의 상(象)을 취(取)하고, 주즙(舟楫)은 환괘(渙卦)의 상(象)을 취(取)하고, 우마(牛馬)는 수괘(隨卦)의 象을 取하고, 杵臼는 小過卦의 象을 取하고, 市場은 噬嗑卦의 상(象)을 취(取)함이라 하나, 그 상(象)을 여하(如何)히 취(取)한지(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아니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물(器物)과 제도(制度)가 지금으로 보면 극(極)히 용이(容易)한 일이나, 고대(古代)에 있어서는 모두 당세(當世)의 큰 발명품(發明品)이오, 또 괘상중(卦象中)에 아직 발견(發見)되지 아니한 우주(宇宙)의 비밀(秘密)이 얼마나 숨어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일이다.
그 다음에 중요(重要)한 췌취작용(萃聚作用)은 학문(學問)의 췌취(萃聚)이니, 이는, 사람은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의 양물(兩物)로써 구성(構成)되고 있으므로 식물(食物)로써 육체(肉體)를 양(養)하고 학문(學問)으로써 정신(精神)을 양(養)하는 까닭이다. 자체(自體)가 생존(生存)하기 위(爲)하여 그 생존작용(生存作用)에 필요(必要)한 학문(學問)을 배움은 물론(勿論)이오, 나아가서 일세(一世)를 운영(運營)하는 경륜(經綸)도 이 학문(學問)에서 나오고 공간(空間)의 유심(幽深)을 탐색(探索)하여 자연계(自然界)를 개척(開拓)하고, 시간(時間)의 미래(未來)를 추지(推知)하여 써 민용(民用)에 전행(前行)함과 같은 큰 지혜(知慧)도, 모두 학문(學問)에서 나오는 것이니, 식물(食物)의 구득(求得)이 일상(日常)의 대욕(大欲)인 동시(同時)에 또한 일생(一生)의 대욕(大欲)임과 같이, 학문(學問)의 학습(學習)도 일상(日常)의 공부(工夫)인 동시(同時)에 또한 일생(一生)의 공부(工夫)가 되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다. 공자(孔子)의 학문론(學問論)에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 = 분(憤)을 발(發)하매 식(食)을 망(忘)하고 낙(樂)하매 우(憂)를 망(忘)하여 노(老)의 장지(將至)함을 알지 못한다」【註十】함은, 학문(學問)하기 위(爲)하여 음식(飮食)을 잊는 때가 있고 연수(年數)의 부족(不足)함을 깨닫지 못함을 말함이니, 이는 학문췌취(學問萃聚)의 정(情)에는 공간(空間)의 제한(制限)도 없고 시간(時間)의 계선(界線)도 없고 인생(人生)의 일생(一生) 정열(情熱)로 되는 까닭이다.
‣권세(權勢)와 재화(財貨)의 췌취(萃聚)
권세(權勢)와 재화(財貨)를 췌취(萃聚)하는 것도, 자체(自體)를 성장확대(成長擴大)하는 것이므로 또한 췌취본능(萃聚本能)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식물(食物)과 학문(學問)은 아(我)의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을 양(養)하여 아(我)를 성장확대(成長擴大)하고 또 아(我)와는 분산(分散)되지 아니함으로 그 성장확대(成長擴大)에 한계(限界)가 없으니, 이는 아(我)의 진실(眞實)한 소유물(所有物) 즉(卽) 진유(眞有)이지만, 권세(權勢)와 재화(財貨)는 어느 때던지 아(我)와 분산(分散)할 수 있는 것으로서, 권세(權勢)와 재화(財貨)에 의(依)한 성장확대(成長擴大)는 마치 고제(高梯)에 올라서 키가 높아지고 장검(長劍)을 휘둘러서 힘이 커짐과 같으니, 일조(一朝)에 그 고제(高梯)와 장검(長劍)을 없이하면, 일세소(一細小)한 필부(匹夫)에 불과(不過)한 것이므로, 이러한 것은 진유(眞有)가 아니오 모두 일시(一時) 차래(借來)한 가성장(假成長)․가확대(假擴大)이다. 그러므로 권세(權勢)․재화(財貨)의 췌취(萃聚)에는 계한(界限)된 분(分)이 있으니 만일 분(分)을 넘으면 박약(薄弱)한 기초(基礎)위에 거대(巨大)한 상층구조(上層構造)를 건축(建築)함과 같은 대과(大過)의 상(象)이 되어, 그 반대방향(反對方向)인 전복(顚覆)으로 향(向)하여 도리어 자체(自體)의 생존(生存)을 해(害)하나니, 고래(古來)로 취권(聚權)․축재(蓄財)에 과분(過分)한 욕심(慾心)을 부리다가 패가(敗家)․망신(亡身)한 자(者), 그 예(例)가 적지 아니한 것이다.
권세(權勢), 재화(財貨) 등(等)의 췌취(萃聚)가 분(分)을 초과(超過)함을 영(盈)이라 하고 분(分)에 도달(到達)치 아니함을 겸(謙)이라 하나니, 역(易)에 「天道虧盈而益謙 地道變盈而流謙 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盈而好謙 = 천도(天道)는 영(盈)을 휴(虧)하고 겸(謙)을 익(益)하며 지도(地道)는 영(盈)을 변(變)하여 겸(謙)에 유(流)하며 귀신(鬼神)은 영(盈)을 해(害)하고 겸(謙)을 복(福)하며 인도(人道)는 영(盈)을 싫어하고 겸(謙)을 좋아한다」【註十一】함은, 월(月)은 망(望)하면 휴(虧)하고 휴(虧)하면 다시 망(望)하며, 지세(地勢)는 준고(峻高)한 者가 경괴(傾壞)하고 저평(低平)한 자(者)가 증고(增高)하며, 귀신(鬼神)은 교영(驕盈)한 자(者)를 해(害)하고 공겸(恭謙)한 자(者)를 복(福)하며, 인정(人情)은 거만(倨慢)한 자(者)를 미워하고 겸양(謙讓)한 자(者)를 좋아한다. 함을 말함이니, 이는 천(天) 지(地) 인(人) 귀(鬼)가 모두 영(盈)함을 경복(傾覆)하고 겸(謙)에 취귀(聚歸)함이다. 만물(萬物)의 운동(運動)은 대세(大勢)의 추향(趨向)하는 방향(方向)으로 진행(進行)하는 것이라, 물(物)이 이미 영일(盈溢)하여 더 가입(可入)할 여유(餘裕)가 없는 때는 오직 경복감휴(傾覆減虧)의 길이 있을 뿐이며, 겸(謙)은 비하(卑下)함이니 비하(卑下)한 자(者)는 증익(增益)은 있으되 경복(傾覆)은 없나니, 이가 휴영익겸(虧盈益謙)의 원리(原理)이다. 그러므로 역(易)에「勞而不伐 有功而不德 厚之至也 語以其功下人者也 = 노(勞)하되 자랑치 아니하고 공(功)이 있으되 덕(德)치 아니함은 후(厚)함의 지극(至極)함이니 그 공(功)으로 써 사람에게 하(下)함을 말함이라」【註十二】하여, 노겸(勞謙)하는 사람은 비록 큰 공로(功勞)가 있으되 덕색(德色)을 내지 아니하고 항상(恒常) 그 공로(功勞)로 써 사람의 하위(下位)에 자처(自處)한다 함을 찬양(讚揚)하니, 겸겸양양(謙謙讓讓)하여 하위(下位)에 자처(自處)하는 까닭에 분(分)을 넘지 아니하고 도리어 인심(人心)과 중망(衆望)이 췌취(萃聚)하여 공로(功勞)가 더욱 빛나고 지위(地位)가 더욱 향상(向上)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일계반급(一階半級)의 관직(官職)에 의기(意氣)가 양양(揚揚)하고 기미(驥尾)에 붙어서 돌연(突然)출세(出世)하여 자만(自滿)자명(自鳴)함과 같은 것은, 그 양(量)이 적어서 일이배수(一二盃水)에 이미 분(分)을 넘어 영일(盈溢)하여 더 췌취(萃聚)할 수 없는 소기국(小器局)이다. 이와 같이 체력(體力)이나 학문(學問)같은 것은 아(我)의 신체(身體)를 구성(構成)한 것으로서 진실(眞實)로 아(我)의 소유물(所有物)이 되고 있으나 권세(權勢)와 재화(財貨)는 일시(一時) 차래(借來)하여 아(我)의 임시(臨時) 관리물(管理物)에 불과(不過)한 것이므로 유명(有名)한 「이곡(利穀)」차마설(借馬說)에는 人之所有 孰爲不借者 君借力於民以尊富 臣借勢於君以寵貴 子之於父 婦之於夫 婢僕之於主 其所借 亦深且多 率以爲己有 而終莫之省 豈非惑也 苟或須臾之頃 還其所借則 萬邦之君爲獨夫 百乘之家爲孤臣 况微者耶 = 사람의 소유(所有)한 것이 어느 것이 차(借)하지 아니한 자(者)인고, 군(君)은 역(力)을 민(民)에게서 차(借)하여 써 존(尊)하고 부(富)하고, 신(臣)은 세(勢)를 군(君)에게서 차(借)하여 써 총귀(寵貴)하고 자(子)의 부(父)에게서, 부(婦)의 부(夫)에게서, 비복(婢僕)의 주(主)에게서, 그 차(借)한 바가 또한 심(深)하고 또 다(多)하거늘, 다 써 자기(自己)의 가짐이라 하여 마침내 성(省)치 못하니 어찌 혹(惑)함이 아니리오, 진실(眞實)로 혹(或) 잠깐사이에 그 차(借)한 바를 돌려주면 만방(萬邦)의 군(君)도 독부(獨夫)가 되고 백승(百乘)의 가(家)도 고신(孤臣)이 되거늘, 하물며 적은 자(者)이랴」【註十三】하니, 이는 일국(一國)의 군주(君主)가 극존극부(極尊極富)하는 것도 일시(一時) 국민(國民)의 역(力)을 차용(借用)하는 것이오 자기(自己)의 진유(眞有)가 아니며 고관대작(高官大爵)이 위세호강(威勢豪强)하는 것도 일시(一時) 군주(君主)의 세력(勢力)을 차용(借用)한 것이오 자기(自己)의 진유(眞有)가 아니다. 아들이 아비의 세력(勢力)을 의시(依恃)하고 처(妻)가 남편(男便)의 세력(勢力)을 빙자(憑藉)하고, 부하(部下)가 주인(主人)의 세력(勢力)을 배경(背景)으로 하는 것 등(等)은 모두 일시(一時) 차용(借用)하는 것이다. 만일 혹시(或是) 일조(一朝)에 정세(情勢)가 변화(變化)하여, 인군(人君)도 국민(國民)의 지지(支持)를 상실(喪失)하면 일개(一個)의 독부(獨夫)가 되고, 권신(權臣)도 군주(君主)의 신임(信任)을 상실(喪失)하면 일개(一個)의 소민(小民)이 되는 것인데, 하물며 그 이하(以下)의 미물(微物)․세물(細物)․두승인(斗升人) 같은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함이다. 그러므로 권세(權勢)를 잡으면 겸양(謙讓)하고, 부(富)하면 예(禮)를 좋아 할 것이오, 분(分)을 넘어 교영(驕盈)하면 마침내 패(敗)하는 것이다.
註一. 繫辭上傳 第一章
註二. 乾卦文言
註三.「徐花潭」先生集 鬼神死生說
註四. 삼국(三國)이 건국(建國)되기 이전(以前)에는 수다(數多)한 부락(部落)이 각지(各地)에 산재(散在)하여 일산(一山)의 장색(障塞)과 일수(一水)의 격조(隔阻)도 스스로 한 부락국가(部落國家)를 이루어, 남방(南方)의 삼한(三韓) 지역(地域)에 만도 칠십팔국(七十八國)이라는 많은 나라가 분립(分立)하고 북방(北方)의 부여(扶餘), 옥저(沃沮) 등(等) 지방(地方)에도 불소(不少)한 부락국가(部落國家)가 있어, 서로 부락간(部落間)의 쟁투(爭鬪)가 그치지 아니하되, 이들 부락(部落)의 연합국형식(聯合國形式)으로 구성(構成)된 총왕(總王) 또는 대군장(大君長)은 이를 통어(統御)할 힘을 가지지 못한 것이다. 이때에 부여(扶餘)의 졸본부락(卒本部落)에서 「고주몽(高朱夢)」이 일어나서 고구려국(高句麗國)을 세우고 마한(馬韓)의 백제부락(百濟部落)에서 「부여온조(扶餘溫祚)」가 일어나서 백제국(百濟國)을 세우고 진한(辰韓)의 사로부락(斯盧部落)에서「박혁거세(朴赫居世)」가 일어나서 신라국(新羅國)을 세우니, 이들은 모두 일세(一世)의 영걸(英傑)이라, 그 건국리상(建國理想)이 또한 모두 전국토(全國土)와 전민족(全民族)을 통일(統一)하고 군현제(郡縣制)를 써서 중앙집권제(中央集權制)의 국가(國家)를 수립(樹立)함에 있은 것이다. 그리하여 삼국(三國)은 건국초기(建國初期)로부터 부근(附近)의 부락(部落)을 점차(漸次)로 병합(倂合)하여 군현(郡縣)을 만들고 그 경역(境域)을 확장(擴張)하던 중(中)에 고구려(高句麗)는 종래(從來) 중국(中國)에 빼앗긴 고토(故土)를 수복(收復)하려 하여 한국(漢國)과의 사이에 격전(激戰)이 전개(展開)되고, 백제(百濟)와 신라(新羅)는, 하나는 남진(南進)하고 하나는 북진(北進)하다가 지금의 충청(忠淸)․전라(全羅)․경상(慶尙)의 삼도(三道) 접경지방(接境地方)에서 상우(相遇)하여 비로소 전단(戰端)을 개시(開始)하고, 고구려(高句麗)가 낙랑지방(樂浪地方)을 수복(收復)한 후(後)에 또한 남하(南下)하여 서로 전국통일(全國統一)을 목표(目標)로하고 삼각(三角)의 혼전상태(混戰狀態)를 이룬 것이다. 신라(新羅)는 마침내 당병(唐兵)을 청래(請來)하여 고구려(高句麗)와 백제(百濟)를 멸(滅)하니, 신라(新羅)의 왕조(王朝)를 본위(本位)로 하여보면 혹시(或是) 그러할 수도 있는 일이나, 당초(當初)의 통일운동(統一運動)의 이념(理念)으로써 보면 겨우 대동강(大洞江) 이남(以南)의 지역(地域)을 차지하여 일소국(一小國)을 보유(保有)하고 북계(北界) 전역(全域)을 상실(喪失)한 것은, 안전(眼前)의 소리(小利)를 탐(貪)하여 위대(偉大)한 이상(理想)을 포기(抛棄)한 것이다. 그 후(後)에 비록 발해(渤海)가 일어나서 고구려(高句麗)구강(舊疆)을 차지하나, 이로부터 남북국(南北國)의 통일운동(統一運動)의 유대(紐帶)가 끊어져서 다시 췌취(萃聚)할 기회(機會)를 가지지 못하고 영원(永遠)한 분산(分散)을 재래(齎來)한 것이다.
註五. 漸卦彖傳
註六. 序卦傳下篇에「聚而上者謂之升」이 있고 「地中生木」以下는 升卦 大象傳에 있다
註七. 繫辭下傳 第一章
註八. 繫辭下傳 第二章
註九. 繫辭上傳 第十章
註十. 論語 述而篇
註十一. 謙卦彖傳
註十二. 繫辭上傳 第八章
註十三. 東文選
第四節 항구(恒久)
‣항구(恒久)는 변화중(變化中)의 불변(不變)
항구(恒久)는 만물(萬物)이 그 발용(發用)의 변변화화(變變化化)하는 속에서 그 안정체(安貞體)의 영구존존(永久存存)을 도(圖)함이니, 만물(萬物)의 운동(運動)에 관성(慣性)이 있고, 생물(生物)이 위해(危害)를 방비(防備)하여 수명(壽命)의 영원(永遠)함을 도모(圖謀)하는 것 등(等)이, 모두 항구(恒久)의 정(情)에 의(依)함이오, 만물(萬物)은 이 정(情)의 발로(發露)에 의(依)하여 항상(恒常) 항구존속(恒久存續)의 길을 구(求)하여 발동(發動)하는 것이다.
만물(萬物)은 하나도 변화(變化)치 아니하는 것이 없고 또 잠시(暫時)도 변화(變化)치 아니하는 것이 없으니, 대지(大地)의 운행속도(運行速度) 같은 것도 미세(微細)하나마 매년(每年) 변화(變化)하고 있고, 산천초목(山川草木)같은 것이 변화(變化)함은 물론(勿論)이오, 조석(潮汐)의 고저(高低) 사람의 체질(體質)같은 것도 고금(古今)이 서로 동일(同一)치 아니하니 우리 국문(國文)같은 것도 창제(創製)하던 당시(當時)에는 이십팔자(二十八字)를 쓰더니 지금에는 이십사자(二十四字)로서 충분(充分)하고 여외(餘外)의 사자(四字)는 사용(使用)치 아니하여도 별(別)로 장해(障害)가 없는 것은, 우리의 순설후아(唇舌喉牙)의 형상(形象)과 동작(動作)이 오백년(五百年) 전(前)보다 변화(變化)한 소치(所致)이다. 이와 같이 천지간(天地間)에는 항구(恒久)라는 것이 없다. 그러나 변변화화(變變化化)하는 속에는 오직 변화(變化)치 아니하는 것이 있으니, 대지(大地)는 항상(恒常) 변화(變化)하고 있으되 그 원체(原體)가 역시(亦是) 대지(大地)임에는 변(變)함이 없고, 주야(晝夜)와 사시(四時)의 운행(運行)하는 도수(度數)는 항상(恒常) 변화(變化)하고 있으되 주야(晝夜)가 교대(交代)하고 사시(四時)가 순환(循環)하는 그 사실(事實)은 매일매년(每日每年)을 틀림이 없고, 사람의 일생(一生)으로써 보면 수야모야(誰也某也)는 출생이후(出生以後)에 노령(老齡)에 이르기까지 일변월화(日變月化)하여 황구청춘(黃口靑春)이 쇠안백발(衰顔白髮)로 되어 다시 구시(舊時)의 형용(形容)이 없으되, 수야모야(誰也某也)라는 사람은 일생(一生)을 동일인(同一人)임에 틀림이 없으니, 이 변화중(變化中)의 불변(不變)이 곧 항구(恒久)이며 지금의 자연과학(自然科學)이 여러 가지의 물(物)을 종합(綜合)하여 어떠한 원리원칙(原理原則)을 정(定)하나니 이 원리원칙(原理原則)이 또한 항구(恒久)이다.
만물(萬物)에는 모두 안정(安貞)과 발용(發用)이 있어 안정(安貞)은 항구(恒久)하려 하고 발용(發用)은 변화(變化)하려 함으로, 항구(恒久)는 존존(存存)이니 체(體)가 되고 변화(變化)는 생생(生生)이니 용(用)이 되는지라, 항구(恒久)한 체(體)가 있으므로 써 용(用)이 의착(依着)할 곳을 얻어서 물(物)의 운동(運動)이 일정(一定)한 궤도(軌道)를 밟아 변화(變化)하고. 변화(變化)하는 용(用)이 있으므로 써 체(體)가 고무력(鼓舞力)을 얻어서 물(物)이 일신우신(日新又新)하여 항구(恒久)히 계승(繼承)하나니, 만일 항구(恒久)한 체(體)가 없으면 일월(日月)같은 것도 궤도(軌道)가 혼란(混亂)하여 한서(寒暑)와 주야(晝夜) 등(等)이 질서(秩序)를 잃고 신(信)이 없을 것이오, 또 변화(變化)하는 용(用)이 없으면 사시(四時)가 질운(迭運)치 아니하고 주야(晝夜)가 교대(交代)치 아니하여 생육(生育)의 공(功)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역(易)에는「天地之道 恒久而不已也 = 천지(天地)의 도(道)는 항구(恒久)하여 그치지 아니한다」【註一】하니, 이는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은 조금도 쉬지 아니하고 항상(恒常) 계속(繼續)하여 항구(恒久)한 체(體)가 됨을 말함이오, 또 「日月得天而能久照 四時變化而能久成 = 일월(日月)이 천(天)을 득(得)하여 능(能)히 구조(久照)하고 사시(四時)가 변화(變化)하여 능(能)히 구성(久成)한다」【註二】하니, 이는 일월(日月)이 천도(天道)를 순(順)하여 항상(恒常) 왕래영허(往來盈虛)함으로 능(能)히 항구(恒久)히 조림(照臨)하고 사시(四時)가 항상(恒常) 왕래변화(往來變化)하여 일한일서(一寒一暑)함으로 능(能)히 항구(恒久)히 생성(生成)하여 만물(萬物)을 일신(日新)하는 용(用)이 됨을 말함이다.
그런데 모든 사물(事物)이 항구(恒久)한즉 염증(厭症)이 생(生)하나니, 일신(一身)의 굴신좌립(屈伸坐立)같은 것도 동일(同一)한 상태(狀態)를 오래 계속(繼續)치 못함이 그 일례(一例)이오, 오직 만물(萬物)의 본능(本能)만은 항구(恒久)하여도 염(厭)치 아니하나니, 사람이 생명(生命)의 장수(長壽)를 염(厭)하는 자(者)가 없고 음식(飮食)이나 부부생활(夫婦生活)을 염(厭)하는 자(者)가 없는 것이 곧 그것이니, 역(易)에「恒雜而不厭 = 항(恒)은 잡(雜)하되 염(厭)치 아니한다」【註三】함은 이 뜻을 말함이다. 이 이(理)에 의(依)하여 항구(恒久)한 체(體)는 구(久)하되 염(厭)치 아니하나니, 음식(飮食)의 예(例)로써 보면 주식(主食)은 항구(恒久)한 체(體)이오 부식(副食)은 변화(變化)하는 용(用)이라, 그러므로 주식(主食)은 항구(恒久)히 먹어도 염(厭)치 아니하나, 부식(副食)은 동일물(同一物)을 장복(長服)하면 스스로 염(厭)하여 지는 것이다.
‣진화론(進化論)과의 관계(關係)
지금에 소위(所謂) 진화론(進化論)이 있어 최초(最初)에 어느 단세포(單細胞)가 진화(進化)하여 초목(草木) 조수(鳥獸) 등(等)으로부터 원류(猿類) 인류(人類)에 이르기까지 진화(進化)한 것이라고 하는데, 역리(易理)로써 보면 만물(萬物)의 종자(種子)는 항구(恒久)한 체(體)오 생장(生長)․노사(老死)․유전(遺傳)․변이(變異) 등(等)은 변화(變化)하는 용(用)이라, 그 용(用)이 비록 천태만상(千態萬象)의 변화(變化)를 생(生)하더라도, 그 항구성(恒久性)을 띠고 있는 종자(種子)의 체(體)는 변(變)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충어(虫魚)의 종자(種子)는 그 용(用)이 아무리 변화(變化)하더라도 그 체(體)는 역시(亦是) 충어(虫魚)의 종자(種子)로서 조수(鳥獸)로 진화(進化)할 수 없고, 원종(猿種)의 변화(變化)가 아무리 경이적(驚異的)이라 하더라도 그 체(體)는 종시(終是) 원종(猿種)에 불과(不過)하여 그것이 인류(人類)의 종자(種子)는 되지 못하는 것이다. 역(易)에는 대지(大地)가 처음으로 물(物)을 생(生)하던 때를 「천조초매(天造草昧)」【註四】라 하는데, 천(天)의 기(氣)의 속에는 처음부터 만물(萬物)의 종자(種子)가 함유(含有)되어 있어, 이것이 대지(大地)에 의착(依着)하여 생장(生長)한 것이니, 마치 동식물(動植物)의 종자(種子)는 반드시 양성(陽性)의 체중(體中)에 장재(藏在)함과 같음이오, 양성(陽性)인 천(天)의 기(氣)는 만물(萬物)을 자시(資始)하는 기능(機能)을 가지고 있어 종자(種子)를 발시(發施)하고, 음성(陰性)인 지(地)의 정(精)은 만물(萬物)을 자생(資生)하는 기능(機能)을 가지고 있어 양성(陽性)으로부터 종자(種子)를 승수(承受)하나니. 마치 동식물(動植物)의 양성(陽性)은 정자(精子)를 발시(發施)하고 음성(陰性)은 양정(陽精)을 승수태육(承受胎育)함과 같으니, 역(易)에 천(天)과 양(陽)의 작용(作用)을 건(乾)이라 하고 지(地)와 음(陰)의 작용(作用)을 곤(坤)이라 하여「大哉乾元 萬物資始 至哉坤元 萬物資生 = 대(大)하다 건원(乾元)이여 만물(萬物)이 자(資)하여 시(始)하고, 지(至)하다 곤원(坤元)이여 만물(萬物)이 자(資)하여 생(生)한다」【註五】하고, 또 「乾知大始 坤作成物 = 건(乾)은 지(知)하여 대시(大始)하고 곤(坤)은 작(作)하여 물(物)을 성(成)한다」【註六】하니, 원(元)이라 함은 물(物)의 시초(始初)하는 단(端)이라, 이는 모두 양성(陽性)은 물(物)을 처음으로 시(始)하고, 음성(陰性)은 처음으로 작성(作成)하여 생(生)함을 말함이다. 천조초매기(天造草昧期)에는 뇌우(雷雨)의 동(動)이 만영(滿盈)하여 이 대지(大地)는 전(全)혀 뇌우중(雷雨中)에 포재(包在)되어 있으므로 능(能)히 그 승수(承受)한 종자(種子)를 태육(胎育)하니, 이 뇌우만영(雷雨滿盈)한 대지(大地)의 환경(環境)이 곧 만물(萬物)의 종자(種子)를 태육(胎育)한 요건(要件)이며, 마치 동식물(動植物)의 종자(種子)는 반드시 체액중(體液中)에서 생육(生育)함과 같으니, 역(易)에「屯者盈也 屯者物之始生也 = 둔(屯)이라 함은 영(盈)함이니 둔(屯)은 물(物)의 시생(始生)함이라」【註七】한바, 둔(屯)은 물(物)의 시생(始生)함을 상(象)한 괘명(卦名)으로서 천지간(天地間)에 만물(萬物)이 만영(滿盈)하는 뜻을 말함이오, 또「屯雷雨之動滿盈 天造草昧 = 둔(屯)은 뇌우(雷雨)의 동(動)함이 만영(滿盈)함이니 천조초매(天造草昧)라」【註八】하니, 이는 대지(大地)가 물(物)을 시생(始生)하는 초기(初期)에 뇌우(雷雨)가 천지간(天地間)에 만영(滿盈)하고 천운(天運)이 초창(草創)하여 잡란명매(雜亂冥昧)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천지초매기(天地草昧期)에 어느 일물(一物)이나 또는 어느 일종류(一種類)가 먼저 발생(發生)하고 그것이 진화(進化)하여 분기성형(分岐成形)된 것이 아니오, 마치 천지간(天地間)에 수다(數多)한 원소(元素)가 각기(各其) 독자(獨自)한 체(體)를 가지고 존재(存在)함과 같이, 만물(萬物)의 종자(種子)도 처음부터 각기독자(各其獨自)한 체(體)를 가지고, 천(天)의 기(氣)의 속에 함재(含在)하면서 천지이기(天地二氣)의 상교(相交)에 의(依)하여 그 본형(本形)대로 발육(發育)한 것이니, 원소(元素)가 항구(恒久)한 체(體)임과 같이 종자(種子)도 또한 항구(恒久)한 체(體)이다.
더욱이 음양대대(陰陽對待)의 이(理)로써 보건대, 원소(元素)를 존존(存存)하는 체(體)라고 하면 종자(種子)는 생생(生生)하는 용(用)이라. 원소(元素)가 어느 일물(一物)이 진화(進化)하여 다종다류(多種多類)로 분기(分岐)된 것이 아님으로, 종자(種子)도 또한 원소(元素)와 대대(對待)하여 처음부터 각종각류(各種各類)가 분립(分立)되어 있는 것이다. 다만 이 천지간(天地間)에는 항구(恒久)와 변화(變化)가 양존(兩存)하여, 만물(萬物)은 이 항구(恒久)의 정(情)에 의(依)하여 항구(恒久)하면서 변화(變化)하고 변화(變化)하면서 항구(恒久)하여, 영원(永遠)히 기성(旣成)한 형태(形態)와 세력(勢力)을 유지(維持)하려 하는 관성(慣性)이 있는 동시(同時)에 또한 시(時)와 환경(環境)의 변화(變化)에 적의(適宜)히 적응(適應)하여 일신(日新)하려 하는 적응성(適應性)이 있으니, 관성(慣性)은 항구(恒久)한 체(體)이오, 적응성(適應性)은 변화(變化)하는 용(用)이라, 이 관성(慣性)과 적응성(適應性)의 교호작용(交互作用)이 곧 물(物)의 항구(恒久)하는 소이(所以)이다. 만물(萬物)의 종자(種子)도 체용(體用)의 양면(兩面)을 가지고 있어 관성(慣性)과 적응성(適應性)이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하고 있으므로 또한 항구(恒久)한 체(體)와 변화(變化)하는 용(用)이 있으니 예(例)컨대 사람에는 황인종(黃人種)․백인종(白人種) 등(等)의 구별(區別)이 있고 또 황인종중(黃人種中)에도 몽고족(蒙古族)․한족(漢族) 등(等)이 있고 백인종중(白人種中)에도 여러 민족(民族)이 있는데, 사람은 항구(恒久)한 체(體)이오, 여러 종족(種族)은 변화(變化)하는 용(用)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진화(進化)하고 변화(變化)하더라도 그 항구(恒久)한 체(體)는 변(變)치 아니하여 인류(人類)의 범위(範圍)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세계인류(世界人類)는 종족(種族)을 초월(超越)하여 공통(共通)한 생활(生活)을 영위(營爲)하면서 함께 영원(永遠)히 생생존존(生生存存)할 수 있는 기초조건(基礎條件)이다.
지금에 민족(民族)이라는 것이 있는데 민족(民族)과 세계인류(世界人類)와의 관계(關係)는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관계(關係)와 같은 것으로서, 민족(民族)은 체(體)이오, 세계인류(世界人類)는 용(用)이다. 그러나 역리(易理)로써 보면 족(族)이라 함은 다만 동류(同類)가 취합(聚合)함에 불과(不過)하여 통일(統一)이라는 뜻이 없으므로 민족(民族)도 또한 통체(統體)를 이룬 것이 아니오, 그것이 국가(國家)를 형성(形成)하는 때에 비로소 자력(自力)으로 생존(生存)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세계인류(世界人類)와의 사이에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족(民族)은 국가(國家)를 가진 연후(然後)에 항구(恒久)한 체(體)가 되는 것이다.
‣항구(恒久)는 생존(生存)의 기초(基礎)
우리 인생(人生)은 항구(恒久)와 변화(變化)가 착종(錯綜)한 속에 살고 있는지라, 그러므로 고왕금래(古往今來)로 많은 사람들은 천지(天地)의 항구(恒久)한 체(體)의 면(面)을보고 천지(天地)의 유구(悠久)함을 부러워하며, 인생(人生)의 변화(變化)하는 용(用)의 면(面)을 보고 인생(人生)의 무상(無常)함을 한탄(恨歎)한 것이다.「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는 만고(萬古)의 절창(絶唱)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항구(恒久)와 변화(變化)의 뜻을 부영(賦詠)한 것이니 그 글에「羡長江之無窮 = 장강(長江)의 무궁(無窮)함을 이(羡)한다」함은, 고금(古今)이 여일(如一)하게 끝없이 흐르고 있는 장강(長江)의 항구(恒久)한 체(體)를 부러워 한 것이오, 「哀吾生之須臾 = 우리 인생(人生)의 수유(須臾)함을 애(哀)한다」함은, 이 세상(世上)에 역려과객(逆旅過客)과 같이 잠래선거(暫來旋去)하는 우리 인생일세(人生一世)의 변화(變化)하는 용(用)을 슬퍼한 것이며, 또 「自其變者而觀之則 天地曾不能以一瞬 自其不變者而觀之則 物與我 皆無盡也 = 그 변(變)하는 자(者)로부터 관(觀)하면 천지(天地)도 능(能)히 일순(一瞬)치 못하고 그 불변(不變)하는 자(者)로부터 관(觀)하면 물(物)과 아(我)가 모두 진(盡)함이 없다」함은, 그 변화(變化)하는 면(面)으로 보면 우리 인생(人生)뿐만 아니라 천지(天地)와 장강(長江)도 또한 일순간(一瞬間)의 정지(停止)함도 없이 항상(恒常) 변화(變化)하고, 그 불변(不變)하는 면(面)으로 보면 천지(天地) 장강(長江)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人生)도 또한 항구(恒久)한 것이라 하여, 변화(變化)의 속에 항구(恒久)가 있고 항구(恒久)의 속에 변화(變化)가 있음을 말함이다.
인생(人生)과 사회(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 있어서 항구(恒久)의 체(體)라 함은 상수(常守)할 규모(規模)와 상처(常處)할 거지(居地)를 말함이라, 공자(孔子)의 말에「南人有言曰 人而無恒 不可以作巫醫 善夫 = 남인(南人)이 말을 두어 가로되 인(人)이 항(恒)이 없으면 가(可)히 써 무의(巫醫)를 작(作)치 못한다하니 선(善)한저」【註九】하니, 이는 남방인(南方人)의 속담(俗談)에 사람이 항구(恒久)한 조수(操守)가 없고 사변사개(乍變乍改)하면 인명(人命)을 치료(治療)하는 무의(巫醫)가 될 수 없다하니 그 말이 선(善)하다. 항(恒)이 없으면 무의(巫醫)도 될 수 없는데 하물며 일국(一國)의 인명(人命)을 담임(擔任)하는 위정자(爲政者)가 항(恒)이 없어서야 될 수 있으랴 함을 말함이오, 또 「善人吾不得而見之矣 得見有恒者 斯可矣 亡而爲有 虛而爲盈 約而爲泰 雖乎有恒矣 = 선인(善人)을 내가 얻어 볼 수 없으니 항(恒)이 있는 자(者)를 얻어 보아도 가(可)하리라, 없으되 있는 척하고 허(虛)하되 영(盈)한 척하고 적으되 많은 척하면, 항(恒)이 있기 어렵다」【註十】하니, 항(恒)은 만사(萬事)의 기반(基盤)이라 기반(基盤)이 공고(鞏固)한 연후(然後)에 인격(人格)도 수양(修養)되고 덕업(德業)도 진취(進就)되는 것이오, 항(恒)이 없는 사람은 경조(輕躁) 부박(浮薄)하여 외면(外面)만을 꾸미고 실천(實踐)이 없음을 말함이다.
가정생활(家庭生活)에도 항(恒)이 있어야 하나니, 역(易)에 父父 子子 兄兄 弟弟 夫夫 婦婦而家道正 正家而天下定矣 = 부(父)가 부(父)하고 자(子)가 자(子)하고 형(兄)이 형(兄)하고 제(弟)가 제(弟)하고 부(夫)가 부(夫)하고 부(婦)가 부(婦)하면 가도(家道)가 정(正)하고 가도(家道)를 정(正)하매 천하(天下)가 정(定)한다」【註十一】하여, 부자(父子)․형제(兄弟)․부부(夫婦)가 모두 자기(自己)의 지킬 바의 상도(常度)와 자기(自己)의 맡은 바의 상직(常職)을 어기지 아니하면 가도(家道)가 정제(正齊)하고, 국민(國民) 개개(個個)의 가도(家道)를 정제(正齊)하면 천하(天下)가 안정(安定)한다 함을 말하고, 또 가도(家道)를 정제(正齊)하기 위(爲)하여는 「言有物而行有恒 = 언(言)이 물(物)이 있고 행(行)이 항(恒)이 있다」【註十二】하니, 물(物)이라 함은 존비(尊卑) 상하(上下)의 등분(等分)이라, 부자(父子) 형제(兄弟) 부부(夫婦)가 그 언사(言辭)는 존비(尊卑) 상하(上下)의 등분(等分)을 차리고 그 행동(行動)은 항구(恒久)한 상도(常度)와 일정(一定)한 법칙(法則)이 있은 연후(然後)에 가도(家道)가 정제(正齊)한다 함이니. 이 글의 대지(大旨)는 천하(天下)의 안정(安定)함은 일가(一家)의 정제(正齊)로부터 시작(始作)하고, 일가(一家)의 정제(正齊)함은 일신(一身)의 언행(言行)으로부터 시작(始作)함을 말함이오, 大學書에「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 신(身)이 수(修)한 후(後)에 가(家)가 제(齊)하고 가(家)가 제(齊)한 후(後)에 국(國)이 치(治)한다」하는 말과 상통(相通)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국속어(我國俗語)에 「國家用人 先視其家 = 국가(國家)가 사람을 씀에 먼저 그 가(家)를 시(視)하라」하니, 이는 국가(國家)가 인재(人材)를 선택(選擇)함에는 먼저 그 사람의 가정(家庭)이 정제(正齊)되고 정제(正齊)되지 못함을 보라고 함이라. 부자(父子) 형제(兄弟) 처자(妻子)가 항상(恒常) 동정식(同鼎食) 공거처(共居處)하면서 그를 정제(正齊)할 수 없는 인재(人材)라면 그 사람이 일국(一國)의 대사(大事)를 맡아서 능(能)히 그 임무(任務)를 감당(勘當)할 수 없을 것이오, 평소(平素)에 언사(言辭)와 행동(行動)이 상도(常度)가 있다고 하면 그 가정(家庭)은 스스로 정제(正齊)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라 함을 말함이다.
가정(家庭)은 사회조직(社會組織)의 단위(單位)가 되는지라, 가도(家道)에 항(恒)이 있음과 같이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에도 또한 항(恒)이 있으니, 역(易)에「振恒在上大無功也 = 진항(振恒)으로 상(上)에 있으니 크게 공(功)이 없다」【註十三】하니, 이는 상위(上位)에 있는 자(者)는 반드시 항구(恒久)한 상도(常道)가 있은 연후(然後)에 사업(事業)의 실공(實功)이 이루어지고, 만일 경솔부동(輕率浮動)하고 조령모개(朝令暮改)하여 상도(常度)가 없으면, 민중(民衆)이 그 적종(適從)할 바를 알지 못하여 의혹(疑惑)이 생(生)하고 의혹(疑惑)이 생(生)하면 정령(政令)을 신(信)치 아니하여 사공(事功)이 이루지 못한다. 함을 말함이오, 또「聖人久於其道 而天下化成 = 성인(聖人)이 그 도(道)에 구(久)하매 천하(天下)가 화(化)하여 성(成)한다」【註十四】하니, 이는 성인(聖人)의 정치(政治)가 일정(一定)한 상규(常規)가 있으므로 천하(天下)의 인심(人心)이 점화(漸化)하여 미속(美俗)을 이룸을 말함이니, 누풍(陋風)을 미풍(美風)으로 개이(改移)하고 악속(惡俗)을 미속(美俗)으로 환역(換易)함에는 일조일석(一朝一夕)에 되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항구(恒久)한 도(道)로써 점화(漸化) 점성(漸成)치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다. 국가(國家)의 정책(政策)같은 것도 비록 민중(民衆)의 실생활(實生活)에 적응(適應)하고 시의(時宜)에 합(合)하도록 변통(變通)하여야 할 것이나, 그 소위(所謂) 변통(變通)은 항구(恒久)한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한 지도원리(指導原理)라든가 백년대계(百年大計)같은 것을 체(體)로 하지 아니하면 안되나니, 항구(恒久)한 체(體)가 없으면 정령(政令)이 사변사개(乍變乍改)하여 마침내 무질서(無秩序) 상태(狀態)에 빠지고 국가(國家)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이 지리멸열(支離滅裂)하는 것이다.
아국(我國)의 역사(歷史)에 징(徵)하건대,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인성(人性)은 혼후(渾厚)하고 고려시대(高麗時代)는 직실(直實)하고 고려말(高麗末)에 경조(輕躁)의 풍(風)이 생(生)하여 이조(李朝)에 계승(繼承)된지라 【註十五】. 그러므로 삼국(三國)과 고려(高麗)는 인성(人性)과 정령(政令)이 모두 항구성(恒久性)이 있어 견실(堅實)하고, 고려말(高麗末)에 이르러 민간(民間)의 속담(俗談)에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이라는 말이 생기고 이조(李朝)에 이르러 또 「조선공사삼일(朝鮮公事三日)」이라는 말이 생기니, 이는 민중(民衆)들이 정령(政令)이 항구(恒久)치 못하여 삼일(三日)만에 또 변개(變改)됨을 풍자(諷刺)한 말이다. 황방촌(黃尨村)은 세종(世宗)때의 명재상(名宰相)이라, 정부내(政府內)에 법령(法令) 변개론(變改論)이 일어나면 대개(大槪)「나는 변통(變通)의 재(才)가 핍(乏)하니 감(敢)히 변개(變改)하기를 의논(議論)할 수 없고 다만 성헌(成憲)을 준수(遵守)할 뿐이라」하여 응(應)치 아니하니, 이는 방촌(尨村)이 보수(保守)하여서 그런 것이 아니오 당시(當時) 인심(人心)이 경조(輕躁)하여 항구성(恒久性)이 없고 분운(紛紜)히 변개(變改)하기를 좋아하는 폐풍(弊風)을 진압(鎭壓)하기 위(爲)함이라, 이러한 명재상(名宰相)이 있는 까닭에 세종왕(世宗王)의 사업(事業)이 더욱 빛난 것이다.
註一. 恒卦彖傳
註二. 同上
註三. 繫辭下傳 第七章
註四. 屯卦彖傳
註五. 大哉以下는 乾卦彖傳이오, 至哉以下는 坤卦彖傳이다.
註六. 繫辭上傳 第一章
註七. 序卦傳上篇
註八. 屯卦彖傳
註九. 論語子路篇
註十. 論語述而篇
註十一. 家人卦彖傳
註十二. 家人卦大象傳
註十三. 恒卦上六爻小象傳
註十四. 恒卦彖傳
註十五. 아국(我國)의 인성(人性)에 대(對)하여 옛 사가(史家)들은 평(評)하되 삼국시대(三國時代)는 「혼후(渾厚)」하고, 고려시대(高麗時代)는 「직실(直實)」하다고 하며, 이조시대(李朝時代)에 대(對)하여는 세종왕(世宗王)은 말하되 「경조(輕躁)」하다고 하니, 혼후(渾厚)라 함은 체(體)가 돈후(敦厚)하여 항구성(恒久性)이 있고 용(用)이 주편(周遍)하여 안계(眼界)가 넓어서 자기(自己)의 사리(私利)보다도 국가통체(國家統體)의 이해(利害)를 더 크게 생각함이라, 그러므로 삼국시대(三國時代)는 일반(一般)으로 겸양(謙讓)의 풍(風)이 대행(大行)하고, 관리(官吏)가 자기(自己)보다 유능(有能)한 자(者)에게 관직(官職)을 사양(辭讓)하는 일이 있고, 국가(國家)에 대난(大難)이 있으면 귀족(貴族)의 자제(子弟)가 먼저 창검(槍劍)을 짚고 궁시(弓矢)를 메고 선진(先陣)에 나서고 사졸(士卒)이 그 뒤를 따르니, 이는 평소(平素)에 국가(國家)의 후은(厚恩)을 특수(特殊)히 향수(享受)하고 있는 자(者)가 국난(國難)에 솔선출동(率先出動)하는 것이 당연(當然)한 의무(義務)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니 이가 아국사(我國史) 상(上)에 가장 광휘(光輝)있는 시대(時代)를 현출(現出)한 원동력(原動力)이오, 저 유명(有名)한 신라(新羅)의 화랑(花郞)도 또한 이러한 미질(美質)속에서 화생(化生)한 것이다. 신라(新羅)가 삼한(三韓)을 통일(統一)한 후(後)에 귀족계급(貴族階級)이 안일(安逸)을 탐(貪)하여 부패(腐敗)하기 시작(始作)하고, 고려(高麗)에 이르러서는 혼후(渾厚)의 기상(氣象)이 적어지나, 오히려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유풍여속(遺風餘俗)이 있어 그 기질(氣質)이 직실(直實)하니, 체(體)가 직(直)하면 용(用)이 환(圜)하는 것은 환직호근(圜直互根)의 법칙(法則)이라, 체(體)가 항구성(恒久性)을 띠고 용(用)이 통체(統體)에 주편(周遍)하여, 외구(外寇)가 있을 때에는 역시(亦是) 귀족(貴族)의 자제(子弟)가 전진(戰陣)의 선봉(先鋒)에 입(立)하여 능(能)히 십여차(十餘次)의 강구(强寇)를 대적(對敵)하고 선조(先祖)의 유업(遺業)을 수호(守護)한 것이다. 고려말엽(高麗末葉)으로부터 경조(輕躁)의 풍(風)이 생(生)하여 홍건적(紅巾賊)의 난(亂)에 향교학생(鄕校學生)들이 병역(兵役)을 기피(忌避)하기 위(爲)하여 공자묘(孔子廟)를 지킨다는 구실(口實)로써 병역면제(兵役免除)를 정부(政府)에 요청(要請)하니, 당시(當時)의 정승(政丞) 염제신(廉悌臣)이 이를 절책(切責)하되 국난(國難)이 있을 때에 귀족자제(貴族子弟)가 먼저 출전(出戰)하는 것은 조종조(祖宗朝) 이래(以來)의 양풍(良風)이며 또 여등(汝等)이 공자묘(孔子廟)를 지키지 아니하면 공자위패(孔子位牌)가 어디로 도망(逃亡)간다드냐 하여 모두 군대(軍隊)에 편입(編入)한 일도 있다. 이조(李朝)에 이르러서는 경조(輕躁)의 풍(風)이 그대로 계승(繼承)되니, 경조(輕躁)라 함은 체(體)가 돈후(敦厚)치 못하여 항구성(恒久性)이 없고 용(用)이 의착(依着)할 근거(根據)가 박약(薄弱)하여 인성(人性)이 요동부유(搖動浮遊)하고 경박조급(輕薄躁急)함이라, 그러므로 소위(所謂) 문화(文化)는 허례허식(虛禮虛飾)과 무문농필(舞文弄筆)에 흐르고, 소위(所謂) 정치(政治)는 항구성(恒久性)을 상실(喪失)하여 조령모개(朝令暮改)하여 삼일공사(三日公事)의 폐(弊)에 빠지고 드디어 허위(虛僞)의 풍(風)을 생(生)하니 유명(有名)한 「이동고(李東皐)」의 임종유차(臨終遺箚)에 「今世之人 或有不事行檢 不務讀書而高談大言 結爲朋友者 以爲高致 遂成虛僞之風 = 금세(今世)의 인(人)이 혹(或) 행검(行檢)을 일삼지 아니하고 독서(讀書)를 힘쓰지 아니하고 높은 말과 큰말을 하여 결(結)하여 붕우(朋友)를 만드는 것을 써 고치(高致)라 함이 있어 드디어 허위(虛僞)의 풍(風)을 성(成)한다」하여, 붕당(朋黨)의 사(私)가 있음을 경계(警戒)하더니, 불과(不過) 수년(數年)에 망국(亡國)의 장본(張本)이 된 붕당(朋黨)의 파쟁(派爭)을 양성(釀成)하고 다시 삼국(三國) 고려(高麗)의 혼후직실(渾厚直實)의 유풍(遺風)을 찾아 볼 수 없이 된 것이다. 또 이 기질(氣質)의 변천(變遷)을 왕위계승(王位繼承) 문제(問題)로써 보건대, 군주(君主)는 연령(年齡)이 장성(長成)하고 국정(國政)을 통어(統御)할 능력(能力)이 있음을 제일조건(第一條件)으로 하나니, 그런 능력(能力)이 있은 연후(然後)에 군주(君主)를 중심(中心)으로 하여 국내(國內)의 모든 대대세력(對待勢力)이 교호작용(交互作用)을 행(行)하면서 통체(統體)의 통일작용(統一作用)에 귀일(歸一)하는 것이오, 만일 유아(幼兒)가 즉위(卽位)하면 국정(國政)을 통어(統御)하는 중심작용(中心作用)을 행(行)치 못하고 모든 대대세력(對待勢力)이 서로 분립(分立)하여 투쟁(鬪爭)만 있고 조화(調和)가 없어서 국정(國政)이 혼란(混亂)하는 것이다. 삼국시대(三國時代)는 인성(人性)이 혼후(渾厚)하고 이 원리(原理)를 잘 체득(體得)하여 육칠백년간(六七百年間)에 유군(幼君)을 세운 일이 없고, 왕자(王子)가 연유(年幼)하면 제질중(弟姪中)에서 선택(選擇)하여 세우고, 신라(新羅)같은 나라는 삼성(三姓)이 상전(相傳)하여 연령(年齡)이 장성(長成)하고 또 현명(賢明)한 자(者)를 세우고, 오직 고구려(高句麗)의 태조왕(太祖王)과 신라(新羅)의 진흥왕(眞興王)이 유년(幼年)으로 즉위(卽位)한 일이 있으나, 이는 아시(兒時)로부터 기위(奇偉)하여 장자(長者)의 풍(風)이 있다 하니 한 예외(例外)이오. 백제(百濟)에 한 유군(幼君)이 있으나 그는 적신(賊臣)의 옹립(擁立)한 자(者)이니 또한 문제외(問題外)이다. 신라(新羅)가 삼한(三韓)을 통일(統一)한 후(後)에 군주(君主)들은 일시(一時)의 안일(安逸)을 투취(偸取)하여 국가통체(國家統體)를 위(爲)하는 생각보다 자기(自己)의 혈통(血統)이 만대영화(萬代榮華)하기를 원(願)하는 욕심(慾心)이 앞을서서, 연장차현(年長且賢)한 제질(弟姪) 등(等)에게 왕위(王位)를 주지 아니하고 연유(年幼)한 왕자(王子)를 세우는 풍(風)을 생(生)하여, 소성왕(昭聖王)이 유자(幼子) 애장왕(哀莊王)에게 전위(傳位)하더니 마침내 그 숙부(叔父) 헌덕왕(憲德王)에게 죽고, 이로부터 왕위쟁탈(王位爭奪)의 추악(醜惡)한 전쟁(戰爭)이 전개(展開)된 것이다. 고려초기(高麗初期)에는 부자계승(父子繼承)뿐만 아니라 형전제수(兄傳弟受)한 일도 많더니, 중엽이후(中葉以後)에 이 풍(風)이 변(變)하여 유왕(幼王)의 즉위(卽位)하는 일이 생긴바, 그 결과(結果)는 역시(亦是) 길상(吉祥)치 못하여 헌종(獻宗)은 그 숙부(叔父) 숙종(肅宗)에게 축출(逐出)되고, 충정왕(忠定王)은 그 숙부(叔父) 공민왕(恭愍王)에게 죽으니, 연장(年長)한 제(弟)를 멀리하고 연유(年幼)한 왕자(王子)를 세우는 것이 반드시 화기(禍機)를 포장(包藏)하고 있음은 사실(史實)이 소연(昭然)한지라, 이조(李朝)에 이르러 다시 이 전철(前轍)을 밟아서 단종(端宗)이 또한 그 숙부(叔父) 세조(世祖)에게 죽으니, 실(實)로 후인(後人)으로 하여금 천진란만(天眞爛漫)한 유왕(幼王)들이 시대풍(時代風)의 화(禍)를 입어 횡액(橫厄)에 걸림을 통한(痛恨)케 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社會)는 이조시대(李朝時代)의 경조(輕躁)의 풍(風)을 그대로 상속(相續)하고 있는지라, 이 풍(風)을 변통(變通)치 아니하고는 정치(政治) 경제(經濟) 문화(文化) 등(等) 천시만설(千施萬設)이 모두 대과(大過) 동요(棟撓)의 상(象)이 되어 부박(浮薄)․퇴폐(頹廢)하여 이조시대(李朝時代)의 삼일공사(三日公事)를 재판(再版)치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第五節 삼정(三情)과 사정(四情)
‣정대본능(正大本能)
천지만물(天地萬物)에는 공통(共通)으로 감응(感應) 췌취(萃聚) 항구(恒久)의 삼정(三情)이 있으나 오직 천지(天地)에는 삼정(三情)의 이외(以外)에 또 「정대(正大)의 정(情)」이 있다. 천지(天地)와 만물(萬物)은 한 태일체(太一體)를 이루고 있어 천지(天地)의 이외(以外)에 따로 만물(萬物)이 있는 것이 아니오, 일월대지(日月大地)도 또한 만물(萬物)의 하나로서 만물(萬物)이 없으면 천지(天地)도 있을 수 없다. 다만 천지(天地)와 만물(萬物)의 상이(相異)한 바는, 천지(天地)라 함은 태일체(太一體)인 통체(統體)를 말함이오, 만물(萬物)이라 함은 각(各) 부분(部分)인 개체(個體)를 말함이다. 그러므로 태일체(太一體)의 속에 포함(包含)되어 있는 만물(萬物)은 비록 태일체(太一體)의 일원(一員)이 되고 있으되 모두 독수(獨殊)한 개체(個體)를 가지고 통체(統體)의 일부분(一部分)을 이루고 있으니, 이 통체(統體)와 개체(個體)와의 상이(相異)가 곧 천지(天地)와 만물(萬物)과의 상이(相異)한 바이다.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의 조직(組織)은 천수만분(千殊萬分)한 물(物)을 한 계통(系統)에 연계(連繫)하여 스스로 혼연범위(渾然範圍)하여 편(偏)치 아니하니 이 작용(作用)을 정(正)이라 하고,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의 운행(運行)은 능(能)히 만물(萬物)에 관통(貫通)하고, 또 능(能)히 만물(萬物)을 통어(統御)하여 어느 일물(一物)의 유기(遺棄)함도 없이 스스로 통일운동(統一運動)을 행(行)하여 국(局)치 아니하니 이 작용(作用)을 대(大)라 하니, 천지(天地)의 작용(作用)은 스스로 정(正)하고 스스로 대(大)하여 이 정대작용(正大作用)이 한 본능(本能)으로 되어 있으므로, 역(易)에는 「正大而天地之情可見矣 = 정(正)하고 대(大)함에 천지(天地)의 정(情)을 가(可)히 견(見)한다」【註一】한 것이다.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의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에는 무위(無爲)히 또 자연(自然)히 발로(發露)하는 정대(正大)의 정(情)이 있으나, 만물(萬物)의 개체(個體)는 그 조직(組織)이 편(偏)하여 정(正)치 못하고 그 운행(運行)이 국(局)하여 대(大)치 못하니, 뇌풍(雷風) 수화(水火) 산택(山澤) 내지(乃至) 동물(動物) 식물(植物) 같은 것이 모두 일편(一便)의 임무(任務)밖에는 행(行)치 못함은 물론(勿論)이오, 일월대지(日月大地)와 같은 지거지대(至巨至大)한 물(物)도 또한 모두 개체(個體)로 되어 각기(各其) 독자적(獨自的)인 편국(偏局)한 기능(機能)밖에는 가지지 못하니, 이 까닭에 정대(正大)의 정(情)은 오직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에만 있고 만물(萬物)의 개체(個體)에는 없는 것이다. 우리 인생(人生)도 한 개체(個體)로 되어 있는지라, 또한 편국(偏局)하고 정대(正大)의 정(情)이 없으니, 이가 사람이 스스로 인간(人間)의 불완전(不完全)함을 탄식(歎息)하는 소이(所以)이다. 다만 사람은 그 신체(身體)의 조직(組織)이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를 통관(通貫)하고 그 정신(精神)의 운행(運行)이 능(能)히 정대작용(正大作用)을 본받을 수 있는 소질(素質)을 가지고 있으니, 이가 사람이 동물(動物)이나 식물(植物) 등(等)과 상이(相異)한 바이다.
‣사람과 동식(動植)과의 비교(比較)
이제 동식물(動植物)과 사람을 비교(比較)하여 보건대 만물(萬物)은 그 조직(組織)에 따라서 천(天)에 본(本)한 자(者)와 지(地)에 본(本)한 자(者)가 있으니, 천(天)은 기(氣)의 유행(流行)함이므로 천(天)에 본(本)한 자(者)는 기(氣)가 강건(强健)하여 상(上)을 친(親)하고 지(地)는 정(精)의 응주(凝做)함이므로 지(地)에 본(本)한 자(者)는 정(精)이 후중(厚重)하여 하(下)를 친(親)하나니, 동물(動物)은 상(上)을 친(親)하는 자(者)이오, 식물(植物)은 하(下)를 친(親)하는 자(者)이다. 먼저 식물(植物)로써 보면 식물(植物)은 지중(地中)에 착근(着根)하여 지(地)에 본(本)함으로 스스로 유동(流動)치 못하고 그 섭취(攝取)하는 영양분(營養分)은 근착지(根着地)의 지미(地味)에 국한(局限)하고 기(氣)를 받음이 극(極)히 적으니 정신(精神)은 기(氣)의 작용(作用)이라, 식물(植物)은 하(下)를 친(親)하고 기(氣)가 적음으로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없고 오직 약간(若干)의 감각(感覺)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동물(動物)은 대개(大槪) 배부(背部)는 천(天)을 향(向)하고 복부(腹部)는 지(地)를 향(向)하여 체(體)가 횡재(橫在)하여 평면(平面)이 되고 있으므로 주(主)로 지(地)에 본(本)하여, 비록 그 체(體)가 자유(自由)로 유동(流動)하고 있으되 그 섭취(攝取)하는 바의 식물(食物)은 대개(大槪) 일정(一定)한 범위(範圍)에 국한(局限)하여 각미(各味)를 겸식(兼食)치 못하고 전(專)혀 편식(偏食)하고 있으니, 동물(動物)에 육서(陸棲) 수서(水棲) 식초류(食草類) 식육류(食肉類) 등(等)이 있는 것이 그 일례(一例)이오, 또 비록 호흡(呼吸)하고 있으되 기(氣)를 받음이 광대(廣大)치 못하고 정신작용(精神作用)이 극(極)히 편국(偏局)하여 과거(過去)에 대(對)한 기억(記憶)과 미래(未來)에 대(對)한 추상(推想)이 거의 없고 오직 현실생활(現實生活)에 지배(支配)되고 있으니, 사람도 음식(飮食)을 편식(偏食)하는 자(者)가 대개(大槪) 편성(偏性)이 되고 기(氣)의 부족(不足)한 자(者)가 대개(大槪) 정신(精神)이 건전(健全)치 못하여 그 생활(生活)과 일상(日常)의 활동(活動)이 주(主)로 현실생활(現實生活)에 편국(偏局)하고 있음은 이 까닭이다.
사람은 비록 동물(動物)의 일류(一類)에 소속(所屬)하여 그 삼정(三情)의 발로(發露)는 동물(動物)과 하등(何等)의 차이(差異)가 없으되, 오직 그 조직형태(組織形態)가 두부(頭部)는 천(天)을 향(向)하고 양족(兩足)은 지(地)를 밟아서 천지(天地)로 더불어 삼각(三角)의 자태(姿態)를 이루고 이 자태(姿態)는 직립체(直立體)로 되어 주(主)로 천(天)에 본(本)하여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를 통관(通貫)하고 있다. 소강절(邵康節)은 말하되 「動者體橫 植者體縱 人宜橫而反縱也 飛者有翅 走者有趾 人之兩手翅也 兩足趾也 飛者食木 走者食草 人皆兼之而又食飛走也 故最貴乎萬物也 = 동물(動物)은 체(體)가 횡(橫)하고 식물(植物)은 체(體)가 종(縱)하니 사람은 마땅히 횡(橫)할 것이나 도리어 종(縱)하다 비조(飛鳥)의 유(類)는 시(翅)가 있고 주수(走獸)의 유(類)는 지(趾)가 있는데 사람의 양수(兩手)는 시(翅)오, 양족(兩足)은 지(趾)이다. 비류(飛類)는 목(木)을 식(食)하고 주류(走類)는 초(草)를 식(食)하는데 사람은 양자(兩者)를 겸(兼)하고 또 비주(飛走)를 식(食)하니 이런 고(故)로 사람은 가장 만물(萬物)보다 귀(貴)하다」【註二】하니, 이는 사람은 동물(動物)이면서 또한 동물(動物)의 유(類)를 초월(超越)하여 체(體)가 직립(直立)하고, 그 동작(動作)은 조수(鳥獸)의 시지(翅趾)를 겸유(兼有)하여 양족(兩足)은 신체(身體)를 지탱(支撑)하고 양수(兩手)는 기구(器具)를 사용(使用)하며, 식물(食物)은 초목조수(草木鳥獸) 등(等)의 백미(百味)를 겸식(兼食)함으로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정신작용(精神作用)은 공간적(空間的)으로는 능(能)히 심원(深遠)을 탐색(探索)하여 자연계(自然界)의 비밀(秘密)을 개척(開拓)하고, 시간적(時間的)으로는 능(能)히 과거(過去)를 기억(記憶)하고 미래(未來)를 추상(推想)하며, 더욱이 자기(自己)의 정신력(精神力) 만으로는 오히려 부족(不足)하다고 생각하여 타인(他人)의 지식(知識)․기능(技能) 등(等)을 학내(學來)하여 자기(自己)의 정신력(精神力)을 보익배양(補益培養)하니, 이가 사람의 정신력(精神力)이 광원고대(廣遠高大)하여 멀리 동물계(動物界)를 초출(超出)한 소이(所以)이다. 소강절(邵康節)은 이를 설명(說明)하되 「能用天下之目 爲己之目 其目無所不觀矣 用天下之耳 爲己之耳 其耳無所不聽矣 用天下之口 爲己之口 其口無所不言矣 用天下之心 爲己之心 其心無所不謀矣 夫天下之觀 其于見也 不亦廣乎 天下之聽 其于聞也 不亦遠乎 天下之言 其于論也 不亦高乎 天下之謀 其于樂也 不亦大乎」= 「능(能)히 천하(天下)의 목(目)을 용(用)하여 자기(自己)의 목(目)을 삼으니 그 목(目)이 관(觀)치 못하는 바가 없고, 천하(天下)의 이(耳)를 용(用)하여 자기(自己)의 이(耳)를 삼으니 그 이(耳)가 청(聽)치 못하는 바가 없고, 천하(天下)의 구(口)를 용(用)하여 자기(自己)의 구(口)를 삼으니, 그 구(口)가 언(言)치 못하는 바가 없고, 천하(天下)의 심(心)을 용(用)하여 자기(自己)의 심(心)을 삼으니 그 심(心)이 모(謀)치 못하는 바가 없다. 천하(天下)의 관(觀)함이 그 견(見)함에 또한 광(廣)치 아니하랴, 천하(天下)의 청(聽)함이 그 문(聞)함에 또한 원(遠)치 아니하랴, 천하(天下)의 언(言)함이 그 논(論)함에 또한 고(高)치 아니하랴, 천하(天下)의 모(謀)함이 그 낙(樂)함에 또한 대(大)치 아니하랴」 【註三】하여, 성인(聖人)은 천하(天下)의 이(耳) 목(目) 구(口) 심(心)으로써 자기(自己)의 이(耳) 목(目) 구(口) 심(心)을 삼는 까닭에, 그 보는 것이 지광(至廣)하고 그 듣는 것이 지원(至遠)하고 그 의논(議論)하는 것이 지고(至高)하고 그 즐겨하는 것이 지대(至大)함을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사회(社會)를 조직(組織)하여 통체적(統體的)으로 영원(永遠)히 생존(生存)할 계획(計劃)을 수립(樹立)하고 윤리(倫理)와 도덕(道德)을 정(定)하여 공동생활(共同生活)의 질서(秩序)를 보전(保全)하고 있으니, 이 까닭에 사람을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고 하는 것이오, 이 정신력(精神力)의 영이(靈異)함이 곧 정대작용(正大作用)을 본 받을 수 있는 소질(素質)이 되고 이러한 소질(素質)을 이성(理性)이라 한다.
이와 같이 사람은 한 면(面)으로는 동물(動物)과 다름이 없는 감정(感情)을 가지고, 한 면(面)으로는 사람 특유(特有)의 이성(理性)을 가지고 있으니, 감정(感情)은 체(體)오, 이성(理性)은 용(用)이다. 세간(世間)에서 흔히 사람을 감정적(感情的)동물(動物)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체(體)의 일면(一面)을 말하는 것이니 실(實)은 사람은 여러 동물중(動物中)에서 유일(唯一)한 이성적(理性的) 동물(動物)이다. 그러므로 삼정(三情)으로써 보더라도 색욕(色慾)은 동물(動物)과 다름이 없으되 또한 음양관계(陰陽關係)에 대(對)하여 혈연적(血緣的) 사회적(社會的)으로 엄격(嚴格)한 규정(規定)이 있으며 식욕(食慾)은 동물(動物)과 다름이 없으되 또한 재화(財貨)와 음식(飮食)에 대(對)하여 예의(禮儀)와 염치(廉恥)가 있어 취(取)할 바와 취(取)치 못할 바를 알며, 자존욕(自存慾)은 동물(動物)과 다름이 없으되 또한 타인(他人)을 위(爲)하고 사회(社會)를 위(爲)하여 자신(自身)의 생명(生命)을 희생(犧牲)하는 일이 있으니, 이것이 모두 이성(理性)으로부터 출래(出來)한 사람의 특유(特有)한 행위(行爲)이다. 이와 같은 이성(理性)을 가지고 있는 우리 인생(人生)은 반드시 정대작용(正大作用)을 본 받아서 모든 행위(行爲)로 하여금 정(正)하여 편(偏)치 아니하고, 대(大)하여 국(局)치 아니한 연후(然後)에 삼정(三情)의 발로(發露)가 모두 절도(節度)에 적중(適中)하여 조화(調和)함을 얻어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완수(完遂)할 수 있는 것이다.
‣삼정(三情)과 생활(生活)과의 관계(關係)
사람의 수양(修養)과 사업(事業)에도 삼정(三情)의 작용(作用)이 있으니 역(易)에 「學以聚之 問以辨之 寬以居之 仁以行之 = 학(學)하여 써 취(聚)하고, 문(問)하여 써 변(辨)하고, 관(寬)하여 써 거(居)하고, 인(仁)하여 써 행(行)한다」【註四】하니, 학(學)하여 써 취(聚)한다 함은 학문(學問)을 배워서 지식(知識)을 적누(積累)하는 췌취작용(萃聚作用)이오, 문(問)하여 써 변(辨)한다 함은 붕우(朋友)의 지(志)가 상통(相通)하여 난의(難疑)를 문답(問答)하여 서로 자익(滋益)하는 감응작용(感應作用)이오, 관(寬)하여 써 거(居)한다 함은 심량(心量)이 관홍(寬弘)하고 소수(所守)가 확연(確然)하여 오래 하되 변(變)치 아니하는 항구작용(恒久作用)이오, 인(仁)하여 써 행(行)한다함은 심덕(心德)이 혼전(渾全)하여 사물(事物)을 접응(接應)함에 돈후(敦厚)하고 자애(慈愛)하고 그 행(行)하는 바가 공정(公正)하고 사사(私邪)가 없는 정대작용(正大作用)이다. 논어(論語)의 첫 머리에 공자(孔子)의 말에 「學而時習之 不亦悅乎 = 학(學)하고 시(時)로 습(習)하면 또한 열(悅)치 아니하랴」【註五 以下의 二句도 同註內에 있다】함은 역(易)의 학취(學聚)이오,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 붕(朋)이 있어 원방(遠方)으로 부터 내(來)하면 또한 낙(樂)치 아니하랴」함은 역(易)의 문변(問辨)이오, 「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 인(人)이 지(知)치 아니 하여도 온(慍)치 아니 하면 또한 군자(君子)가 아니랴」함은, 역(易)의 관거(寬居)이니 이 삼작용(三作用)이 구전(具全)하면 또한 능(能)히 인행(仁行)하여 그 실천(實踐)이 정대작용(正大作用)에 합(合)하는 것이다.
가정생활(家庭生活)에 있어서는 역(易)에 「애(愛) 부(富) 위(威)」【註六】의 삼작용(三作用)을 말하니, 애(愛)는 가인(家人)의 지(志)가 상애(相愛)하여 화합(和合)하는 감응작용(感應作用)이오, 부(富)는 재화(財貨)를 생산(生産)하여 가산(家産)을 부유(富裕)케 하는 췌취작용(萃聚作用)이오, 위(威)는 가정(家庭)의 질서(秩序)를 정제(正齊)하고 일정(一定)한 규모(規模)를 세우는 항구작용(恒久作用)이다. 애(愛)가 없으면 가인(家人)의 마음이 서로 배역(背逆)하여 부자(父子) 형제(兄弟) 부부(夫婦)가 각기자기(各其自己)의 맡은 바의 임무(任務)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오, 부(富)가 없으면 생활(生活)이 안정(安定)치 못하는 것이오, 위(威)가 없으면 부자(婦子) 등(等)이 희희방종(嘻嘻放縱)하여 윤서(倫序)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절(家節)이 패괴(敗壞)되는 것이니, 애부위(愛富威)의 삼정(三情)이 모두 득의(得宜)한 연후(然後)에 가정(家庭)에 정대작용(正大作用)이 행(行)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인(世人)은 흔히 애(愛)와 위(威)는 양립(兩立)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가도(家道)는 애(愛)로서 체(體)를 삼고 위(威)로써 용(用)을 삼는지라, 그러므로 애(愛)라 함은 애정(愛情)에 빠져서 환압(歡狎)에 흐름을 말함이 아니오, 지성(至誠)으로써 상대(相對)하여 서로 속이지 아니하고 가인(家人)으로 하여금, 감격(感激)케하면 스스로 애(愛)가 생(生)하여 가인(家人)이 친목화락(親睦和樂)함을 말함이니, 역(易)에 「王假(格) 有家 交相愛也= 왕(王)이 가(假)하여 가(家)를 유(有)함은 교상애(交相愛)함이라」【註七】함은, 그 가정(家庭)을 감화(感化)케 함으로써 서로 친애(親愛)함을 말함이오 위(威)라 함은 엄려(嚴厲)하고 노책(怒責)함을 말함이 아니오, 먼저 자신(自身)을 반성(反省)하여 스스로 엄칙(嚴飭)한 연후(然後)에 가인(家人)을 지도(指導)하면 스스로 위엄(威嚴)이 생(生)하여 가인(家人)이 열복순종(悅服順從)함을 말함이니, 역(易)에「威如之吉 反身之謂也 = 위여(威如)의 길(吉)함은 신(身)에 반(反)함을 이름이라」【註八】함은, 위(威)함이 길(吉)하다는 것은 가인(家人)을 바로잡기 전(前)에 먼저 자신(自身)을 책(責)하면 위엄(威嚴)이 스스로 입(立)한다 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애(愛)와 위(威)는 양립(兩立)치 못하는 것이 아니며 또 역(易)에 「立人之道曰 仁與義 = 인(人)의 도(道)를 입(立)하여 가로되 인(仁)과 의(義)라」【註九】하니, 인(仁)은 체(體)오 의(義)는 용(用)으로서 애(愛)는 인(仁)의 작용(作用)이오, 위(威)는 의(義)의 작용(作用)이니, 가정(家庭)의 애위(愛威)는 곧 인도(人道)의 인의(仁義)가 되는 것이다.
‣정치(政治)의 삼정작용(三情作用)
국가(國家)의 정치(政治)에는 역(易)에 「理財 正辭 禁民爲非曰義 = 재(財)를 이(理)하고 사(辭)를 정(正)하고 민(民)의 비행(非行)을 금(禁)함을 가로되 의(義)라 한다」【註十】하니, 이재(理財)라 함은 재(財)를 경리(經理)하여 경제생활(經濟生活)을 풍족(豊足)케 하여 써 인심(人心)을 취합(聚合)함이니 곧 췌취작용(萃聚作用)이오, 정사(正辭)라 함은 위정자(爲政者)가 언사(言辭)를 바르게 하여 허위(虛僞)와 기만(欺瞞)이 없고, 인심(人心)을 감화(感化)함이니 곧 감응작용(感應作用)이오, 금민위비(禁民爲非)라 함은 무비(武備)를 수치(修治)하여 폭민(暴民)의 비행(非行)을 금(禁)하여 사회(社會)의 질서(秩序)를 유지(維持)함이니 곧 항구작용(恒久作用)이라, 의(義)로써 이 삼정(三政)을 적의(適宜)히 재제(裁制)한 연후(然後)에 사회(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이 정대(正大)하게 행(行)하는 것이다. 공자(孔子)의 정치론(政治論)에 「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 何先 曰去兵 子貢曰必不得已而去 於斯二者 何先 曰去食 自古皆有死 民無信不立 = 자공(子貢)이 정(政)을 문(問)한대 자(子)가라사대 식(食)을 족(足)하게 ,하고 병(兵)을 족(足)하게 하고, 민(民)이 신(信)하게 함이니라. 자공(子貢)이 가로되 반드시 부득이(不得已)하여 거(去)하려면 이 삼자(三者)에 하(何)를 먼저하릿고, 가라사대 병(兵)을 거(去)할지니라, 자공(子貢)이 가로되 반드시 부득이(不得已)하여 거(去)하려면 이 이자(二者)에서 하(何)를 먼저 하릿고 가라사대 식(食)을 거(去)할지니라 자고(自古)로 다 사(死)는 있으나 민(民)은 신(信)이 없으면 입(立)치 못하느니라」【註十一】하니, 족식(足食)은 이재(理財)이니 곧 췌취(萃聚)이오 족병(足兵)은 금민위비(禁民爲非)이니 곧 항구(恒久)이오 민신(民信)은 정사(正辭)이니 곧 감응(感應)이라, 이 문답(問答)의 요지(要旨)는 정치(政治)를 행(行)함에 있어서 부득이(不得已)한 경우(境遇) 즉(卽) 국보(國步)가 간난(艱難)한 때에 이 삼정중(三政中)의 어느 하나를 폐(廢)하려면 마땅히 국방정책(國防政策)을 폐(廢)할지오, 또 부득이(不得已)한 경우(境遇)에 이정중(二政中)의 어느 하나를 폐(廢)하려면 마땅히 식량정책(食糧政策)을 폐(廢)할지오, 오직 어떠한 경우(境遇)라도 즉(卽) 국방(國防)이 허소(虛疎)하고 식량(食糧)이 부족(不足)하여 사(死)하는 일이 있더라도 신(信)만은 폐(廢)할 수가 없으니, 신(信)이 없으면 민(民)이 존립(存立)할 수가 없다 함이니, 이는 삼정중(三政中)에 어느것이 중요(重要)치 아니 함이 없으되 특(特)히 신(信)이 가장 중요(重要)하여, 차라리 병비(兵備)를 버릴지언정 또 차라리 식량(食糧)을 버릴지언정 국민(國民)에게 신(信)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생물(生物)의 생식작용(生殖作用)에 비(譬)하건대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의 감응(感應)에 의(依)하여 기(氣)가 감동(感動)한 연후(然後)에 양성(兩性)이 상교(相交)하여 정(精)이 췌취(萃聚)하고, 정(精)이 췌취(萃聚)한 연후(然後)에 항구(恒久)한 형체(形體)가 잉태(孕胎)되는 것이라. 그 화생순서(化生順序)는 감응(感應)이 최선(最先)하고 췌취(萃聚)가 기차(其次)하고 항구(恒久)가 또 기차(其次)하여 감응작용(感應作用)만 있으면 생식작용(生殖作用)을 행(行)할 수가 있으나 만일 처음부터 감응작용(感應作用)이 없으면 양성(兩性)이 상교(相交)치 못하여 생식(生殖)의 공(功)이 영절(永絶)하는 것이오. 또 정(精)이 췌취(萃聚)하면 잉태(孕胎)할 수가 있으나 만일 정(精)이 췌취(萃聚)치 못하면 잉태(孕胎)는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이 이(理)에 의(依)하여 병(兵) 식(食) 신(信)의 삼정중(三政中)에 어느 하나를 흠결(欠缺)하여도 그 사회(社會)는 안전(安全)치 못한 것이나, 그 중(中)에서도 신(信)(감응(感應))이 최선(最先)하고 식(食)(췌취(萃聚))이 기차(其次)하고 병(兵)(항구(恒久))이 또 기차(其次)하는 것이니 정령(政令)이 신(信)이 있으면 비록 일시국세(一時國勢)가 위난(危難)하여 산업(産業)과 국방(國防)이 충실(充實)치 못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국민(國民)이 정령(政令)을 신뢰(信賴)하고 있으므로, 명령일하(命令一下)에 그 노고(勞苦)를 잊고 생산업(生産業)의 노역(勞役)에 열종(悅從)하며, 그 사(死)를 잊고 험난(險難)을 범(犯)하여 적(敵)을 방비(防備)할 수가 있으니, 역(易)에 「悅而先民 民忘其勞 悅而犯難 民忘其死 悅之大 民勸矣哉 = 열(悅)하여 민(民)에 선(先)하면 민(民)이 그 노(勞)를 망(忘)하고, 열(悅)하여 난(難)을 범(犯)하면 민(民)이 그 사(死)를 망(忘)하나니, 열(悅)의 대(大)함이여 민(民)이 권(勸)하도다」【註十二】함은, 이 뜻을 말함이다. 만일 민(民)에게 신(信)을 잃으면 민심(民心)이 감응(感應)치 아니하여 정령(政令)을 열종(悅從)치 아니하고, 민심(民心)이 열종(悅從)치 아니하면 국가(國家)에 췌취(萃聚)치 아니하여 통체(統體)의 운행(運行)이 체색(滯塞)하고 연(延)하여 국가(國家)의 항구(恒久)한 안전(安全)을 기(期)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손자병법(孫子兵法)의 첫머리에 「道者 令民與上同意 可與之死 可與之生而不畏危也 = 도(道)라 함은 민(民)으로 하여금 상(上)으로 더불어 의(意)를 동(同)히 하여 가(可)히 더불어 사(死)하고 가(可)히 더불어 생(生)하여 위(危)를 외(畏)치 아니함이라」【註十三】하니, 이는 국민상하(國民上下)가 일심동의(一心同意)하여 사생(死生)을 함께하고 위험(危險)을 두려워하지 않는 경지(境地)에 이르는 것이 곧 국방(國防)의 대도(大道)임을 말함이니, 상하(上下)가 감응(感應)하여 서로 신뢰(信賴)하고 사생(死生)을 함께 하는 경지(境地)에 이른다고 하면, 병식(兵食)의 해결책(解決策)은 또한 스스로 그 중(中)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政治)는 삼정(三政)이 구전(具全)한 때에 정대작용(正大作用)이 행(行)하는 것이나, 특(特)히 정사(正辭) 즉(卽) 정직(正直)하고 허위(虛僞)없는 정치(政治)가 가장 주요(主要)한 것이오, 정직(正直)하고 허위(虛僞)없는 정치(政治)가 곧 이간정치(易簡政治)이다.
註一. 大壯卦彖傳
註二. 皇極經世觀物外篇上
註三. 皇極經世觀物內篇之十二
註四. 乾卦文言
註五. 論語學而篇
註六. 家人卦全體의 大意
註七. 家人卦九五爻小象傳
註八. 家人卦上九爻小象傳
註九. 說卦傳 第二章
註十. 繫辭下傳 第一章
註十一. 論語顔淵篇
註十二. 兌卦彖傳
第四章 유형(流形)과 시용(時用)
第一節 삼시용(三時用)과 사시의(四時義)
‣상반(相反)의 속에 상제(相濟)가 있다
만물(萬物)이 운행(運行)하여 유동형현(流動形現)함에는 공간적(空間的)으로는 항상(恒常) 외물(外物)과 접촉(接觸)하고 영양(營養)을 섭취(攝取)하며 시간적(時間的)으로는 항상(恒常) 현상(現狀)을 타개(打開)하고 미래(未來)의 경지(境地)로 향진(向進)하여 써 소(小)로부터 대(大)에 나아가고 유(幼)로부터 장(長)에 이르는 것이므로, 그 유형과정(流形過程)에는 능동(能動)과 수동(受動) 개체(個體)와 통체(統體) 안정(安貞)과 발용(發用) 등(等) 모든 대대관계(對待關係)가 생(生)하며, 또 이러한 대대관계(對待關係)가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하여 본형(本形)이 나타나는 것이므로 본형(本形)의 구성(構成)에는 또한 여러 대대(對待)가 포함(包含)되어 그 상반(相反)하는 현상(現象)이 생(生)하나니, 역(易)에 「離也者明也 萬物皆相見 = 이(離)라 함은 명(明)함이니 만물(萬物)이 모두 상견(相見)함이라」【註一】한바, 이(離)는 정하(正夏)의 괘(卦)이라, 정하(正夏)에 일광(日光)이 명조(明照)하고 하지(夏至)에 음양(陰陽)이 상우(相遇)하여 만물(萬物)의 대대(對待)하는 형상(形象)이 숨김없이 모두 현출(現出)함을 말함이다. 천지(天地)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만물(萬物)의 유형과정(流形過程)에 상괴상위(相乖相違)․ 불교불통(不交不通)․ 난진난퇴(難進難退) 등(等) 상반작용(相反作用)이 있는 때에 자체내(自體內)의 대대작용(對待作用)의 힘에 의(依)하여 그를 변통(變通)하여 상동(相同) 상화(相和) 상합(相合)케 하는 추기(樞機)가 있으므로, 상반(相反)한 체(體)의 속에는 스스로 그것을 제(濟)하는 용(用)이 포장(包藏)되어 있으니 역(易)에는 이를 「시용(時用)」이라 한다.
‣규이(睽異)의 시용(時用)
천하(天下)의 사물(事物)은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대대(對待)로써 보면 작용(作用)과 반작용(反作用)이 서로 대응(對應)하여, 차(此)가 피(彼)에 작용(作用)하는 때는 차(此)의 역(力)이 대(大)하고 피(彼)의 역(力)이 소(小)하며, 또 피(彼)가 반작용(反作用)을 일으켜 차(此)에 작용(作用)하는 때는 피(彼)의 역(力)이 대(大)하고, 차(此)의 역(力)이 소(小)하여, 한번 대(大)하고 한번 소(小)한 형태(形態)는 서로 차등(差等)이 있어 규이(睽異)치 아니한 것이 없으나, 또한 상반(相反)하는 양작용(兩作用)은 양자(兩者)가 호대호소(互大互小)하여 서로 균등(均等)한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있으니, 이 균등작용(均等作用)이 곧 규이(睽異)를 제(濟)하는 시용(時用)이 되는 것이다. 역(易)에 「天地睽而其事同也 男女睽而其志通也 萬物睽而其事類也 睽之時用 大矣哉 = 천지(天地)가 규(睽)하나 그 사(事)가 동(同)하고 남녀(男女)가 규(睽)하나 그 지(志)가 통(通)하고 만물(萬物)이 규(睽)하나 그 사(事)가 유(類)하니 규(睽)의 시용(時用)이 대(大)하다」【註二】한바, 천지만물(天地萬物)은 그 조직(組織)이 상괴상이(相乖相異)하되 그 운행(運行)에 있어서는 상괴(相乖) 상이(相異)한 체(體)가 도리어 상동상류(相同相類)하는 용(用)으로 화(化)하고, 남녀(男女)의 신체(身體)는 그 구조(構造)가 상위(相違)한 까닭에 음양상배(陰陽相配)하는 용(用)이 생(生)하는 것 등(等)이 곧 규이(睽異)의 시용(時用)이며, 이 시용(時用)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조해(阻害)하는 규이(睽異)를 제(濟)하는 까닭에 그 공용(功用)이 지대(至大)함을 말한 것이다. 또 역(易)에는 「同而異 = 동(同)하되 이(異)한다」【註三】한바, 이는 용(用)을 동일(同一)하게 함에는 상이(相異)한 체(體)로써 한다 함이니, 예(例)컨대 옥(玉)을 연마(鍊磨)함에는 동일(同一)한 옥(玉)으로는 연마(鍊磨)가 이루어지지 아니함으로 반드시 타산(他山)의 석(石)을 취(取)하여 연마(鍊磨)하여야 하며 함미(鹹味)를 조리(調理)함에는 동일(同一)한 함미(鹹味)로서는 더욱 함미(鹹味)를 증강(增强)함으로 반드시 감담(甘淡) 미(味)를 취(取)하여 조리(調理)하여야 함과 같음이니, 이가 또한 규이(睽異)의 시용(時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능동(能動)과 수동(受動)과의 작용(作用)은 규이(睽異)하여 서로 차등(差等)하면서 또한 상동(相同)하여 서로 균평(均平)한 것이오, 만물(萬物)의 운동과정(運動過程)에 나타나는 모든 차등(差等)과 균평(均平)의 형태(形態)는 모두 규이(睽異)의 시용(時用)으로부터 생(生)하는 것이다.
‣함험(陷險)의 시용(時用)
천하(天下)의 사물(事物)은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대대(對待)로 써 보면 개체(個體)는 각기(各其) 특수조직(特殊組織)을 가지고 자체(自體)의 항존(恒存)을 위(爲)하여 자수(自守)함이 익고(益固)하고 타력(他力)의 내침(來侵)을 배척(排斥)하여 서로 대적(對敵)하는 투쟁형태(鬪爭形態)는 함험(陷險)치 아니한 것이 없으나, 또한 개체(個體)는 통체구성(統體構成)의 요소(要素)가 되어 통체적(統體的)으로 운행(運行)하여 서로 조화(調和)하는 작용(作用)이 있으니, 이 조화작용(調和作用)이 곧 함험(陷險)을 제(濟)하는 시용(時用)이 되는 것이다. 역(易)에 「天險不可升也 地險山川丘陵也 王公設險 以守其國 險之時用大矣哉 = 천험(天險)은 가(可)히 승(升)치 못하고 지험(地險)은 산천구능(山川丘陵)이라, 왕공(王公)이 험(險)을 설(設)하여 써 그 국(國)을 수(守)하니 험(險)의 시용(時用)이 대(大)하다」【註四】한바, 천험(天險)은 가(可)히 상승(上升)치 못하는지라 산악(山岳)의 고준(高峻)과 하천(河川)의 심함(深陷)은 지(地)의 지험(至險)으로서 그 개체(個體)로 볼 때에는 천험(天險)과 같이 행로(行路)가 간난(艱難)하고 교통(交通)이 장해(障害)되고 있으나, 그것을 국가방수(國家防守)의 설비(設備)로 전용(轉用)하는 때는 적(敵)이 감(敢)히 상승(上升)치 못하고 감(敢)히 돌파(突破)치 못하여 도리어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지(要塞地)가 되어 국가수호(國家守護)의 이(利)로 화(化)하나니, 이가 곧 함험(陷險)의 시용(時用)이며, 이 시용(時用)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조해(阻害)하는 함험(陷險)을 제(濟)하는 까닭에 그 공용(功用)이 지대(至大)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易)에는 각개체간(各個體間)의 투쟁(鬪爭)을 제(濟)하여 통체(統體)의 조화(調和)로 전화(轉化)시키는 작용(作用)으로서 「常德行習敎事 = 덕행(德行)을 상(常)히 하고 교사(敎事)를 習한다」【註五】함을 말한바, 상(常)이라 함은 상도(常度)이오 습(習)이라 함은 습숙(習熟)이라, 정치(政治)를 행(行)함에 민중(民衆)의 각개체(各個體)는 모두 분산(分散)하여 자체(自體)의 이해관계(利害關係)를 따라서 행동(行動)함으로 스스로 투쟁(鬪爭)이 되나니, 역(易)에 「飮食必有訟 = 음식(飮食)에 반드시 송(訟)이 있다」【註六】함은 이를 말함이다. 이러한 개체분산(個體分散)이 있는 때에 다만 정령(政令)만으로서는 조화(調和)한 통체(統體)를 만들 수가 없으니, 만일 명령(命令)을 발포(發布)하고 엄형(嚴刑)으로써 구사(驅使)하면 외형(外形)으로는 비록 순종(順從)하는 듯 하나 내심(內心)은 더욱 이산(離散)하여 단합(團合)한 통체(統體)를 이루지 못한다. 그러므로 지도자(指導者)의 행동(行動)이 상도(常度)가 있어 변덕(變德)함이 없고 부단(不斷)히 몸으로써 민중(民衆)을 교화(敎化)하면, 민중(民衆)은 일상(日常)의 청문(聽聞)에 습숙(習熟)하여 스스로 화성(化成)하고 열복(悅服)하는 것이니, 이가 곧 개체(個體)를 췌취(萃聚)하여 통체(統體)를 이루고 투쟁(鬪爭)을 전화(轉化)하여 조화(調和)를 만드는 시용(時用)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와의 작용(作用)은 개체적(個體的)으로 호상분산(互相分散)하여 투쟁(鬪爭)의 현상(現象)을 나타내고 있으되 그것을 췌취(萃聚)하여 통체(統體)를 이루는 때는 서로 조화(調和)하는 것이오, 만물(萬物)의 운동과정(運動過程)에 나타나는 모든 투쟁(鬪爭)과 조화(調和)의 형태(形態)는 모두 함험(陷險)의 시용(時用)으로부터 생(生)하는 것이다.
‣건난(蹇難)의 시용(時用)
천하(天下)의 사물(事物)은 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대대(對待)로써 보면 안정(安貞)은 지정(止靜)하여 수렴(收斂)하려하고 발용(發用)은 유동(流動)하여 출현(出顯)하려하여 서로 향배추견(向背推牽)하는 형태(形態)는 건난(蹇難)치 아니한 것이 없으나, 또한 물(物)이 발용(發用)하여 유행(流行)함에는 먼저 그 본체(本體)를 안정(安定)하고 자체(自體)를 반성(反省)하여 실력(實力)을 수양(修養)한 연후(然後)에 출발(出發)을 재시(再始)하는 작용(作用)이 있으니, 이 반수작용(反修作用)이 곧 건난(蹇難)을 제(濟)하는 시용(時用)이 되는 것이다. 역(易)에 「蹇難也 險在前也 見險而能止知矣哉 蹇之時用 大矣哉 = 건(蹇)은 난(難)함이니 험(險)이 전(前)에 재(在)함이라 험(險)을 견(見)하고 능(能)히 지(止)하니 지(知)하다 건(蹇)의 시용(時用)이 대(大)하다」【註七】하고 또 「君子以反身修德 = 군자(君子)가 써 하여 신(身)에 반(反)하여 덕(德)을 수(修)한다」【註八】한바, 지(止)라 함은 지식(止息)함이 아니오 곧 성종성시(成終成始)하는 뜻이라, 일시(一時) 전진(前進)을 정지(停止)하고 자신(自身)을 안정(安定)하여 사세(事勢)의 추이(推移)를 정관(靜觀)함이오, 지(知)라 함은 이지적(理智的)으로 이해(利害)를 분석(分析) 비판(批判)하여 망진조동(妄進躁動)치 아니하고 시기(時機)의 도래(到來)를 대(待)함이라, 전로(前路)에 건난(蹇難)함이 있음을 보고 가(可)히 전왕(前往)할 수 없는 때는 지정(止靜)하여 반신자수(反身自修)하여 자신(自身)을 안정(安定)한 연후(然後)에 재출발(再出發)을 도모(圖謀)함이 곧 건난(蹇難)의 시용(時用)이며, 이 시용(時用)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조해(阻害)하는 건난(蹇難)을 제(濟)하는 까닭에, 그 공용(功用)이 지대(至大)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안정(安貞)과 발용(發用)과의 작용(作用)은 안정(安定)의 속에 유동(流動)이 있고, 유동(流動)의 속에 안정(安定)이 있어, 유동(流動)하려하면 반드시 먼저 체(體)가 안정(安定)하여야 하고 안정(安定)하려하면 반드시 그 작용(作用)이 유동(流動)하여야 하는 것이오, 만물(萬物)의 운동과정(運動過程)에 나타나는 모든 안정(安定)과 유동(流動)의 형태(形態)는 모두 건난(蹇難)의 시용(時用)으로부터 생(生)하는 것이다.
‣시용(時用)과 시의(時義)
삼시용(三時用)은 정(精)과 기(氣)의 삼극(三極)의 도(道)에 의(依)하여 생(生)한 것이므로, 비록 그 형태(形態)는 상이(相異)하나 각기(各其) 독립(獨立)한 것이 아니오, 서로 착종(錯綜)하여 있으니, 사물(事物)이 규이(睽異)한 때에 또한 함험(陷險)과 건난(蹇難)이 있고, 함험(陷險)한 때에 또한 규이(睽異)와 건난(蹇難)이 있고, 건난(蹇難)한 때에 또한 규이(睽異)와 함험(陷險)이 있는 것이며, 따라서 아무리 혼란(混亂)한 세상(世上)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반드시 그 혼란(混亂)을 제(濟)하여 변통(變通)하는 시용(時用)이 포장(包藏)되어 있는 것이니, 고래(古來)로 소위(所謂) 제세(濟世)의 재(才)라 함은 이 포장(包藏)되어 있는 시용(時用)을 탐색(探索)하여 그를 실천(實踐)한 인물(人物)을 말함이다. 그런데 천지(天地)의 조직(組織)은 대대(對待)로 되어 있는지라, 어떠한 시대(時代)가 있으면 그 속에는 그 시대(時代)를 재제(裁制)할 인재(人材)가 생(生)한다고 하나니, 고어(古語)에 「不借人於他代 = 사람을 타대(他代)에 빌지 아니한다」한바, 이는 인재(人材)를 전대(前代)에서나 후대(後代)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그 시대(時代)의 속에 있는 인재(人材)로서 그 시대(時代)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완수(完遂)할 수 있음을 말함이오, 아국속어(我國俗語)에 「난리(亂離)가 나면 사람이 난다」함은, 과거(過去) 수천년간(數千年間)의 경험(經驗)으로서 국가(國家)에 대란(大亂)이 있을 때마다 대인재(大人材)가 나타남을 말하니, 난세(亂世)의 인재(人材)도 또한 시용(時用)의 하나이다.
시용(時用)을 찾아서 규이(睽異)․함험(陷險)․건난(蹇難) 등(等)을 변통(變通)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완수(完遂)하는 작용(作用)을 「의(義)」라 하나니 역(易)에는 사시(四時)의 변화(變化)를 상(象)하는 예(豫)․구(姤)․둔(遯)․여(旅)의 사괘(四卦)에 「時義大矣哉 = 시(時)의 의(義)가 대(大)하다」【註九】한바, 의(義)는 적의(適宜)히 재제(裁制)하는 뜻이다.
예(豫)는 뇌(雷)가 비로소 분진(奮震)하여 만물(萬物)이 모두 화예(和豫)함이니, 이는 춘(春)의 대시(大始)하는 상(象)이라, 만물(萬物)은 비로소 발동(發動)하여 화예(和豫)치 아니할 수 없으나, 화예(和豫)가 극(極)하면 태타(怠惰)가 생(生)함으로 또한 화예(和豫)할 수도 없으니, 이 가예(可豫), 불가예(不可豫)의 시의(時義)가 대(大)한 것이다. 사회(社會)로써 보면 험난(險難)의 세(世)로부터 비로소 해방(解放)되어 인심(人心)이 모두 화예(和豫)하여 수고족무(手鼓足舞)하고 있으나, 그 화예(和豫)의 속에는 스스로 일태방종(逸怠放縱)의 풍(風)이 양성(釀成)되는 것이니, 이를 경계(警戒)하기 위(爲)하여 엄려(嚴厲)한 정형(政刑)을 행(行)치 아니할 수 없으나, 또한 해방(解放)초기(初期)에 엄려(嚴厲)한 정형(政刑)을 써서 인심(人心)을 위축(萎縮)시키고 음울(陰鬱)케 할 수도 없는 양난(兩難)의 지(地)이다. 역(易)에는 이의 시의(時義)로서 「作樂崇德 = 악(樂)을 작(作)하고 덕(德)을 높인다」【註十】하니 음악(音樂)을 대작(大作)함은 화기(和氣)를 조장(助長)하여 정기(正氣)를 기르고 사심(邪心)을 막음이오, 공덕(功德)을 포숭(褒崇)함은 경건(敬虔)한 마음을 일으켜서 화예(和豫)를 절제(節制)하고 태심(怠心)을 경계(警戒)함이라. 이와 같이 일변(一邊)으로 화예(和豫)하고 일변(一邊)으로 경건(敬虔)하여 인심(人心)이 스스로 진작(振作)되어 일태(逸怠)에 흐르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다.
구(姤)는 음(陰)이 양(陽)을 우(遇)하여 만물(萬物)이 모두 광휘(光輝)를 생(生)함이니, 이는 하(夏)의 유형(流形)하는 상(象)이라 만물(萬物)은 그 장성(長成)을 위(爲)하여 음양(陰陽)이 상우(相遇)치 아니할 수 없으나, 음(陰)이 점장(漸長)하면 생장(生長)이 정체(停滯)되는 것이므로 또한 상우(相遇)할 수 도 없으니, 이 가우(可遇) 불가우(不可遇)의 시의(時義)가 대(大)한 것이다. 사회(社會)로써 보면 성극장쇠(盛極將衰)의 시운(時運)을 당(當)하여 폐해(弊害)가 생(生)하기 시작(始作)하는데, 이 추세(趨勢)를 막지 아니할 수도 없고 또한 자연성장(自然成長)의 세(勢)를 막을 수도 없는 양난(兩難)의 지(地)이다. 역(易)에는 이의 시의(時義)로서 「施命誥四方 = 명(命)을 시(施)하여 사방(四方)에 고(誥)한다」【註十一】하니, 이는 명령(命令)을 천하(天下)에 발시(發施)하여 사방(四方)에 주고(周誥)하여 인심(人心)을 진칙(振飭)하고 복재(伏在)한 음기(陰氣)를 취산(吹散)하여 써 음특(陰慝)을 소멸(消滅)하고 적폐(積弊)를 배제(排除)하는 것이다.
둔(遯)은 양(陽)이 둔퇴(遯退)하여 만물(萬物)이 모두 수렴(收斂)을 시작(始作)함이니, 이는 추(秋)의 변화(變化)하는 상(象)이라, 만물(萬物)은 그 성숙(成熟)을 위(爲)하여 양(陽)이 둔퇴(遯退)치 아니할 수 없으나, 양(陽)이 둔퇴(遯退)하면 천지(天地)의 기(氣)가 폐색(閉塞)하고 숙살(肅殺)의 기(氣)가 장래(將來)함으로 또한 둔퇴(遯退)할 수도 없으니, 이 가퇴(可退) 불가퇴(不可退)의 시의(時義)가 대(大)한 것이다. 사회(社會)로써 보면 소인(小人)이 점진(漸進)용사(用事)하여 국사(國事)가 일비(日非)하는데, 현인(賢人)이 퇴장(退藏)치 아니할 수도 없고 또 국사(國事)의 장폐(將廢)함을 목도(目睹)하면서 그를 역구(力救)치 아니하고 홀로 결신퇴피(潔身退避)할 수도 없는 양난(兩難)의 지(地)이다. 역(易)에는 이의 시의(時義)로서 「遠小人 不惡而嚴 = 소인(小人)을 원(遠)히 하되 오(惡)하지 아니하고 엄(嚴)하게 한다」【註十二】하니, 이는 소인(小人)을 멀리함에 오성려색(惡聲厲色)으로써 하면 도리어 그 원분(怨忿)을 이르게 하여 화란(禍亂)을 생(生)하는 것이므로, 오직 위신(威信)을 세우고 몸을 장엄(莊嚴)히 가져서 소인(小人)으로 하여금 외경(畏敬)하여 스스로 소원(疎遠)케 하는 것이다.
여(旅)는 양화(陽和)의 기(氣)가 유여(遊旅)하여 천지(天地)가 동한(凍寒)하고 만물(萬物)이 모두 응결(凝結)함이니, 이는 동(冬)의 대화(大和)하는 상(象)이라, 만물(萬物)은 그의 응결(凝結)을 위(爲)하여 양화(陽和)의 기(氣)가 유여(遊旅)치 아니할 수 없으나, 내부(內部)에 양화(陽和)의 기(氣)를 보합(保合)치 아니하면 신생명(新生命)을 호양(護養)치 못함으로 또한 유여(遊旅)할 수도 없으니, 이 가여(可旅) 불가여(不可旅)의 시의(時義)가 대(大)한 것이다. 사회(社會)로써 보면 형(刑)은 지냉(至冷)의 정(政)이오, 옥(獄)은 지음(至陰)의 지(地)이니, 음냉(陰冷)은 양화(陽和)의 기(氣)를 상(傷)하는 것이라, 사회(社會)의 질서(秩序)유지(維持)를 위(爲)하여 절옥(折獄)치형(致刑)하던 선왕시대(先王時代)의 형옥(刑獄)을 쓰지 아니할 수도 없고, 또 양화(陽和)의 기(氣)를 보합(保合)하기 위(爲)하여 이를 변통(變通)치 아니할 수도 없는 양난(兩難)의 지(地)이다. 역(易)에는 이의 시의(時義)로써 「明愼用刑而不留獄 = 형(刑)을 용(用)함을 명(明)히하고 신(愼)하며, 옥(獄)을 유(留)치 아니한다」【註十三】하니, 이는 형벌(刑罰)을 씀에 명찰(明察)하여 원죄(冤罪)가 없게하고, 옥사(獄事)를 민속(敏速)히 처결(處決)하여 엄구체유(淹久滯留)하는 일이 없게 하여 써 사회(社會)의 양화(陽和)생발(生發)의 기(氣)를 보합(保合)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시의(時義)라함은 구사(舊事)가 퇴거(退去)하려하고, 신사(新事)가 장래(將來)하려하는 때에 그 진퇴양난(進退兩難)한 사업(事業)을 적의(適宜)히 재제(裁制)하는 것이므로 그 의(義)가 극(極)히 대(大)하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시용(時用)이라함은 그 시(時)의 속에 그를 제(濟)하는 용(用)이 있다 하는 이론(理論)을 말함이오, 시의(時義)라함은 시용(時用)을 찾아서 그 시(時)를 제(濟)하는 실천(實踐)을 말함이니, 예(豫)는 양(陽)의 생장(生長)이, 과도(過度)함을 재제(裁制)함이오, 구(姤), 둔(遯), 여(旅)는 음(陰)의 수장(收藏)이, 과도(過度)함을 재제(裁制)함이다.
註一. 說卦傳 第五章
註二. 睽卦彖傳
註三. 睽卦大象傳
註四. 坎卦彖傳
註五. 坎卦大象傳
註六. 序卦傳上篇
註七. 蹇卦彖傳
註八. 蹇卦大象傳
註九. 豫卦彖傳에 「豫之時義大矣哉」
姤卦彖傳에「姤之時義大矣哉」
遯卦彖傳에「遯之時義大矣哉」
旅卦彖傳에「旅之時義大矣哉」
註十. 豫卦大象傳
註十一. 姤卦大象傳
註十二. 遯卦大象傳
註十三. 旅卦大象傳
第二節 차등(差等)과 균평(均平)
‣호대호소(互大互小)의 원리(原理)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대소(大小)․곡직(曲直)․방원(方圓)․강유(剛柔) 등(等) 규이(睽異)가 없으면 조직체(組織體)를 구성(構成)치 못함으로, 각기(各其) 독자(獨自)한 형태(形態)와 성정(性情)을 가지고 스스로 차등(差等)이 생(生)하고, 그 운행(運行)은 편승편패(偏勝偏敗)가 있으면 교호작용(交互作用)이 행(行)치 못하여 운동(運動)이 지식(止息)됨으로 일진일퇴(一進一退)․ 일소일장(一消一長) 등(等) 작용(作用)을 행(行)하면서 스스로 균평(均平)이 되나니, 태양(太陽)과 대지(大地)는 그 위(位)에 중심(中心)과 행성(行星)의 계등(階等)이 있으되, 만물(萬物)을 생육(生育)하는 사공(事功)에는 하등(何等)의 차등(差等)이 없으며, 초목(草木)의 근간(根幹)과 지엽(枝葉)에는 본말(本末)의 차별(差別)이 있으되, 그 초목(草木)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임무(任務)에는 모두 일역(一役)을 담당(擔當)하고 있으며, 동물(動物)의 두목(頭目)과 지속(肢屬)에는 존비(尊卑)의 분별(分別)이 있으되, 일신(一身)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는 하나도 흠결(欠缺)할수 없는 것이며, 사람도 지식재덕(知識才德)으로 보면 천만인(千萬人)이 천만층(千萬層)으로 되어 있으되, 사회(社會)의 공동생활(共同生活)을 영위(營爲)하는 임무(任務)의 앞에는 천만인(千萬人)이 모두 평등(平等)이 되고 있는 것 등(等)이 그 일례(一例)이다.
그러므로 차등(差等)한 조직(組織)은 체(體)가 되고 균평(均平)한 운행(運行)은 용(用)이 되어, 차등(差等)조직(組織)을 기초(基礎)로 하여 각기(各其) 부분적(部分的) 임무(任務)를 다하고, 균평(均平)운행(運行)을 통(通)하여 각각(各各) 그 적의(適宜)함을 얻는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다. 그런데 체(體)와 용(用)이 아무런 차등(差等)이 없고 고정적(固定的)으로 균평(均平)하면 양세(兩勢)가 상적상지(相敵相持)하여 교호작용(交互作用)이 행(行)치 못하고 스스로 운동(運動)이 지식(止息)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그 조직형태(組織形態)로 볼 때에는 체(體)의 속에 용(用)을 포장(包藏)하여 체(體)가 대(大)하고 용(用)이 소(小)하며, 그 운행력(運行力)으로 볼 때에는 용(用)이 능(能)히 체(體)를 고무(鼓舞)하여 용(用)이 대(大)하고 체(體)가 소(小)한 것이니, 비록 상호간(相互間)에 대소(大小)의 차등(差等)은 있으나 이 호대호소(互大互小)한 것이 곧 균평(均平)이다. 수화(水火)의 예(例)로 써 보면 수(水)는 체(體)이오 화(火)는 용(用)이라, 서화담(徐花潭)은 말하되 「火之氣虛故 不自停留 着物而留 水之形稍實潤 以其聚則久而不散 = 화(火)의 기(氣)는 허(虛)한 고(故)로 스스로 정류(停留)치 못하고 물(物)에 착(着)하여 유(留)하고 수(水)의 형(形)은 조금 실윤(實潤)하여 써 그 취(聚)한즉 구(久)하여 산(散)치 아니한다」【註一】하니, 이는 수화(水火)를 조직형태(組織形態)로 볼 때에는 수(水)의 형(形)은 초실(稍實)하여 취적(聚積)하고 기(氣)를 수용(受容)할 수 있으되, 화(火)의 기(氣)는 물(物)에 근착(根着)치 아니하면 형(形)을 이루지 못한다 하여, 조직체(組織體)의 체대용소(體大用小)함을 말함이오, 또 「火能迎物而威遠故 可以照射而涸水 水不能迎物故 雖近於火 少有間則不得滅火 = 화(火)는 능(能)히 물(物)을 영(迎)하고 위(威)가 원(遠)함으로 가(可)히 써 조사(照射)하여 수(水)를 학(涸)하나 수(水)는 능(能)히 물(物)을 영(迎)치 못함으로 비록 화(火)에 근(近)하되 조금만 간극(間隙)이 있으면 화(火)를 멸(滅)치 못한다」【註二】하니, 이는 수화(水火)를 운행력(運行力)으로 볼 때에는, 화(火)는 멀리 열(熱)을 조사(照射)하여 수(水)를 말릴 수가 있으되, 수(水)는 비록 화(火)의 근처(近處)에 있더라도 서로 접촉(接觸)하지 아니하면 화(火)를 식멸(息滅)치 못한다 하여, 운행력(運行力)의 용대체소(用大體小)함을 말함이니, 수화(水火)는 호대호소(互大互小)로써 서로 차등(差等)하면서 또한 서로 균평(均平)한 것이다.
인신(人身)으로써 보면 육체(肉體)는 체(體)이오, 정신(精神)은 용(用)이라, 그 조직형태(組織形態)로는 육체(肉體)가 정신(精神)을 포장(包藏)하여 육체(肉體)가 없으면 정신(精神)이 의부(依附)치 못하여 그 존재(存在)가 없나니 이는 체대용소(體大用小)함이오, 운행력(運行力)으로는 육체(肉體)가 정신(精神)의 고무력(鼓舞力)에 근저(根柢) 하여 동작(動作)하고 정신(精神)이 없으면 육체(肉體)는 동칩중(冬蟄中)의 충류(虫類)와 같은 것이니 이는 용대체소(用大體小)함이다. 건전(健全)한 육체(肉體)에 건전(健全)한 정신(精神)이 생(生)하고, 육체(肉體)가 병(病)들면 정신(精神)이 쇠약(衰弱)하며, 그와 반대(反對)로 육체(肉體)가 기갈(飢渴)하여 음식(飮食)을 욕망(欲望)하거나 또 육체(肉體)의 충동(衝動)에 의(依)하여 어떠한 행동(行動)을 개시(開始)하려 하는 때에 그것이 불의(不義)한 때는 정신(精神)의 극기작용(克己作用)에 의(依)하여 그를 제어(制御)하나니, 이도 또한 체용(體用)의 호대호소(互大互小)이다. 그러므로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의 호대호소(互大互小)는 차등(差等)한 동시(同時)에 또한 균평(均平)한 것이다.
남녀평등(男女平等)의 이(理)로 보면 음성(陰性)은 체(體)이오, 양성(陽性)은 용(用)이라, 그 체질(體質)에 있어서 양성(陽性)은 기(氣)를 주(主)하고 음성(陰性)은 혈(血)을 주(主)하며, 생식작용(生殖作用)에 있어서 양성(陽性)은 발시(發施)하고 음성(陰性)은 생성(生成)하나니, 역(易)에 「天施地生 = 천(天)은 시(施)하고 지(地)는 생(生)한다」【註三】함이 이것이오, 성정(性情)에 있어서 양성(陽性)은 발현작용(發顯作用)이 있고 음성(陰性)은 수렴작용(收斂作用)이 있으므로, 남성(男性)은 대외활동(對外活動)에 우(優)하고 여성(女性)은 가정(家庭)과 육아(育兒)에 능(能)하니, 역(易)에 『女正位乎內 男正位乎外 男女正 天地之大義也 = 여(女)는 위(位)를 내(內)에 정(正)하고 남(男)은 위(位)를 외(外)에 정(正)하니 남녀(男女)가 정(正)함은 천지(天地)의 대의(大義)라」【註四】함이 이것이다. 이와 같이 남녀(男女)는 그 임무(任務)의 분야(分野)가 다르고 또 그 기능(機能)에 우열(優劣)․장단(長短)이 있으니 이 우열장단(優劣長端)의 차등(差等)이 있는 것이 곧 평등(平等)한 소이(所以)이다.
경제(經濟)와 의식(意識)과의 관계(關係)도 또한 그러하여 경제(經濟)는 체(體)가 되고 의식(意識)은 용(用)이 되는지라, 그 조직형태(組織形態)로는 사람은 경제(經濟)의 속에서 생존(生存)하여 경제(經濟)가 의식(意識)을 지배(支配)하고 있으니 이는 체대용소(體大用小)함이오, 운행력(運行力)으로는 경제(經濟)의 생산(生産)․분배(分配)․교역(交易) 등(等) 행위(行爲)는 의식(意識)에 의(依)하여 행(行)하여 의식(意識)이 경제(經濟)를 지배(支配)하고 있으니 이는 용대체소(用大體小)함이라, 그러므로 이 양자(兩者)는 호대호소(互大互小)하면서 서로 균평(均平)한 것이다. 고래(古來)로 역사(歷史)의 발전(發展)에 대(對)하여, 혹(或)은 환경(環境)이 사람을 제어(制御)한다하고 혹(或)은 사람이 환경(環境)을 창조(創造)한다하여, 각자(各者) 주장(主張)을 달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史實)을 일일(一一)히 예거(例擧)할 필요(必要)도 없이 환경(環境)은 체(體)가 되고 사람은 용(用)이 되어, 조직면(組織面)으로는 환경(環境)이 사람을 제어(制御)하고 운행면(運行面)으로는 사람이 환경(環境)을 창조(創造)하여, 호대호소(互大互小)로써 서로 균평(均平)한 것이다. 세간(世間)에는 유심론(唯心論)의 입장(立場)에서 전(專)혀 사람이 환경(環境)을 창조(創造)한다 하면서 스스로 자기(自己)의 행동(行動)이 경제생활(經濟生活)의 제어(制御)를 받고 있음을 자각(自覺)치 못하는 사람이 있고, 또 유물론(唯物論)의 입장(立場)에서 사람이 환경(環境)을 창조(創造)함이 아니라 전(專)혀 환경(環境)이 사람을 제어(制御)한다 하면서 스스로 자기(自己)의 의식(意識)이 환경(環境)을 재단요리(裁斷料理)하고 있음을 자각(自覺)치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는 모두 사물(事物)의 반면(半面)만을 보는 편견(偏見)이다.
‣현대정치사상(現代政治思想)의 발원(發源)
개인(個人)과 사회(社會)와의 관계(關係)에도 체용대소(體用大小)의 이(理)가 있으니, 개인(個人)은 체(體)이오, 사회(社會)는 용(用)이라. 조직형태(組織形態)로는 사회(社會)는 개인(個人)으로써 구성(構成)되고, 그 구성원(構成員)의 민성(民性)과 민도(民度)가 사회(社會)의 문명척도(文明尺度)를 결정(決定)하고 천재일인(天才一人)의 능력(能力)이 능(能)히 그 사회(社會)의 진로(進路)를 결정(決定)함과 같은 것은 체대용소(體大用小)함이오, 운행력(運行力)으로는 사회(社會)가 개인(個人)을 통어(統御)하여 사회(社會)의 운영(運營)이 국민(國民)개인(個人)의 생활(生活)에 영향(影響)하고 대세(大勢)의 추향(趨向)하는 바를 인력(人力)으로써 제어(制御)할 수 없음과 같은 것은 용대체소(用大體小)한 것이니, 이 체용(體用)의 호대호소(互大互小)가 개인(個人)과 사회(社會)가 서로 균평(均平)한 소이(所以)이며, 이 원리(原理)가 현대(現代)의 정치사상(政治思想)의 발원(發源)이 된 것이다. 정치(政治)에 있어서 정부(政府)와 민중(民衆)과의 관계(關係)를 보면 민중(民衆)은 정령(政令)을 승수(承受)함으로 체(體)가 되고, 정부(政府)는 정령(政令)을 발시(發施)함으로 용(用)이 되는지라, 전일(前日)의 봉건사회(封建社會)나 군주전제(君主專制)시대(時代)에는 용대체소(用大體小)의 이(理)를 편용(偏用)한 까닭에 관존민비(官尊民卑)의 풍(風)을 이루어 민권(民權)이 무시(無視)된 것이며, 현대(現代)의 정치사상(政治思想)은 사회(社會)의 조직형태(組織形態)로는 민중(民衆)이 국가(國家)의 주체(主體)가 되어 정부(政府)를 선출(選出)하고 정부(政府)는 민중(民衆)의 의사(意思)를 받아서 행정(行政)의 임(任)에 당(當)하니 이는 체대용소(體大用小)함이오, 운행력(運行力)으로는 민중(民衆)이 비록 정부(政府)를 선출(選出)하는 주권(主權)을 가지고 있으되 그 선출(選出)이 종료(終了)한 때로부터 민중(民衆)은 정부(政府)의 호령(號令)에 복종(服從)치 아니하면 안되나니 이는 용대체소(用大體小)함이라, 그러므로 관(官)과 민(民)은 존(尊)도 없고 비(卑)도 없는 평등(平等)이며 이 사상(思想)의 실천(實踐)이 현대(現代)의 입헌정치(立憲政治)형태(形態)를 산출(産出)한 것이다.
지금의 입헌정치(立憲政治)에는 입법(立法)․행정(行政)․사법(司法)의 삼권(三權)이 분립(分立)하고 있으나, 정치(政治)의 실제운영(實際運營)에는 입법부(立法府)는 민중(民衆)이 그 대표자(代表者)를 선거(選擧)하여 의회(議會)를 구성(構成)하고 국가(國家)의 기본제도(基本制度)를 제정(制定)하는 것이므로 체(體)가 되고, 행정부(行政府)는 입법부(立法府)의 소정(所定)한 법률(法律)에 의거(依據)하여 시행세칙(施行細則)을 만들고 정치(政治)를 운용(運用)하는 것이므로 용(用)이 되어, 교호작용(交互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니, 사회(社會)의 조직면(組織面)으로는 입법부(立法府)가 대(大)하고 행정부(行政府)가 소(小)하며, 사회(社會)의 운행면(運行面)으로는 행정부(行政府)가 대(大)하고 입법부(立法府)가 소(小)한 것이라. 이 양자(兩者)는 호대호소(互大互小)한 동등권(同等權)으로써 통일체내(統一體內)에 혼륜(渾淪)되어 통일적(統一的)으로 정치(政治)를 행(行)하면서, 때로는 서로 극제(克制)하여 그 결함(缺陷)을 시정(是正)하는 것이니, 이 극제(克制)라 함은 지금의 소위(所謂) 행정부(行政府)의 의회해산(議會解散)과 입법부(立法府)의 정부불신임(政府不信任) 등(等)과 같은 것이다. 만일 이 극제권(克制權)이 어느 일편(一便)에만 편재(偏在)하여 편승편패(偏勝偏敗)의 폐(弊)가 생(生)한다고 하면, 입법부(立法府)의 권력(權力)이 과승(過勝)한 때에 체(體)가 편대(偏大)함으로 독음사회(獨陰社會)가 되고, 또 행정부(行政府)의 권력(權力)이 과승(過勝)한 때에 용(用)이 편대(偏大)함으로 독양사회(獨陽社會)가 되나니, 독음(獨陰)과 독양(獨陽)은 모두 생식(生殖)의 공(功)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에 삼권(三權)으로 분립(分立)된 사법부(司法府)는 어떠한 형태(形態)로써 입법(立法)과 행정(行政)에 작용(作用)할 것인가, 대저(大抵)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에는 양성(陽性)을 띤 태양(太陽)이 중심(中心)이 되고, 음성(陰性)을 띤 대지(大地)는 태양(太陽)과 대대(對待)하여 자전(自轉)하면서 또한 태양(太陽)의 주위(周圍)를 공전(公轉)하며, 월(月)은 대지(大地)의 위성(衛星)이 되어 주간(晝間)에는 태양(太陽)의 열(熱)을 조절(調節)하고 야간(夜間)에는 태양(太陽)의 광명(光明)을 반영(反映)하나니, 태양(太陽)은 화구(火球)이오, 월(月)은 수구(水球)이오, 대지(大地)는 토구(土球)이라, 수화(水火)가 혹(或)은 상체(相逮)하고 혹(或)은 상식(相息)하여 지상(地上)의 만물(萬物)을 생육(生育)하는 것이니, 수구(水球)의 위성적(衛星的) 임무(任務)는 실(實)로 중대(重大)한 것이다. 정치(政治)에 있어서 민의(民意)를 대표(代表)하는 입법부(立法府)는 대지(大地)의 상(象)이오, 정령(政令)을 발시(發施)하는 행정부(行政府)는 태양(太陽)의 상(象)이며, 사법부(司法府)는 입법부(立法府)에서 제정(制定)한 법문(法文)의 정신(精神)에 대(對)하여 그 해석(解釋)을 충실(忠實)히 하고 판결(判決)을 정확(正確)히 하는 것이 그 기본임무(基本任務)이므로 이는 입법부(立法府)의 위성격(衛星格)이 되어 대지(大地)를 호위(護衛)하는 월(月)의 상(象)과 같은 것이다. 만일 월(月)이 대지(大地)의 위성(衛星)작용(作用)을 행(行)치 못하고 도리어 태양(太陽)의 열(熱)에 가세(加勢)한다고 하면, 대지(大地)는 과열(過熱)로 인(因)하여 초토(焦土)가 되고 지상(地上)의 만물(萬物)은 그 생존(生存)을 유지(維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월(月)이 대지(大地)를 호위(護衛)하여 태양(太陽)과의 사이에 수화(水火)로써 대대(對待)함과 같이, 사법부(司法府)는 입법부(立法府)를 호위(護衛)하여 행정부(行政府)와 대대(對待)치 아니하면 안되나니, 만일 사법부(司法府)의 인사(人事) 임면권(任免權)과 사무(事務)지휘권(指揮權)이 전(專)혀 행정부(行政府)에 소속(所屬)한다고 하면 이는 월(月)이 태양(太陽)에 가세(加勢)함과 같은 현상(現象)을 나타내어, 입법부(立法府)의 권력(權力)이 과소(過小)하고 행정부(行政府)의 권력(權力)이 과대(過大)하여 편승편패(偏勝偏敗)의 폐(弊)를 생(生)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국(我國)의 군주전제(君主專制)시대(時代)에도 군권(君權)의 남용(濫用)을 제어(制御)하기 위(爲)하여 간관제도(諫官制度)를 설치(設置)하고 언론(言論)의 자유(自由)를 허여(許與)하여 국가대전(國可大典)의 수호(守護)라는 중임(重任)을 맡겨서 군주(君主)에게 과실(過失)이 있는 때에 직언(直言)으로써 간지(諫止)하고 중요국무(重要國務)의 결정(決定)에는 간관(諫官)의 부서(副署)를 요(要)한 것이며, 군주(君主)들은 조종조(祖宗朝)의 제정(制定)한 이 대전(大典)을 어기지 못하고 비록 이조(李朝)의 연산(燕山)․광해(光海)와 같은 폭군(暴君)도 학정(虐政)을 자행(恣行)하기 위(爲)하여 먼저 간관(諫官)을 자기(自己)에게 충실(忠實)한 간물(奸物)로써 임명(任命)한 것이니, 고대(古代)의 간관(諫官)과 금일(今日)의 사법(司法)은 그 형태(形態)는 비록 다르나, 국가존립(國家存立)의 기본(基本)이 되는 전헌(典憲)을 수호(守護)하여 대지(大地)를 호위(護衛)하는 월(月)의 상(象)이 되기는 동일(同一)한 것이니, 그러므로 사법부(司法府)는 입법부(立法府)의 위성임무(衛星任務)를 행(行)하는 것이 천지운행(天地運行)의 법칙(法則)에 합(合)하는 것이다.
‣사회(社會)의 균평운동(均平運動)
체(體)와 용(用)은 대소(大小)의 차등(差等)과 호대호소(互大互小)하는 균평(均平)으로써 서로 균등(均等)한 대대관계(對待關係)를 가지고 있으므로 차등(差等)의 속에 균평(均平)이 있고 균평(均平)의 속에 차등(差等)이 있다.
그러나 개체(個體)는 차등(差等)하고 통체(統體)는 균평(均平)한지라 천지(天地)의 정대작용(正大作用)은 태일체(太一體)의 통일운동(統一運動)을 행(行)하고 있으므로, 항상(恒常) 차등(差等)을 통합(統合)하여 균평(均平)을 만드는 작용(作用)이 있으니 역(易)에 「天道虧盈而益謙 地道變盈而流謙 = 천도(天道)는 영(盈)을 휴(虧)하여 겸(謙)을 익(益)하고 지도(地道)는 영(盈)을 변(變)하여 겸(謙)에 유(流)한다」【註五】하니, 일(日)은 한번 중(中)하고 한번 측(昃)하면서 항상(恒常) 광열(光熱)의 유여(有餘)함을 감손(減損)하여 부족(不足)함을 익(益)하고, 월(月)은 한번 만(滿)하고 한번 휴(虧)하면서 항상(恒常) 만(滿)함을 감손(減損)하여 휴(虧)함을 보익(補益)하고, 공기(空氣)는 고기압(高氣壓)과 저기압(低氣壓)이 항상(恒常) 서로 흘러서 평정(平靜)을 얻으려 하고, 수(水)는 항상(恒常) 저하(低下)에 취귀(聚歸)하여 수평(水平)을 만들려 하는 것이 곧 천지(天地)의 균평운동(均平運動)이다. 인구수(人口數)의 통계(統計)같은 것을 보면 어느 일가정(一家庭)이나 일지방(一地方)의 남녀수(男女數)는 심(甚)히 균평(均平)치 못한 일이 있으나 대지역(大地域)을 단위(單位)로 하여 보면 대개(大槪) 균평(均平)하고 있으니, 이는 균평운동(均平運動)의 자연적(自然的) 조절(調節)이라, 역(易)에 「乾道成男 坤道成女 = 건도(乾道)는 남(男)을 성(成)하고 곤도(坤道)는 여(女)를 성(成)한다」【註六】하여, 양기(陽氣)가 운행(運行)하여 남성(男性)을 생(生)하고 음기(陰氣)가 운행(運行)하여 여성(女性)을 생(生)함을 말함이니, 천지(天地)의 음양분포(陰陽分布)도 차등(差等)하면서 또한 균평(均平)함으로 남녀(男女)의 수(數)를 통계적(統計的)으로 볼 때에는 또한 스스로 균평(均平)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이나 인생사회(人生社會)는 각(各) 개체(個體)에는 여러 가지의 차등(差等)이 있으나, 통체적(統體的)으로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는 균평(均平)이 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만일 그 통체내(統體內)에서 불균평(不均平)이 생(生)하면 기형(畸形)이 되고 불구(不具)가 되어 안정(安定)치 못하고, 안정(安定)치 못하면 안정(安定)을 얻기 위(爲)하여 반드시 반항(反抗)․투쟁(鬪爭) 등(等) 현상(現象)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회(社會)의 경제(經濟) 분배(分配)가 균평(均平)하고 만민(萬民)의 권리(權利)가 평등(平等)하면 인심(人心)이 안정(安定)하여 화평(和平)하고, 경제(經濟)와 권리(權利)가 균평(均平)치 못하여 재화(財貨)와 권세(權勢)를 가진 특권계급(特權階級)과 잔약무력(殘弱無力)한 민중(民衆)과의 계급(階級) 차별(差別)이 심(甚)하면 인심(人心)이 안정(安定)치 못하여 스스로 반항(反抗)과 투쟁(鬪爭)이 생(生)하나니, 속어(俗語)에 소위(所謂) 「불평(不平)」이라 함은 경제(經濟)․권리(權利) 등(等)의 불균평(不均平)으로 인(因)하여 인심(人心)의 불평정(不平定)이 생(生)함을 말함이오 고금(古今)의 역사(歷史)에 징(徵)하여 보더라도 사회내(社會內)의 모든 쟁란(爭亂)은 이러한 불균평(不均平)으로부터 생(生)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易)에 「裒多益寡 稱物平施 = 다(多)를 덜어서 과(寡)를 익(益)하고 물(物)을 칭(稱)하여 시(施)를 평(平)히 한다 」【註七】하니, 이는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은 과다(過多)한 자(者)를 감손(減損)하여 과소(寡少)한 자(者)를 보익(補益)하고 물(物)의 다과(多寡)를 칭량(稱量)하여 그 시여(施與)를 균평(均平)하게 하여 소대장단(小大長短)으로 하여금 모두 그 안정(安定)함을 얻게 함을 말함이다. 공자(孔子)의 정치론(政治論)에 「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盖均無貧 和無寡 安無傾 = 국(國)을 유(有)하고 가(家)를 유(有)하는 자(者)는 과(寡)함을 환(患)치 아니하고 균(均)치 못함을 환(患)하며, 빈(貧)함을 환(患)치 아니하고 안(安)치 못함을 환(患)하나니, 대개(大槪) 균(均)하면 빈(貧)함이 없고 화(和)하면 과(寡)함이 없고 안(安)하면 경(傾)함이 없다 」【註八】하니, 과(寡)라 함은 국민(國民)의 인구(人口)가 과소(寡少)함이오, 빈(貧)이라 함은 경제력(經濟力)이 빈약(貧弱)하여 민생(民生)이 곤궁(困窮)함이오, 균(均)이라 함은 국민(國民)의 경제(經濟)와 권리(權利)가 균평(均平)하여 각각(各各) 그 적의(適宜)함을 얻음이오, 안(安)이라 함은 인심(人心)이 안정(安定)함이라, 국가(國家)를 운영(運營)하는 방법(方法)은 인구(人口)의 과소(寡少)함을 근심치 아니하고 경제(經濟)와 권세(權勢)가 균평(均平)치 못함을 근심하며 민생(民生)의 빈곤(貧困)함을 근심치 아니하고 인심(人心)의 안정(安定)되지 못함을 근심하나니, 대개(大槪) 경제(經濟)와 권세(權勢)가 균평(均平)하면 빈곤(貧困)을 극복(克服)할 수가 있고, 인심(人心)이 화평(和平)하여 상애(相愛)상조(相助)하면 과소(寡少)한 인구(人口)로써 강대(强大)한 역량(力量)을 발휘(發揮)할 수가 있고, 인심(人心)이 안정(安定)하면 국가(國家)가 경복(傾覆)되는 일이 없다 함이니, 이는 모두 경제(經濟)와 권세(權勢)의 균평(均平)이 국가(國家) 안정(安定)의 중요(重要)한 요소(要素)로 되어 있음을 말함이다.
아국(我國)의 토지제도(土地制度)에 차등(差等)과 균평(均平)이 교호작용(交互作用)한 예(例)를 보건대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전장제(田莊制)는 공신(功臣) 귀족(貴族) 등(等)에게 대면적(大面積)의 토지(土地)를 분급(分給)하는 차등제(差等制)이오, 신라(新羅)의 삼한(三韓) 통일후(統一後)에 장정(壯丁)에게 토지(土地)를 분여(分與)하는 정전제(丁田制)는 균평제(均平制)이며 고려(高麗) 건국초(建國初)에 신라(新羅)의 정전제(丁田制)를 습용(襲用)하더니 중엽(中葉) 이후(以後)에 사전제(私田制)가 발생(發生)하여 권신(權臣) 귀족(貴族)들이 광대(廣大)한 토지(土地)를 점유(占有)하여 균평제(均平制)를 파괴(破壞)하고 차등제(差等制)를 만들고, 이조혁명시(李朝革命時)에 다시 균전제(均田制)를 행(行)하더니 불과(不過) 백여년(百餘年)에 토지겸병(土地兼倂)의 폐(弊)가 생(生)하여 소작제(小作制)로 화(化)하여 토지(土地) 소유(所有)에 심대(甚大)한 차등(差等)이 생(生)하고, 금일(今日)에 다시 농지소유제도(農地所有制度)를 개혁(改革)하여 대체(大體)로 균평제(均平制)를 쓰고 있으니, 이는 차등제(差等制)와 균평제(均平制)가 교호(交互)로 소장(消長)함이오 사회발전(社會發展) 과정(過程)에 필연적(必然的)으로 나타나는 형태(形態)이다. 대저(大抵) 모든 사물(事物)이 체(體)의 힘이 과승(過勝)하면 각기(各其) 분산(分散)하여 차등(差等)의 경향(傾向)이 강(强)하고, 체용(體用)의 힘이 균형(均衡)하면 주편(周遍)하는 작용(作用)이 건건(健健)하여 균평(均平)의 경향(傾向)이 강(强)한지라, 아국(我國)의 토지분배제도(土地分配制度) 같은 것은 창업(創業) 초기(初期)에 정치(政治)의 통일작용(統一作用)이 강(强)함으로 만민(萬民) 균평(均平)의 이념하(理念下)에 균평제(均平制)가 행(行)하고, 물(物)이 오래면 폐구(弊舊)하는지라 쇠세말엽(衰世末葉)에 이르러 특권계급(特權階級)들의 개체(個體)의 힘이 과대(過大)하여 통일작용(統一作用)이 해이(解弛)함으로 토지(土地)를 자유(自由)로 점유(占有)하여 드디어 차등제(差等制)가 생(生)한 것이다.
지금의 경제제도(經濟制度)에 소위(所謂) 자유경제(自由經濟)와 계획경제(計劃經濟)가 있는데, 자유경제(自由經濟)는 각개인(各個人)의 역량(力量)과 기능(技能)에 따라서 자유(自由)로운 경제활동(經濟活動)을 행(行)하는 것이므로 체(體)가 되고, 계획경제(計劃經濟)는 통체생활(統體生活)을 본위(本位)로 하여 각개체(各個體)의 자유(自由)를 제한(制限)하고 일정(一定)한 계획하(計劃下)에 생산(生産)․분배(分配)․교역(交易) 등(等) 경제활동(經濟活動)을 통제(統制)하는 것이므로 용(用)이 되는지라, 만일 자유경제(自由經濟)를 편용(偏用)하면 이는 체대용소(體大用小)함으로 각개인(各個人)의 모든 능력(能力)을 자유(自由)로히 발휘(發揮)시키는 이(利)가 있으나, 사회(社會)의 재부(財富)가 일부(一部)에 편축(偏蓄)되어 빈부(貧富)의 심대(甚大)한 차등(差等)을 생(生)하게 되나니 자본주의사회(資本主義社會)의 결함(缺陷)은 실(實)로 이에 있는 것이며, 또 계획경제(計劃經濟)를 편용(偏用)하면 이는 용대체소(用大體小)함으로 사회(社會)의 재부(財富)의 편재(偏在)와 무질서(無秩序)한 생산(生産)․소비(消費)를 시정(是正)하는 이(利)가 있으나, 각개인(各個人)의 자유(自由)로운 경제활동(經濟活動)을 조해(阻害)하고 생산의욕(生産意慾)을 저하(低下)시키며 부자연(不自然)한 획일적(劃一的) 균평(均平)을 만들기 위(爲)하여 관부(官府)의 위풍(威風)과 압력(壓力)을 행사(行使)하여 무리(無理)한 간섭(干涉)을 행(行)하나니, 제이차세계대전(第二次世界大戰)중에 일본(日本)의 통제정책(統制政策)의 해독(害毒)은 실(實)로 이에 있은 것이니, 이 양자(兩者)는 모두 편승편패(偏勝偏敗)함으로 사회(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 적응(適應)치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개체활동(個體活動)은 자유경제(自由經濟)의 원칙(原則)에 의(依)하여 각기(各其) 사유재산(私有財産)을 가지고 체대용소(體大用小)한 사생활(私生活)을 영위(營爲)할 것이오, 통체정책(統體政策)은 계획경제(計劃經濟)의 원칙(原則)에 의(依)하여 국가(國家)의 공동생존(共同生存)에 필요(必要)하다면 개체(個體)의 사유재(私有財)에 대(對)하여 지금에 세금징수(稅金徵收)와 같이 적의(適宜)히 재제(裁制)하는 용대체소(用大體小)의 조치(措置)를 취(取)할 것이니, 이 체용(體用)의 호대호소(互大互小)가 있은 연후(然後)에 국민(國民)의 경제생활(經濟生活)이 균평(均平)하여지는 것이다.
註一. 徐花潭先生集 溫泉辨
註二. 同上
註三. 益卦彖傳
註四. 家人卦 彖傳
註五. 謙卦 彖傳
註六. 繫辭上傳 第一章
註七. 謙卦 大象傳
註八. 論語 季氏篇
第三節 투쟁(鬪爭)과 조화(調和)
‣조화(調和)를 얻기 위(爲)한 투쟁(鬪爭)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각기(各其) 특수(特殊)한 개체조직(個體組織)을 가지고 자체(自體)의 성장확대(成長擴大)를 욕망(欲望)함으로, 서로 그 성장확대(成長擴大)하는 영역(領域)을 넓히고 타(他)의 자역침범(自域侵犯)을 방비(防備)하려 하여 타(他)와의 사이에 경쟁(競爭)․충돌(衝突)․저항(抵抗)․극제(克制) 등(等) 작용(作用)이 일어나니, 이가 곧 투쟁(鬪爭)이오, 개체(個體)는 고립(孤立)하여 생존(生存)할 수가 없고, 또 개체간(個體間)의 투쟁(鬪爭)은 결국(結局) 자체(自體)의 통체적(統體的)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조해(阻害)하는 것이므로, 또한 통체적(統體的)으로 운행(運行)하여 투쟁(鬪爭)을 상여(相與)․상제(相濟)․상생(相生)․상조(相助) 등(等) 작용(作用)으로 전화(轉化)하나니, 이가 곧 조화(調和)이다. 그러므로 개체(個體) 조직(組織)에는 반드시 투쟁(鬪爭)의 추기(樞機)가 있고 통체(統體) 운행(運行)에는 반드시 조화(調和)의 추기(樞機)가 있으니, 조직(組織)은 체(體)이오, 운행(運行)은 용(用)이라,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이 있는 곳에 반드시 투쟁(鬪爭)과 조화(調和)가 병존(倂存)하여, 이 양자(兩者)는 각기(各其) 독립(獨立)한 별개물(別個物)이 아니오, 통일물(統一物)의 양면작용(兩面作用)으로서 호근(互根)하고 있는 것이다.
태양(太陽)과 대지(大地)와의 관계(關係)같은 것도 이심력(離心力)은 개체(個體)가 독자(獨自)한 운동(運動)을 행(行)하려 하여 중심(中心)에 저항(抵抗)하는 투쟁(鬪爭) 형태(形態)이오, 향심력(向心力)은 통체적(統體的) 운동(運動)을 행(行)하려하여 중심(中心)에 향응(向應)하는 조화(調和) 형태(形態)이며, 뇌풍(雷風)의 관계(關係)는 양자(兩者)가 상박(相薄)함은 투쟁(鬪爭)이오, 상패(相悖)치 아니함은 조화(調和)이며, 수화(水火)의 관계(關係)는 양자(兩者)가 상사(相射)치 아니함은 투쟁(鬪爭)이오, 상체(相逮)함은 조화(調和)이며 산택(山澤)의 관계(關係)는 비고(卑高)가 상격(相隔)함은 투쟁(鬪爭)이오 서로 기(氣)를 통(通)함은 조화(調和)이다. 생물체(生物體)의 조직(組織)으로써 보더라도 정(精)에는 수렴작용(收斂作用)이 있고 기(氣)에는 발현작용(發顯作用)이 있어, 하나는 수렴(收斂)하려하고 하나는 발현(發顯)하려하여 서로 충돌(衝突)하는 것이 곧 투쟁(鬪爭)이다. 그러나 이 양작용(兩作用)의 투쟁(鬪爭)이 없으면 생물체(生物體)는 구성(構成)되지 못하며, 토지(土地)와 초목(草木)과의 관계(關係)로써 보더라도 토양(土壤)은 함장작용(含藏作用)이 있고 초목(草木)은 상승작용(上升作用)이 있어, 하나는 함장(含藏)하려 하고 하나는 상승(上升)하려 하여 서로 저항(抵抗)하는 것이 곧 투쟁(鬪爭)이다. 그러나 이 양작용(兩作用)이 상여(相與)치 아니하면 초목(草木)은 착근(着根)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물체(生物體)의 양작용(兩作用)은 통일작용(統一作用)을 행(行)하는 조화(調和)이오, 초목(草木)과 토양(土壤)의 양작용(兩作用)은 상리(相離)치 못하는 조화(調和)이다. 이와 같이 만물(萬物)은 투쟁(鬪爭)이 없으면 생존(生存)치 못하고, 그 투쟁(鬪爭)이라 함은 곧 생존(生存)의 조화(調和)를 얻기 위(爲)한 투쟁(鬪爭)이다.
모든 생물(生物)의 생극관계(生克關係)로 써 보면 만물(萬物)은 상생(相生)치 아니하는 것이 없고, 또 상극(相克)치 아니하는 것이 없으며, 타(他)로부터 생(生)을 받는 동시(同時)에 또한 타(他)를 생(生)하고, 타(他)로부터 극(克)을 받는 동시(同時)에 또한 타(他)를 극(克)한다. 원래(元來) 생물(生物)은 생존(生存)의 본원(本源)이 곧 상쟁(相爭)의 시단(始端)이라, 상극(相克)으로써 상생(相生)의 본원(本源)을 삼아, 타(他)를 극(克)하는 공격(攻擊) 조직(組織)을 가지지 아니한 것이 없고, 또 적(敵)을 방비(防備)하는 방어(防禦) 조직(組織)을 가지지 아니한 것이 없어, 생물계(生物界)는 일대투쟁장(一大鬪爭場)인 감(感)이 있으나, 이 상극(相克)의 속에 그 생(生)을 받고 있으니, 이가 곧 극(克)이 없으면 생(生)이 있을 수 없고, 생(生)이 없으면 극(克)이 있을 수 없음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은 생(生)의 속에 극(克)이 있고 극(克)의 속에 생(生)이 있어 생생극극(生生克克)으로써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고 있으니, 이 생생극극(生生克克)이 곧 투쟁(鬪爭)과 조화(調和)의 호근(互根)이다. 또 모든 생물(生物)은 출생(出生)하는 날에 이미 장사(將死)할 도리(道理)를 띠고 있어 그 성장(成長)이 도리어 자체노사(自體老死)의 원인(原因)이 되며 생물(生物)이 섭취(攝取)하는 영양(營養)은 자체(自體)를 생양(生養)하는 자료(資料)가 되는 동시(同時)에 또한 자체(自體)를 극제(克制)하여 노쇠(老衰)로 인도(引導)하는 자료(資料)가 되며, 자연과학(自然科學)의 발달(發達)에 의(依)하여 기계문명(機械文明)의 고도(高度)한 진보(進步)는 인류생활(人類生活)에 막대(莫大)한 편익(便益)을 주고 있으나, 그러나 또한 그 절대(絶大)한 파괴력(破壞力)을 가진 신무기(新武器)의 출현(出現)에 의(依)하여 현대문명(現代文明)은 일조(一朝)에 파괴(破壞)될 위기(危機)를 양성(釀成)하고 있어, 결국(結局) 과학(科學)으로 흥왕(興旺)한 현대사회(現代社會)는 장차(將且) 과학(科學)으로써 치패(致敗)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이는 모두 생(生)의 속에 극(克)이 있음이오, 손자병법(孫子兵法)에 「投之亡地然後存 陷之死地然後生 夫衆陷於害然後 能爲勝敗 = 망(亡)할 지(地)에 투(投)한 연후(然後)에 존(存)하고 사(死)할 지(地)에 함(陷)한 연후(然後)에 생(生)하나니 그 중(衆)은 해(害)에 함(陷)한 연후(然後)에 능(能)히 승패(勝敗)를 한다」【註一】하여, 군사(軍士)는 사생(死生)이 목전(目前)에 박도(迫到)한 위지(危地)에 들어간 연후(然後)에 최후(最後)의 사력(死力)을 다하여 적(敵)을 깨트리고 생로(生路)를 찾을 수 있음을 말하니 이는 사(死)의 속에 생(生)이 있음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事物)에는 투쟁(鬪爭)의 속에 조화(調和)의 추기(樞機)가 있고 조화(調和)의 속에 투쟁(鬪爭)의 추기(樞機)가 있는 것이니,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오직 생존경쟁(生存競爭)으로 보는 것은 투쟁면(鬪爭面)만을 본 것이오, 또 오직 상호부조(相互扶助)로 보는 것은 조화면(調和面)만을 본 것이다.
그리하여 투쟁(鬪爭)과 조화(調和)는 서로 대대(對待)하고 있으므로 투쟁(鬪爭)이 크면 조화(調和)도 크고 투쟁(鬪爭)이 없으면 조화(調和)도 없다. 남녀간(男女間)에는 애정(愛情)이 있는 까닭에 질투(嫉妬)가 있나니, 면부지(面不知)․심부지(心不知)한 남녀간(男女間)에 아무런 질투(嫉妬)가 없는 것은 처음부터 애정(愛情)이 없는 까닭이다. 역(易)에 「夫妻反目 = 부처(夫妻)가 반목(反目)한다」【註二】함은, 서로 친비(親比)하는 지위(地位)에 있으면서 그 지(志)가 상득(相得)치 못함으로 반목(反目)하기에 이른 것이 그 일례(一例)이다.
‣투쟁(鬪爭)과 조화(調和)의 반복(反復)
물(物)의 운행(運行) 과정(過程)에 다음 단계(段階)로 넘어갈 때에는 반드시 투쟁(鬪爭) 형태(形態)가 생(生)하나니, 사시(四時)의 유행(流行)은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의 본원(本源)이라, 그 유행(流行)은 가장 통일적(統一的)으로 조화(調和)된 상태(狀態)이로되, 그 변화(變化)하는 단계(段階)에는 상반(相反)하는 작용(作用)이 일어나서 투쟁(鬪爭)이 생(生)하고, 그 투쟁(鬪爭)을 통(通)하여 다시 조화(調和)함을 얻는 것이다. 역(易)에「戰乎乾 乾西北之卦也 言陰陽相薄也 = 건(乾)에서 전(戰)하니 건(乾)은 서북(西北)의 괘(卦)라, 음(陰)과 양(陽)이 서로 박(薄)함을 말함이라」【註三】하니, 건(乾)은 방위(方位)로는 서북(西北)이되고 시절(時節)로는 사시중(四時中)에 변화단계(變化段階)로부터 대화단계(大和段階)로 넘어가는 추동(秋冬)의 교(交)인데, 역리(易理)에 음(陰)이 왕성(旺盛)하여 양(陽)에 대적(對敵)하여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함을 전(戰)이라 하고, 양(陽)이 왕성(旺盛)하여 음(陰)의 조색(阻塞)함을 극제(克制)하고 발현작용(發顯作用)을 행(行)함을 제(齊)라 하나니, 추동(秋冬)의 교(交)는 음(陰)이 왕성(旺盛)하여 음양(陰陽)이 서로 투쟁(鬪爭)하고, 이 투쟁(鬪爭)을 지나서 비로소 대화단계(大和段階)로 들어가는 것이니, 이 까닭에 만물(萬物)의 운행과정(運行過程)에는 반드시 투쟁(鬪爭)과 조화(調和)가 호근(互根)하여 병행(竝行)하는 것이다.
인생사회(人生社會)는 그 속에 세력대세력(勢力對勢力)․계급대계급(階級對階級)․이해상쟁(利害相爭)․애오상공(愛惡相攻)등(等)이 있고, 시대(時代)의 진전(進展)에 따라서 신고(新故)의 충돌(衝突), 현실(現實)과 이상(理想)과의 마찰(摩擦) 등(等)이 있음은 모두 투쟁(鬪爭)이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鬪爭)은 조화(調和)를 얻기 위(爲)한 수단(手段)이므로 부단(不斷)히 투쟁(鬪爭)을 통(通)하여 통체적(統體的)으로 상여상제(相與相濟)하여 상생상조(相生相助)의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있으니 이는 조화(調和)이다. 이 까닭에 투쟁(鬪爭)이라 함은 사회내(社會內)에 생존작용(生存作用)의 폐해(弊害)가 생(生)한 때에 그를 극제(克制)하고, 분산(分散)되고 있는 개체(個體)를 통합(統合)하여 통체적(統體的)으로 조화(調和)를 만드는 운동(運動)이어야 하고, 만일 개체(個體)가 각자(各自) 분산(分散)하여 사리사욕(私利私慾)과 세력(勢力) 쟁탈(爭奪)을 중심(中心)으로하여 투쟁(鬪爭)한다면, 이는 그 소위(所謂) 투쟁(鬪爭)이 한 난투(亂鬪)에 불과(不過)하여, 사람의 이성적(理性的) 투쟁(鬪爭)이 되지 못하고 동물적(動物的) 감정적(感情的) 투쟁(鬪爭)으로 타락(墮落)되어 크게 사회(社會)의 조화(調和)를 파괴(破壞)하나니, 그 사회(社會)의 투쟁(鬪爭)하는 모양(模樣)을 보고 가(可)히 써 그 사회(社會)의 민도(民度)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사회(社會)의 조화(調和) 운동(運動)에는 역(易)에 말한 바의 「동인(同人)」【註四】의 이(理)가 있으니, 동인(同人)이라 함은 사사(私邪)를 버리고 지공(至公)한 마음으로 써 사람과 대동(大同)함을 말함이다. 그 동인(同人)하는 과정(過程)을 보면, 사람의 행동(行動)은 반드시 개체(個體)로부터 시발(始發)하여 점차(漸次)로 그 범위(範圍)를 넓히는 것이므로, 투쟁(鬪爭)으로 시(始)하여 조화(調和)로 종(終)하는 것이라, 그 초단(初段)에는 「同人于門 = 문(門)에서 동인(同人)한다」하니, 이는 가장 인근(鄰近)한 향리(鄕里)와의 동인(同人)으로서 그 범위(範圍)가 좁고, 또 「同人于宗 = 종(宗)에 동인(同人)한다」하니, 종(宗)이라 함은 동일(同一)한 혈족(血族) 또는 종파(宗派)․종교(宗敎) 등(等)과 같은 것이라, 이는 향리(鄕里)의 동인(同人)보다는 그 범위(範圍)가 조금 넓으나 공명(公明)한 이성(理性)으로써 동인(同人)치 아니하고 편협(偏狹)한 감정(感情)으로써 겨우 종당(宗黨)에만 교여(交與)하는 것이니, 국가(國家)의 선거(選擧)가 있을 때에 인물(人物)의 여하(如何)를 가리지 아니하고 오직 동일(同一)한 교도(敎徒)라던가, 동일(同一)한 친족(親族)이라하여 선거(選擧)함과 같음이다. 이를 역(易)에는 「同人于宗 吝道也 = 종(宗)에 동인(同人)함은 인(吝)한 도(道)라」하니, 인도(吝道)라 함은 수치(羞恥)스러운 일이라는 뜻이다. 문(門)과 종(宗)에 동인(同人)함은 그 동인(同人)하는 범위(範圍)가 국(局)하여 대(大)치 못하고, 그 처심(處心)이 편(偏)하여 정(正)치 못함으로 배타성(排他性)이 강(强)하고, 타인(他人)으로 더불어 지(志)가 상통(相通)치 못하여 스스로 공쟁(攻爭)의 단(端)이 발동(發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단(中段)에 이르러서는 혹(或)은 병(兵)을 초림중(草林中)에 복장(伏藏)하고 혹(或)은 담을 타고 공격(攻擊)하는 것이다. 종단(終段)에 이르러 「先號咷而後笑 = 먼저 호도(號咷)하고 후(後)에 소(笑)한다」하니, 이는 투쟁(鬪爭)을 통(通)하여 비로소 천하(天下)의 지(志)가 통(通)함으로 상극(相克)이 화호(和好)로 변(變)하고 호도(號咷)가 환소(歡笑)로 화(化)하여 서로 동인(同人)함을 말함이다. 그러나 천지(天地)에는 정대(正大)의 정(情)이 있으므로 만물(萬物)이 자연(自然)스럽게 통일(統一)되어 조화(調和)하고 있으나, 사람은 편(偏)하고 국(局)함으로 천지(天地)의 정대작용(正大作用)을 본받은 연후(然後)에 능(能)히 천하대동(天下大同)의 지역(地域)에 도달(到達)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원야(遠野)에까지 동인(同人)함은 이상(理想)이오, 겨우 근교(近郊)에만 동인(同人)함은 현실(現實)이니, 역(易)에 「同人于野 = 야(野)에 동인(同人)한다」함은 광원(廣遠)한 지역(地域)에까지 동인(同人)하려하는 이상(理想)을 표현(表現)함이오, 「同人于郊 = 교(郊)에 동인(同人)한다」함은 겨우 도시(都市)의 주변(周邊)인 근교(近郊)에만 동인(同人)하는 현실(現實)을 표현(表現)함이다. 이상(理想)은 정대(正大)하고 현실(現實)은 편국(偏局)한지라, 사람은 항상(恒常) 정대(正大)한 이상(理想)을 추구(追求)하고 편국(偏局)한 현실(現實)을 타개(打開)하여 통활(通豁)한 대지역(大地域)으로 향진(向進)하려 하는 것이므로, 이 천하(天下)는 항상(恒常) 조화(調和)를 얻기 위(爲)하여 투쟁(鬪爭)하고, 투쟁(鬪爭)을 통(通)하여 조화(調和)하면서, 함께 존존생생(存存生生)하는 것이다.
‣악(惡)의 극제(克制)가 곧 투쟁(鬪爭)이다
생물계(生物界)의 투쟁(鬪爭)에는 생존경쟁(生存競爭)으로 인(因)한 우승열패(優勝劣敗)와 자연도태(自然淘汰) 등(等) 현상(現象)이 있다. 그러나 동물계(動物界)와 인류(人類)는 동일(同一)치 아니하니, 동물(動物)은 주(主)로 개체대개체(個體對個體)․군대군(群對群)의 체력(體力)이나 지력(智力)의 투쟁(鬪爭)이므로, 체력(體力)이나 지력(智力)이 우강(優强)한 자(者)가 승(勝)하고 열약(劣弱)한 자(者)가 패(敗)하여, 자연(自然)히 도태(淘汰)되는 것이나, 인류(人類)는 사회(社會)를 조직(組織)하여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의 착잡(錯雜)한 관련(關聯)이 있으므로, 일면(一面)으로 개인대개인(個人對個人)의 체력(體力)․지력(智力)의 투쟁(鬪爭)이 있으면서, 또 일면(一面)으로 사회적(社會的)으로 이루어진 권력(權力)․세력(勢力) 등(等)을 빙자(憑藉)하는 투쟁(鬪爭)이 있는 까닭에, 반드시 인격(人格)이 우(優)한 자(者)가 승(勝)하고, 열(劣)한 자(者)가 패(敗)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 어떤 지역(地域)에서는 악(惡)한 자(者)가 승(勝)하고 선(善)한 자(者)가 패(敗)하며, 탐욕(貪慾)한 자(者)가 보존(保存)되고 청렴(淸廉)한 자(者)가 도태(淘汰)되며, 특(特)히 황금만능(黃金萬能)의 세상(世上)에는 사람이 황금(黃金)에 예속(隸屬)되어 황금(黃金)이 사람의 가치(價値)를 결정(決定)함으로 황금(黃金)만 있으면 비록 우매(愚昧)하더라도 승리(勝利)의 지위(地位)를 차지할 수 있고, 빈가(貧家)의 자제(子弟)는 비록 재능(才能)이 있으되, 취학(就學)․출세(出世) 등(等)에 가장 열패(劣敗)한 지위(地位)에 처(處)할 수 밖에 없으니, 만일 인생사회(人生社會)를 아무 재제(裁制)가 없는 자유경쟁(自由競爭)에 방임(放任)한다고 하면, 이는 동물계(動物界)보다도 더 열악(劣惡)한 현상(現象)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卽) 동물(動物)의 자유경쟁(自由競爭)은 체력(體力)이나 지력(智力)이 우승(優勝)한 자(者)가 보존(保存)되고, 열패(劣敗)한 자(者)가 도태(淘汰)되는 것이므로, 그 종족(種族)은 동물(動物)로서의 우량(優良)한 자(者)가 보존(保存)되고 계승(繼承)되는 것이지만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자유경쟁(自由競爭)은 흔히 악(惡)한 자(者)와 탐욕(貪慾)한 자(者)와 우매(愚昧)한 자(者)의 종족(種族)만이 번성(繁盛)할 수 있는 것이니, 이는 동물계(動物界)와 상반(相反)되는 열승우패(劣勝優敗), 세력도태(勢力淘汰)로서 마침내 종족(種族)의 열악(劣惡)을 초래(招來)하는 것이다. 사람은 이성적동물(理性的動物)이라, 체력(體力)의 강건(强健)과 함께 이성(理性)이 밝지 아니하면 안되나니, 체력(體力)만이 강건(强健)하고 이성(理性)이 밝지 못하면, 그 체력(體力)은 난폭(亂暴)한 만용(蠻勇)으로 악용(惡用)되어 도리어 사회(社會)를 해독(害毒)하는 일이 적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 있어서, 투쟁(鬪爭)이라 함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의 폐해(弊害)를 제거(除去)하고 악(惡)을 극제(克制)하여, 이성(理性)을 밝히고 동물(動物)로 타락(墮落)되는 것을 방지(防止)하는 작용(作用)이다. 그런데 생존본능(生存本能)에 의(依)한 행위(行爲)가 통체(統體) 생존(生存)을 위(爲)하는 때는 선(善)이되고, 개체(個體)의 사욕(私慾)에 기울어지는 때는 악(惡)이 되는 것이므로 사람의 소견(所見)이 편(偏)하고 국(局)하여 소체(小體)인 자아(自我)만을 보고 대체(大體)인 사회통체(社會統體)를 보지 못하는 자(者)가 흔히 악(惡)을 범(犯)하나니, 역(易)에는 이러한 사람을 「소인(小人)」이라 하며, 사회(社會)의 투쟁(鬪爭)은 이러한 소인(小人)을 대상(對象)으로 하는 것이다. 역(易)에 「小人 不恥不仁 不畏不義 不見利不勸 不威不懲 = 소인(小人)은 불인(不仁)함을 치(恥)치 아니하고, 불의(不義)함을 외(畏)치 아니하고, 이(利)를 견(見)치 아니하면 힘쓰지 아니하고 위(威)치 아니하면 징(懲)치 아니한다」【註五】하여, 소인(小人)들은 악(惡)한 일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옳지 못한 일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직 이욕(利慾)만을 따르고 형벌(刑罰)의 위엄(威嚴)만을 두려워한다 함을 말하고, 또「善不積 不足以成名 惡不積 不足以滅身 小人 以小善 爲無益而不爲也 以小惡 爲無傷而不去也 故 惡積而不可掩 罪大而不可解 = 선(善)이 적(積)치 아니하면 족(足)히 써 명(名)을 성(成)치 못하고 악(惡)이 적(積)치 아니하면 족(足)히 써 신(身)을 멸(滅)치 못하나니, 소인(小人)은 소선(小善)으로써 익(益)함이 없다 하여 하지 아니하고, 소악(小惡)으로써 상(傷)함이 없다 하여 버리지 아니하는지라, 그런 고(故)로 악(惡)이 적(積)하여 가(可)히 해(解)치 못하고 죄(罪)가 대(大)하여 가(可)히 엄(掩)치 못한다」【註六】하여, 선(善)을 행(行)하되 많이 쌓인 후(後)에야 이름이 이루고 악(惡)을 범(犯)하되 곧 회개(悔改)하여 쌓이지 아니하면 멸신(滅身)하기에 이르지 아니하는 것인데, 소인(小人)은 소선(小善)은 익(益)될 것이 없다 하여 행(行)치 아니하고 소악(小惡)은 해(害)될 것이 없다 하여 행(行)하고 또 행(行)하여, 드디어 큰 악(惡)이 된다 함을 말하니, 이가 소인(小人)이 악(惡)을 적루(積累)하는 경로(徑路)이다. 그러나 세간(世間)에는 소견(所見)이 편국(偏局)한 소인(小人)이 적지 아니하되 그러한 소인(小人)이 모두 악(惡)을 범(犯)하는 것이 아니오, 소인(小人)의 가운데는 「사(士)」의 격(格)을 가지는 자(者)도 있으니, 공자(孔子)의 말에 「言必信 行必果 硜硜然小人哉 抑亦可爲次矣 = 언(言)이 반드시 신(信)하고 행(行)이 반드시 과(果)하면 갱갱(硜硜)한 소인(小人)이로되 또한 가(可)히 차(次)가 될지라【註七】하니, 이는 사(士)에는 일(一)․이(二)․삼(三) 등(等)이 있는데 절조(節操)를 고수(固守)하고 식량(識量)이 천협(淺狹)하되 한번 말한 일은 반드시 어기지 아니하고, 한번 실행(實行)하는 일은 반드시 결과(結果)를 맺는 사람은 비록 소인(小人)이기는 하나 가(可)히 삼등사(三等士)는 될 수 있다 함이다.
사람은 그 출생(出生)하는 날에 악인(惡人)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 출생(出生)과 함께 자체(自體)의 생존(生存)을 완수(完遂)할 수 있는 소질(素質)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비록 우매무지(愚昧無知)한 충류(虫類)들도 모두 자체(自體)의 생존(生存)에 필요(必要)한 소질(素質)을 천품(天稟)으로 받고 있어, 지주(蜘蛛)의 결망(結網)․봉의(蜂蟻)의 구소(構巢)․잠아(蠶兒)의 작견(作繭)같은 기술(技術)은 정교(精巧)를 극(極)하고 있으되 그것을 학습(學習)하여 얻은 것이 아니며 더욱이 봉의(蜂蟻)의 단체생활(團體生活) 같은 것은 질서정연(秩序整然)한 사회(社會)를 이루고 있으니, 이는 모두 출생(出生)과 함께 가지고 있는 본능(本能)이다. 그런데 하물며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으로 태어난 사람에게 통체(統體)와 조화(調和)하는 선(善)한 행위(行爲)가 없을 수는 없는 것이다. 생존본능(生存本能)은 선천적(先天的)으로 선(善)으로 향(向)할 수도 있고, 악(惡)으로 흐를 수도 있으면서, 후천적(後天的)으로 가정(家庭)․교우(交友)․사회(社會) 등(等) 환경(環境) 여하(如何)와 교육(敎育)의 유무(有無)등(等)으로 인(因)하여, 선(善)이 배양(培養)된 자(者)는 선(善)한 행위(行爲)가 많고, 악(惡)이 도발(挑發)된 자(者)는 악(惡)한 행위(行爲)가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社會)로부터 악(惡)을 제거(除去)하는 길은 정치(政治)로써 환경(環境)을 정화(淨化)하고, 교육(敎育)으로써 정신(精神)을 수련(修鍊)함에 있는 것이다.
‣지도자(指導者)의 시범(示範)
사회(社會)의 악(惡)을 제거(除去)함에는 형벌제도(刑罰制度)가 있는데, 실제(實際)에는 형벌(刑罰)만으로서 되는 것이 아니다. 공자(孔子)의 정치론(政治論)에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 도(道)하기를 정(政)으로써 하고 제(齊)하기를 형(刑)으로써 하면 민(民)이 면(免)하되 치(恥)가 없나니라, 도(道)하기를 덕(德)으로써 하고 제(齊)하기를 예(禮)로써 하면 치(恥)가 있고 또 격(格)하나니라」【註八】하니, 도(道)라함은 지도(地道)함이오, 제(齊)라 함은 양(陽)이 음(陰)을 극제(克制)하여 균평제일(均平齊一)함이라, 민중(民衆)을 지도(指導)하기를 법령(法令)으로써 하고 균제(均齊)하기를 형벌(刑罰)로써 하면, 민중(民衆)이 범죄(犯罪)하지 아니할 정도(程度)에 이를 수는 있으나 범죄(犯罪)를 수치(羞恥)로 생각하는 이성(理性)은 발(發)하지 아니하며, 지도자(指導者)의 덕행(德行)이 상도(常度)가 있어 실천(實踐)으로써 지도(指導)하면 인심(人心)이 관감(觀感)하여 스스로 흥기(興起)하고, 다시 예절(禮節)로써 질서(秩序)를 균제(均齊)하면 인심(人心)이 수치(羞恥)를 알고 스스로 화성(化成)함에 이른다 함이니, 정형(政刑)은 외형(外形)을 조화(調和)함이오, 덕례(德禮)는 마음을 조화(調和)함이라, 악(惡)의 제거(除去)는 외형(外形)의 조화(調和)만으로서 되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마음에 수치(羞恥)를 알아서 스스로 조화(調和)치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다. 수치심(羞恥心)이라 함은 이성(理性)의 산물(産物)로서 만물중(萬物中)에 오직 사람만이 가지는 특성(特性)이라, 사람이 과오(過誤)나 죄악(罪惡)을 범(犯)한 때에 그를 세척회개(洗滌悔改)하는 것은 오직 수치심(羞恥心)의 힘이니, 역(易)에 「회(悔)」라 함은 이 수치심(羞恥心)의 분진(奮震)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수치심(羞恥心)을 상실(喪失)하여 어떠한 야비(野卑) 저열(低劣)한 행동(行動)을 하더라도, 그것이 수치(羞恥)인줄을 알지 못하면 그는 이미 인류계(人類界)로부터 동물계(動物界)로 타락(墮落)한 것이니, 정치(政治)는 그 사회내(社會內)에 일인(一人)의 동물(動物)도 없게 하는 사업(事業)이다. 또 논어(論語)에 「季康子 患盜 問於孔子 孔子對曰 苟子之不慾 雖賞之 不竊 = 계강자(季康子)가 도적(盜賊)을 근심하여 공자(孔子)에게 물은대 공자(孔子)가 대(對)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자(子)가 욕(欲)치 아니하면 비록 상(賞)주더라도 절도(竊盜)치 아니하리라」【註九】하니, 이는 계강자(季康子)가 탐욕(貪慾)하여 권세(權勢)와 지위(地位)를 절도(竊盜)한 까닭에 백성(百姓)이 그를 본받아서 절도(竊盜)하는 것이니 자(子)가 절도(竊盜)를 하지 아니하면 비록 백성(百姓)에게 상(賞)을 주면서 절도(竊盜)하기를 권장(勸獎)하더라도 백성(百姓)들이 응(應)치 아니하리라 하여 상위(上位)에 있는 자(者)가 청렴결백(淸廉潔白)한 것이 곧 절도(竊盜)를 방지(防止)하는 양책(良策)이오, 지도자(指導者) 자신(自身)이 절도(竊盜)를 하면서 백성(百姓)의 절도(竊盜)를 방지(防止)하기 위(爲)하여 금령(禁令)을 발(發)하고 형벌(刑罰)을 쓰는 것은 효과(效果)없는 일이라 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易)에 「天地 以順動故 日月不過而四時不忒 聖人以順動 則刑罰淸而民服 = 천지(天地)가 순(順)으로써 동(動)하는 고(故)로 일월(日月)이 과(過)치 아니하고 사시(四時)가 틀리지 아니하나니, 성인(聖人)이 순(順)으로써 동(動)하는지라 곧 형벌(刑罰)이 청(淸)하고 민(民)이 복(服)한다」【註十】하니, 이는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이 순리(順理)로 동(動)하는 까닭에 일월(日月)의 절도(節度)가 어기지 아니하고 사시(四時)의 순서(順序)가 틀리지 아니하며. 성인(聖人)의 정치(政治)가 순리(順理)로 동(動)하는 까닭에 백성(百姓)이 범법(犯法)하는 자(者)가 적어서 형벌(刑罰)이 청간(淸簡)하고 인심(人心)이 순복(順服)함을 말함이다.
교육(敎育)은 인격(人格)의 수양(修養)을 체(體)로 하고 지능(知能)의 학습(學習)을 용(用)으로 하는 것이라, 인격(人格)은 우수(優秀)하되 지능(知能)이 적으면 체(體)가 용(用)의 고무력(鼓舞力)을 얻지 못하여 사물(事物)에 응(應)하여 조판(措辦)하는 재능(才能)이 적고, 지능(知能)은 있으되 인격(人格)이 연성(鍊成)되지 못하면 용(用)이 의착(依着)할 체(體)를 얻지 못하여 그 소위(所謂) 지능(知能)은 부허(浮虛)에 흘러서 도리어 사회(社會)를 해독(害毒)하는 교지간재(巧智奸才)로 화(化)하기 쉬운 것이며, 또 모든 사물(事物)에 이론(理論)은 체(體)이오, 실천(實踐)은 용(用)이라, 이론(理論)이 없는 실천(實踐)은 무정견(無定見)․무계획(無計劃)한 행동(行動)이 되고, 실천(實踐)이 없는 이론(理論)은 관념유희(觀念遊戱)와 공리공론(空理空論)이 되나니, 인격(人格)과 지능(知能), 이론(理論)과 실천(實踐)이 체용(體用)이 상사(相俟)하고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한 연후(然後)에 비로소 교육(敎育)의 사공(事功)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고어(古語)에 「구이학(口耳學)」이라는 말이 있으니, 이것은 사(師)로부터 들은 학문(學問)이 귀에 들어와서 다시 입으로 나간다는 말이다. 학문(學問)이라 함은 귀에 들어오면 그것을 마음속에 반입(搬入)하여 검토(檢討)하고 소화(消化)하여, 인격(人格)을 수련(修鍊)할 자료(資料)를 삼고 사업(事業)을 실천(實踐)할 이론(理論) 근거(根據)를 만들고, 그 연후(然後)에 입을 통(通)하여 외부(外部)에 발표(發表)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이학(口耳學)은 마음에 반입(搬入)하는 한 과정(過程)을 엽등(躐等)하고 겨우 일촌(一寸) 거리(距離)밖에 되지 아니하는 귀와 입의 사이를 내왕(來往)하는 것이므로 그 학문(學問)한 바의 지능(知能)과 이론(理論)은 부유공허(浮遊空虛)하여 도리어 악(惡)의 방면(方面)에 유용(流用)되기 쉬운 것이다.
천지(天地)가 운행(運行)하여 물(物)을 생생(生生)함에는 문서(文書)나 언어(言語)가 있는 것이 아니오, 오직 일월(日月)과 사시(四時)가 신(信)을 잃지 아니하고 간단(間斷)없이 운행(運行)하여 상(象)을 수시(垂示)할 뿐이며, 만물(萬物)은 그 운행(運行)에 따라서 스스로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고, 사람이 조기야침(朝起夜寢)하고 춘경추수(春耕秋收)하는 것도 또한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을 신뢰(信賴)하고 그 수시(垂示)하는 범법(範法)을 따를 뿐이다. 사회(社會)를 지도(指導)하는 정치(政治)나 민중(民衆)을 교화(敎化)하는 교육(敎育)도 모두 민중(民衆)에게 수시(垂示)하는 범법(範法)이라, 소위(所謂) 법령(法令)이나 강의(講義) 같은 것은, 그것을 널리 알려서 외형(外形)을 균제(均齊)함에 불과(不過)한 것이오, 진실(眞實)로 인심(人心)을 고무(鼓舞)하여 흥작(興作)케 함에는 지도자(指導者)들 자신(自身)이 실천(實踐)으로써 시범(示範)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자신(自身)들이 악(惡)을 시범(示範)하면서 민중(民衆)에게 선(善)을 요구(要求)하는 것은 수치(羞恥)를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일이다. 그러므로 지도자(指導者)들은 극기작용(克己作用)으로써 먼저 자신(自身)의 두흉복중(頭胸服中)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든 사사심(私邪心)과 투쟁(鬪爭)하여 그를 극복(克服)하고 자체(自體)를 수제(修齊)한 연후(然後)에 타(他)를 지도(指導)할 것이다. 즉(卽) 민중(民衆)의 악(惡)과 투쟁(鬪爭)하기 전(前)에 먼저 자신(自身)의 악(惡)과 투쟁(鬪爭)하는 자(者)가 진실(眞實)로 천지(天地)의 생존법칙(生存法則)을 본받는 자(者)이다 고래(古來)로 사회(社會)의 조화(調和)를 먼저 파괴(破壞)하는 자(者)는 백성(百姓)이 아니라, 실(實)로 상층위(上層位)에 앉아서 순리(順理)로 동(動)치 아니하고 불선(不善)한 일을 시범(示範)하는 소위(所謂) 지도층(指導層)들이다. 그러므로 역(易)에는「下觀而化 = 하(下)가 관(觀)하여 화(化)한다」【註十一】하니, 이는 하층민(下層民)은 지도층(指導層)의 언행(言行)을 관(觀)하여 그 감화(感化)를 받는 것이므로 지도층(指導層)이 선(善)을 수시(垂示)하면 선(善)으로 화(化)하고 악(惡)을 수시(垂示)하면 악(惡)으로 화(化)한다 함을 말함이다.
註一. 孫子 九地篇
註二. 小畜卦 九三爻辭
註三. 說卦傳 第五章
註四. 同人卦 以下에 同人에 對한 引用文은 모두 同人卦中에 있는 것이다
註五. 繫辭下傳 第五章
註六. 同上
註七. 論語 子路篇
註八. 論語 爲政篇
註九. 論語 顔淵篇
註十. 豫卦 彖傳
註十一. 觀卦 彖傳
第四節 안정(安定)과 유동(流動)
‣안정(安定)은 방(方)하고 유동(流動)은 원(圓)하다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항구(恒久)한 체(體)는 그 상(象)이 방(方)하여 안정(安定)하는 작용(作用)이 있으니, 방(方)이라 함은 평(平)하고 정(正)함을 상(象)함이오, 변화(變化)하는 용(用)은 그 상(象)이 원(圓)하여 유동(流動)하는 작용(作用)이 있으니, 원(圓)이라 함은 주(周)하고 전(轉)함을 상(象)함이다. 역(易)에 「乾爲圜 = 건(乾)은 환(圜)이된다 」【註一】함은, 양(陽)의 유동(流動)하는 작용(作用)이 원(圓)함을 말함이오, 「坤德方 = 곤(坤)은 덕(德)이 방(方)하다」【註二】함은, 음(陰)의 안정(安定)하는 작용(作用)이 방(方)함을 말함이며, 또 「蓍之德圓以神 卦之德方以知 = 시(蓍)의 덕(德)은 원(圓)하여 써 신(神)하고, 괘(卦)의 덕(德)은 방(方)하여 써 지(知)하다」【註三】하니, 시(蓍)는 삼오착종(參伍錯綜)으로 변화(變化)하는 것이오 괘(卦)는 이미 형체(形體)를 이루어 정지(靜止)한 것이라, 이는 시(蓍)는 신(神)하여 방(方)이 없이 변화(變化)함으로 그 작용(作用)이 원(圓)하고, 괘(卦)는 정지(靜止)하여 정리(定理)가 있으므로 그 작용(作用)이 방(方)함을 말함이다.
만물(萬物)은 체(體)가 안정(安定)한 연후(然後)에 능(能)히 일정(一定)한 방소(方所)에 위(位)하여 항상(恒常) 존존(存存)할 수 있고 용(用)이 유동(流動)한 연후(然後)에 능(能)히 시(時)와 환경(環境)에 따라서 생생불궁(生生不窮)할 수 있는 것이니, 이 까닭에 만물(萬物)의 운동(運動)은 안정(安定)하면서 유동(流動)하고 유동(流動)하면서 안정(安定)하여, 안정(安定)과 유동(流動)이 호근(互根)하고 있는 것이다. 예(例)컨대 대지(大地)의 지축(地軸)이 현재(現在) 북극성(北極星)과 연결(連結)하여 항상(恒常) 일정(一定)한 방향(方向)으로 운행(運行)함은 체(體)의 안정(安定)이오 대지(大地)가 태양(太陽)의 주위(周圍)를 환전(圜轉)하여 정식(停息)치 아니함은 용(用)의 유동(流動)이다.
천지간(天地間)에는 하나도 운동(運動)치 아니하는 것이 없는지라, 대지(大地)가 이미 북극성(北極星)에 계속(繼續)되어 있으므로 그 동계(同系)인 태양(太陽)도 반드시 북극성(北極星)에 대(對)하여 어떠한 형태(形態)로든지 안정(安定)과 유동(流動)의 작용(作用)을 행(行)할 것이며, 대지(大地)는 또 태허(太虛)에 있어서는 유동(流動)하는 용(用)이 되고 있으나, 지상(地上)의 만물(萬物)과의 관계(關係)에 있어서는 만물(萬物)을 안정(安定)히 의착(依着)시키는 체(體)가 되고 있어, 여기에도 또한 안정(安定)과 유동(流動)의 양면작용(兩面作用)이 있는 것이다. 모든 생물(生物)이 대지(大地)에 의착(依着)하여 상리(相離)하지 못함은 체(體)의 안정(安定)이오, 동물(動物)이 비록 대지(大地)에 의착(依着)하고 있으되 항상(恒常) 운동(運動)하고 있음은 용(用)의 유동(流動)이며, 식물(植物) 같은 것도 비록 토지(土地)에 고착(固着)되어 있으되 또한 용(用)의 유동작용(流動作用)에 의(依)하여 부단(不斷)히 운동(運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안정(安定)만 있고 유동(流動)이 없으면 스스로 고정(固定)하여 시의(時宜)에 적응(適應)치 못하고 또 유동(流動)만 있고 안정(安定)이 없으면 스스로 요동(撓動)하여 자체(自體)를 지탱(支撑)치 못하는 것이다.
정치(政治)의 운영(運營)에 있어서 안정(安定)한 체(體)라 함은 성헌정규(成憲定規)를 준수(遵守)하는 상도(常道)를 말함이오, 유동(流動)하는 용(用)이라 함은 시의(時宜)에 응(應)하여 적의(適宜)히 변통(變通)하는 권도(權道)를 말함이다. 상도(常道)는 그 상(象)이 방(方)하여 안정(安定)함으로 국민행동(國民行動)의 규준(規準)이되고 질서유지(秩序維持)의 근간(根幹)이 되며, 권도(權道)는 그 상(象)이 원(圓)하여 주류(周流)함으로 일변월화(日變月化)하는 사회상태(社會狀態)에 적응(適應)하여 수시변화(隨時變化)하는 것이다.
‣방(方)과 원(圓)의 호근(互根)
안정(安定)과 유동(流動)은 체용관계(體用關係)로써 호근(互根)하고 있으므로, 방(方)과 원(圓)이 또한 호근(互根)하여 방(方)의 속에 원(圓)이 있고 원(圓)의 속에 방(方)이 있다. 전(前)에 예거(例擧)한 대지(大地)로써 보면 대지(大地)는 원구형(圓球形)을 띠고 있으면서 지상(地上)의 해면(海面)은 평면(平面)을 이루어 그 작용(作用)이 방(方)하니 이는 대지(大地)가 태허중(太虛中)을 유동(流動) 환행(圜行)하는 용(用)이되기 위(爲)하여는 그 형상(形象)이 원(圓)치 아니하면 안되나, 만물(萬物)을 정착(定着)시키는 체(體)가 되기 위(爲)하여는 지면(地面)의 작용(作用)이 방(方)치 아니하면 안되나니, 이가 곧 방원(方圓)의 호근(互根)이다. 역(易)에 대지(大地)의 작용(作用)을 말하되 「坤至柔而動也剛 至靜而德方 坤道其順乎 承天而時行 = 곤(坤)은 지극(至極)히 유(柔)하되 동(動)함이 강(剛)하고 지극(至極)히 정(靜)하여 덕(德)이 방(方)하니라, 곤(坤)의 도(道)가 그 순(順)한저 천(天)을 승(承)하여 시(時)로 행(行)한다」【註四】하니, 이는 대지(大地)가 천(天)의 운행(運行)을 승수(承受)하여 강(剛)하게 동(動)하는 상(象)은 천(天)과 같이 원(圓)하고, 또 지극(至極)히 순(順)하고 정(靜)한 작용(作用)은 그 상(象)이 방(方)하다 함을 말함이니, 고래(古來)로 천원지방(天圓地方)하고 천동지정(天動地靜)하다 함은 지(地)가 방(方)하고 정(靜)함이 아니라, 전(全)혀 천(天)과 지(地)와의 대대작용(對待作用)을 말함이다.
모든 생물(生物)로써 보면 초목(草木)의 과실(果實), 자인(子仁) 등(等)과 충어조수(虫魚鳥獸)의 난(卵), 난자(卵子) 등(等)이 모두 원형(圓形)을 띠고 있는 것은 그것이 생식작용(生殖作用)의 생생(生生)하는 용(用)으로서 유동(流動)하기 위(爲)하여 원형(圓形)이 되지 아니할 수 없음이오, 식물(植物)이나 동물(動物)의 모체(母體)는 지상(地上)에 정착(定着)하여 그 작용(作用)이 방(方)한 것은 그것이 존존(存存)하는 체(體)로서 안정(安定)을 얻기 위(爲)하여 방형(方形)이 되지 아니할 수 없음이며, 실(實)․난(卵) 등(等)이 비록 원(圓)하나 용(用)으로서의 임무(任務)를 마친 연후(然後)에는 성장(成長)하여 방형(方形)의 체(體)가 되고 다시 원형(圓形)의 실(實)․난(卵)을 생(生)하나니, 이는 모두 방원(方圓)이 호근(互根)하여 원(圓)은 방(方)으로 화(化)하고 방(方)은 원(圓)을 생(生)하는 것이다. 소강절(邵康節)은 말하되 「陽之類圓 成形則方 陰之類方 成形則圓 = 양(陽)의 유(類)는 원(圓)하나 형(形)을 성(成)한즉 방(方)하고 음(陰)의 유(類)는 방(方)하나 형(形)을 성(成)한즉 원(圓)하다」【註五】함은, 원(圓)한 용(用)은 방(方)한 체(體)로 화(化)하고, 방(方)한 체(體)가 성숙(成熟)하여 원(圓)한 용(用)을 출산(出産)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의 만물(萬物)은 그 구조(構造)에 있어서도 모두 방원(方圓)의 양작용(兩作用)을 가지고 있으니, 동식물(動植物)의 체(體)는 안정(安定)하기 위(爲)하여 그 작용(作用)이 방(方)하고 있으되, 그 유동(流動)하는 부분(部分)은 식물(植物)의 근(根) 간(幹) 경(莖) 지(枝), 동물(動物)의 체구(體軀) 사지(四肢) 등(等), 어느 것이 원형(圓形)을 띠지 아니한 것이 없다. 대공간(大空間)에 열장(列張)된 무수(無數)한 성수(星宿)들이 어떤 형태(形態)로든지 모두 원형(圓形)을 띠고 있는 것은 모두 운동(運動)하고 있는 까닭이며, 지상(地上)에서 우리 사람을 비롯하여 조수(鳥獸), 충어(虫魚), 식물(植物)들이 활동(活動)하는 상태(狀態)를 보면 원주형(圓柱形)의 체간(體幹)․지속(肢屬)․경지(莖枝) 등(等) 타원형(橢圓形)의 안면(顔面)․목엽(木葉) 등(等), 원구형(圓球形)의 안구(眼球)․과실(果實) 등(等), 원공형(圓空形)의 이공(耳孔)․비공(鼻孔)․구강(口腔) 등(等), 무수(無數)한 원(圓)이 총동원(總動員)되어 활동(活動)하고 있으며 심지어(甚至於) 주위(周圍)를 둘러싼 산봉(山峰)이 모두 원(圓)하고, 식탁상(食卓上)의 기반(器盤)이 또한 원(圓)하고, 초목(草木)의 엽상(葉狀)에 맺힌 수적(水滴)도 원형(圓形)이오, 수은(水銀)이나 철속(鐵屬)의 용액(溶液)을 산포(散布)하면 모두 원구(圓球)가 되며, 사람이 지상(地上)을 왕래(往來)함은 평면상(平面上)을 행(行)하고 있으되, 실(實)은 원구상(圓球上)을 회전(廻轉)하는 것이니, 지상(地上)의 원(圓)의 운동(運動)은 천공(天空)의 성신(星辰)을 망견(望見)하는 듯한 기관(奇觀)이다. 이와 같이 천공(天空)과 지상(地上)이 모두 원(圓)의 무대(舞臺)로 되어 있는 것은 그것이 잠시(暫時)도 지식(止息)치 아니하고 운동(運動)하고 있는 상징(象徵)이며, 오직 우리의 거처(居處)하는 가옥(家屋)이 대개(大槪) 방형(方形)으로 되어 있는 것은 유동(流動)의 속에 안정(安定)을 얻기 위(爲)하여 만들어진 유일(唯一)한 정식처(靜息處)인 까닭이다.
사람의 행동(行動)에도 방원(方圓)의 상(象)이 있으니 조수(操守)가 견고(堅固)하여 동요(動搖)치 아니함은 안정(安定)한 방(方)의 상(象)이오, 구니(拘泥)와 집착(執着)이 없고 융통성(融通性)이 있음은 유동(流動)하는 원(圓)의 상(象)이라, 이 까닭에 조행(操行)이 일정(一定)한 규격(規格)을 이루고 있음을 방정(方正)이라 하고, 사물(事物)을 접응(接應)함에 주선(周旋)하고 변통(變通)함을 원숙(圓熟)이라 한다. 역(易)에「義以方外 = 의(義)로써 외(外)를 방(方)한다 」【註六】함은, 주위(周圍)의 사물(事物)을 적의(適宜)히 재제(裁制)하여 한 정형(定形)을 작성(作成)함이니 곧 방(方)의 상(象)이오 「知周乎萬物 = 지(知)가 만물(萬物)에 주(周)한다」【註七】함은 지(知)는 의(義)의 정(精)함이라 지(知)가 천하(天下)의 만물(萬物)에 주류편행(周流遍行)하여 모두 그 생존(生存)을 완수(完遂)케 함이니 곧 원(圓)의 상(象)이다. 손자병법(孫子兵法)에 「其戰人也 如轉木石 木石之性 安則靜 危則動 方則止 圓則行 故善戰人之勢 如轉圓石於千仞之山 = 그 사람과 싸움이 목석(木石)을 전(轉)함과 같으니 목석(木石)의 성(性)이 안(安)한즉 정(靜)하고 위(危)한즉 동(動)하며, 방(方)한즉 지(止)하고, 원(圓)한즉 행(行)하는지라, 고(故)로 선(善)히 사람과 싸우는 세(勢)는 원석(圓石)을 천인(千仞)의 산(山)에서 전(轉)함과 같다」【註八】하니, 안정(安定) 위동(危動)은 인심(人心)이 안정(安定)하면 지정(止靜)하고 인심(人心)이 안정(安定)치 못하면 투쟁(鬪爭)하는 이(理)를 말함이오 방지원행(方止圓行)은 수세(守勢)를 취(取)하는 자(者)는 방(方)하여야하고 공세(攻勢)를 취(取)하는 자(者)는 원(圓)하여야하는 이(理)를 말함이니, 이는 차등(差等)과 균평(均平), 안정(安定)과 유동(流動)의 원리(原理)를 전술(戰術)에 응용(應用)한 것이다.
‣환주운동(圜周運動)과 직선운동(直線運動)
만물(萬物)이 방(方)을 구성(構成)한 요소(要素)는 「직(直)」이므로 방(方)한 자(者)는 직(直)한 체(體)를 가지고 있고, 원(圓)의 운동(運動)하는 궤도(軌道)는 「환(圜)」이므로 원(圓)한 자(者)는 환(圜)하는 용(用)을 가지고 있으니, 방(方)과 원(圓)이 호근(互根)하고 있으므로 직(直)과 환(圜)이 또한 호근(互根)한다. 대지(大地)의 형상(形象)은 원(圓)하고 그 운행(運行)하는 궤도(軌道)는 환(圜)이 되고 있으나 지상(地上)의 수평선(水平線)은 직(直)하고 남북극(南北極)을 연결(連結)하는 지축(地軸)이 또한 직(直)하며 모든 원구(圓球)가 일정(一定)한 궤도(軌道)를 따라서 환행(環行)하는 자(者)는 그 속에 직(直)한 축(軸)이 없는 것이 없으니, 차륜(車輪)의축(軸), 기계(器械)의 심봉(心棒) 등(等)이 그것이오, 이는 개체(個體)는 직(直)하고 통체(統體)는 환(圜)하여 호근(互根)하는 것이며, 모든 생물(生物)의 실(實)․난(卵) 등(等)은 원형(圓形)을 띠고 환전(圜轉)하고 있으되 그 실(實)․난(卵) 등(等)으로부터 출생(出生)하는 형체(形體)에는 직(直)한 지주(支柱)가 있으니, 이는 체(體)는 직(直)하고 용(用)은 환(圜)하여 호근(互根)하는 것이다.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으로써 보면 일월(日月) 대지(大地)가 형태(形態)의 여하(如何)를 불구(不拘)하고 모두 원궤도(圓軌道)를 환행(圜行)하고 있으니, 이는 천지(天地)의 운동(運動)이 통체적(統體的)으로 행(行)하는 까닭에 선후(先後)의 순(順)도 없고 시종(始終)의 단(端)도 없는 환주운동(圜周運動)이 되는 것이오, 일월(日月) 대지(大地) 등(等)의 운동(運動)이 고왕금래(古往今來) 누억만년(累億萬年)을 계속(繼續) 전래(傳來)하는 형태(形態)는 직선(直線)으로 되어 있으니, 이는 모든 천체(天體)가 개체(個體)로 되어 있는 까닭에 발생(發生)하는 날과 성장(成長) 소멸(消滅)하는 날이 있는 직선운동(直線運動)이 되는 것이다. 사시(四時)로써 보면 춘하(春夏)가 가면 추동(秋冬)이 오고 다시 춘하(春夏)가 와서 사시(四時)가 항상(恒常) 반복(反復)함은 환주운동(圜周運動)이오. 금년(今年)이 가면 명년(明年)이 오고 다시 재명년(再明年)이 와서 동일(同一)한 해가 재래(再來)치 아니함은 직선운동(直線運動)이다. 생물(生物)로써 보면 초목(草木)은 과실(果實)이 싹을 생(生)하고 싹이 성장(成長)하여 간지(幹枝)가되고 간지(幹枝)가 다시 과실(果實)을 맺으며, 충류(虫類)는 난(卵)으로부터 유충(幼虫)․성충(成虫)의 순서(順序)를 지나서 다시 난(卵)을 생(生)하며, 조수(鳥獸)는 태생(胎生)이나 난생(卵生)이 모체(母體)로 더불어 서로 순환(循環)하는 것은, 원궤도(圓軌道)를 환주(圜周)하는 것이오, 이러한 생물(生物)이 모두 선조(先祖)로부터 부전자수(父傳子受)로 대대계승(代代繼承)하여 세대(世代)의 분별(分別)이 있고 부조(父祖) 증고(曾高)가 비록 동일(同一)한 계통(系統)이로되 그 용모(容貌)와 개성(個性)이 서로 달라서 각개체(各個體)의 구별(區別)이 있는 것은 직선(直線)으로 진행(進行)하는 것이다. 세간(世間)에는 계(鷄)와 난(卵)의 친자(親子) 관계(關係)를 판정(判定)하려하는 일이 있는데, 이것도 통체(統體)의 면(面)으로는 환주운동(圜周運動)이 되므로 계(鷄)가 난(卵)을 생(生)하고 난(卵)이 부화(孵化)하여 계(鷄)가 되어 선후(先後)와 친자(親子)의 분별(分別)이 없고, 개체(個體)의 면(面)으로는 직선운동(直線運動)이 됨으로 모계(某鷄)는 전난(前卵)의 후신(後身)이오 후란(後卵)의 부모(父母)이며, 모란(某卵)은 전계(前鷄)의 자녀(子女)이오 후계(後鷄)의 전신(前身)으로서, 선후(先後)와 친자(親子)의 분별(分別)이 있는 것이다. 우주창생설(宇宙創生說) 같은 것도 역리(易理)로써 보면 우주(宇宙)는 시(始)도 없고 종(終)도 없이 윤회(輪廻)하는 것이라 함은 환주운동(圜周運動)의 면(面)을 말함이오, 우주(宇宙)가 어느 때에 조물주(造物主)에 의(依)하여 처음으로 창조(創造)된 것이라 함은 직선운동(直線運動)의 면(面)을 말함이다. 이와 같이 만사만물(萬事萬物)은 모두 환주운동(圜周運動)과 직선운동(直線運動)의 양면(兩面)이 있으니, 이는 천지(天地)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이 체(體)가 용(用)을 생(生)하고 그 용(用)이 체(體)로 변(變)하고 그 체(體)가 다시 용(用)을 생(生)하여 체(體)와 용(用)이 서로 순환(循環)함으로 환주운동(圜周運動)이 되지 아니할 수 없고, 또 체용(體用)이 서로 계승(繼承)하여 세대(世代)의 분별(分別)이 있으므로 직선운동(直線運動)이 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역(易)에 문왕(文王)의 팔괘도(八卦圖)는 팔괘(八卦)를 팔방(八方)에 원형(圓形)으로 배열(配列)하고 특(特)히 감리(坎離)를 북(北)과 남(南)으로 배정(配定)하여 북한(北寒) 남서(南暑)를 표시(表示)하여 직선(直線)의 중추(中樞)를 삼으니 곧 지금의 소위(所謂) 남북극(南北極)을 통(通)한 지축(地軸) 또는 자오선(子午線)이니, 이는 원(圓)의 속에 직(直)이 있음을 말함이오, 또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사시(四時)가 팔방(八方)으로 순환(循環)하여 만물(萬物)의 생장수장(生長收藏)하는 상(象)이 표시(表示)되어 있는데, 물(物)이 시(始)하면 종(終)하고 종(終)하면 다시 시(始)하여 시종(始終)의 단(端)이 없는 형태(形態)는 환주운동(圜周運動)이 되고, 금년(今年)의 초목(草木)이 생장(生長)하여 과실(果實)을 맺고 그 과실(果實)에서 신아(新芽)가 반생(反生)하여 차년(次年)의 초목(草木)이 되는 형태(形態)는 직선운동(直線運動)이 되니, 이는 환주운동(圜周運動)과 직선운동(直線運動)이 호근(互根)하고 있음을 말함이다.
사람의 사회생활(社會生活)에도 방직(方直)과 원환(圓環)의 호근(互根)이 있으니, 역(易)에 「直其正也 方其義也 君子 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德不孤 = 직(直)은 그 정(正)이오 방(方)은 그 의(義)이라 군자(君子)가 경(敬)으로써 내(內)를 직(直)케하고 의(義)로써 외(外)를 방(方)케하여 경(敬)과 의(義)가 입(立)하매 덕(德)이 고(孤)치 아니하다」【註九】하니, 직방(直方)은 곧 정의(正義)이오 불고(不孤)라 함은 주위(周圍)가 응여환요(應與圜繞)함이라 이는 정의(正義)로써 안으로 마음을 직(直)케하고 밖으로 규모(規模)를 재제(裁制)하면 민중(民衆)이 그 주위(周圍)를 환요(圜繞)하고 사업(事業)이 광대(光大)하여 고립(孤立)치 아니하고 일신(日新)의 성덕(盛德)이 만물(萬物)에 원행주편(圓行周遍)함을 말함이다. 직방(直方)은 체(體)오 원환(圓圜)은 용(用)이라 체(體)가 없으면 용(用)이 의착(依着)치 못하여 환주(圜周) 작용(作用)을 행(行)치 못함으로, 정의(正義)가 없는 사회(社會)는 통체주편(統體周遍)하는 생존작용(生存作用)이 행(行)치 못하고, 용(用)이 없으면 체(體)가 고무력(鼓舞力)을 얻지 못하여 스스로 굴곡(屈曲)함으로, 운행(運行)이 주편(周遍)치 못한 사회(社會)는 국민개체(國民個體)의 정의감(正義感)이 스스로 박약(薄弱)하여지는 것이니, 이미 말한 이간정치(易簡政治)가 「직(直)」을 체(體)로 하는 것도 또한 이 까닭이다. 또 개인(個人)의 생존작용(生存作用)으로써 보더라도, 마음이 정직(正直)한 사람은 대인접물(對人接物)함이 모두 적의(適宜)히 재제(裁制)됨으로 그 행동(行動)이 원만(圓滿)하고, 마음이 왜곡(歪曲)한 사람은 사물(事物)에 대(對)하여 사사(私邪)와 부정(不正)을 행(行)함으로 그 행동(行動)이 경측(傾側)한 것이다.
인류력사(人類歷史)에도 환(圜)과 직(直)이 호근(互根)하고 있으니, 역사상(歷史上)에 대대(對待)되는 사회(社會)가 서로 기복(起伏)하여 항상(恒常) 준사(準似)한 사실(事實)이 반복(反復)하고 있음은 동일궤도(同一軌道)를 순환(循環)하는 환주운동(圜周運動)이오, 대대(對待)되는 시대(時代)가 서로 전수(傳受)하여 일시대(一時代)가 가면 다시 일시대(一時代)가 와서 동일(同一)한 시대(時代)가 재래(再來)치 아니함은 일직선(一直線)을 진행(進行)하는 직선운동(直線運動)이니, 고래(古來)로 「 역사(歷史)는 순환(循環)한다」함은, 환주운동(圜周運動)을 말함이오, 「 역사(歷史)는 순환(循環)치 아니한다 」함은, 직선운동(直線運動)을 말함이다. 이것을 아국(我國)의 토지제도사(土地制度史)에 징(徵)하건대, 전절(前節)에서 말한 바의 균평제(均平制)와 차등제(差等制)가 교호(交互)로 대사(代謝)함은 사회(社會)의 환주운동(圜周運動)의 형태(形態)이오, 그러나 동일(同一)한 균평제(均平制)이로되 고려(高麗)의 국유수수제(國有授受制)와 이조(李朝)의 국유분급제(國有分給制)와 지금의 사유분급제(私有分給制)는 그 형태(形態)가 서로 다르고, 또 동일(同一)한 차등제(差等制)이로되 고려(高麗)의 사전제(私田制)와 이조(李朝)의 소작제(小作制)는 그 형태(形態)가 또한 서로 달라서 모두 각기(各其) 독자(獨自)한 시대성(時代性)을 나타내고 있음은 전시대(前時代)로 순환(循環)치 아니하는 직선운동(直線運動)의 형태(形態)이다.
‣자전(自轉)과 공전(公轉)
물(物)의 환주운동(圜周運動)에는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이 있으니 대지(大地)가 독자(獨自)한 궤도(軌道)와 자력(自力)에 맞는 속도(速度)를 가지고 스스로 운동(運動)함과 같음은 자전(自轉)이오, 대지(大地)가 자전(自轉)하면서 태양(太陽)의 주위(周圍)를 환행(圜行)함과 같음은 공전(公轉)이니, 자전(自轉)은 체(體)가 되고 공전(公轉)은 용(用)이 되어 호근(互根)하고 있는지라, 대지(大地)의 자전(自轉)은 반드시 공전(公轉)과 병행(倂行)하여 공전(公轉)이 없이는 자전(自轉)이 있을 수 없으니, 만일 자전(自轉)만 있고 공전(公轉)이 없으면 이는 우주(宇宙)의 통일성(統一性)있는 궤도(軌道)에 오르지 못하고 홀로 태허중(太虛中)을 정처(定處)없이 유랑방황(流浪彷徨)하는 것이오, 또 대지(大地)의 공전(公轉)은 반드시 자전(自轉)을 통(通)하여 행(行)하고 자전(自轉)이 없이는 공전(公轉)이 있을 수 없으니, 만일 공전(公轉)만 있고 자전(自轉)이 없으면 이는 자체(自體)의 독자(獨自)한 운동력(運動力)을 상실(喪失)하고 오직 타력(他力)에 이끌려서 회선(回旋)의 강요(强要)를 당(當)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物)의 운동(運動)은 자전(自轉)이 있으면 반드시 공전(公轉)이 있고 또 공전(公轉)은 반드시 자전(自轉)을 통(通)하여 행(行)하는 것이다. 사람의 사상(思想)에도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의 상(象)이 있으니, 사람은 사상(思想)의 자유(自由)를 가지고 각기(各其) 독자(獨自)한 자주성(自主性)과 통체(統體)에 주편(周遍)하는 보편성(普遍性)으로써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지라, 자주성(自主性)은 체(體)이오 보편성(普遍性)은 용(用)이니, 사상(思想)의 체(體)가 각기(各其) 개체(個體)의 자주성(自主性)을 가지고 있음은 자전(自轉)이오, 사상(思想)의 용(用)이 보편성(普遍性)으로써 사회(社會) 통체(統體)에 주편(周遍)함은 공전(公轉)이다. 사람은 개체(個體)가 각기(各其) 독수(獨殊)하고 개성(個性)이 또 상이(相異)함으로 사상(思想)의 체(體)는 백인(百人)이 백려(百慮)하여 개인(個人)의 자주(自主)가 되나니, 역(易)에「致命遂志 = 명(命)을 치(致)하여 지(志)를 수(遂)한다」【註十】함은, 생명(生命)을 내어 걸고 자기(自己)의 소수(所守)하는 의지(意志)를 기어(期於)히 성수(成遂)하는 사상(思想)의 자주(自主)를 말함이다. 그러나 대지(大地)의 자전(自轉)은 반드시 공전(公轉)과 병행(倂行)함과 같이 사상(思想)의 체(體)도 자전(自轉)으로써 자주성(自主性)을 발휘(發揮)하면서 또한 반드시 공전궤도(公轉軌道)를 환행(圜行)하여 통체(統體)에 주편(周遍)하여야 한다. 만일 소위(所謂) 사상자주(思想自主)라 하여 무궤도(無軌道)한 자유행동(自由行動)을 자행(恣行)한다면, 이는 공전궤도(公轉軌道)를 잃고 사리사욕(私利私慾)만을 위(爲)하는 방종자자(放縱自恣)에 빠지는 것이다. 또 사람의 생활(生活)은 고립독존(孤立獨存)하여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오, 분업(分業)․협업(協業)․결혼(結婚)․공동방위(共同防衛) 등(等) 협동공제(協同共濟)를 통(通)하여 비로소 생활(生活)을 완수(完遂)할 수 있는 것이므로 사상(思想)의 용(用)은 통체(統體)에 주편(周遍)하도록 되어 있나니, 역(易)에 「天下何思何慮 天下同歸而殊途 一致而百慮 天下何思何慮 = 천하(天下)가 하(何)를 사(思)하며 하(何)를 여(慮)하리오 천하(天下)가 귀(歸)함은 동(同)하되 도(途)는 수(殊)하고 치(致)함은 일(一)하되 여(慮)는 백(百)이라 천하(天下)가 하(何)를 사(思)하며 하(何)를 여(慮)하리오」【註十一】함은 사물(事物)이 천형만상(千形萬狀)하여 그 길이 각수(各殊)하고 소접(所接)하는 사물(事物)이 동일(同一)치 아니하여 그 소발(所發)하는 생각이 또한 백(百)이 있으나 천하(天下)는 자연(自然)히 동귀일치(同歸一致)하는 이(理)가 있으니 무엇을 동동(憧憧)히 사려(思慮)하랴 하여 사상(思想)의 보편성(普遍性)이 있음을 말함이다. 그러나 대지의 공전(公轉)은 반드시 자전(自轉)을 통(通)하여 행(行)함과 같이 사상(思想)의 용(用)도 공전(公轉)으로써 통체(統體)에 주편(周遍)하면서 반드시 자전(自轉)하는 자주성(自主性)을 가져야 한다. 만일 소위(所謂) 사상통일(思想統一)이라 하여 개인(個人)의 사상자주(思想自主)를 압박간섭(壓迫干涉)하여 모두 동일형(同一型)으로 조작개주(造作改鑄)한다면, 이는 자전(自轉)하는 기능(機能)을 파괴(破壞)하고 굴종(屈從)을 강요(强要)하여 민중(民衆)을 노예화(奴隸化)하는 것이다.
대저(大抵) 사람의 개체자유(個體自由)는 천부(天賦)한 인권(人權)이오 또 개체(個體)는 통체(統體)를 떠나서 생존(生存)할 수 없다. 그러나 개체(個體)의 행동자유(行動自由)를 존중(尊重)하여 이를 무제한(無制限)으로 용허(容許)한다면, 세력(勢力)이 미약(微弱)하여 자유경쟁(自由競爭)의 대열(隊列)에서 낙오(落伍)한 자(者)에게는 정치적(政治的), 경제적(經濟的), 사회적(社會的)으로 행동자유(行動自由)의 영역(領域)이 스스로 협축(狹縮)되나니, 이는 결국(結局) 유력자(有力者)의 자유(自由)는 될지언정 무력자(無力者)의 자유(自由)는 되지 못하여 소위(所謂) 개체자유(個體自由)의 혜택(惠澤)은 강자(强者)에 후(厚)하고 약자(弱者)에 박(薄)한 것이며, 또 개체(個體)는 통체(統體)에 종속(從屬)하여야 한다 하여 개인(個人)의 자유(自由)를 억압(抑壓)한다면 하층민(下層民)에게는 그 억압(抑壓)이 적용(適用)되나 정치(政治)를 운영(運營)하는 지도층(指導層)에는 도리어 억압권(抑壓權)이 부여(附與)되어 스스로 제한(制限)없는 자유(自由)를 향유(享有)하나니, 이는 결국(結局) 하층민(下層民)의 종속(從屬)은 될지언정 지도층(指導層)의 종속(從屬)은 되지 아니하여, 소위(所謂) 통체종속(統體從屬)의 의무(義務)는 하층(下層)에 중(重)하고 상층(上層)에 경(輕)한 것이니, 이러한 후박경중(厚薄輕重)의 심대(甚大)한 차등(差等)이 생(生)하는 것은 오로지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이 병행(倂行)치 못하는 데에 기인(基因)하는 것이다.
지금 법치국가(法治國家)에서는 법률(法律)로써 국민(國民)의 권리(權利)와 의무(義務)를 규정(規定)하고 있는데, 권리(權利)라 함은 국민개체(國民個體)의 생존권(生存權)과 인격(人格)의 존엄성(尊嚴性)을 말함이오, 의무(義務)라 함은 국민(國民)의 국가통체(國家統體)에 대(對)한 책무(責務)를 말함이니, 권리(權利)는 개체(個體)의 자전(自轉)이오 의무(義務)는 통체(統體)에의 공전(公轉)이라, 국민(國民)이 자기(自己)의 권리(權利)를 주장(主張)하면서 또한 국가(國家)에 대(對)한 의무(義務)를 이행(履行)하면 이는 자전(自轉)을 통(通)하여 공전(公轉)을 행(行)함이오, 또 국가(國家)가 국민(國民)에 대(對)하여 의무(義務)의 이행(履行)을 요구(要求)하면서 또한 국민(國民)의 권리(權利)를 존중(尊重)하면 이는 공전(公轉)의 속에 자전(自轉)이 있는 것이다.
사람의 직업(職業)에도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의 상(象)이 있으니, 직업선택(職業選擇)의 자유(自由)는 자전(自轉)이오 그 직업(職業)의 사회적(社會的) 연환(連環)은 공전(公轉)이라 직업(職業)의 선택(選擇)이 비록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한 자전(自轉)이라 하더라도 그 소위(所謂) 자유선택(自由選擇)한 직업(職業)은 사회(社會)의 여러 가지 제약(制約)에 의(依)하여 그 대부분(大部分)은 결(決)코 자유(自由)가 아니니, 이 사회적(社會的) 제약(制約)이 곧 통체궤도(統體軌道)를 환행(圜行)하는 공전(公轉)이다. 원래(元來) 직업(職業)이라함은 일면(一面)으로는 개체(個體)의 생활수단(生活手段)이 되고 일면(一面)으로는 사회통체(社會統體)의 공리공익(公利公益)이 되는지라, 비록 자유(自由)로 선택(選擇)한 직업(職業)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자기(自己)의 의지(意志)에 만족(滿足)하는 것은 아니니, 이는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이 교호작용(交互作用)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일단(一旦) 자전(自轉)하는 의지(意志)로써 직업(職業)을 선택(選擇)한 연후(然後)에는 비록 불만(不滿)이 있더라도 개체(個體)의 자자(自恣)한 욕망(慾望)을 제어(制御)하고 겸허인고(謙虛忍苦)하는 태도(態度)로써 개성(個性)을 그 직업(職業)에 적응(適應)케 하는 것이 곧 자기(自己)의 자전(自轉)한 의지(意志)를 존중(尊重)하는 동시(同時)에 또한 사회(社會)의 공리공익(公利公益)의 연환권(連環圈)에 공전(公轉)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註一. 說卦傳 第十一章
註二. 坤卦 文言
註三. 繫辭上傳 第十一章
蓍는 易의 卦를 作成하는 器具이오 卦는 六十四卦를 말함이다
註四. 坤卦文言
註五. 皇極經世觀物外篇上
註六. 坤卦文言
註七. 繫辭上傳 第四章
註八. 孫子兵勢篇
註九. 坤卦文言
註十. 困卦 大象傳
註十一. 繫辭下傳 第五章
第五章 변화(變化)와 역(易)
第一節 삼역(三易)
‣궁(窮) 변(變) 통(通) 구(久)
만물(萬物)의 운행(運行)에는 일정(一定)한 한도(限度)가 있어, 이 한도(限度)에 도달(到達)하면 혹(或)은 독양(獨陽)이 되고 혹(或)은 독음(獨陰)이 되어 이 이상(以上) 더 전진(前進)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할 수 없나니 역(易)에는 이를 「궁(窮)」이라 한다. 그러나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은 정(正)하고 대(大)하여 종(終)하면 시(始)가 있어 종궁(終窮)치 아니함으로 궁(窮)하면 스스로 변화(變化)하여 다음의 신단계(新段階)로 이역(移易)하나니, 역(易)에 「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 궁(窮)한즉 변(變)하고 변(變)한즉 통(通)하고 통(通)한즉 구(久)한다」【註一】한바, 물(物)이 궁(窮)하면 대대작용(對待作用)의 운동(運動)에 의(依)하여 궁(窮)을 타개(打開)하여 변(變)하고, 변(變)하면 새로운 진로(進路)가 열려서 통(通)하고 통(通)한 연후(然後)에 능(能)히 구(久)하여 만물(萬物)이 화성(化成)되나니 이를 「궁변통구(窮變通久)」라 한다. 궁(窮)의 변통(變通)은 반드시 대대력(對待力)에 의(依)하여 행(行)하는 것이므로 물(物)이 변통(變通)되는 때는 또한 반드시 대대물(對待物)로 전역(轉易)되어 현실단계(現實段階)와는 상반(相反)되는 신단계(新段階)로 이역(移易)하는지라, 그러므로 역(易)에는 「變化者 進退之象也 = 변화(變化)하는 자(者)는 진퇴(進退)하는 상(象)이라」【註二】하여, 일물(一物)이 퇴(退)하면 그의 대대(對待)되는 일물(一物)이 진(進)하고, 일시대(一時代)가 퇴(退)하면 그의 대대(對待)되는 일시대(一時代)가 진(進)함을 말하니, 이 진퇴(進退)라 함은 음(陰)이 가면 양(陽)이 오고 양(陽)이 가면 음(陰)이 오는 동시(同時)에, 또한 독음(獨陰)은 양(陽)을 구(求)하고 독양(獨陽)은 음(陰)을 구(求)하여 음(陰)과 양(陽)이 한 편(便)으로는 상추(相推)하면서 다른 한 편(便)으로는 상인(相引)하여 써 궁(窮)을 변통(變通)하는 것이며, 변화(變化)에는 변역(變易), 교역(交易), 반역(反易)의 삼형태(三形態)가 있다.【註三】변역(變易)이라 함은 물(物)의 발전과정(發展過程)에 그 성정(性情)이 대대물(對待物)로 전변(轉變)하는 형태(形態)이다. 만물(萬物)의 생장단계(生長段階)는 능동작용(能動作用)을 행(行)하여 용(用)이 되고 성숙단계(成熟段階)는 수동작용(受動作用)을 행(行)하여 체(體)가 되는데, 물(物)의 생장(生長)이 일정(一定)한 단계(段階)에 이르면 반드시 성숙(成熟)하는 것이오, 만일 성숙(成熟)치 못하면 독양(獨陽)으로 되어 궁(窮)이 된다. 그러므로 생장단계(生長段階)가 종(終)하고 스스로 체(體)로 화(化)하여 수동작용(受動作用)으로 변(變)하면서 성숙(成熟)하여 궁(窮)을 변통(變通)하는 것이다. 또 물(物)의 성숙(成熟)이 일정(一定)한 단계(段階)에 이르면 반드시 자체(自體)의 속에서 새로운 용(用)을 생(生)하는 것이오 만일 용(用)을 생(生)치 못하면 독음(獨陰)으로 되어 궁(窮)이 된다. 그러므로 물(物)의 성숙단계(成熟段階)에는 스스로 능동(能動)하는 용(用)을 생(生)하여 궁(窮)을 변통(變通)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능동(能動)하는 용(用)이 변(變)하여 수동(受動)하는 체(體)로 화(化)하고 그 체(體)가 다시 능동(能動)하는 용(用)을 생(生)하여 일소일장(一消一長)하면서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것이 곧 변역(變易)이니, 역(易)에 「 一闔一闢 謂之變 = 한번 합(闔)하고 한번 벽(闢)함을 변(變)이라 이른다」【註四】함이, 변역(變易)의 뜻을 말함이며, 지금에 어느 일물(一物)이 타물(他物)로 전변(轉變)하는 것을 화학적변화(化學的變化)라 하는 것도 또한 변역(變易)의 일현상(一現象)이다.
교역(交易)이라 함은 물(物)의 운동과정(運動過程)에 그 지위(地位)가 상대물(相對物)로 환역(換易)하는 형태(形態)이다. 만물(萬物)의 개체(個體)는 특수성(特殊性)을 가지고 체(體)가 되고 통체(統體)는 보편성(普遍性)을 가지고 용(用)이 되는데, 물(物)의 운동(運動)이 개체(個體)에 편(偏)하면 체(體)만 있고 용(用)이 없어 독음(獨陰)이 되고, 또 통체(統體)에 편(偏)하면 용(用)만 있고 체(體)가 없어 독양(獨陽)이 되며 독음독양(獨陰獨陽)은 모두 궁(窮)이 된다. 그러므로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의 양작용(兩作用)이 서로 교체(交替)하여 궁(窮)을 변통(變通)하나니, 이와 같이 개체(個體)와 통체(統體)가 서로 대류(對流)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것이 곧 교역(交易)이니, 역(易)에 「天地交而萬物通也 = 천지(天地)가 교(交)하여 만물(萬物)이 통(通)한다」【註五】함이, 교역(交易)의 뜻을 말함이며, 지금에 물(物)의 본질(本質)은 변(變)치 아니하고 오직 상여(相與)하는 형태(形態)만 변(變)하는 것을 물리적변화(物理的變化)라 하는 것도 또한 교역(交易)의 일현상(一現象)이다.
반역(反易)이라 함은 물(物)의 안정(安貞)의 속에서 그 대대(對待)되는 물(物)이 발용(發用)하는 때는 반드시 그 본체(本體)되는 안정(安貞)과 도역(倒逆)하여 반생(反生)하는 형태(形態)이다. 만물(萬物)의 안정(安貞)은 현상(現狀)이니 체(體)가 되고, 발용(發用)은 신생(新生)이니 용(用)이 되는데, 물(物)의 변역(變易)하거나 교역(交易)하는 과정(過程)에 신물(新物)이 발(發)하는 때에는 그 신물(新物)의 작용(作用)은 반드시 안정체(安貞體)의 형태(形態)와 상반(相反)하는 것이오, 만일 상반(相反)치 아니하면 이는 현상(現狀)의 인순(因循) 또는 연장(延長)이오, 신용(新用)이 되지 못하여 그 안정체(安貞體)는 독음(獨陰)으로 되어 궁(窮)이 된다. 그러므로 안정체(安貞體)의 속에서 발용(發用)이 반생(反生)하여 궁(窮)을 변통(變通)하나니 이와 같이 현상(現狀)의 속에서 신사물(新事物)이 현상(現狀)의 형태(形態)와 도역(倒逆)하여 반생(反生)하는 것이 곧 반역(反易)이오 역(易)에 「剛反 = 강(剛)이 반(反)한다」【註六】함이, 반역(反易)의 뜻을 말함이며, 지금에 생물체(生物體)에 변화(變化)가 일어나서 새로운 작용(作用)을 생(生)함을 생리적변화(生理的變化)라 하는 것도 또한 반역(反易)의 일현상(一現象)이다.
삼역(三易)의 형태(形態)를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의 관계(關係)로써 보면, 변역(變易)은 시간적(時間的) 소장(消長)을 말함이오, 교역(交易)은 공간적(空間的) 교착(交錯)을 말함이오, 반역(反易)은 공간(空間)의 속에 시간(時間)이 유행(流行)하고 있음을 말함이다. 그러나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은 호근(互根)하고 있으므로, 양자(兩者)는 매매(每每) 교호작용(交互作用)하고 있는 것이다.
‣삼역(三易)의 혼륜(渾淪)
이제 삼역혼륜(三易渾淪)의 상(象)을 사시(四時)의 변화(變化)로써 보건대 십일월(十一月) 동지(冬至)에 태양(太陽)의 위(位)가 북귀(北歸)하면서 일양(一陽)이 하(下)에서 생(生)하여 일양(一陽) 오음(五陰)의 복괘(復卦)가 되고 그것이 점장(漸長)하여 십이월(十二月) 대한(大寒)에 이양사음(二陽四陰)의 임괘(臨卦)가 되어 한위(寒威)가 최성(最盛)하나 양(陽)의 대림(大臨)할 추기(樞機)가 이미 발(發)하고, 정월(正月) 우수(雨水)에 삼양삼음(三陽三陰)의 태괘(泰卦)가 되어 양세(兩勢)가 상적(相敵)하나 양(陽)의 성장(成長)하는 대세(大勢)가 이미 결정(決定)되어 만물(萬物)이 통태(通泰)하고, 이월(二月) 춘분(春分)에 사양이음(四陽二陰)의 대장괘(大壯卦)가 되어 춘난(春暖)을 생(生)하고, 삼월(三月) 곡우(穀雨)에 오양일음(五陽一陰)의 쾌괘(夬卦)가 되어 장차(將且) 상(上)에 잔존(殘存)한 일음(一陰)을 결(決)하려 하는데, 천지(天地)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일순간(一瞬間)도 독양(獨陽)이 될 수 없는지라, 그러므로 사월(四月) 소만(小滿)에는 음(陰)이 종진(終盡)하는 것이 아니오 도리어 상(上)에 장종(將終)하려는 일음(一陰)이 있고 하(下)에 장시(將始)하려는 일음(一陰)이 있어 상하이음(上下二陰)이 중간(中間)의 사양(四陽)을 포함(包涵)하여 대과괘(大過卦)가 되니, 이는 양(陽)의 극성단계(極盛段階)로부터 음(陰)의 배태단계(胚胎段階)로 넘어가는 과도기(過渡期)의 현상(現象)이오, 이 까닭에 사월(四月)은 비록 양성(陽盛)의 시기(時期)로되 도리어 음기(陰氣)가 농후(濃厚)하여 소만(小滿)의 절후(節候)가 되니 소만(小滿)이라 함은 음기(陰氣)가 만영(滿盈)함을 말함이니, 이는 음(陰)이 궁(窮)하여 장종(將終)하려 하는 때에 최후(最後)의 반발(反撥)을 행(行)하는 것이며, 한의학(漢醫學)에는 이를 「 陽極似陰 = 양(陽)이 극(極)하매 음(陰)과 같다」하는 것이오, 사회(社會)로써 보면 현존세력(現存勢力)이 패퇴(敗退)하기 직전(直前)에 더욱 고수자보(固守自保)함과 같음이다. 또 오월(五月) 하지(夏至)에 태양(太陽)의 위(位)가 남귀(南歸)하면서 일음(一陰)이 하(下)에서 생(生)하여 일음오양(一陰五陽)의 구괘(姤卦)가 되고, 그것이 점장(漸長)하여 유월(六月) 대서(大暑)에 이음사양(二陰四陽)의 둔괘(遯卦)가 되어, 서위(暑威)가 최성(最盛)하나 양(陽)의 둔퇴(遯退)하는 징후(徵候)가 이미 나타나고, 칠월(七月) 처서(處暑)에 삼음삼양(三陰三陽)의 비괘(否卦)가 되어 양세(兩勢)가 상적(相敵)하나 양(陽)의 퇴처(退處)하는 대세(大勢)가 이미 결정(決定)되어 만물(萬物)이 비색(否塞)하고, 팔월(八月) 추분(秋分)에 사음이양(四陰二陽)의 관괘(觀卦)가 되어 추량(秋凉)을 생(生)하고, 구월(九月) 상강(霜降)에 오음일양(五陰一陽)의 박괘(剝卦)가 되어 장차(將且) 상(上)에 잔존(殘存)한 일양(一陽)을 박(剝)하려 하는데, 천지(天地)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일순간(一瞬間)도 독음(獨陰)이 될 수 없는지라, 그러므로 시월(十月) 소설(小雪)에는 양(陽)이 종진(終盡)하는 것이 아니오 도리어 상(上)에 장종(將終)하려는 일양(一陽)이 있고 하(下)에 장시(將始)하려는 일양(一陽)이 있어 상하이양(上下二陽)이 중간(中間)의 사음(四陰)을 포함(包涵)하여 이괘(頤卦)가 되니 이는 음(陰)의 극성단계(極盛段階)로부터 양(陽)의 배태단계(胚胎段階)로 넘어가는 과도기(過渡期)의 현상(現象)이오, 이 까닭에 시월(十月)은 비록 음성(陰盛)의 시기(時期)이로되 도리어 양기(陽氣)가 발산(發散)하여 소춘(小春)의 기후(氣候)가 되니, 소춘(小春)이라 함은 온난(溫暖)함이 춘일(春日)과 같다 함이니, 이는 양(陽)이 궁(窮)하여 장종(將終)하려 하는 때에 최후(最後)의 반발(反撥)을 행(行)하는 것이며, 한의학(漢醫學)에는 이를 「陰極似陽 = 음(陰)이 극(極)하매 양(陽)과 같다」하는 것이오, 사회(社會)로써 보면 현존세력(現存勢力)이 패퇴(敗退)하기 직전(直前)에 최후(最後)의 반격(反擊)을 행(行)함과 같음이다. 그리하여 이 사시변화(四時變化)의 과정(過程)에 한(寒)이 서(暑)로 변(變)하고 서(暑)가 한(寒)으로 변(變)함은 변역(變易)의 상(象)이오, 한번은 양(陽)이 용사(用事)하고 한번은 음(陰)이 용사(用事)하여 지위(地位)가 상역(相易)함은 교역(交易)의 상(象)이오, 음(陰)의 속에서 양(陽)이 반생(反生)하고 양(陽)의 속에서 음(陰)이 반생(反生)함은 반역(反易)의 象이다.
삼역(三易)은 정(精)과 기(氣)가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하는 삼극(三極)의 도(道)에 의(依)하여 행(行)하는 것이므로, 그 형태(形態)는 비록 서로 다르나, 또한 서로 혼륜(渾淪)하여 사물(事物)에 어떠한 변화(變化)가 일어나는 때는 반드시 삼역(三易)의 형태(形態)가 함께 나타나는 것이니, 이 까닭에 사물(事物)의 변화과정(變化過程)에는 껍질 속에 또 껍질이 있고 알속에 또 알이 있어, 복잡미묘(複雜微妙)한 양상(樣相)을 나타내는 것이다.
註一. 繫辭下傳 第二章
註二. 繫辭上傳 第二章
註三, 삼역(三易)의 상(象)을 괘(卦)로써 보면 음(陰)이 양(陽)으로 변(變)하고 양(陽)이 음(陰)으로 변(變)함은 변역(變易)이오, 상하괘(上下卦)의 위(位)가 상역(相易)함은 교역(交易)이오, 괘(卦)가 전도(顚倒)하여 타괘(他卦)로 됨은 반역(反易)이다. 둔괘(屯卦)의 예(例)로써 보면 음효(陰爻)와 양효(陽爻)가 서로 변(變)하여 정괘(鼎卦)가 됨은 변역(變易)이오, 감(坎)과 진(震)의 위치(位置)가 환역(換易)하여 해괘(解卦)가 됨은 교역(交易)이오, 괘(卦)가 도역(倒逆)하여 몽괘(蒙卦)가 됨은 반역(反易)이다.
註四. 繫辭上傳 第十一章
註五. 泰卦彖傳
註六. 復卦彖傳
第二節 변역(變易)
‣소장운동(消長運動)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그 운행과정(運行過程)에 반드시 일소일장(一消一長)이 있으니 이 소장운동(消長運動)이 곧 변역(變易)의 형태(形態)이라, 우리가 천상(天象)을 앙관(仰觀)하고 지형(地形)을 부찰(俯察)하고 다시 세상(世上)의 인사(人事)를 관찰(觀察)하매, 하나도 고정(固定)되어 있는 것이 없고 모두 소장운동(消長運動)을 행(行)하여 흥(興)한 자(者)가 망(亡)치 아니함이 없고 성(盛)한 자(者)가 쇠(衰)치 아니함이 없다. 역(易)에「日中則昃 月盈則食 天地盈虛 與時消息 而况於人乎 况於鬼神乎 = 일(日)이 중(中)한즉 측(昃)하고 월(月)이 영(盈)한즉 식(食)하여 천지(天地)의 영허(盈虛)도 시(時)로 더불어 소(消)하고 식(食)하곤 하물며 인(人)이며 하물며 귀신(鬼神)이랴」【註一】하여, 천지(天地)에도 중측영허(中昃盈虛)하는 소장운동(消長運動)이 있는데 어찌 인사(人事)와 귀신(鬼神)만이 흥망(興亡)과 성쇠(盛衰)가 없으랴 함을 말하고, 또 「無平不陂 無往不復 = 평(平)한 것이 피(陂)치 아니함이 없고 왕(往)한 것이 복(復)치 아니함이 없다」【註二】하여, 평(平)한 자(者)는 반드시 허물어지고 왕(往)한 자(者)는 반드시 내복(來復)한다. 함을 말함이니, 그러므로 천지만물(天地萬物) 내지(乃至) 인생사회(人生社會)는 부단(不斷)히 변역운동(變易運動)을 행(行)하여 상주(常住)함이 없는 것이다.
물(物)의 장(長)함은 용(用)이되어 발현작용(發顯作用)을 행(行)하고 그의 소(消)함은 체(體)가 되어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하는지라, 물(物)의 생장(生長)이 일정(一定)한 한도(限度)에 이르면 더 성장(成長)할수 없는 계선(界線)에 도달(到達)하나니, 만물(萬物)의 생장(生長)에는 각기(各其) 종류(種類)에 따라서 대체(大體)로 일정(一定)한 한도(限度)가 있어, 초목조수(草木鳥獸) 등(等)이 비록 그 생육방법(生育方法)에 따라서 다소(多少)의 변화(變化)는 있을 수 있으나 역시(亦是) 무제한(無制限)한 생장(生長)은 있을 수 없는 것이 그 일례(一例)이다. 그리하여 이 제한(制限)된 한도(限度)에 이르면 스스로 변(變)하여 새 단계(段階)로 발전(發展)하기 위(爲)하여 생장(生長)을 정지(停止)하고 체(體)로 변(變)하여 성숙작용(成熟作用)으로 전화(轉化)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物)의 생장(生長)이 어느 한도(限度)에 이르면 반드시 그 성정(性情)이 변(變)하는 것이며, 성숙(成熟)한 체(體)는 자체(自體)와 대대(對待)되는 새로운 용(用)을 생(生)하면서 소멸(消滅)의 길로 향(向)하나니 이가 물(物)의 소장운동(消長運動)이다.
사람의 일생(一生)에도 소장(消長)이 있으니, 생장기(生長期)의 유소시대(幼少時代)나 청년시대(靑年時代)는 부모(父母)의 비호하(庇護下)에 양육(養育)되어 용(用)의 작용(作用)을 행(行)하여 생발(生發)의 기(氣)가 약동(躍動)하며 전진(前進)이 있고 후퇴(後退)가 없으므로 청년(靑年)들은 항상(恒常) 이상(理想)을 추구(追求)하고 그 생각하고 말하는바가 대개(大槪) 미래사(未來事)이다. 고금(古今)의 역사(歷史)에 징(徵)하건대 사회(社會)의 혁명운동(革命運動)은 대개(大槪) 청년층(靑年層)이 그 중심(中心)이 되고 있으니 이는 청년기(靑年期)는 육체(肉體)뿐만 아니라 정신적(精神的)으로도 성장과정(成長過程)에 있으므로 현실사회(現實社會)의 복잡(複雜)하고 분화(分化)된 형태(形態)를 고념(顧念)치 아니하고 험난(險難)을 범(犯)하고 일로돌진(一路突進)하는 생기(生氣)가 있는 까닭이다. 청년기(靑年期)가 장차(將且) 끝나고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이 성숙(成熟)하려 하는 때는 곧 청년(靑年)의 궁(窮)이라, 궁(窮)이 변통(變通)되어 성인기(成人期)에 이르면 자녀(子女)를 생산(生産)하고 그의 양육(養育)을 체험(體驗)하여 비로소 자기(自己)를 양육(養育)하여 주신 부모(父母)의 노고(勞苦)를 알게 되고, 실사회(實社會)의 격심(激甚)한 경쟁장(競爭場)에 나가서 냉엄(冷嚴)한 비판(批判)을 받고 비로소 현실(現實)과 이상(理想)과의 거리(距離)가 상원(相遠)함을 알게 되나니 이는 용(用)이 성숙(成熟)하여 체(體)로 변(變)하기 시작(始作)하고 현실(現實)과 이상(理想)과를 조화(調和)하는 단계(段階)이다. 이 단계(段階)로부터 노쇠기(老衰期)로 들어가나니, 노쇠기(老衰期)는 체질(體質)이 쇠약(衰弱)함과 함께 정신(精神)도 점차(漸次)로 후퇴(後退)하여 생발약동(生發躍動)하는 기(氣)가 적고 주(主)로 과거(過去)의 전통(傳統)과 경험(經驗)을 중(重)히 여기므로 그 생각하고 말하는바가 대개(大槪) 과거사(過去事)이다. 혹시(或是) 청년(靑年)으로서 전진(前進)하는 기개(氣槩)를 가지지 못한 자(者)는 청년(靑年)의 노인(老人)이오 또 노인(老人)으로서 자자전진(孜孜前進)하는 자(者)는 노인(老人)의 청춘(靑春)이다.
 
‣보수(保守)와 혁신(革新)
사회(社會)의 변화(變化)로 써 보면 제도(制度)의 생장성숙(生長成熟)은 사회(社會)의 변역(變易)이라. 그 제도(制度)가 사회(社會)의 생존법칙(生存法則)에 순응(順應)하고 민중(民衆)의 실생활(實生活)에 적응(適應)하여 민심(民心)이 활기(活氣)를 띠고 사회(社會)의 흥륭(興隆)과 복리(福利)를 재래(齎來)한 시기(時期)는 사회(社會)의 성장단계(成長段階)이다. 그러나 사회(社會)는 한 생물(生物)이라, 생장작용(生長作用)이 부단(不斷)히 진행(進行)하면 역시(亦是) 폐구(弊舊)하는 부면(部面)이 생(生)하여 민중(民衆)의 실생활(實生活)에 적응(適應)치 못한다. 이러한 때에는 마치 잠선(蠶蟬) 등(等)이 성장(成長)하기 위(爲)하여 탈피(脫皮)하고 대인(大人)은 소아시대(少兒時代)의 의복(衣服)을 입을 수 없음과 같이 사회(社會)의 제도(制度)도 그에 응(應)하여 변통(變通)치 아니하면 안되나니, 이는 이제까지 사회(社會)의 흥륭(興隆)을 재래(齎來)하던 현제도(現制度)는 도리어 사회(社會)의 생존(生存)을 조해(阻害)하는 장애물(障碍物)이 되는 까닭이오, 이를 제도(制度)의 궁(窮)이라 한다. 그러나 정치(政治)의 기성세력(旣成勢力)은 이미 안정(安定)하고 있으므로 방(方)하고 정(靜)하여 대개(大槪) 현제도(現制度)에 구안(苟安)하고 더 향상(向上)할 이상(理想)을 가지지 못하나니, 이를 보수(保守)라 하고, 보수작용(保守作用)의 발생(發生)이 곧 사회(社會)가 성숙(成熟)하여 용(用)이 체(體)로 변(變)하는 단계(段階)이며 이 단계(段階)에는 반드시 경화(硬化)․정체(停滯)․퇴폐(頹廢) 등(等) 경향(傾向)이 나타나는 것이다.
방(方)하고 정(靜)한 모체(母體)는 반드시 원(圓)하고 동(動)하는 용(用)을 생(生)하는지라, 보수사회(保守社會)는 스스로 자체(自體)를 변역(變易)하려하는 혁신(革新)의 용(用)을 배태(胚胎)하면서 또한 자체(自體)를 항구(恒久)히 유지(維持)하려 하는 본능(本能)에 의(依)하여 부단(不斷)히 신생(新生)한 용(用)을 제어(制御)하려 하나니, 자체(自體)가 분만(分娩)한 자녀(子女)를 자체(自體)가 극제(克制)하는 것은 보수사회(保守社會)의 일대모순(一大矛盾)이라, 보수사회(保守社會)는 이 모순(矛盾)을 자각(自覺)치 못하고 혁신작용(革新作用)을 극압(克壓)하면서 스스로 일보(一步) 일보(一步) 소멸(消滅)의 길로 향(向)하는 것이니, 이것이 사회(社會)의 소장운동(消長運動)의 원리(原理)이다. 그러나 사회(社會)는 지잡지동(至雜至動)한지라 그 변역과정(變易過程)에는 천형만태(千形萬態)의 현상(現象)이 나타나서 이 원리(原理)대로 진행(進行)되는 일은 극(極)히 적고, 다만 어느 사회(社會)든지 보수(保守)와 혁신(革新)이 대대(對待)하고 있는 것만은 사회(社會)의 생존법칙상(生存法則上) 피(避)할 수 없는 일이다. 즉(卽) 소장운동(消長運動)에는 독음(獨陰)과 독양(獨陽)이 없는지라, 생장과정(生長過程)에 있는 신사회(新社會)에도 반드시 구사회(舊社會)의 여세(餘勢)가 어느 기간(期間)을 잔존(殘存)하여 신사회(新社會)의 모체(母體)로서 서로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하고 구사회(舊社會)의 여세(餘勢)가 완전(完全)히 소멸(消滅)하는 시기(時期)에 이르면 신사회(新社會)는 독양(獨陽)이 되는지라, 이에 모체(母體)로부터 이탈(離脫)하는 동시(同時)에 자체(自體)가 차대(次代)의 부모(父母)가 될 모체(母體)로 화(化)하여 성숙단계(成熟段階)로 들어가서 보수사회(保守社會)로 전화(轉化)하며, 그 속에 다시 혁신(革新)의 용(用)을 생(生)하여 또한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하나니, 이 까닭에 사회(社會)에는 영원(永遠)히 보수(保守)와 혁신(革新)이 대대(對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社會)가 보수(保守)하는 체(體)로 화(化)한다던가 또는 혁신(革新)의 용(用)이 생(生)한다던가 하는 것은, 그 화(化)하는 날이나 생(生)하는 날에 비로소 화생(化生)한 것이 아니오, 대대조직(對待組織)의 원리(原理)에 의(依)하여 사회내부(社會內部)에는 처음부터 보수(保守)와 혁신(革新)의 이요소(二要素)가 포함(包含)되고 있다가 시(時)의 추이(推移)와 환경(環境)의 변천(變遷)에 따라서 그 화생(化生)하는 날에 비로소 발현(發顯)되는 것이니, 고대사회(古代社會)의 철인정치(哲人政治)는 이미 후일(後日)에 귀족사회(貴族社會)로 변질(變質)할 요소(要素)를 가지고 있고, 봉건사회(封建社會)의 경제조직(經濟組織)은 이미 후일(後日)에 자본주의사회(資本主義社會)를 산출(産出)할 요소(要素)를 가지고 있은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회(社會)를 물론(勿論)하고 용(用)으로서 신생(新生)한 사회(社會)는 후일(後日)에 반드시 그와 대대(對待)되는 체(體)로 변질(變質)하는 것이오, 체(體)로 화(化)한 모체사회(母體社會)는 또한 반드시 그와 대대(對待)되는 용(用)을 포장(包藏)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元來) 보수(保守)라 함은 현실(現實)을 유지(維持)하려 함이오, 혁신(革新)이라 함은 이상(理想)을 실현(實現)하려 함이니, 사회(社會)의 현실(現實)을 무시(無視)하는 이상(理想)이 있을 수 없고, 또 이상(理想)이 없는 사회(社會)는 스스로 정체(停滯)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수(保守)와 혁신(革新)은 반드시 대대관계(對待關係)를 가지고 사회내(社會內)에 호근(互根)하고 있지 아니하면 안 된다. 그런데 소위(所謂) 보수중(保守中)에는 흔히 현제도(現制度)에 의(依)하여 권세(權勢)와 이익(利益)을 향유(享有)하고 있는 부층(部層)이 그 기성(旣成)한 권세(權勢)와 기득(旣得)한 이익(利益)을 옹호(擁護)하기 위(爲)하여, 현제도중(現制度中)의 불합리(不合理)한 부분(部分)까지를 고수(固守)하는 일이 있으니, 이러한 행위(行爲)는 보수(保守)의 범위(範圍)를 넘어서 사욕(私慾)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오, 또 소위(所謂) 혁신중(革新中)에는 흔히 현제도(現制度)에 대(對)한 불만(不滿)이 감정면(感情面)으로 달려가는 부층(部層)이 그 쾌감(快感)을 얻기 위(爲)하여 현제도중(現制度中)의 장점(長點)까지를 파괴(破壞)하는 일이 있으니, 이러한 행위(行爲)는 혁신(革新)의 범위(範圍)를 넘어서 사감(私感)의 길로 나가는 것이다. 보수(保守)라거나 혁신(革新)이라 함은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생긴 사상(思想)이라, 이 범위(範圍)를 넘으면 이미 보수(保守)도 아니오 혁신(革新)도 아니니, 전기(前記)한 사욕(私慾)과 사감(私感)은 이 범위(範圍)를 넘어서 사회(社會)의 생존(生存)을 조해(阻害)하는 악행위(惡行僞)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보수(保守)와 혁신(革新)의 실례(實例)를 우리 사회(社會)에서 찾아 보건대, 농촌(農村)은 소박(素朴)하고 도시(都市)는 예민(銳敏)한지라, 고래(古來)의 전통(傳統)과 미풍(美風)은 대개(大槪) 농촌(農村)에서 볼 수 있으니, 이를 보수(保守)라 할 수 있고, 신문화(新文化)의 창조(創造)와 외래사조(外來思潮)의 수입(輸入)은 대개(大槪) 도시(都市)에서 볼 수 있으니 이를 혁신(革新)이라 할 수 있는데, 농촌(農村)의 소박(素朴)이 과도(過度)하여 흔히 신문화(新文化)를 거부(拒否)하는 까닭에 완고(頑固)하다는 비난(非難)을 듣게 되고, 도시(都市)의 예민(銳敏)이 또한 과도(過度)하여 흔히 전통(傳統)을 무시(無視)하는 까닭에 부박(浮薄)하다는 비난(非難)을 듣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소박(素朴)과 예민(銳敏)은 상반(相反)하면서 또한 상구(相求)하여 대체(大體)로 자연(自然)스러운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社會)의 변역과정(變易過程)에는 항상(恒常) 보수(保守)와 혁신(革新)의 이대조류(二大潮流)가 대대(對待)하고 있음은 필연(必然)한 추세(趨勢)이오, 이로 인(因)하여 사회(社會)에는 운동(運動)이 지식(止息)치 아니하고 인류력사(人類歷史)는 유구(悠久)히 흘러가는 것이다. 그 역사(歷史)의 흘러가는 과정(過程)에 신고(新故)가 대사(代謝)하는 제(際)에는, 흔히 소(小)하기는 마찰(摩擦)․충돌(衝突)과, 대(大)하기는 유혈(流血)의 화(禍)가 일어나서, 무한(無限)한 고통(苦痛)을 겪는 일이 적지 아니하다. 그러나 태아(胎兒)가 출산(出産)될 때에 모체(母體)의 수렴작용(收斂作用)과 태아(胎兒)의 출현작용(出顯作用)의 상극(相克)으로 인(因)하여 고통(苦痛)스러운 진통(陣痛)이 일어나되, 이는 병적(病的)이 아니오 곧 인체(人體)의 생리적(生理的) 작용(作用)임과 같이, 신사회(新社會)의 발생(發生)에 제(際)한 고통(苦痛)도 또한 사회(社會)의 변역과정(變易過程)의 한 생리적(生理的) 현상(現象)이다.
‣양극(兩極)과 중간(中間)
물(物)의 변역(變易)은 대대(對待)되는 양극(兩極)으로 왕래(往來)하고 있으므로, 그 양극(兩極)의 사이에는 중간적(中間的) 중화상태(中和狀態)가 생(生)하여 그 변화형태(變化形態)는 더욱 착잡(錯雜)하여 지는 것이다. 동(冬)의 한(寒)과 하(夏)의 서(暑)를 대대량극(對待兩極)이라 하면, 춘(春)의 난(暖)과 추(秋)의 양(凉)은 그의 중간적(中間的) 중화(中和)이다. 한서(寒暑)가 대대(對待)하여 물(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과정(過程)에 난(暖)과 양(凉)은 생(生)치 아니할 수 없고, 또 생존작용상(生存作用上) 생(生)치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므로, 한서난량(寒暑暖凉)이 혼륜(渾淪)하여 일세(一歲)를 이루는 것이다. 사회(社會)도 그 변역과정(變易過程)에 보수(保守)와 혁신(革新)의 양극(兩極)이 생(生)하고 양극(兩極)의 사이에 중간적(中間的) 상태(狀態)가 생(生)하는데, 중간(中間)이라 함은 대대작용(對待作用)이 없고 양체(兩體)의 경계(境界)에 과재(跨在)하고 양작용(兩作用)의 교차선(交叉線)에 왕래(往來)하여, 가(可)히 써 상(上)할 수도 있고 가(可)히 써 하(下)할 수도 있고, 또 가(可)히 써 좌(左)할 수도 있고 가(可)히 써 우(右)할 수도 있는 처지(處地)에 입(立)한지라, 항상(恒常) 그 착족지(着足地)가 요동(搖動)하여 사침사부(乍沈乍浮)하고 좌견우인(左牽右引)하며, 혹(或)은 구동투합(苟同偸合)하는 모호(糢糊)한 태도(態度)로써 구차(苟且)히 그 중앙점(中央點)을 절충(折衷)하는 일도 있으니, 역(易)에는 이를 「혹(或)」「여(如)」「진퇴(進退)」「차차(次且)」등(等)의 말로써 표현(表現)하고 있다. 양극(兩極)은 한도(限度)를 과섭(過涉)하여 궁(窮)함이오, 중간(中間)은 한도(限度)에 불급(不及)하여 생장수장(生長收藏)의 공(功)을 완수(完遂)치 못함이라, 천지(天地)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한도(限度)를 과섭(過涉)한 때에는 스스로 변통(變通)되어 중간(中間)으로 향(向)하고 한도(限度)에 불급(不及)한 때에는 또한 스스로 변통(變通)되어 극(極)으로 향(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극(兩極)과 중간(中間)은 고정불변(固定不變)하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극(極)에서 중간(中間)으로 향(向)하고 다시 중간(中間)에서 극(極)으로 향(向)하여 진퇴왕래(進退往來)하나니, 마치 한(寒)이 극(極)하면 온(溫)으로 전화(轉化)하고 온(溫)은 서(暑)로 발전(發展)하며, 서(暑)가 극(極)하면 양(凉)으로 변화(變化)하고 양(凉)은 다시 한(寒)으로 발전(發展)함과 같음이다.
사회(社會)는 부단(不斷)히 신(新)과고(故)․보수(保守)와혁신(革新)․현실(現實)과이상(理想)․급진(急進)과점진(漸進)․타협(妥協)과비타협(非妥協) 등(等)의 양극(兩極)과 또 그 중간(中間)을 왕래(往來)하고 있는데, 그 왕래(往來)하는 과정(過程)에 전단계(前段階)로부터 다음 단계(段階)로 이행(移行)할 때에는 그를 적의(適宜)히 재제(裁制)하여 사시(四時)의 대사(代謝)와 같이 변통(變通)하여야 하나니, 변통(變通)이라 함은 새로운 단계(段階)를 건설(建設)하는, 일종(一種)의 창조성(創造性)을 가지는 일이라, 그를 행(行)하기는 용이(容易)한 일이 아니다. 일상생활(日常生活)에 있어서도 생존법칙(生存法則)에 합(合)하는 변통(變通)을 행(行)함은 모두 창조(創造)라 할 수 있으나, 사회(社會)는 거대(巨大)한 기구(機構)이라, 그를 변통(變通)함은 거역(巨役)의 창조사업(創造事業)이오, 이 사업(事業)은 창조(創造)의 대재(大才)를 가진 자(者)만이 능(能)히 할 수 있는 것이니 아국(我國)이 오랫동안 국문(國文)을 가지지 못하다가 세종왕(世宗王)에 이르러 비로소 창제(創製)함과 같은 것이 그 현저(顯著)한 일례(一例)이다. 역(易)에 「皇帝堯舜氏作 通其變 使民不倦 神而化之 使民宜之 皇帝堯舜 垂衣裳而天下治 盖取諸乾坤 = 황제요순씨(皇帝堯舜氏)가 작(作)하여 그 변(變)을 통(通)하여 민(民)으로 하여금 권(倦)치 아니하게 하고 신(神)하여 화(化)하게 하여 민(民)으로 하여금 의(宜)케한지라, 황제요순(皇帝堯舜)이 의상(衣裳)을 수(垂)하되 천하(天下)가 치(治)하니 대개(大槪) 건곤(乾坤)에서 취(取)함이라」【註三】하니, 황제요순(皇帝堯舜)의 시대(時代)는 상고(上古)보다 민중(民衆)의 실생활(實生活)이 변화(變化)함으로 상고(上古)의 정치(政治)를 습용(襲用)하면 제도(制度)가 궁(窮)하여 인심(人心)이 권태(倦怠)하고 민생(民生)이 소의(所宜)를 얻지 못한다. 대개(大槪) 정치(政治)는 시의(時宜)에 맞지 아니하는 구습(舊習)을 고수(固守)하면 인심(人心)이 권태(倦怠)함으로, 민중(民衆)이 염기(厭忌)치 아니하는 바를 강(强)혀(억지로) 폐거(廢去)치 아니하고, 민중(民衆)이 편안(便安)치 아니하는 바를 강(强)혀(억지로) 시행(施行)치 아니하고, 오직 제도(制度)의 궁(窮)함을 변통(變通)하면 족(足)한지라, 그러므로 황제요순(皇帝堯舜)이 그를 변통(變通)하여 민심(民心)에 순응(順應)한 것이다. 신(神)이라 함은 민중(民衆)이 그 제도(制度)를 유행(由行)함이 가장 자연(自然)스러워서 마치 사람이 공기(空氣)를 호흡(呼吸)하고 있으되 스스로 그 호흡(呼吸)함을 알지 못함과 같음이오, 화(化)라 함은 아무 강제(强制)도 없고 권면(勸勉)도 없이 민중(民衆)이 스스로 낙종(樂從)하고 실천(實踐)함이니, 황제요순(皇帝堯舜)은 신화정치(神化政治)를 행(行)한 까닭에 천하(天下)가 스스로 치평(治平)하니, 이는 정치원리(政治原理)를 건곤(乾坤)의 이간원리(易簡原理)에서 취(取)한 까닭이다. 역(易)에는 또 「天地革而四時成 湯武革命 順乎天而應乎人 = 천지(天地)가 혁(革)하여 사시(四時)가 성(成)하고 탕무(湯武)가 혁명(革命)하여 천(天)에 순(順)하고 인(人)에 응(應)하다」【註四】하니, 천지(天地)가 변혁(變革)함으로 사시(四時)가 생(生)하여 만물(萬物)을 생장수장(生長收藏)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이 행(行)하고, 은(殷)의 탕왕(湯王)과 주(周)의 무왕(武王)이 혁명(革命)을 일으켜서 천도(天道)에 순(順)하고 인심(人心)에 응(應)하여 생존법칙(生存法則)에 맞는 정치(政治)를 행(行)한 까닭에 사회(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완수(完遂)한 것이다. 황제요순(皇帝堯舜)과 은탕(殷湯) 주무(周武)는 공자(孔子)의 가장 숭앙(崇仰)하는 성인(聖人)이라, 이는 성인(聖人)의 정치(政治)가 항상(恒常) 시운(時運)에 응(應)하여 사회(社會)의 궁(窮)을 변통(變通)하고, 또 천도(天道)와 인심(人心)에 순응(順應)하여 항상(恒常) 시의(時宜)에 합(合)하는 정치(政治)를 행(行)함을 찬양(讚揚)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社會)의 궁(窮)을 변통(變通)하는 술(術)이 적의(適宜)치 못하면, 혹(或)은 체(體)의 본질(本質)을 훼상(毁傷)하고 혹(或)은 부실(不實)한 용(用)을 출산(出産)하여 폐해(弊害)를 후일(後日)에 남기는 것이다. 아국(我國)의 정치사(政治史)를 보건대, 고려(高麗)는 계단(契丹) 몽고(蒙古) 등(等) 강적(强敵)과 수십차(數十次) 항전(抗戰)하던 강국(强國)이라, 중엽(中葉) 이후(以後)에 무신발호(武臣跋扈)의 폐(弊)가 있으므로 이조(李朝)는 그를 변통(變通)하기 위(爲)하여 문(文)을 숭상(崇尙)하고 무(武)를 천대(賤待)하다가 도리어 문약(文弱)의 폐(弊)에 빠져서 외모(外侮)를 막을 힘을 전연상실(全然喪失)하니, 이는 체(體)의 본질(本質)을 훼상(毁傷)함이오, 또 고려시대(高麗時代)는 여러 종교(宗敎)가 병존(倂存)하고 대체(大體)로 사상(思想)의 자유(自由)를 가지고 있어 사회(社會)가 활기(活氣)를 띠더니 그 말엽(末葉)에 불교부패(佛敎腐敗)의 폐(弊)가 있으므로 이조(李朝)는 그를 변통(變通)하기 위(爲)하여 정주학(程朱學)으로써 국민사상(國民思想)을 통일(統一)하고 그 이외(以外)의 학설(學說)은 모두 이단(異端)이라 하여 일체배척(一切排斥)하다가 학풍(學風)이 편협(偏狹)하고 사상(思想)의 침체(沈滯)를 초래(招來)하니, 이는 부실(不實)한 용(用)을 출산(出産)함이다.
이조(李朝)의 중종(中宗)때에 정문익(鄭文翼)과 조정암(趙靜庵)의 정책(政策)이 상위(相違)하고, 선조(宣祖)때에 이동고(李東皐)와 이율곡(李栗谷)의 의견(意見)이 불합(不合)하니, 이 사인(四人)은 모두 일대(一代)의 명현(名賢)으로서 거기에 숙선숙부(孰善孰否)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상이(相異)한 바는 문익(文翼)과 동고(東皐)는 노련(老鍊)한 정치가(政治家)이라 청탁(淸濁)을 병탄(倂呑)하는 도량(度量)이 있어 현실(現實)을 중시(重視)하고, 정암(靜菴)과 율곡(栗谷)은 신진기예(新進氣銳)의 유사(儒士)이라, 청신(淸新)을 숭상(崇尙)하고 타협(妥協)을 싫어하는 기개(氣槩)가 있어 이상(理想)을 동경(憧憬)함이라, 이로써 보면 문익(文翼)과 동고(東皐)는 보수(保守)라 할 수 있고, 정암(靜菴)과 율곡(栗谷)은 혁신(革新)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익(文翼)이 혁신(革新)의 건백(建白)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암주(暗主)의 밑에서 시세(時勢)를 참작(參酌)하여 점진(漸進)하려 한 것이오, 동고(東皐)가 역시(亦是) 혁신(革新)을 기피(忌避)한 것이 아니라, 신립(新立)한 유주(幼主)를 보도(輔導)하면서 일신(日新)하려 한 것이니, 이 사현(四賢)의 행적(行蹟)은 사회(社會)의 변통기(變通期)에 처(處)하여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하는 길이 얼마나 간험(艱險)하다는 것을 우리 후인(後人)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註一. 豐卦 彖傳
註二. 泰卦 九三爻辭
註三. 繫辭下傳 第二章
註四. 革卦彖傳
第三節 교역(交易)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와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정(精)과 기(氣)가 혼륜(渾淪)하고 있으나, 개체적(個體的)으로는 각자고유(各自固有)한 성정(性情)에 의(依)하여 기(氣)의 성(性)은 상(上)을 친(親)하여 등상(騰上)하고 정(精)의 성(性)은 하(下)를 친(親)하여 추하(墜下)하여 상하(上下)의 위(位)가 정(定)하니, 이는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이니 역(易)에 「天地定位 = 천지(天地)가 위(位)를 정(定)한다」【註一】함이 이것이오, 친상성(親上性)이 있는 기(氣)가 상(上)에 있으면 지(止)하여 하(下)에 하강(下降)치 아니하고, 친하성(親下性)이 있는 정(精)이 하(下)에 있으면 입(入)하여 상(上)에 상승(上升)치 아니하고, 기(氣)와 정(精)이 격부(隔否)하여 상교(相交)치 못하고 생존작용(生存作用)이 행(行)치 못함으로, 통체적(統體的)으로는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가 그 지위(地位)를 상역(相易)하여 기(氣)가 하(下)에 하강(下降)하고 정(精)이 상(上)에 상승(上升)한 연후(然後)에 기(氣)의 등상성(騰上性)과 정(精)의 추하성(墜下性)이 상하(上下)로 상교(相交)하나니, 이는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이니, 역(易)에 「天地交泰 = 천(天)과 지(地)가 교(交)함이 태(泰)라」【註二】함이 이것이다. 상하(上下)의 위(位)가 정(定)하여 있는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는 개체(個體)의 자주(自主)이오, 상(上)으로부터 하(下)에 하강(下降)하고 하(下)로부터 상(上)에 상승(上升)하여 지위(地位)가 상역(相易)하는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는 통체(統體)에의 주편(周遍)이니, 이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가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로 환역(換易)하는 것이 곧 교역(交易)의 형태(形態)이다.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는 모두 교역(交易)의 상(象)이 있으니, 태양(太陽)이 상(上)에 있고 대지(大地)가 하(下)에 있어 상하(上下)가 정위(定位)함은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이오, 태양(太陽)의 광열(光熱)이 상(上)으로부터 하강(下降)하여 대지(大地)에 발시(發施)하고 대지(大地)의 운우(雲雨)가 하(下)로부터 상승(上升)하여 천지(天地)가 상교(相交)함은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이니, 역(易)에 「天道下濟而光明 地道卑而上行 = 천도(天道)는 하(下)로 제(濟)하여 광명(光明)하고 지도(指導)는 비(卑)하되 상(上)으로 행(行)한다」【註三】함은,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와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가 교역(交易)하는 상(象)을 말함이다. 화(火)는 염상(炎上)하고 수(水)는 윤하(潤下)하여 서로 위행(違行)함은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이오, 수(水)는 정중(鼎中)에 있고 화(火)는 정하(鼎下)에 있어 수화(水火)의 정위(定位)가 상역(相易)한 연후(然後)에 팽임(烹飪)의 공(功)이 이루어짐은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이다. 소강절(邵康節)은 천지(天地)가 상교(相交)하는 상(象)을 말하되 「口目橫而鼻耳縱 何也 體必交也 故動者宜縱而反橫 植者宜橫而反縱 皆交也 = 구(口)와 목(目)은 횡(橫)하고 비(鼻)와 이(耳)는 종(縱)함은 무슨 일인고 체(體)가 반드시 교(交)함이라, 그런 고(故)로 동물(動物)은 마땅히 종(縱)할듯 하되 도리어 횡(橫)하고 식물(植物)은 마땅히 횡(橫)할 듯 하되 도리어 종(縱)함은, 모두 교(交)함이라」【註四】하니, 이는 동(動)과 종(縱)은 양성(陽性)의 상(象)이오 정(靜)과 횡(橫)은 음성(陰性)의 상(象)이라, 구(口)와 목(目)이 그 횡(橫)함은 지(地)를 상(象)하고 그 동(動)함은 천(天)을 상(象)하며, 비(鼻)와 이(耳)는 그 종(縱)함은 천(天)을 상(象)하고 그 정(靜)함은 지(地)를 상(象)한 것은, 천지(天地)의 양체(兩體)가 상교(相交)하여 생(生)한 까닭이오, 동물(動物)은 그 동(動)함이 천(天)을 상(象)함으로 마땅히 종(縱)할 듯 하나 도리어 지(地)를 상(象)하여 횡(橫)하며, 식물(植物)은 그 정(靜)함이 지(地)를 상(象)함으로 마땅히 횡(橫)할듯하나 도리어 천(天)을 상(象)하여 종(縱)하는 것은, 모두 천지(天地)가 상교(相交)한 상(象)임을 말함이다.
인신(人身)에 있어서는 비(鼻)는 천(天)의 기(氣)를 호흡(呼吸)하고 구(口)는 지(地)의 미(味)를 출납(出納)하고 인중(人中)의 처소(處所)는 비구(鼻口)의 중간(中間)에 위치(位置)하여 천지(天地)를 직선(直線)으로 연결(連結)하니, 마치 사람이 천지(天地)의 중간(中間)에 직립(直立)함과 같으므로 인중(人中)이라 칭(稱)하는 것이다. 이것을 개체적(個體的)으로 보면 인중(人中) 이상(以上)은 천(天)에 본(本)하고 천(天)은 양기(陽氣)이므로 천(天)을 향(向)하는 두(頭)는 기(奇)하고, 인중(人中) 이하(以下)는 지(地)에 본(本)하고 지(地)는 음정(陰精)이므로 지(地)에 착(着)한 양족(兩足)은 우(偶)하며, 두(頭)는 상(上)에 있고 족(足)은 하(下)에 있어 상하(上下)의 위(位)가 정(定)하니, 이는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이오, 통체적(統體的)으로 보면 음양(陰陽)의 위(位)가 교역(交易)하는데, 양(陽)의 성(性)은 동(動)하는 것이로되 두(頭)는 도리어 정(靜)하여야 하고 음(陰)의 성(性)은 정(靜)하는 것이로되 족(足)은 도리어 동(動)하여야 하나니, 만일 두(頭)가 동(動)하면 체머리가 되고 족(足)이 정(靜)하면 앉은뱅이가 되는 것이니, 이는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이다. 또 상하(上下)의 구규(九竅)에도 상교작용(相交作用)이 있으니, 인중(人中) 이상(以上)의 이(耳) 목(目) 비(鼻)는 그 체(體)는 모두 쌍규(雙竅)로 되어 우(偶)하여 음(陰)에 속(屬)하고 있으되 그 용(用)은 성(聲) 색(色) 취(臭) 등(等) 기(氣)를 소관(所管)하여 양(陽)의 작용(作用)을 행(行)하며, 인중이하(人中以下)의 구(口)와 양음(陽陰)은 그 체(體)는 모두 단규(單竅)로 되어 기(奇)하여 양(陽)에 속(屬)하고 있으되 그 용(用)은 음식(飮食)과 배설물(排泄物) 등(等) 질(質)을 소관(所管)하여 음(陰)의 작용(作用)을 행(行)하니 이것도 또한 교역작용(交易作用)에 의(依)하여 음양(陰陽)이 교체(交體)한 것이다. 사람의 장부(臟腑)에도 양질서(兩秩序)가 있으니, 열(熱)의 발원(發源)이 되는 심장(心臟)은 양성(陽性)이오 수(水)를 소관(所管)하는 신장(腎臟)은 음성(陰性)이라, 인신(人身)의 신(腎) 심(心)은 천지(天地)의 수화(水火)이니, 심(心)이 상(上)에 있고 신(腎)이 하(下)에 있음은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이오, 수화(水火)의 기(氣)가 삼초(三焦)를 통(通)하여 열(熱)이 하(下)에 하강(下降)하여 복부(腹部)가 열(熱)하고 냉(冷)이 상(上)에 상승(上升)하여 두부(頭部)가 냉(冷)하여 냉열(冷熱)이 상교(相交)함은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이다. 역(易)에는 수화(水火)의 정위(定位)를 「미제(未濟)」라 하고 수화(水火)의 교체(交體)를 「기제(旣濟)」라 하니 【註五】미제(未濟)는 수화(水火)가 상교(相交)치 못함으로 물(物)을 제(濟)치 못함이오, 기제(旣濟)는 수화(水火)가 상교(相交)함으로 물(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제(濟)함이다.
가정(家庭)에 있어서는 남성(男性)은 용(用)이오 여성(女性)은 체(體)이라, 부부(夫婦)의 항구도(恒久道)로는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에 의(依)하여 남(男)이 일가(一家)를 통솔(統率)하여 가정(家庭)의 주(主)가 되어 마치 국가(國家)의 행정부(行政府) 원수(元首)가 정치(政治)의 통솔자(統率者)로 됨과 같음이니, 역(易)에 「恒久也 剛上而柔下 = 항(恒)은 구(久)함이니 강(剛)이 상(上)하고 유(柔)가 하(下)한다」【註六】한바, 강(剛)은 양(陽)이오 유(柔)는 음(陰)이라 이는 양(陽)이 상(上)에 있고 음(陰)이 하(下)에 있는 것이 부부(夫婦)의 항구(恒久)한 도(道)라 함이오, 또 부부(夫婦)의 감응도(感應道)로는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에 의(依)하여 남(男)이 여(女)를 수(隨)하여 가사(家事)의 운영(運營)에 남(男)이 반드시 여(女)의 동의(同意)를 얻어서 마치 국가(國家)의 원수(元首)가 국책(國策)을 결정(決定)함에 반드시 국회(國會)의 인준(認准)을 구(求)함과 같음이니, 역(易)에 「咸 感也 柔上而剛下 男下女 = 함(咸)은 감(感)함이니 유(柔)가 상(上)하고 강(剛)이 하(下)하여 남(男)이 여(女)에 하(下)한다」【註七】한바, 이는 음(陰)이 상(上)에 있고 양(陽)이 하(下)에 있는 것이 부부(夫婦)의 감응(感應)하는 도(道)라 함이니, 이 양질서(兩秩序)의 교역(交易)이 있은 후(後)에 가정(家庭)의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이 모두 그 소의(所宜)를 얻는 것이다.
‣권력(權力)과 도덕(道德)
정치(政治)에 있어서는 정부(政府)는 용(用)이오 민중(民衆)은 체(體)이라,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로는 정부(政府)는 상위(上位)에 있고 민중(民衆)은 하위(下位)에 있으니, 역(易)에「辨上下 定民志 = 상하(上下)를 변(辨)하고 민지(民志)를 정(定)한다」【註八】함이 곧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이오,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로는 민중(民衆)이 국가(國家)의 주인공(主人公)이 되고 정부(政府)는 민의(民意)를 반영(反映)하여 정무(政務)에 종사(從事)하는 것이니, 역(易)에「上下交而其志同也 = 상하(上下)가 교(交)하여 기지(其志)가 동(同)하다」【註九】하여, 음(陰)이 상(上)에 있고 양(陽)이 하(下)에 있음을 상하교(上下交)라고 함이 곧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이다.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가 있으므로 써 정치(政治)의 중심기관(中心機關)이 능(能)히 사회(社會)를 통솔(統率)하여 정사(政事)의 계통(系統)이 확립(確立)하나니, 만일 이 질서(秩序)가 없으면 명령(命令)과 복종(服從)의 관계(關係)가 혼란(混亂)하고 특권계급(特權階級)이나 난법(亂法)하는 관리(官吏)들이 자의(恣意)로 민중(民衆)을 사역(使役)하고 민재(民財)를 징렴(徵斂)하여 정령(政令)이 다문(多門)하고 사회(社會)의 통일(統一)을 해(害)하는 것이다. 역(易)에 「二君而一民 小人道也 = 이군(二君)에 일민(一民)이니 소인(小人)의 도(道)라」【註十】함은, 민중(民衆)은 하나인데 명령(命令)을 발포(發布)하는 정문(政門)은 두 곳이 있어 정치(政治)의 계통(系統)이 통일(統一)되지 못함이니 이는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가 문란(紊亂)함을 말함이다.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가 있으므로 써 상하(上下)의 지(志)가 상통(相通)하여 정치(政治)와 민심(民心)이 합일(合一)하나니, 만일 이 질서(秩序)가 없으면 상위(上位)에 있는 자(者)가 관권(官權)을 남용(濫用)하여 독선거만(獨善倨慢)한 태도(態度)로 써 민중(民衆)을 억압(抑壓)하여 민심(民心)이 유난(遊難)하는 것이다. 역(易)에「上下不交而天下無邦也 = 상하(上下)가 교(交)치 못하여 천하(天下)가 방(邦)이 없다」【註十一】함은, 상위(上位)에 있는 자(者)가 민의(民意)를 유린(蹂躪)하고 민중(民衆)이 정부(政府)의 명령(命令)을 순종(順從)치 아니하여 방국(邦國)의 도(道)가 없음이니, 이는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가 파괴(破壞)됨을 말함이다.
원래(元來) 사회(社會)의 조직(組織)은 민중(民衆)을 체(體)로 하는 것이라, 민중(民衆)이 부유(富裕)하면 국가(國家)도 부강(富强)하고 민심(民心)이 화열(和悅)하면 국가(國家)도 흥왕(興旺)함으로, 역(易)에는「損 損下益上 益 損上益下 = 손(損)이라 함은 하(下)를 손(損)하여 상(上)을 익(益)함이오 익(益)이라 함은 상(上)을 손(損)하여 하(下)를 익(益)함이라」【註十二】하니, 이를 경제관계(經濟關係)로 써 보면 민중(民衆)의 재화(財貨)를 할분(割分)하여 상위(上位)에 있는 자(者)의 호사생활(豪奢生活)에 공여(供與)함은 국가(國家)의 손(損)이 되고 재화(財貨)의 분배(分配)가 상위(上位)에 박(薄)하고 하위(下位)에 후(厚)함은 국가(國家)의 익(益)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 과거(過去)의 사실(史實)로 써 보더라도 군주전제정치(君主專制政治)는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를 편용(偏用)함으로 민중(民衆)의 재화(財貨)와 노력(勞力)을 박할(剝割)하여 귀족계급(貴族階級)을 봉양(奉養)한 것이오, 난세(亂世)의 관료(官僚)들은 대개(大槪)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만을 알고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를 알지 못함으로 겸양자비(謙讓自卑)하는 미덕(美德)을 보기 어렵고 횡포(橫暴)와 탐오(貪汚)를 자행(恣行)하는 일이 적지 아니한 것이다.
그런데 정위적질서(定位的秩序)는 국가(國家)를 통어(統御)하는 권력(權力)을 중심(中心)으로 하여 수립(樹立)되고,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는 위정자(爲政者)가 자기(自己)의 직무(職務)와 책임(責任)을 존중(尊重)하는 도덕관념(道德觀念)을 중심(中心)으로 하여 수립(樹立)되는 것이므로,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가 수립(樹立)된 사회(社會)는 도덕(道德)이 행(行)하여 치세(治世)가 되고 그것이 수립(樹立)되지 못한 사회(社會)는 권력(權力)이 편승(偏勝)하고 도덕(道德)이 패괴(敗壞)하여 난세(亂世)가 되나니, 인세(人世)의 치란(治亂)은 주(主)로 이 일점(一點)에서 분기(分岐)되는 것이며, 또 비록 군주전제사회(君主專制社會)라 하더라도 위정자(爲政者)의 도덕관념(道德觀念)이 발달(發達)한 시대(時代)는 그 정치운용(政治運用)이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를 세우는 일이 있으니, 이조(李朝) 세종시대(世宗時代)의 낙점제(落點制) 같은 것이 그 현저(顯著)한 일례(一例)이다. 당시(當時) 토지조세제도(土地租稅制度)의 공법(貢法)과 답험법(踏驗法)에 대(對)하여 국론(國論)이 귀일(歸一)치 못하고 정부내(政府內)에도 양론(兩論)이 대립(對立)하여 오래도록 결정(決定)치 못하는지라, 이에 세종왕(世宗王)은 이 문제(問題)의 가부(可否)를 민의(民意)에 묻기 위(爲)하여 전국농호(全國農戶)에게 낙점제(落點制)를 시행(施行)하니, 낙점(落點)이라 함은 곧 지금의 투표(投票)와 같은 것이니, 이 낙점제(落點制)는 교체정치(交體政治)의 일표현(一表現)이오, 거금(距今) 오백여년전(五百餘年前)에 인심(人心)에 순응(順應)하기 위(爲)하여 이미 이러한 제도(制度)를 채용(採用)한 것은 정치사상(政治思想)의 발달(發達)됨을 말하는 것이다. 낙점(落點)의 결과(結果) 충청(忠淸)․전라(全羅)․ 경상(慶尙)의 삼도(三道)는 공법(貢法) 찬성(贊成)이 약(約) 십분(十分)의 칠(七)이오, 경기(京畿) 이북(以北)의 오도(五道)는 답험법(踏驗法) 찬성(贊成)이 약(約) 십분(十分)의 팔(八)이니, 이는 토지(土地)의 비척(肥瘠)에 따르는 민의(民意)의 반영(反映)이다. 그러나 남북(南北)의 민의(民意)가 또한 대립(對立)하고 있으므로 국법(國法)의 통일(統一)보다도 지리적(地理的) 조건(條件)에 의(依)하여 민의(民意)에 순응(順應)하는 것이 위정(爲政)의 근본(根本) 정신(精神)이라 하여, 삼남(三南)에는 공법(貢法)을 실시(實施)하되 천재(天災)가 있는 토지(土地)에 한(限)하여 급재(給災)하기로 하고, 북오도(北五道)에는 답험법(踏驗法)을 실시(實施)하여, 남북(南北) 민중(民衆)으로 하여금 모두 그 소의(所宜)를 얻게 하니, 이 아무 간섭(干涉)이 없는 낙점제(落點制)와 적지적법제(適地適法制)가 곧 교체정치(交體政治)의 극치(極致)이오, 또한 지금의 소위(所謂) 민주주의(民主主義)의 진수(眞髓)이다.
원래(元來) 교체(交體)에는 상여상구(相與相求)하는 상(象)이 있으니, 만물(萬物)은 아(我)의 작용(作用)을 타(他)에게 가(加)하여 타(他)의 욕망(欲望)을 만족(滿足)케 하는 때에 그 반보(反報)로서 아(我)가 또한 타(他)의 작용(作用)을 받아서 만족(滿足)을 얻는 것이다, 즉(卽) 만사만물(萬事萬物)은 모두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이 있어, 아(我)의 작용(作用)을 대대(對待)되는 상대방(相對方)에 시여(施與)하는 동시(同時)에 또한 상대방(相對方)으로부터 그의 작용(作用)을 받아서 서로 그 작용(作用)을 교역(交易)하는 때에 비로소 만족(滿足)과 쾌열(快悅)을 얻는 것이오, 만일 독음독양(獨陰獨陽)이 되어 아(我)의 작용(作用)을 타(他)에게 시여(施與)치 아니하면 또한 타(他)로부터 응보(應報)를 받지 못하는 것이니, 이 까닭에 독음독양(獨陰獨陽)은 고립독행(孤立獨行)하여 만족(滿足)도 없고 쾌열(快悅)도 없는 것이다. 예(例)컨대 다량(多量)의 상품(商品)을 소유(所有)한 상인(商人)이 있다고 하면 그 상품(商品)을 수요자(需要者)에게 공급(供給)하는 때에 그 수요자(需要者)는 만족(滿足)을 느끼고, 상인(商人)은 그 대상(代償)으로서 화폐(貨幣)를 획득(獲得)하여 또한 만족(滿足)을 느끼는 것이니, 이는 물화(物貨)의 교역(交易)에 의(依)하여 서로 소원(所願)을 성취(成就)한 것이다. 만일 상인(商人)이 상품(商品)을 가지고 있으되 그 상대(相對)되는 수요자(需要者)를 만나지 못하면 이는 독음독양(獨陰獨陽)이 되어 도리어 고통(苦痛)을 느끼는 것이오, 또 수요자(需要者)가 화폐(貨幣)를 가지고 있으되 그 상대(相對)되는 상품(商品)을 만나지 못하면 또한 독음독양(獨陰獨陽)이 되어 스스로 곤난(困難)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품(商品)이나 화폐(貨幣)는 타(他)를 이(利)하는 때에 또한 아(我)를 이(利)하여, 타(他)와의 교역(交易)을 행(行)함으로써 비로소 양방(兩方)이 모두 만족(滿足)과 쾌열(快悅)을 얻는 것이니, 이 이(理)는 만물(萬物)의 교체관계(交體關係)에 적용(適用)되지 아니하는 곳이 없다.
위정층(爲政層)과 민중(民衆)과의 사이도 또한 그러하여, 위정층(爲政層)의 시책(施策)이 득의(得宜)하여 민심(民心)에 순응(順應)하면 민심(民心)이 스스로 만족쾌열(滿足快悅)하여 정치(政治)를 지지(支持)하고, 민심(民心)의 정치지지(政治支持)가 곧 위정층(爲政層)의 만족쾌열(滿足快悅)이 되는 것이니, 민심(民心)은 분노원한(憤怒怨恨)하되 위정층(爲政層)이 홀로 만족쾌열(滿足快悅)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오, 혹시(或是) 있다고 하면, 그는 오직 권력행사(權力行使)만을 위주(爲主)하여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를 파괴(破壞)하던 고려(高麗)의 충혜(忠惠)나 이조(李朝)의 연산(燕山)․광해(光海)의 시대(時代)와 같이, 폭군암주(暴君暗主)와 간신흉도(奸臣兇徒)들이 용사(用事)하는 정치하(政治下)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다. 삼략(三略)에 「昔者良將之用 兵有饋簞醪者使投諸河 與士卒同流而飮矣 一簞之醪 不能味一河之水 而三軍之士 思爲致死者 以滋味之及己也 = 옛적에 양장(良將)이 용병(用兵)함에 단료(簞醪)를 주는 자(者) 있거늘 이를 하(河)에 던지게 하여 사졸(士卒)로 더불어 동류(同流)하여 음(飮)하니, 그 일단(一簞)의 요(醪)가 능(能)히 일하(一河)의 수(水)를 맛이 나게 하지 못하되 삼군(三軍)의 사(士)가 치사(致死)하기를 생각하는 것은 자미(滋味)의 자기에게 및음으로 쎄라」【註十三】하니, 이는 주장(主將)의 지정(至情)이 사졸(士卒)에 및고, 사졸(士卒)의 지정(至情)이 또한 주장(主將)에 미쳐서, 지정(至情)과 지정(至情)이 서로 교체(交體)됨을 말함이라, 지정(至情)이 교체(交體)된 곳에는 권력(權力)도 없고 위세(威勢)도 없고, 오직 일심동체(一心同體)가 있을 뿐이다. 역(易)에「君子定其交而後求 無交而求則民不與也 = 군자(君子)는 그 교(交)를 정(定)한 후(後)에 구(求)하나니, 교(交)가 없이 구(求)한즉 민(民)이 주지 아니한다」【註十四】하니, 교(交)라 함은 상하(上下)가 상교(相交)하는 교체적질서(交體的秩序)이라, 정치(政治)는 상하(上下)가 상교(相交)한 후(後)에 민중(民衆)에게 그 복종(服從)을 요구(要求)할 것이오, 만일 상교(相交)함이 없이 요구(要求)하면 민중(民衆)이 응종(應從)치 아니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정치(政治)가 민중(民衆)에게 요구(要求)함이 있으되 민중(民衆)이 응종(應從)치 아니하는 때는, 민중(民衆)을 벌책(罰責)하기 전(前)에 먼저 위정자(爲政者) 자신(自身)이 권력(權力)을 중심(中心)으로한 독선정치(獨善政治)를 행(行)하고 있는가, 또는 도덕(道德)을 중심(中心)으로 한 교체정치(交體政治)를 행(行)하고 있는가를 반성(反省)하여 냉정(冷靜)히 자기(自己)를 비판(批判)하는 것이 곧 정치(政治)의 상도(常道)이다.
註一. 繫辭上傳 第一章
註二. 泰卦 大象傳
註三. 謙卦 彖傳
註四. 皇極經世觀物外篇上
註五, 旣濟卦는 水가 上에 있고 火가 下에 있으므로 相交가 되고, 未濟卦는 火가 上에 있고 水가 下에 있으므로 不交가 된다.
註六. 恒卦 彖傳
註七. 咸卦 彖傳
註八‘ 履卦 大象傳
註九. 泰卦 彖傳
註十. 繫辭下傳 第四章
註十一. 否卦 彖傳
註十二. 損卦 彖傳에 「損損下益上」益卦彖傳에 「益損上益下」
註十三. 三略이라는 兵書
註十四. 繫辭下傳 第五章 益卦上九爻義中에서 抄出한 것이다.
   
第四節 반역(反易)
‣만물(萬物)은 모두 반생(反生)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체(體)의 속으로부터 용(用)이 발동(發動)하는 때에 반드시 체(體)와 반생(反生)하는데, 반생(反生)을 또한 역생(逆生)․도생(倒生)이라 하나니, 이 반생(反生)․역생(逆生)․도생(倒生)이 곧 반역형태(反易形態)이다. 반생(反生)의 상(象)은 사시(四時)의 변화형태(變化形態)에 나타나고 있으니, 사시중(四時中) 가장 큰 변화(變化)는 춘(春)의 해(解)와 추(秋)의 혁(革)이라, 해(解)라 함은 해괘(解卦)의 상(象)과 같이 천시(天時)가 동(冬)으로부터 춘(春)에 추이(推移)하고 천기(天氣)가 북(北)으로부터 동(東)에 유행(流行)하여 빙설(氷雪)이 해(解)하고 뇌우(雷雨)가 작(作)하고 백과초목(百果草木)이 모두 갑탁(甲坼)하는 것이며, 혁(革)이라 함은 혁괘(革卦)의 상(象)과 같이 천시(天時)가 하(夏)로부터 추(秋)에 추이(推移)하고 천기(天氣)가 남(南)으로부터 서(西)에 유행(流行)하여 백곡(百穀)이 결실(結實)하고 조수(鳥獸)의 우모(羽毛)가 탈락(脫落)하여 희혁(稀革)하는 것이다 【註一】춘(春)의 해(解)가 있으므로 써 엄혹(嚴酷)한 한기(寒氣)가 해소(解消)하여 만물(萬物)이 발육(發育)하고, 추(秋)의 혁(革)이 있으므로 써 태완(怠緩)한 서기(暑氣)가 응수(凝收)하여 만물(萬物)이 성숙(成熟)하나니, 그러므로 역(易)에는 「解之時 大矣哉 = 해(解)의 시(時)가 대(大)하다」【註二】하고, 또 「革之時 大矣哉 = 혁(革)의 시(時)가 대(大)하다」【註三】한 것이다. 초목(草木)의 변화(變化)의 상(象)으로 써 보면 동(冬)에 초목(草木)의 폐장(閉藏)이 극(極)하여 궁(窮)에 이르므로 그 자체(自體)의 속에서 신아(新芽)가 구각(舊殼)을 깨트리고 출생(出生)하나니 이가 곧 해(解)이오, 하(夏)에 초목(草木)의 생장(生長)이 극(極)하여 궁(窮)에 이르므로 초목자체(草木自體)가 용(用)이 체(體)로 전화(轉化)하여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하나니 이가 곧 혁(革)이다. 사회(社會)에 있어서는 해(解)는 해방(解放)이오 혁(革)은 혁명(革命)이라, 해(解)는 엄동(嚴冬)의 빙결(氷結)을 해(解)하는 것이므로 가혹(苛酷)한 정치(政治)를 변통(變通)함은 해방(解放)이 되고, 혁(革)은 염하(炎夏)의 태완(怠緩)을 혁(革)하는 것이므로 부패(腐敗)한 정치(政治)를 변통(變通)함은 혁명(革命)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해(解)와 혁(革)은 양(陽)과 음(陰)의 반생(反生)에 의(依)하여 행(行)하여지는 것이다. 십일월(十一月) 동지(冬至)에 태양(太陽)의 위(位)가 남지(南至)에 극(極)하고 다시 북(北)으로 반전(反轉)하여 일양(一陽)이 하(下)에서 생(生)하고 춘분(春分)에 이르러 춘난(春暖)을 생(生)하여 해(解)가 되며, 오월(五月) 하지(夏至)에 태양(太陽)의 위(位)가 북지(北至)에 극(極)하고 다시 남(南)으로 반전(反轉)하여 일음(一陰)이 하(下)에서 생(生)하고 추분(秋分)에 이르러 추냉(秋冷)을 생(生)하여 혁(革)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지(冬至)는 춘(春)의 해(解)를 생(生)하는 양(陽)의 반생(反生)이오, 하지(夏至)는 추(秋)의 혁(革)을 생(生)하는 음(陰)의 반생(反生)이라, 만일 양(陽)의 반생(反生)이 없으면 춘(春)의 해(解)가 있을 수 없어 소한(小寒)․대한(大寒)이 그대로 계속(繼續)될 것이오, 또 음(陰)의 반생(反生)이 없으면 추(秋)의 혁(革)이 있을 수 없어 소서(小暑)․대서(大暑)가 그대로 연장(延長)될 것이니, 이 까닭에 역(易)에는 음양(陰陽)의 반전기(反轉期)에 대(對)하여 동지(冬至) 직전(直前)을 상(象)하여 이괘(頤卦)라 하고「頤之時 大矣哉 = 이(頤)의 시(時)가 대(大)하다」【註四】하며, 하지(夏至) 직전(直前)을 상(象)하여 대과괘(大過卦)라 하고, 「大過之時 大矣哉 = 대과(大過)의 시(時)가 대(大)하다」【註五】하니, 이로써 춘분(春分) 추분(秋分)과 동지(冬至) 하지(夏至)의 이분이지(二分二至)는 일년중(一年中)의 사대시(四大時)가 되는 것이다.
역(易)에는 그 서괘(序卦)를 정(定)함에 육십사괘중(六十四卦中)에 오직 반역(反易)이 없는 팔괘(八卦)를 제(除)하고 【註六】나머지 오십육괘(五十六卦)는 모두 반역(反易)을 취(取)하며, 일양(一陽)이 하(下)에서 발동(發動)하여 반생(反生)하는 상(象)을 화곡종자(禾穀種子)의 맹생(萌生)에 의(擬)하여 「其於稼也 爲反生 = 그 가(稼)에 반생(反生)이 된다」【註七】하니, 이는 화곡(禾穀)의 종자(種子)가 신아(新芽)를 발생(發生)하여 대지(大地)를 역행(逆行)하여 지상(地上)에 출생(出生)함을 반생(反生)이라 한 것이다. 이퇴계(李退溪)는 필담(筆談)을 인용(引用)하여 말하되「物之處胎中 莫不反生 自下而生者 卦之序 而冥合造化 胎育之理 此至理合自然者也 凡草木百穀之實 皆反生 首係于幹 其上抵于穎處 反是根 人與禽獸生胎 亦首皆在下 = 물(物)이 태중(胎中)에 처(處)하매 반생(反生)치 아니함이 없다. 하(下)로부터 생(生)하는 자(者)는 괘(卦)의 서(序)인데 조화태육(造化胎育)의 이(理)에 명합(冥合)하니, 이는 지리(至理)가 자연(自然)에 합(合)하는 자(者)이다. 무릇 초목백곡(草木百穀)의 실(實)이 모두 반생(反生)하여 수(首)가 간(幹)에 계(係)하고 그 상(上)으로 영(穎)에 저(抵)한 처(處)가 도리어 이 근(根)이라, 사람과 금수(禽獸)의 생태(生胎)도 또한 수(首)가 모두 하(下)에 재(在)하다」【註八】하니, 만물(萬物)이 신생(新生)하는 자(者)는 모두 모체(母體)와 역행(逆行)하여, 과실(果實)도 그 장생(將生)할 근(根)이 모수(母樹)의 근(根)과는 반대방향(反對方向)으로 있고, 사람이나 조수(鳥獸)의 수(首)도 태중(胎中)에 있을 때에 모체(母體)의 수(首)와는 역행(逆行)되어 있고 괘(卦)의 효(爻)도 초효(初爻)로부터 상승(上升)함은 반생(反生)의 이(理)에 의(依)함이라 함을 말함이다. 소강절(邵康節)은 말하되 「自下而生 謂之升 自上而下 謂之降 升者生也 降者消也 故陽生于下 陰生于上 是以萬物皆反生 = 하(下)로부터 상(上)함을 승(升)이라 하고 상(上)으로부터 하(下)함을 강(降)이라 하나니, 승(升)은 생(生)함이오 강(降)은 소(消)함이라, 양(陽)은 하(下)에서 생(生)하고 음(陰)은 상(上)에서 생(生)하니 시이(是以)로 만물(萬物)이 모두 반생(反生)한다」【註九】하니, 이는 신생(新生)하는 양(陽)은 점차(漸次)로 성장확대(成長擴大)함으로 승(升)이 되고 노쇠(老衰)하는 음(陰)은 점차(漸次)로 축소(縮少) 소멸(消滅)함으로 강(降)이 되는데, 상승(上升)과 하강(下降)은 곧 반생(反生)이므로 만물(萬物)의 신생(新生)하는 자(者)는 모두 반생(反生)이 된다 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세간(世間)의 만사만물(萬事萬物)은 그 구태(舊態)를 개혁(改革)하여 신사물(新事物)을 생(生)하는 자(者)는 구체(舊體)와 반생(反生)치 아니하는 것이 없으니, 이는 그 개혁(改革)한다 함이 이미 구체(舊體)와는 상반(相反)하는 진로(進路)를 취(取)하는 까닭이다.
반생(反生)이라 함은 현상(現狀) 또는 현실(現實)과 역행(逆行)함이라, 그러므로 이미 정(定)하여 있는 기왕(旣往)한 과거사(過去事)는 순(順)이 되고, 새로 진향(進向)할 장차(將且)의 미래사(未來事)는 역(逆)이 되나니, 역(易)에「數往者順 知來者逆 是故易逆數也 = 왕(往)을 수(數)하는 자(者)는 순(順)하고 내(來)를 지(知)하는 자(者)는 역(逆)하나니 시고(是故)로 역(易)은 역수(逆數)이라」【註十】하니, 이는 기왕사(旣往事)를 계수(計數)함은 순수(順數)를 쓰고 미래사(未來事)를 전지(前知)함은 역수(逆數)를 쓰는데 역(易)은 미래사(未來事)를 전지(前知)하는 학문(學問)이므로 역수(逆數)를 쓴다 함을 말함이니, 그러므로 구례(舊例)를 준행(遵行)하기는 순(順)하고, 신사물(新事物)을 창조(創造)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신(新)이란 무엇인가
세간(世間)에는 흔히 「신(新)」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신(新)이라 함은 곧 반생(反生)의 뜻이니, 역(易)에 말한 바의 「일신(日新)」 또는 「거고취신(去故取新)」등(等)과 같이 인생(人生)이나 사회(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본체(本體)로 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의 더 일층(一層) 향상(向上)되고 발달(發達)됨을 신(新)이라 하고, 그것을 조해(阻害)하는 폐(弊)를 구(舊) 또는 고(故)라 하나니 우리의 생활(生活)에 어떠한 폐해(弊害)가 생(生)하여 생활(生活)을 완수(完遂)할 수 없거나 또는 사회제도(社會制度)에 불합리(不合理)한 부면(部面)이 있어 우리의 실생활(實生活)에 적응(適應)치 못하는 때에 반생운동(反生運動)에 의(依)하여 그 폐해(弊害)를 제거(除去)하고 우리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 맞는 사물(事物)을 만들어내는 것이 곧 신(新)이 되고 신문화(新文化) 신문명(新文明)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사물(新事物)이 발생(發生)함에는 출분(出奮)과 비약(飛躍)의 상(象)이 있다. 출분(出奮)이라 함은 역(易)에 「雷出地奮 = 뇌(雷)가 지(地)에 출(出)하여 분(奮)한다」【註十一】한바, 내부(內部)에 잠은(潛隱)하던 물(物)이 반생(反生)하여 내외(內外)의 경계선(境界線)을 깨트리고 외부(外部)에 출현(出顯)하는 상(象)을 말함이오, 비약(飛躍)이라 함은 역(易)에 용(龍)이 지(地)에 있음을 「잠룡현룡(潛龍見龍)」이라 하고, 천(天)에 상승(上昇)함을 「약룡비룡(躍龍飛龍)」이라 한바【註十二】물(物)이 하체(下體)로부터 역행(逆行)하여 상하(上下)의 경계선(境界線)을 넘어서 하체(下體)를 절연(絶緣)하고 상체(上體)에 등상(騰上)하는 상(象)을 말함이니, 조류(鳥類)가 난중(卵中)에서 부화(孵化)하여 난각(卵殼)을 깨트리고 나옴과 같음은 출분(出奮)이 되고, 유추(幼雛)가 소중(巢中)에서 양육(養育)되어 우모(羽毛)가 성장(成長)하여 공중(空中)에 비행(非行)함과 같음은 비약(飛躍)이 되는데, 출분(出奮)과 비약(飛躍)에는 반드시 「신생명(新生命)의 창조(創造)」와 「생존체(生存體)의 성장(成長)」이라는 뜻이 포함(包含)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新)이라는 사물(事物)에는 반드시 자체(自體)의 항구(恒久)한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감응본능(感應本能)에 의(依)하여 신생명(新生命)이 창조(創造)되지 아니할 수 없고, 또 췌취본능(萃聚本能)에 의(依)하여 생존체(生存體)가 성장(成長)치 아니할 수 없다는 뜻이 포함(包含)되어야 하는 것이다. 즉(卽) 현상(現狀)보다 더 향상(向上)된 생활(生活)을 창조(創造)하고 또 그를 더 발달(發達)시키는 것이 곧 신(新)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소위(所謂) 신(新)은 자체(自體)의 생존상(生存上) 절실(切實)한 요구(要求)에 의(依)하여 반생(反生)한 것이 아니오, 도리어 구체(舊體)의 부패(腐敗)를 더 연장(延長)하고 폐해(弊害)를 더 증대(增大)하고 있는 것이 적지 아니하니, 이는 생활(生活)의 퇴화(退化)이오 신(新)이 아니다.
신생활(新生活)을 창조(創造)하고 자체(自體)를 성장(成長)시킴에는, 안일(安逸)이나 호사(豪奢)로서 되는 것이 아니오 거기에는 반드시 투쟁(鬪爭)과 간난(艱難)이 따라 다니는 것이다. 사회(社會)의 각부면(各部面)에 나타나는 폐해(弊害)를 대상(對象)으로 하여 투쟁(鬪爭)하고, 모든 간난(艱難)을 극복(克服)하면서 외력(外力)의 원조(援助)가 없이 자력(自力)으로 반생(反生)하는 것이 곧 신생활(新生活)의 창조(創造)이오 또한 생존체(生存體)의 성장(成長)이며, 외력(外力)의 원조(援助)에만 기대(期待)를 가지고 그에 의존(依存)함과 같은 것은 능동(能動)하는 반생력(反生力)을 상실(喪失)하고 폐해(弊害)를 증대(增大)하는것 뿐이다. 원래(元來) 사회(社會)를 변통(變通)함에는 마치 춘해추혁(春解秋革)이 모두 자체내(自體內)의 양(陽)과 음(陰)의 반생(反生)에 의(依)하여 행(行)하여짐과 같이, 사회(社會)도 반드시 자체내(自體內)에서 생발(生發)의 기(氣)가 약동(躍動)하는 반생세력(反生歲力)이 생(生)치 아니하면 안되고, 외력(外力)의 원조(援助)같은 것은 자체(自體)의 반생력(反生力)이 건건운행(健健運行)한 연후(然後)에 자체(自體)의 부족(不足)함을 보수(補修)하는 정도(程度)로 그를 도입(導入)하는 것이다. 만일 자체내(自體內)의 반생세력(反生歲力)이 미약(微弱)하여 능동(能動)하는 자력(自力)으로 써 구사회(舊社會)를 변통(變通)치 못하고 주(主)로 외래(外來)의 타력(他力)에 의존(依存)하여 해방(解放)이나 혁명(革命)을 행(行)하는 때는, 자력(自力)은 약(弱)하고 외력(外力)은 강(强)함으로, 비록 그 해방(解放)이나 혁명(革命)이 성사(成事)된다 하더라도 결국(結局) 외력(外力)의 간섭(干涉)과 침요(侵撓)를 받는 것이 인류력사(人類歷史)의 명시(明示)하는 바이다. 즉(卽) 구사회(舊社會)는 체(體)이오 신생(新生)한 반생세력(反生歲力)은 용(用)이라, 구사회(舊社會)는 이미 소멸과정(消滅過程)에 있고 반생세력(反生歲力)은 아직 구사회(舊社會)를 계대(繼代)할만한 주도력(主導力)을 가지지 못함으로 스스로 외력(外力)의 지배하(支配下)에 굴복(屈伏)하는 것이니, 이는 외력(外力)과 반생세력(反生歲力)은 통일체(統一體)가 아님으로 대대작용(對待作用)이 행(行)치 못하고 편승편패(偏勝偏敗)의 세(勢)가 생(生)하는 까닭이다. 그 예(例)로는 신라(新羅)가 삼국통일(三國統一)을 도모(圖謀)함에 건국이래(建國以來)의 자력통일정신(自力統一精神)을 포기(抛棄)하고 당(唐)의 병력(兵力)을 차래(借來)한 연고(緣故)로 성사(成事)한 후(後)에 다년간(多年間) 당병(唐兵)과 전쟁(戰爭)하여 겨우 대동강(大洞江) 이남(以南)을 차지하고 광대(廣大)한 만주지역(滿洲地域)을 상실(喪失)한 것이 기일(其一)이오, 이조말엽(李朝末葉)에 소위(所謂) 정치가(政治家)들이 자력반생(自力反生)의 길을 취(取)하지 못하고 왈친청(曰親淸), 왈친일(曰親日), 왈친로(曰親露) 등(等) 전(全)혀 외력의존(外力依存)을 일삼다가 마침내 조국(祖國)을 멸망(滅亡)케 한 것이 기이(其二)이오, 소위(所謂) 팔일오해방(八一五解放)은 자체(自體)의 반생력(反生力)에 의(依)한 것이 아니오, 전(專)혀 제이차세계대전(第二次世界大戰)이라는 타력(他力)에 의존(依存)한 것이므로 해방후(解放後)에 국토(國土)가 양단(兩斷)되고 우리 민족(民族)의 본의(本意)가 아닌 동족상잔전(同族相殘戰)을 일으켜 전세계(全世界) 군대(軍隊)의 연병장(練兵場)으로 화(化)한 것이 기삼(其三)이다. 역(易)에「解險而動 動而免乎險解 = 해(解)라 함은 험(險)하여 써 동(動)하고 동(動)하여 험(險)을 면(免)함이 해(解)라」【註十三】하니, 이는 해방(解放)이라 함은 험중(險中)에서 분동(奮動)하고, 분동(奮動)하여 험(險)을 탈출(脫出)하는 것이 곧 해방(解放)이라 함을 말함이니, 그러므로 자력(自力)의 능동력(能動力)으로 써 험난(險難)을 극복(克服)하고 출분비약(出奮飛躍)하는 때에 비로소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할 수 있는 해방(解放)이 와서 신생활(新生活)이 창조(創造)되는 것이다.
‣성(成) 반(反) 제(齊)의 이(理)
물(物)의 반생(反生)하는 과정(過程)에 대(對)하여 역(易)에는 「성반제(成反齊)」【註十四】의 삼단계(三段階)의 이(理)가 있는데 이 이(理)를 사시중(四時中)에 특(特)히 동(冬)으로부터 춘(春)이 반생(反生)하는 상(象)에 말하고 있다. 동춘(冬春)의 교(交)는 입춘절(立春節)의 전후(前後)이니 이 시기(時期)는 만물(萬物)이 종(終)을 성(成)하고 또 시(始)를 성(成)하는 것이므로 성(成)이 되고, 정춘(正春)은 춘분절(春分節)의 전후(前後)이니 이 시기(時期)는 성종(成終)한 일양(一陽)이 하(下)로 반전(反轉)하고 화가(禾稼)가 모두 반생(反生)함으로 반(反)이 되고, 춘하(春夏)의 교(交)는 입하절(立夏節)의 전후(前後)이니 이 시기(時期)는 만물(萬物)이 모두 그 형(形)을 결제(潔齊)함으로 제(齊)가 된다. 그러므로 성(成)이라 함은 물(物)이 이미 종(終)하고 장차(將且) 시(始)하려 하는 대화단계(大和段階)이오, 반(反)이라 함은 시생(始生)하는 물(物)이 구체(舊體)와 역행(逆行)하여 외현(外顯)하는 대시단계(大始段階)이니, 이 단계(段階)에는 반드시 신구간(新舊間)의 투쟁(鬪爭)이 기(起)하는 것이오, 제(齊)라 함은 신생(新生)하는 물(物)이 자체독자(自體獨自)한 형(形)을 새로이 균제(均齊)하는 유형단계(流形段階)이니, 이 단계(段階)에서 만물(萬物)은 새로이 자체(自體)를 건설(建設)하는 것이다. 지금 서양철학(西洋哲學)에 소위(所謂) 변증법(辨證法)의 정반합론(正反合論)이라 함은 이 성반제(成反齊)의 이(理)를 술(述)한 것이다.
사회(社會)의 반생기(反生期)에는 또한 성반제(成反齊)의 상(象)이 나타나고 있으니, 사회(社會)가 궁(窮)에 이르러 더 성장(成長)할수 없음은 성(成)의 단계(段階)가 되고, 궁(窮)을 변통(變通)하기 위(爲)하여 현제도(現制度)를 개혁(改革)하려는 투쟁세력(鬪爭勢力)이 반생(反生)함은 반(反)의 단계(段階)가 되는데, 사회(社會)의 변통(變通)에는 해방(解放)과 혁명(革命)이 있는지라, 해방(解放)은 사회(社會)의 상층(上層)에 반거(盤據)하고 있는 가혹(苛酷)한 지배세력(支配勢力)을 타파(打破)함으로 써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해방(解放)은 구각(舊殼)을 타파(打破)하고 탈출(脫出)하는 출분(出奮)의 상(象)이 되는 것이오, 혁명(革命)은 사회(社會)의 내부(內部)를 침식(侵蝕)하고 있는 부패(腐敗)한 폐풍비정(弊風秕政)을 소청(掃淸)함으로 써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혁명(革命)은 구체(舊體)를 폐거(廢去)하고 신체(新體)로 진출(進出)하는 비약(飛躍)의 상(象)이 되는 것이다. 신사회(新社會)가 출생(出生)하여 신건설(新建設)을 행(行)하고 투쟁(鬪爭)이 조화(調和)로 전화(轉化)함은 제(齊)의 단계(段階)가 되나니, 반(反)은 실(實)로 성(成)의 종궁(終窮)을 변통(變通)하고 제(齊)의 건설(建設)에 접속(接續)하는 생성계(生成階)이다.
지금에 성(成) 반(反) 제(齊)의 이(理), 즉(卽) 변증법(辨證法)으로써 사회(社會)의 만반사물(萬般事物)의 원리(原理)를 설명(說明)하려 하는 일이 있는데, 성반제(成反齊)의 이(理)는 사시(四時)의 대시(大始)․유형(流形)․변화(變化)․대화(大和)의 중(中)에서 특(特)히 변화형태중(變化形態中)의 일상(一象)을 말한 것으로서, 만일 이 일상(一象)만으로써 만반사물(萬般事物)을 설명(說明)하고자 하면, 이론(理論)이 국편(局偏)하여 차(此)에 통(通)하면 피(彼)에 질(窒)하고, 피(彼)에 통(通)하면 차(此)에 질(窒)하여 자상모순(自相矛盾)하여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에 통용(通用)치 못하는 것이니, 지금 공산주의(共産主義)국가(國家)가 독재정치(獨裁政治)를 행(行)하고 인생천부(人生天賦)의 자유(自由)를 박탈(剝奪)하는 것은, 이 국편(局偏)한 변증법이론(辨證法理論)에 또 유물론(唯物論)이라는 편론(偏論)을 가미(加味)하여 소위(所謂) 변증법적유물론(辨證法的唯物論)을 정치이론(政治理論)으로 쓰는 까닭이다.
註一. 解卦는 坎下震上이니, 八卦圓圖에 坎은 冬이 되고 北이 되며 震은 春이 되고 東이 되는데, 卦爻는 下로부터 上升하는 것이므로 坎으로부터 震에 運行하여 時節로는 冬으로부터 春에 推移하고 方位로는 北으로부터 東에 流行하는 象이 된다. 革卦는 離下兌上이니, 八卦圓圖에 離는 夏가되고 南이 되며 兌는 秋가 되고 西가 되는데, 亦是 下로부터 上升하여 離로부터 兌에 運行함으로, 時節로는 夏로부터 秋에 推移하고 方位로는 南으로부터 西에 流行하는 象이 되는 것이다.
註二. 解卦彖傳
註三. 革卦彖傳
註四. 頤卦彖傳
註五. 大過卦彖傳
註六. 六十四卦中에서 乾 坤 坎 離 頤 大過 中孚 小過의 八卦는 變易으로써 順序를 定하고, 그 밖의 五十六卦는 모두 反易을 取한 것이니, 이는 物의 新生하는 理를 象한 것이며, 또 反生에는 先天과 後天의 關係가 있으니, 例컨대 大畜卦와 無妄卦는 서로 反易하고 있는데 大畜卦로 볼 때에는 自體는 後天이 되고 無妄卦는 先天이 되며, 또 無妄卦로 볼 때에는 自體는 後天이 되고 大畜卦는 先天이 되는 것이다.
註七. 說卦傳第十一章 震卦
註八. 易學啓蒙傳疑
註九. 皇極經世觀物外篇上
註十. 說卦傳 第三章
註十一. 豫卦大象傳
註十二. 乾卦初二四五爻辭
註十三. 解卦彖傳
註十四. 說卦傳 第五章의 大意를 取한 것이다.
   
第六章 대화(大和)와 중(中)
第一節 중(中)과 절(節)
‣대대(對待)․중심(中心)․통일(統一)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반드시 대대(對待)와 삼재(三才) 등(等) 모든 상반작용(相反作用)을 통일(統一) 보합(保合)하여 대화(大和)하고 있으니, 역(易)에는 이를 「保合大和 = 대화(大和)를 보합(保合)한다」【註一】하며, 대화(大和)하고 있는 만물(萬物)의 운동(運動)은 반드시 고무력(鼓舞力)을 가진 일점(一點)을 가지고 대대양물(對待兩物)이 상추상인(相推相引)하면서 이 일점(一點)을 중추(中樞)로 하여 교호(交互)로 진퇴(進退) 왕래(往來)하나니, 이 일점(一點)을 중심(中心)이라 한다. 그러므로 물(物)의 운동(運動)에는 반드시 대대(對待)․중심(中心)․통일(統一)의 삼작용(三作用)이 혼륜(渾淪)되고 있으니, 대대(對待)가 있으므로 써 상반(相反)되는 양물(兩物)이 교호작용(交互作用)하여 운동(運動)을 일으키고, 중심(中心)이 있으므로 써 대대양물(對待兩物)이 서로 이탈(離脫)하지 아니하여 통일작용(統一作用)을 행(行)하고, 통일(統一)이 있으므로 써 정대작용(正大作用)이 자연(自然)스럽게 행(行)하는 것이니, 이 삼작용(三作用)의 대화(大和)한 상(象)을 「중(中)」이라 하고, 중(中)의 운동(運動)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최선(最善)이오, 이 까닭에 역(易)에는 중(中)을 가장 존상(尊尙)한 것이다. 그러나 중심(中心)이라 함은 대대양물(對待兩物)의 이외(以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오, 양성(陽性)을 띠고 고동(鼓動)하는 용(用)이 곧 중심(中心)이 되는 것이니, 태양계(太陽系)의 우주(宇宙)는 양성(陽性)을 띤 태양(太陽)이 중심(中心)이 되고, 혈액순환기(血液循環器)는 고동(鼓動)하는 양성(陽性)인 심장(心臟)이 중심(中心)이 되고, 지소지미(至小至微)한 원자(原子)도 양전기(陽電氣)를 띤 핵(核)이 중심(中心)이 된다고 한다. 이 이(理)를 인사(人事)에 의(擬)하면 가정(家庭)에는 남성(男性)인 부(夫)가 중심(中心)이 되고, 국가(國家)에는 정치(政治)의 용(用)이 되는 행정부(行政府)가 중심(中心)이 되는 것이다.
정치(政治)는 민심(民心)을 중심(中心)에 췌취(萃聚)하는 사업(事業)이오, 중심(中心)이 건일(健一)한 연후(然後)에 사회내(社會內)의 모든 대대세력(對待勢力)이 통일작용(統一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다. 공자(孔子)의 정치론(政治論)에 「爲政以德 譬如北辰居其所 而衆星共之 = 정(政)을 함이 덕(德)으로써 하면 비(譬)컨대 북신(北辰)이 그 소(所)에 거(居)하고 중성(衆星)이 공(共)함과 같다」【註二】하니, 이는 민중(民衆)을 생생존존(生生存存)케 하는 도덕(道德)으로써 정치(政治)를 행(行)하여 인심(人心)에 응(應)하면 마치 북극성(北極星)이 천(天)의 중추(中樞)에 위거(位居)하고 중성(衆星)이 사면(四面)으로 선요(旋繞)함과 같이 민심(民心)이 스스로 국가(國家)의 중심(中心)에 귀향(歸向)함을 말함이다. 그런데 중심(中心)을 중추(中樞)로한 중운동(中運動)에는 이심력(離心力)과 향심력(向心力)이 있는지라, 민중(民衆)은 통체생활(統體生活)에 있어서는 항상(恒常) 중심(中心)에 향응(向應)하여 사회(社會)를 위(爲)하여 공헌(貢獻)하려 하나니, 이는 통체(統體)에 주편(周遍)하는 향심력(向心力)이오, 개체생활(個體生活)에 있어서는 항상(恒常) 중심권력(中心權力)을 추척(推斥)하고 복종(服從)을 기피(忌避)하려 하나니, 이는 개체(個體)가 자주(自主)하는 이심력(離心力)이다. 즉(卽) 향심력(向心力)은 공전(公轉)이오 이심력(離心力)은 자전(自轉)이다. 물(物)의 운동(運動)에는 향심력(向心力)과 이심력(離心力)이 상반(相反)하는 작용(作用)으로 써 통일체내(統一體內)에 혼륜(渾淪)되어 있으되, 중심(中心)이 있으므로 써 대대(對待)가 대화(大和)하여 통일작용(統一作用)을 행(行)하는지라, 정치(政治)는 향심력(向心力)의 원리(原理)에 의(依)하여 대대(對待)되는 모든 세력(勢力)을 중심(中心)의 일점(一點)에 통어(統御)하면 사회(社會)가 통일적(統一的)으로 운영(運營)되고, 또 이심력(離心力)의 원리(原理)에 의(依)하여 민중(民衆)의 개체생활(個體生活)의 욕망(欲望)하는 바를 시여(施與)하면 민심(民心)이 화평(和平)하여 정령(政令)을 열종(悅從)하는 것이다. 토(土) 지(地)가 초목(草木)에 양분(養分)을 발시(發施)함이 충분(充分)할수록 초목근(草木根)의 의착(依着)이 더욱 공고(鞏固)하고, 사람은 예우(禮遇)의 융숭(隆崇)한 곳에 전심력(全心力)을 바치는지라, 세간(世間)의 만사만물(萬事萬物)은 대대원리(對待原理)에 의(依)하여 편권편무(偏權偏務)가 없다. 아(我)로부터 발시(發施)함이 대(大)한 때에 피(彼)로부터 보답(報答)함이 또한 대(大)하고, 아(我)가 아(我)의 권리(權利)만을 주장(主將)하는 때에 피(彼)는 피(彼)의 의무(義務)를 이행(履行)치 아니한다. 국가(國家)가 민중(民衆)으로부터 부세(賦稅)를 수납(收納)하면 그 대상(對償)의 혜택(惠澤)이 반드시 민중(民衆)에게 반시(返施)되어야 하고, 이 반시(返施)의 혜택(惠澤)이 민중(民衆)의 마음에 흡족(洽足)할수록 민중(民衆)의 국가(國家)에 대(對)한 의무이행(義務履行)이 또한 완전(完全)한 것이다. 그러므로 관자(管子)의 정치론(政治論)에 「與之爲取 = 여(與)하는 것이 취(取)함이 된다」【註三】함은, 민중(民衆)의 욕구(欲求)하는 바를 주어서 이심(離心)하려는 작용(作用)을 만족(滿足)시키는 때에 또한 민심(民心)이 전적(全的)으로 향심(向心)하도록 취득(取得)할 수 있음을 말함이니, 이가 이심력(離心力)과 향심력(向心力)이 통일작용(統一作用)을 행(行)하는 정치(政治)의 중운동(中運動)이다.
‣태극(太極)이란 무엇인가
태극(太極)이라는 말은 역학(易學)에서 나온 것이니, 역(易)에 「易有太極 是生兩儀 = 역(易)에 태극(太極)이 있으니 이가 양의(兩儀)를 생(生)한다」【註四】하니, 양의(兩儀)는 곧 음양(陰陽)의 대대(對待)를 말함이라, 고래(古來)로 태극(太極)에 대(對)하여 음양(陰陽)의 통일체(統一體)라고 하는 말이 있으나, 역학(易學)에 극(極)이라 함은 궁극(窮極)․극치(極致) 등(等)의 뜻을 표현(表現)할 뿐이오 통일체(統一體)의 뜻으로 쓴 일이 없으며, 또 태극(太極)이 양의(兩儀)를 생(生)한다 함은 이미 형성(形成)된 통일체(統一體)를 말함이 아니라, 능동(能動)하는 일중심(一中心)에서 고무(鼓舞)하는 운동(運動)이 일어나서 음양(陰陽) 양물(兩物)을 생(生)함을 말함이다. 역학(易學)과 깊은 관련(關聯)을 가지고 있는 홍범(洪範)에는 그 구궁도(九宮圖)에 【註五】一 二 三 四 五 六 七 八 九까지의 자연수(自然數)의 중수(中數)인 「五」를 중궁(中宮)에 배(配)하고 그것을 황극(皇極)에 의(擬)하니, 이는 물(物)의 중심(中心)이 되는 양성(陽性)의 최중심점(最中心點)이 극(極)으로 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태극(太極)이라 함은 물(物)의 중심(中心)에 위(位)하여 양성(陽性)을 띠고 능동(能動)하는 고무작용(鼓舞作用)의 일극치점(一極致點)을 말함이오, 그 극치점(極致點)에서 부단(不斷)한 고무작용(鼓舞作用)이 행(行)하여 음(陰)과 양(陽)의 양작용(兩作用)을 생(生)하는 것이다. 역(易)에「復其見 天地之心乎 = 복(復)에 그 천지(天地)의 심(心)을 견(見)할진저」【註六】한바, 복(復)이라 함은 동지(冬至)에 일양(一陽)이 내복(來復)함을 상(象)함이오, 천지(天地)의 심(心)이라 함은 물(物)을 생생(生生)하는 천지(天地)의 중심작용(中心作用)을 상(象)함이라, 동지(冬至)의 일양(一陽)은 양기발동(陽氣發動)의 추기(樞機)이오, 조화류행(造化流行)의 시단(始端)이므로 역(易)에는 이를 천지(天地)의 심(心)에 의(擬)한 것이며, 서화담(徐花潭)은 이 천지(天地)의 심(心)을 태극(太極)에 의(擬)하고, 또 말하되 「萬化之所自 萬殊之所本 此陰陽大頭顯處 = 만화(萬化)의 자(自)하는 바이오 만수(萬殊)의 본(本)하는 바이니, 이는 음양(陰陽)의 대두현처(大頭顯處)이라」【註七】하여, 일양(一陽)이 시생(始生)하는 동지(冬至)는 만만(萬萬)의 변화(變化)와 만만(萬萬)의 품물(品物)이 모두 여기로부터 나오고, 모두 여기에 근본(根本)하니 이는 음양(陰陽)이 제회(際會)하는 머리 꼭대기라고 함은, 이 꼭대기가 곧 태극(太極)이라는 뜻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태극(太極)과 천지(天地)의 심(心)은 동일(同一)한 뜻을 양면(兩面)으로 표현(表現)한 것이다.
그러나 천지(天地)의 심(心)은 동지일(冬至日)에만 있는 것이 아님으로 서화담(徐花潭)은 말하되 「三百六十之運 二十四氣之分 無非至日之流行者 = 삼백육십(三百六十)의 운(運)과 이십사기(二十四氣)의 분(分)이 지일(至日)의 유행(流行)하는 자(者)가 아님이 없다」【註同上】고 한 것이다.
다만 태극(太極)의 운행(運行)하는 작용(作用)에는 때를 따라서 차이(差異)가 없지 아니하니, 동지일(冬至日)은 일양(一陽)이 시생(始生)하여 만물생장(萬物生長)의 시단(始端)이 된다고 하면, 하지일(夏至日)은 일음(一陰)이 시생(始生)하여 만물성숙(萬物成熟)의 시단(始端)이 되는 것이니, 하지(夏至)는 용(用)이 체(體)로 변(辨)하는 일대(一大) 변혁기(變革期)이다. 그러므로 태극(太極)이 능동작용(能動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양성(陽性)의 일극치점(一極致點)에 위거(位居)하는 중심위(中心位)에는 변화(變化)가 없으나, 동지후(冬至後)는 음(陰)이 체(體)가 되고 양(陽)이 용(用)이 됨으로 태극(太極)은 양(陽)을 사역(使役)하여 용사(用事)하고 음(陰)과는 상교(相交)치 못하며, 하지후(夏至後)에는 양(陽)이 체(體)가 되고 음(陰)이 용(用)이 됨으로 태극(太極)은 양성(陽性)의 지(地)에 위거(位居)하고 음(陰)을 사역(使役)하여 용사(用事)하니, 이는 태극(太極)을 중심(中心)으로 하여 음양(陰陽)이 상우(相遇)함이다. 역(易)에 「姤遇也 柔遇剛也 天地相遇 萬物咸章也 = 구(姤)는 우(遇)함이니 유(柔)가 강(剛)을 우(遇)함이라 천지(天地)가 상우(相遇)하여 만물(萬物)이 모두 빛난다」【註八】하고, 또 「后以 施命誥四方 = 후(后)가 이(以)하여 명(命)을 시(施)하여 사방(四方)에 고(誥)한다」【註同上】하니, 이는 격부(隔否)하던 음(陰)과 양(陽)이 하지(夏至) 기운(氣運)을 당(當)하여 서로 제우(際遇)하고 음성(陰性)인 여후(女后)가 비로소 용사(用事)하여 시고(施誥)의 정사(政事)를 행(行)함을 말함이다.
사회(社會)에 있어서는 행정부(行政府)가 정치(政治)의 중심(中心)이 되고, 행정부(行政府)의 일극치점(一極致點)에 있는 국가원수(國家元首)는 태극(太極)의 위(位)이오, 입법부(立法府)와 행정부(行政府)는 양의(兩儀)이다. 그러므로 원수(元首)는 행정부(行政府)의 수령(首領)인 동시(同時)에 또한 일국(一國)의 수령(首領)으로서 일국민(一國民)이 추대(推戴)하고 일국민심(一國民心)이 귀향(歸向)하는 최고(最高)의 지위(地位)이다. 또 태극(太極)은 음양(陰陽)이 제회(際會)하는 곳에서 양성(陽性)의 일극치점(一極致點)에 위(位)하여 천지(天地)의 중심(中心)이 되어 음양(陰陽)을 통어(統御)하고 있으므로 원수(元首)는 국가(國家)의 최고지도(最高指導) 원리(原理)의 상징(象徵)으로서 입법부(立法府)와 행정부(行政府)를 아울러 통어(統御)하는데, 입법부(立法府)는 원수(元首)의 지도원리(指導原理)에 의(依)하여 법률(法律)을 제정(制定)하고, 행정부(行政府)는 그 제정(制定)한 법률(法律)에 의(依)하여 정치(政治)를 행(行)하는 것이 천지(天地)의 생존법칙(生存法則)에 합(合)하는 것이다. 만일 소위(所謂) 정당정치(政黨政治)라 하여 원수(元首)에게는 아무 실권(實權)이 없고 오직 입법부원(立法府員)의 두수(頭數)에 의(依)하여 정권(政權)이 수수(授受)된다고 하면, 이는 원수(元首)의 행권(行權)이 없고 오직 태극(太極)의 허위(虛位)를 옹유(擁有)할 뿐이며, 더욱이 원수(元首)에게 행권(行權)이 없다고 하면 이는 일국민(一國民)이 추대(推戴)한 최고인물(最高人物)을 무용(無用)의 지위(地位)에 폐치(廢置)하는 것으로서 사회(社會)의 생존원리(生存原理)에 어그러지는 것이다. 또 원수(元首)가 어느 일편당(一偏黨)에 가담(加擔)한다고 하면 이는 일국(一國)을 통어(統御)하는 본지(本旨)에 합(合)치 아니할 뿐만 아니라 반대당(反對黨)으로부터 발사(發射)하는 정쟁(政爭)의 시(矢)는 자연(自然)히 원수(元首)에게로 향(向)하게 되어 원수(元首)의 존엄성(尊嚴性)에 영향(影響)됨이 적지 아니하니, 이는 태극(太極)의 행권(行權)은 있으나 그 존위(尊位)가 훼상(毁傷)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수(元首)는 일국(一國)의 중심(中心)이 되어 사(私)치 아니하고 편(偏)치 아니하고 일국(一國)의 이(耳)로써 이(耳)를 삼고 일국(一國)의 목(目)으로써 목(目)을 삼고 일국(一國)의 구(口)로써 구(口)를 삼고 일국(一國)의 심(心)으로써 심(心)을 삼을 것이니, 이러한 연후(然後)에, 역(易)에 「聖人之大寶曰位 = 성인(聖人)의 대보(大寶)는 가로되 위(位)라」【註九】함과 같이 원수(元首)의 위(位)는 명실(名實)이 상부(相符)한 성인(聖人)의 보위(寶位)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원수(元首)에게 과오(過誤)가 있어 민의(民意)에 반(反)하는 일이 있는 때는, 사법부(司法府)가 대지(大地)의 위성적(衛星的) 임무(任務)를 가지고 이를 시정(是正)하는 것이다.
‣한도(限度)와 절(節)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이 중운동(中運動)에 합(合)하는 것은 절(節)이 있는 까닭이니, 절(節)이라 함은 물(物)의 발전(發展)이 그 한도(限度)에 지(止)함이다. 태양(太陽)의 열(熱)과 우로(雨露)의 윤(潤)이 비록 물(物)의 생존(生存)에 불가결(不可缺)한 것이나, 그 절도(節度)를 넘으면 한재(旱災)와 수해(水害)로 전화(轉化)하고, 주(晝)의 명(明)과 야(夜)의 유(幽)가 또한 물(物)의 생존(生存)에 불가결(不可缺)한 것이나, 주야(晝夜)의 장단(長短)이 그 절도(節度)를 넘는 지방(地方)은 물(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이 폐색(閉塞)되는 것이다. 초목(草木)의 근(根)․간(幹)․경(莖)․지(枝) 등(等)이 일기일복(一起一伏)하여 절(節)을 생(生)하고, 동물(動物)의 골격(骨格) 등(等)에 굴곡(屈曲)의 절(節)을 이루는 것은, 모두 자체(自體)의 생존상(生存上) 그 조직(組織)이 일정(一定)한 한도(限度)에 지(止)치 아니할 수 없음이다. 그러므로 역(易)에 「天地節而四時成 節以制度 不傷財 不害民 = 천지(天地)가 절(節)하여 사시(四時)가 성(成)하고 절(節)하여 써 도(度)를 제(制)하면 재(財)를 상(傷)치 아니하고 민(民)을 해(害)치 아니한다」【註十】하니, 이는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에 동지(冬至)․하지(夏至)와 춘분(春分)․추분(秋分)과 같은 절(節)이 있는 까닭에 사시(四時)가 자연(自然)스럽게 순환(循環)하여 물(物)을 생생(生生)하는 사공(事功)이 이루고 국가(國家)의 경비(經費)에 일정(一定)한 절도(節度)를 만들고 남용(濫用)함이 없으면, 국재(國財)의 모손(耗損)이 없고, 민생(民生)을 상(傷)치 아니함을 말함이니, 이가 곧 천지(天地)의 운행(運行)과 국가경제정책(國家經濟政策)의 중운동(中運動)이다.
사람의 일상생활(日常生活)에도 또한 허다(許多)한 절(節)이 있으니, 재화(財貨)의 소비(消費)에 절검(節儉)․절용(節用)이 있고, 음식(飮食)의 양(量)에 절음(節飮)․절식(節食)이 있고, 희로애락(憙怒愛樂)이 발(發)하여 절(節)에 중(中)함을 화(和)라 이르고, 행지진퇴(行止進退)가 그 분(分)을 넘지 아니함을 예절(禮節)이라 하며, 약(藥)은 비록 질병(疾病)을 치료(治療)하는 요제(要劑)이로되 그 용량(用量)이 절도(節度)를 넘으면 도리어 독(毒)으로 화(化)하고, 주(酒)는 비록 흥분제(興奮劑)이로되 그 음량(飮量)이 절도(節度)를 넘으면 도리어 마취제(痲醉劑)로 변(變)하여 유수(濡首)의 난(難) 【註十一】을 이르게 하는 것이다. 易에는 「甘節」「苦節」【註十二】이 있으니, 萬物의 味에 味의 適中함을 甘이라하고 味의 偏重함을 苦라 하나니, 함(鹹) 산(酸) 신(辛) 고(苦)가 절(節)에 중(中)함은 감절(甘節)이 되고, 절(節)을 지나가면 고절(苦節)이 되는 것이며, 육체(肉體)의 과로(過勞)와 심신(心神)의 과사(過思)를 고(苦)라 하는 것도 그것이 미(味)의 과절(過節)함과 같은 까닭이다.
그러나 사물(事物)이 절(節)을 과(過)하여 일변(一邊)에 편경(偏傾)한 때에 그를 교정(矯正)함에는, 대대균등(對待均等)의 이(理)에 의(依)하여 과절(過節)한 편경(偏傾)과 동등(同等)한 힘 즉(卽) 과절(過節)한 교정력(矯正力)을 가(加)한 연후(然後)에 비로소 중(中)에 돌아오는 것이니, 이 교정력(矯正力)은 상리(常理)로써 보면 과절(過節)하고 있으나 편경(偏傾)을 교정(矯正)하는 면(面)으로부터 볼 때에는 과절(過節)이 아니오 곧 중(中)이다. 역(易)에「過而亨 = 과(過)하여 형(亨)한다」【註十三】함은 절도(節度)를 과(過)함으로써 과오(過誤)가 변통(變通)되어 중(中)함을 말함이다. 예(例)컨대 사치(奢侈)의 풍(風)이 대행(大行)하는 때에 이를 교정(矯正)함에는, 사치풍(奢侈風)과 동등(同等)되는 강력(强力)한 검박풍(儉朴風)으로써 이를 극제(克制)한 연후(然後)에 중(中)에 돌아오는 것이오, 만일 미온(微溫)한 태도(態度)로써 효유(曉諭)․경계(警戒)하는 정도(程度)로서는 결(決)코 교정(矯正)되지 아니 하나니, 역(易)에「用過乎儉 = 용(用)함이 검(儉)에 과(過)한다」【註十四】함은, 재용(財用)이 과검(過儉)함은 절(節)을 지나는 것이나, 과검(過儉)이 아니면 중(中)에 돌아올 수 없는 때는 과(過)함이 마땅하다 함을 말함이다. 사물(事物)이 부패(腐敗)한 때는, 그 부패정도(腐敗程度)와 균등(均等)한 정도(程度)의 소청력(掃淸力)을 가(加)하지 아니하면 부패(腐敗)는 제거(除去)되지 아니하고, 사물(事物)에 타력(他力)의 억압(抑壓)이 있을 때는 그 억압력(抑壓力)과 균등(均等)한 저항력(抵抗力)으로써 반발(反撥)치 아니하면 그 억압(抑壓)은 해소(解消)되지 아니 하나니, 이 소청력(掃淸力)과 저항력(抵抗力)은 상리(常理)로써 보면 절(節)을 과(過)하고 있으나 부패(腐敗)․억압(抑壓)의 현실하(現實下)에서는, 도리어 중(中)이 되나니 이가 모두 「과이형(過而亨)」의 이(理)에 의(依)한 것이다.
   
‣삼현일장(三顯一藏)의 이(理)
절(節)이라 함은 그 한도(限度)에 지(止)하는 것이므로, 거기에는 스스로 수(數)가 있으니 천체(天體)의 운행(運行)으로써 보면 행성(行星)의 태양(太陽)에 대(對)한 공전주기(公轉週期)는 대략(大略) 금성(金星)이 이백이십사일(二百二十四日) 칠(七)이오, 대지(大地)가 삼백육십오일(三百六十五日) 이오(二五)이오, 화성(火星)이 육백팔십육일(六百八十六日) 구팔(九八)이오, 목성(木星)이 사천삼백삼십이일(四千三百三十二日) 오구(五九)이며, 월(月)의 운행(運行)은 일삭망월(一朔望月)이 이십구일(二十九日) 오삼(五三)이오, 일교점월(一交點月)이 이십칠일(二十七日) 이일(二一)인 것 등(等)이 모두 절(節)의 수(數)이다. 소강절(邵康節)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삼현일장(三顯一藏)의 수(數)를 말하되 「天地之體數四 而用者三 不用者一 = 천지(天地)의 체수(體數)가 사(四)에, 용(用)하는 자(者)가 삼(三)이오 불용(不用)하는 자(者)가 일(一)이라」【註十五】하니, 이는 천지(天地)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그 체수(體數)가 사(四)인데 삼(三)만이 현용(顯用)하고 일(一)은 퇴장(退藏)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원(源)을 온축(蘊蓄)하여 써 현용(顯用)에 대비(對備)함을 말함이다. 천(天)의 사시(四時)에 동(冬)이 퇴장(退藏)하여 만물(萬物)이 귀로(歸勞)하고, 인신(人身)의 상하전후(上下前後)에 배(背)가 퇴장(退藏)하여 상하전(上下前)이 모두 홀로 운동(運動)하고 있으되 오직 배(背)는 홀로 운동(運動)치 못하고 지(地)의 사유(四維)에 극지(極地)가 퇴장(退藏)하여 만물(萬物)이 생육(生育)치 못하니, 이가 모두 삼현일장(三顯一藏)이다. 그러나 이 퇴장부(退藏部)는 모두 고장(庫藏)의 임무(任務)를 가지고 있으니 동(冬)은 명춘(明春)의 생육작용(生育作用)에 대비(對備)하여 대화(大和)를 보합(保合)하는 고장(庫藏)이오, 배(背)는 장부(臟腑)의 주요기관(主要器官)이 모두 배(背)에 계속(係屬)하여 일신(一身)의 생리(生理)를 주관(主管)하는 고장(庫藏)이니 이 불용(不用)하는 일(一)이 곧 가장 대용(大用)하는 일(一)이라, 대지(大地)의 극지(極地)도 또한 지력(地力)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위(爲)하여 어떠한 고장적(庫藏的) 임무(任務)를 다하고 있음이 틀림없는 일이다.
물(物)의 운행과정(運行過程)의 퇴장부(退藏部)는 생존작용(生存作用)이 지(止)하여 절(節)을 이루는 곳이라, 그러나 지(止)하여 절(節)을 이루고 있음은 영구(永久)히 지(止)함이 아니오, 그절(節)에서 종(終)을 이루는 동시(同時)에 또한 시(始)를 이루어 다시 출발(出發)하려하는 귀로처(歸勞處)이다. 동(冬)의 대화(大和)는 만물(萬物)의 성종성시(成終成始)하는 단계(段階)이므로, 역(易)에는 동춘(冬春)의 교(交)에 일년중(一年中) 최대(最大)의 절(節)이 결성(結成)한다 하여 「견다절(堅多節)」【註十六】의 상(象)이 있음을 말하고, 주공(周公)은 「冬日之閉凍也 不固則 春夏之長 草木也 不茂 = 동일(冬日)의 폐동(廢凍)함이 고(固)치 아니하면 춘하(春夏)의 초목(草木)을 장(長)함이 무(茂)치 못하다」【註十七】함은 동(冬)의 폐동(廢凍)은 일년(一年)의 대절(大節)을 이루어 물(物)의 다음 단계(段階)로 발현(發顯)할 정기(精氣)를 보합(保合)하고, 또 보합(保合)의 도(度)가 강(强)할수록 그에 정비(正比)하여 발현(發顯)의 도(度)가 또한 강(强)한 것인데, 폐동(廢凍)함이 강(强)치 못하면 다음해의 생장(生長)이 또한 무성(茂盛)치 못하다 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물(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반드시 삼현일장(三顯一藏)의 이(理)에 의(依)하여 사(四)의 일(一)이 퇴장(退藏)하여 절(節)을 이루어 정기(精氣)를 보합(保合)치 아니하면 안되나니, 사람의 일일중(一日中) 동작(動作)과 수면(睡眠)같은 것도 대개(大槪) 사분지삼(四分之三)을 동작(動作)하고 사분지일(四分之一)을 수면(睡眠)하여 정기(精氣)를 축양(蓄養)하여 써 차일(次日)의 활동(活動)에 대비(對備)하고, 체력(體力)과 정력(精力)의 사용(使用) 같은 것도 또한 사분지일(四分之一) 정도(程度)의 여축(餘蓄)을 두지 아니하면 용력(用力)이 과도(過度)하여 심대(甚大)한 피로(疲勞)를 느끼는 것이다. 손자병법(孫子兵法)에 「遠輸則百姓貧 力屈財殫 中原內虛於家 百姓之費 十去其七 = 원수(遠輸)한즉 백성(百姓)이 빈(貧)하여 역(力)이 굴(屈)하고 재(財)가 다하여 중원(中原)이 내(內)로 가(家)가 허(虛)하고 백성(百姓)의 비(費)가 십(十)에 칠(七)을 거(去)한다」【註十八】하니, 십(十)의 칠(七)은 대개(大槪) 사분(四分)의 삼(三)이라, 전선(戰線)이 노원(路遠)하여 운송(運送)에 많은 재력(財力)을 소비(消費)하면, 자연(自然)히 병력(兵力)과 물자(物資)를 십(十)의 칠(七) 정도(程度)를 징발(徵發)하게 되어 백성(百姓)이 곤궁(困窮)하게 되는 것이므로, 백성공역(百姓供力)의 최대한도(最大限度)를 십(十)의 칠(七) 이내(以內)에 한지(限止)하여야 할 것을 말함이다. 지금에 국민(國民)의 식량문제(食糧問題) 같은 것도 국민(國民) 총생산량(總生産量)의 사분지삼(四分之三)이 일년중(一年中)에 소비(消費)되고 사분지일(四分之一)이 차년도(次年度)로 이월(移越)하여 써 항상(恒常) 여력(餘力)을 비축(備蓄)하는 것이 식량정책(食糧政策)의 이상(理想)이라고 하는 것도 또한 삼현일장(三顯一藏)의 이(理)에 명합(冥合)하는 것이다. 사람이 일상(日常)의 대인접물(對人接物)에도 이 이(理)가 있으니, 소강절(邵康節)은 말하되 「凡事爲之極 幾十之七則 可以止矣 = 무릇 사위(事爲)의 극(極)은 거의 십(十)의 칠(七)이면 가(可)히 써 지(止)할지라」【註十九】하니, 이는 예(例)컨대 음주(飮酒)함에는 주량(酒量)의 십(十)의 칠정도(七程度)에 지(止)하고, 분노(憤怒)가 발로(發露)하는 때는 십(十)의 삼(三) 정도(程度)를 인내(忍耐)하여 과도(過度)함을 후회(後悔)하는 일이 없게 하고, 권세(權勢)를 장악(掌握)하는 때에 십(十)의 삼(三) 가량(假量)을 타(他)에 양보(讓步)하여 독권전천(獨權專擅)한다는 혐기(嫌忌)를 피(避)하라 함을 말함이다.
註一. 乾卦彖傳
註二. 論語爲政篇
註三. 史記管晏列傳
註四. 繫辭上傳 第十一章
註五. 洪範九宮圖는 다음과 같다
註六. 復卦彖傳
註七. 徐花潭 先生集 復其見天地之心篇
註八. 上註는 姤卦彖傳이오 下註는 姤卦大象傳이다
註九. 繫辭下傳 第一章
註十. 節卦彖傳
註十一. 未濟卦 上九爻 小象傳
註十二. 節卦九五 上六爻辭
註十三. 小過卦彖傳
註十四. 小過卦大象傳
註十五. 皇極經世觀物外篇上
이理를 八卦로써 보면 乾․坤․坎․離 四卦는 反易이 없음으로 原數대로 四가되고, 震과 艮은 反易함으로 一이되고, 巽과 兌는 또한 反易함으로 一이되어, 모두 合하여 六이 되니, 이는 體가 八이오 用이 六이다. 또 六十四卦로써 보면 乾․坤․坎․離․頤․大過․中孚․小過 八卦는 反易이 없음으로 原數대로 八이 되고, 그 나머지 五十六卦는 모두 反易함으로 二十八이 되어, 合하여 三十六이 되는데, 六十四는 八八의 因重이오 三十六은 六六의 因重이니, 이도 또한 體가 八이오 用이 六이다 八과 六은 곧 四와 三의 比이므로 八卦와 六十四卦는 三顯一藏의 象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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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 九 二
三 五 七
八 一 六
<!== Not Allowed Attribute Filtered ( src="file:///C:/Users/ADMINI~1/AppData/Local/Temp/DRW000012304c89.gif") -->註十六. 說卦傳 第十一章 艮卦註十七. 韓非子 解老論
註十八. 孫子 作戰篇
註十九. 皇極經世觀物外篇上
   
第二節 중(中)과 화(和)
‣화(和)는 중운동(中運動)의 극치(極致)
천지(天地)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이 중운동(中運動)을 행(行)하고 있음은, 만물(萬物)로 하여금 모두 통일(統一)되어 화(和)를 얻게 하기 위(爲)함이니, 화(和)라 함은 그 체(體)의 조직(組織)은 각기(各其) 독자(獨自)하고 있으되, 그 용(用)의 운행(運行)은 서로 자연(自然)스럽게 조화(調和)하여 편(偏)치 아니하고 국(局)치 아니한 상태(狀態)를 말함이다. 그러므로 생존작용(生存作用)의 본원(本源)이 되고 있는 천지(天地)․산택(山澤)․뇌풍(雷風)․수화(水火)의 팔물(八物)도 또한 운행(運行)하여 이 화(和)의 작용(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다.
천지(天地)의 지건지순(至健至順)한 덕행(德行)은 이간(易簡)이되고, 산택(山澤)의 비고진열(卑高陳列)한 형상(形狀)은 질서(秩序)가 되고, 뇌풍(雷風)의 동(動)하고 요(撓)하는 작용(作用)은 성기(聲氣)가 되고, 지상(地上)의 수화(水火)는 곧 천상(天上)의 일월(日月)이라, 수화(水火)와 일월(日月)은 천지(天地)의 중기(中氣)로서 조절작용(調節作用)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간(易簡)으로써 물(物)을 생생(生生)하고 질서(秩序)로써 물(物)의 순서(順序)와 정위(定位)를 정제(正齊)하고, 성기(聲氣)로써 물(物)을 고무(鼓舞)하고, 중기(中氣)의 조절작용(調節作用)은 천지간(天地間)을 운행(運行)하여, 냉(冷)으로써 열(熱)을 제(濟)하고 열(熱)로써 냉(冷)을 제(濟)하고, 한번 주(晝)하고 한번 야(夜)하여, 천지간(天地間)의 모든 대대관계(對待關係)를 조화(調和)하여 써 중운동(中運動)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도 화(和)로써 극치(極致)를 삼나니 공자(孔子)의 정치론(政治論)에 「政寬則民慢 慢則糾之以猛 政猛則民殘 殘則施之以寬 寬以濟猛 猛以濟寬 政是以和 = 정(政)이 관(寬)한즉 민(民)이 만(慢)하나니, 만(慢)한즉 규(糾)하기를 맹(猛)으로써 하고, 정(政)이 맹(猛)한즉 민(民)이 잔(殘)하나니, 잔(殘)한즉 시(施)하기를 관(寬)으로써 한다. 관(寬)하여 써 맹(猛)을 제(濟)하고, 맹(猛)하여 써 관(寬)을 제(濟)하는지라, 정(政)이 이로써 화(和)한다」【註一】하니, 관(寬)은 유완(柔緩)함이오, 맹(猛)은 엄급(嚴急)함이오, 만(慢)은 태만(怠慢)함이오, 잔(殘)은 조잔(凋殘)함이라, 이는 정치(政治)는 화(和)로써 극치(極致)를 삼는데 관(寬)과 맹(猛)이 상제(相濟)한 연후(然後)에 화(和)를 얻을 수 있고, 또 관(寬)과 맹(猛)이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하여 가(可)히 편승편패(偏勝偏敗)치 못할 것을 말함이오, 또 말하되 「詩曰 不競不絿 不剛不柔 布政優優 百祿是遒 和之至也 = 시(詩)에 가로되 경(競)치 아니하고 구(絿)치 아니하고 강(剛)치 아니하고 유(柔)치 아니하고 정(政)을 포(布)함이 우우(優優)하니 백록(百祿)이 이에 주(遒)한다 하니 화(和)의 지극(至極)함이라」하니, 경(競)은 강(剛)함이오 구(絿)는 급(急)함이오 우우(優優)는 화(和)함이오 주(遒)는 취(聚)함이라, 이것도 강급강유(强急剛柔)가 모두 중(中)하고 절(節)하여 정치(政治)가 화(和)의 극처(極處)에 도달(到達)함을 말함이다.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에 있어서 천지(天地)의 이간(易簡)의 상(象)은 이간정치(易簡政治)가 되고, 산택(山澤)의 질서(秩序)의 상(象)은 전례(典禮)가 되고, 뇌풍(雷風)의 성기(聲氣)의 상(象)은 언사(言辭)가 되고, 수화(水火)의 조절(調節)의 상(象)은 조화(調和)가 되는 것이다. 원래(元來) 천지일월(天地日月)의 운행(運行)은 지대지건(至大至健)함으로 거기에는 스스로 질서(秩序)있는 행도(行度)가 정(定)하고 율동(律動)하는 성음(聲音)이 생(生)하나니, 이 행도(行度)와 성음(聲音)은 충어조수(虫魚鳥獸) 등(等)에 있어서는 동작(動作)과 명성(鳴聲)이 되고, 사람에 있어서는 언행(言行)이 되고, 정치(政治)에 있어서는 예악(禮樂)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가 수양론(修養論)과 정치론(政治論)에서 항상(恒常) 언행(言行)과 예악(禮樂)을 중요(重要)하게 말한 것은,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반드시 천지일월(天地日月)의 질서(秩序)있는 행도(行度)와 율동(律動)하는 성음(聲音)을 본받아야 하는 까닭이오, 다시 팔물(八物)에 취(就)하여는 산택(山澤)에서 전례(典禮)의 상(象)을 취(取)하고 뇌풍(雷風)에서 언사(言辭)와 풍악(風樂)의 상(象)을 취(取)한 것이며, 또 이 뜻을 역경조직(易經組織)에 명시(明示)하니, 계사상전(繫辭上傳)의 초장(初章)으로부터 제칠장(第七章)에 이르기까지와 계사하전(繫辭下傳)의 초장(初章)과 종장(終章)에 이간(易簡)의 이(理)를 말하고, 계사상전(繫辭上傳)의 종장(終章)에 전례(典禮)를 말하고, 계사하전(繫辭下傳)의 종장(終章)에 언사(言辭)를 말하니, 이는 중운동(中運動)에 합(合)하는 생존사업(生存事業)을 행(行)함에는 이간(易簡)․전례(典禮)․언사(言辭)가 가장 중요(重要)한 행사(行事)라 함을 말함이오. 역경(易經)의 상편(上篇)에 수화(水火)로써 종(終)하고 하편(下篇)에 또 수화(水火)의 교불교(交不交)로써 종(終)한 것은, 천지(天地)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반드시 조화(調和)에 귀치(歸致)함을 말함이다.
‣이간(易簡)의 우로(憂勞)
사람이 천지(天地)로 더불어 삼재(三才)의 위(位)를 이루는 것은 사람에게 부여(賦與)된 천명(天命)이며, 이 삼재(三才)의 위(位)를 이루기 위(爲)하여는 역(易)에 「易簡而天下之理得矣 天下之理得而成位乎其中矣 = 이간(易簡)하매 천하(天下)의 이(理)가 득(得)하고 천하(天下)의 이(理)가 득(得)하매 위(位)를 그 중(中)에 이룬다」【註二】하니, 위(位)라 함은 삼재(三才)의 위(位)이오 중(中)이라 함은 천지(天地)의 중(中)이라, 사람이 이간(易簡)의 이(理)를 본받아서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을 행(行)하면, 일신(日新)하는 덕(德)이 가구(可久)하고 부유(富有)하는 업(業)이 가대(可大)하여, 삼재(三才)의 위(位)를 이룬다 함을 말함이다. 그러나 이간(易簡)의 이(理)를 본받아서 실천(實踐)함에는 반드시 우로(憂勞)치 아니하면 안되나니, 우로(憂勞)라 함은 시세(時勢)를 근심하고 세사(世事)를 걱정하는 지성(至誠)을 말함이니, 지성(至誠)은 진실(眞實)이므로 스스로 이간(易簡)의 길에 직통(直通)하는 것이다. 역(易)에 천지(天地)의 이간작용(易簡作用)을 말하되 「鼓萬物而不與聖人同憂 盛德大業 至矣哉 = 만물(萬物)을 고(鼓)하되 성인(聖人)으로 더불어 우(憂)를 한가지로 아니한다」【註三】하니, 이는 천지(天地)의 운동(運動)은 정대(正大)의 정(情)이 있어, 스스로 지성(至誠)하여 아무 사사(私邪)가 없고, 스스로 진실(眞實)하여 아무 허위(虛僞)가 없음으로, 만물(萬物)을 고무(鼓舞)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함에 스스로 이간(易簡)한 것이나, 사람은 정대(正大)의 정(情)이 없음으로 비록 성인(聖人)이라 하더라도 우(憂)하고 환(患)하고 노(勞)하고 면(勉)한 연후(然後)에 이간작용(易簡作用)에 합(合)할 수 있음을 말함이다.
이 우로(憂勞)라 함은 변설(辯舌)이나 문장(文章)으로서 되는 것이 아니오 또 기월간(朞月間)을 면강(勉强)하여 학득(學得)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소위(所謂) 사상(思想)이나 주의(主義)같은 것도 우로(憂勞)하는 지성(至誠)을 체(體)로 하지 아니하면, 그 사상(思想)이나 주의(主義)가 의착(依着)할 근거(根據)를 얻지 못하고 허위(虛僞)에 흘러서, 한갓 세리(勢利)를 활쏘기하고 명예(名譽)를 낚시질하는 방편(方便)으로 되어, 스스로 기만(欺瞞)하고 세상(世上)을 기만(欺瞞)하여 크게 사회(社會)의 생존(生存)을 적해(賊害)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명(有名)한 악양루기(岳陽樓記)에는 「嘗求古仁人之心 居廟堂之高則憂其民 處江湖之遠則憂其君 是 進亦憂 退亦憂 然則何時而樂也 必曰 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 = 일즉 고(古)의 인인(仁人)의 심(心)을 구(求)하건대 묘당(廟堂)의 고(高)에 거(居)한즉 그 민(民)을 우(憂)하고, 강호(江湖)의 원(遠)에 처(處)한즉 그 군(君)을 우(憂)하니, 이는 진(進)하여도 또한 우(憂)하고 퇴(退)하여도 또한 우(憂)함이라, 그런즉 하시(何時)에 낙(樂)하랴 반드시 가로되 천하(天下)의 우(憂)에 선(先)하여 우(憂)하고 천하(天下)의 낙(樂)에 후(後)하여 낙(樂)한다 할진저」하니, 이는 인인(仁人)은 벼슬에 있으면 민생(民生)을 근심하고 초야(草野)에 있으면 국사(國事)를 근심하여 진퇴(進退)가 모두 근심인데 오직 천하백성(天下百姓)을 모두 즐겁게 한 연후(然後)에 자기(自己)도 즐겨 하리라 함을 말함이니, 이 선우후락(先憂後樂)하는 심경(心境)이 곧 우국자(憂國者)의 마음이오, 이 마음에서 발로(發露)하는 행위(行爲)가 곧 이간작용(易簡作用)이 되는 것이다.
‣전례(典禮)와 경건(敬虔)
만물(萬物)이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함이, 비록 지잡지동(至雜至動)하되 조금도 혼란(混亂)치 아니함은 자연적질서(自然的秩序)가 있는 까닭이니, 이 질서(秩序)를 사람의 사회생활(社會生活)에 적용(適用)한 것이 곧 전례(典禮)이다. 역(易)에 「聖人有 以見天下之動 而觀其會通 以行其典禮 = 성인(聖人)이 써 천하(天下)의 동(動)함을 보고 그 회통(會通)을 관(觀)하여 써 그 전례(典禮)를 행(行)한다」【註四】하니, 회(會)라 함은 사세(事勢)가 반착(盤錯)하고 중리(衆理)가 취회(聚會)하여 허다(許多)한 곡직(曲直)․난이(難易)가 있는 곳이오, 통(通)이라 함은 회(會)의 속에 질색구애(窒塞拘礙)가 있음을 통활(通闊)하는 것이오, 전례(典禮)라 함은 사람이 떳떳이 지켜야할 전장(典章)․절도(節度)․윤서(倫序)․의칙(儀則) 등(等)과 같은 것으로서 사람의 행위(行爲)에 일정(一定)한 분도(分度)를 설정(設定)하여 항상(恒常) 경건(敬虔)한 태도(態度)를 가지고 유탕(流蕩)․방종(放縱)에 흐르지 아니하게 함이다. 물(物)의 운행과정(運行過程)에는 반드시 중리(衆理)의 착잡(錯雜)과 또 그를 통활(通闊)하는 도리(道理)가 있는데, 거기에는 전례(典禮)가 있은 연후(然後)에 사물(事物)이 순동(順動)하여 서로 문란(紊亂)치 아니하고 스스로 통(通)하는 것이오, 만일 전례(典禮)가 없으면 혼란분잡(混亂紛雜)하여 운행(運行)이 건체(蹇滯)되는 것이니, 사회(社會)가 도덕적(道德的)으로 무질서상태(無秩序狀態)에 빠지는 것은 전례(典禮)가 준행(遵行)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전례(典禮)를 준행(遵行)함에는 백천(百千)의 규정(規定)보다도 오직 경건(敬虔)하는 마음 하나가 주(主)가 되나니, 경건(敬虔)이라 함은 공경(恭敬)하고 엄숙(嚴肅)함을 말함이라, 공자(孔子)의 예론(禮論)에 「林放 問禮之本 子曰 大哉問 禮與其奢也 寧儉 喪與其易也 寧戚 = 임방(林放)이 예(禮)의 본(本)을 물은대 자(子) 가라사대 크다 물음이여 예(禮)가 그 사(奢)함으로 더불어 하곤 차라리 검(儉)할지오, 상(喪)이 그 이(易)함으로 더불어 하곤 차라리 척(戚)할지라」【註五】하여, 검소(儉素)와 애척(哀戚)이 예(禮)의 근본(根本)이 됨을 말하니, 검소(儉素)와 애척(哀戚)은 곧 경건(敬虔)하는 마음이다. 경건(敬虔)의 일이(一二) 예(例)를 들건대 음식(飮食)을 대(對)하여는 일죽일반(一粥一飯)이 그 내처(來處)의 용이(容易)치 아니함을 생각하고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먹는다면 주지육림(酒池肉林)하는 불검(不儉)이 없을 것이오, 의복(衣服)을 대(對)하여는 일사일루(一絲一縷)의 물력(物力)이 간난(艱難)함을 생각하고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입는다면 호화사치(豪華奢侈)하는 불손(不遜)이 없을 것이오, 사람을 대(對)하여는 비록 빈부(貧富)․강약(强弱)의 차(差)는 있을지언정, 각기(各其) 생존(生存)을 유지(維持)하기 위(爲)한 천부(天賦)의 인권(人權)이 있음을 생각하고 경건(敬虔)한 마음으로 대(待)한다면 무리(無理)히 억압(抑壓)․유린(蹂躪)․침어(侵漁)하는 불순(不順)이 없을 것이니, 이러한 불검(不儉)․불손(不遜)․불순(不順)이 없다는 것이 곧 전례(典禮)가 준행(遵行)되어 사회(社會)의 질서(秩序)가 유지(維持)되는 소이(所以)이다.
‣언사(言辭)와 풍악(風樂)
천지(天地)에 율동(律動)하는 성음(聲音)이 있음과 같이,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성음(聲音)은 곧 언사(言辭)이니, 사람은 언사(言辭)로써 그 사상(思想)을 발표(發表)하고 사람과 접응(接應)하는 것이므로, 역(易)에는 언사(言辭)의 중요성(重要性)을 말하되 「亂之所生也 則言語以爲階 = 난(亂)의 생(生)하는바는 곧 언어(言語)가 써 계(階)가 된다」【註六】하여, 변란(變亂)이 생(生)하는 것은 모두 언어(言語)를 근신(謹愼)치 아니한 것이 그 발단(發端)이 됨을 말하고, 또 언사(言辭)로써 인물(人物)을 감식(鑑識)하는 방법(方法)을 말하되 「將叛者其辭慙 中心疑者其辭枝 吉人之辭寡 躁人之辭多 誙善之人其辭游 失其守者其辭屈 = 장차(將且) 반(叛)하려는 자(者)는 그 사(辭)가 참(慙)하고 중심(中心)이 의(疑)한 자(者)는 그 사(辭)가 지(枝)하고, 길인(吉人)의 사(辭)는 과(寡)하고, 조인(躁人)의 사(辭)는 다(多)하고, 선(善)을 경(誙)하는 사람은 그 사(辭)가 유(游)하고, 그 수(守)를 실(失)한 자(者)는 그 사(辭)가 굴(屈)한다」【註七】하니, 언사(言辭)라 함은 그 사람의 심정(心情)과 의사(意思)가 성음(聲音)을 통(通)하여 외부(外部)에 표현(表現)되는 것이므로, 언사(言辭)로써 그 위인(爲人)의 일반(一半)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마음은 진실(眞實)하되 변재(辯才)의 부족(不足)으로 인(因)하여 그 의사(意思)가 충분(充分)히 발표(發表)되지 못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언사(言辭)의 기(氣)에 중심(中心)의 진실(眞實)이 스스로 나타나는 것이며, 또 비록 음흉(陰兇)한 마음을 품고 교언령색(巧言令色)으로써 사람을 속인다 하더라도, 그 언사(言辭)의 기(氣)에 중심(中心)의 음흉(陰兇)이 스스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불의(不義)의 반심(叛心)을 품고 있는 자(者)는 중심(中心)에 반드시 참괴(慙愧)의 기(氣)가 동(動)하고 있으므로, 그 언사(言辭)에 참괴(慙愧)가 나타나는 것이오, 중심(中心)에 의혹(疑惑)을 품고 있는 자(者)는, 진행(進行)하는 방향(方向)이 확정(確定)치 못함으로, 그 언사(言辭)가 일직선(一直線)으로 나가지 못하고 여러 분지(分枝)로 되는 것이오, 정직성실(正直誠實)한 사람은, 소견(所見)과 이론(理論)이 명직(明直)함으로, 그 사(辭)가 소(少)하고 조동경박(躁動輕薄)한 사람은, 자기(自己)를 나타내기에 급(急)함으로, 그 사(辭)가 다(多)하고, 선량(善良)한 사람을 무해모략(誣害謀略)하는 자(者)는, 깊이 그 종적(蹤跡)을 숨기고 은밀(隱密)히 음해(陰害)를 붙이므로, 그 언사(言辭)에 근거(根據)가 없고 허공(虛空)에서 부유(浮游)하는 것이오, 중심(中心)에 확호(確乎)한 조수(操守)가 없는 자(者)는, 심주(心主)가 없어서 주장(主將)이 철저(徹底)치 못함으로, 그 언사(言辭)가 직통(直通)치 못하고 스스로 굴요(屈橈)한다 함을 말한 것이다. 역학(易學)은 사회(社會)의 생존(生存)하는 원리(原理)를 천명(闡明)한 학문(學問)이라, 사회(社會)의 제도(制度)가 아무리 미량(美良)하더라도 그의 운용(運用)을 그르치면 도리어 악제도(惡制度)로 화(化)하는 일이 있으므로, 역학(易學) 전체(全體)를 통(通)하여 현인(賢人)을 존상(尊尙)하고 현인(賢人)을 녹양(祿養)하는 것을 국가(國家)의 최대(最大) 길사(吉事)로하고, 따라서 인물(人物)의 선부(善否)를 감식(鑑識)하여 거용(擧用)하는 것이 극(極)히 중요(重要)한 일이므로, 특(特)히 언사(言辭)로써 감식(鑑識)하는 방법(方法)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그 마음이 천지자연(天地自然)과 같이 진실(眞實)하고 조화(調和)하면 그 발로(發露)하는 언사(言辭)가 또한 자연(自然)스러워서 참사(慙辭)․지사(枝辭)․다사(多辭)․유사(游辭)․굴사(屈辭) 같은 것이 없고,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성(聲)에 합(合)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의 언사(言辭)를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성(聲)에 합(合)하게 함에는 성음(聲音)의 가장 조화(調和)되고 있는 풍악(風樂)을 통(通)치 아니하면 안되나니, 풍악(風樂)의 근본정신(根本精神)은 성음(聲音)의 소자출(所自出)하는 심흉(心胸)을 통창(通暢)케 하여 성정(性情)을 양(養)하고 그 사예(邪穢)를 탕척(蕩滌)하고 그 사재(渣滓)를 소융(消融)함에 있는지라, 역(易)의 예괘(豫卦)에 악(樂)을 대작(大作)함을 말한 것은, 화기(和氣)를 조장(助長)하여 정기(正氣)를 기르고 사심(邪心)을 막기 위(爲)함이오, 고어(古語)에 「移風易俗 莫善於樂 = 풍(風)을 이(移)하고 속(俗)을 역(易)함에는 악(樂)보다 선(善)함이 없다」함은, 야비(野卑)한 풍속(風俗)․음란(淫亂)한 풍속(風俗)․강폭(强暴)한 풍속(風俗) 등(等)을 변개(變改)하여 양풍미속(良風美俗)으로 만드는데는 풍악(風樂)을 통(通)하는 것이 가장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율동(律動)에 합(合)함을 말함이다.
‣예악(禮樂)의 근본정신(根本精神)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인 정치(政治)는 이간(易簡)으로써 정체(定體)를 삼고, 전례(典禮)와 풍악(風樂)으로써 대용(大用)을 삼고, 다시 조절작용(調節作用)으로써 중화(中和)를 만드는 것이니, 공자(孔子)의 정치론(政治論)에 항상(恒常) 「예악(禮樂)」을 말하는 것은 예악(禮樂)이 정치(政治)의 대용(大用)이 되는 까닭이다. 전례(典禮)는 엄숙(嚴肅)하고 풍악(風樂)은 화예(和豫)하니, 엄숙(嚴肅)이 편승(偏勝)하면 인심(人心)이 구속(拘束)되고, 화예(和豫)가 편승(偏勝)하면 인심(人心)이 유탕(流蕩)하는지라, 그러므로 엄숙(嚴肅)과 화예(和豫)가 양자상제(兩者相濟)하고, 또 중기(中氣)로써 조절(調節)하면, 엄숙(嚴肅)하되 구속(拘束)되지 아니하고, 화예(和豫)하되 유탕(流蕩)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례(典禮)와 풍악(風樂)은 형식(形式)과 근본정신(根本精神)이 양전(兩全)치 아니하면 안되나니, 전례(典禮)의 근본정신(根本精神)은 경건(敬虔)하는 마음이오, 풍악(風樂)의 근본정신(根本精神)은 언사(言辭)의 자연(自然)스러운 발로(發露)이다. 그러므로 공자(孔子)의 예악론(禮樂論)에 「禮云禮云 玉帛云哉 樂云樂云 鍾鼓云哉 = 예(禮)라예(禮)라하니 옥백(玉帛)을 이름이랴, 악(樂)이라 악(樂)이라하니 종고(鐘鼓)를 이름이랴」【註八】하니, 이는 예악(禮樂)이라 함은 옥백(玉帛) 등(等) 폐물(幣物)이나 종고(鐘鼓) 등(等) 악기(樂器)를 말함이 아니오 예악(禮樂)의 근본정신(根本精神)을 이름이라 하여 당세(當世)의 사람들이 예악(禮樂)의 근본정신(根本精神)을 망실(忘失)하고, 오직 폐물(幣物)이나 악기(樂器)로써 예악(禮樂)이라고 하는 것을 평(評)한 말이니, 이간(易簡)․전례(典禮)․언사(言辭)는 역학(易學)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의 총결론(總結論)이다. 그런데 논어(論語)의 최종장(最終章)에 있는 공자(孔子)의 말에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 명(命)을 알지 못하면 써 군자(君子)가 되지 못하고, 예(禮)를 알지 못하면 써 입(立)치 못하고, 언(言)을 알지 못하면 써 인(人)을 알지 못한다」【註九】하니, 이는 자기(自己)에게 어떠한 천명(天命)이 부여(賦與)되고 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위해(危害)를 만날 때에 구차(苟且)히 도피(逃避)하려하고, 이익(利益)을 만날 때에 함부로 추부(趨附)하려하여 고상(高尙)한 인격(人格)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없으며, 처신(處身)과 접인(接人)의 예절(禮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향(向)하는 곳마다 질애(窒礙)하여 세상(世上)에 입(立)할 수가 없으며, 사람의 언사(言辭)를 듣고 그를 감식(鑑識)치 못하는 사람은, 인물(人物)의 현우(賢愚)․사정(邪正)을 알지 못한다 함을 말함이다. 이 글의 지명(知命)은 이간(易簡)의 이(理)의 천명(天命)과 조응(照應)하고, 지례(知禮)는 전례(典禮)와 조응(照應)하고, 지언(知言)은 언사(言辭)와 조응(照應)하고, 양서(兩書)의 종장(終章)이 또한 서로 조응(照應)하고 있음은 역학(易學)과 논어(論語)와의 사이에 어떠한 통맥(通脉)이 있음을 알 수 있는 일이다.
註一. 左傳 魯昭公 二十年, 下句의 引用文도 同一하다.
註二. 繫辭上傳 第一章
註三. 繫辭上傳 第五章
註四. 繫辭上傳 第十二章
註五. 論語 八佾篇
註六. 繫辭上傳 第八章
註七. 繫辭下傳 第十二章
註八. 論語陽貨篇
註九. 論語 堯曰篇
第七章 운명(運命)과 자유의지(自由意志)
‣운명(運命)은 선천(先天)이오 자유의지(自由意志)는 후천(後天)이다
사람은 천지(天地)의 생존법칙(生存法則)의 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천지(天地)가 운행(運行)하면 사람이 수종(隨從)하고 시운(時運)이 천동(遷動)하면 인사(人事)가 신기(新起)하나니, 해가 나오면 동작(動作)하고 해가 들어가면 휴식(休息)하며, 봄이 오면 경작(耕作)하고 가을이 오면 수확(收穫)함과 같은 것이 곧 인사(人事)가 천시(天時)를 수종(隨從)함이다. 천지(天地)와 시운(時運)은 유행(流行)하여 정식(停息)치 아니함으로 인사(人事)도 또한 잠시(暫時)도 정류(停留)치 아니하고 천지시운(天地時運)으로 더불어 함께 운동(運動)하나니, 역(易)에 「天下隨時 隨時之義 大矣哉 = 천하(天下)가 시(時)를 수(隨)하니, 시(時)를 수(隨)하는 의(義)가 대(大)하다」【註一】함은 이 뜻을 말함이다. 그러나 인사(人事)는 비록 천시(天時)를 수종(隨從)하여 운동(運動)하고 있으되 또한 사람의 의지(意志)로써 천시(天時)와 대대(對待)하는 작용(作用)을 행(行)하여 적의(適宜)히 재제변통(裁制變通)하여 생존작용(生存作用)에 적응(適應)케 하는 일이 있으니, 이가 곧 시의(時義)이오 사람이 시의(時義)를 행(行)함은 전(專)혀 자유의지(自由意志)의 힘이다. 그러나 소위(所謂) 자유의지(自由意志)는 생존법칙(生存法則)의 속에 살면서 대자연(大自然)과 대대(對待)하여 그를 이용(利用)하고 또는 개척(開拓)하여 인생(人生)의 생활(生活)을 미리(美利)케 하는 힘을 가지고 있을 뿐이오, 일보(一步)도 생존법칙(生存法則)의 범위외(範圍外)를 나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출생이전(出生以前)에 이미 조직(組織)된 형질(形質)이 있어 일정(一定)한 체형(體型)으로 구성(構成)되고 그 형질(形質)에 적응(適應)하여 정신(精神)이 의착(依着)하고 있으므로 비록 사람에게 의지(意志)의 자유(自由)가 있으되 그 자유(自由)에는 스스로 일정(一定)한 범위(範圍)와 한도(限度)가 있다. 원래(元來) 형질(形質)은 체(體)이오 정신(精神)은 용(用)이라 대대균등(對待均等)의 이(理)에 의(依)하여 생물(生物)의 정신작용(精神作用)은 그 형질(形質)에 적응(適應)하는 것이므로 형질(形質)의 조직여하(組織如何)에 따라서 그 의착(依着)하는 정신(精神)이 각이(各異)하니, 충어(虫魚)에는 충어(虫魚)의 형질(形質)에 적응(適應)한 정신(精神)이 의착(依着)하고, 조수(鳥獸)에는 조수(鳥獸)의 형질(形質)에 적응(適應)한 정신(精神) 밖에는 의착(依着)치 못하여, 충어(虫魚)가 아무리 공교(工巧)하더라도 고등동물(高等動物)과 같은 정신작용(精神作用)을 가질 수가 없고 조수(鳥獸)가 비록 영리(怜悧)하더라도 사람의 정신작용(精神作用)의 수준(水準)에 올라갈 수는 없으니, 이는 만물(萬物)의 형질(形質)이 조직(組織)될 때에 그 형질(形質)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 적응(適應)한 정도(程度)의 정신작용(精神作用)이 함께 의착(依着)하는 까닭이오 대대법칙상(對待法則上) 대체(大體)로 그 형질(形質)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 적응(適應)한 정도이상(程度以上)의 정신(精神)은 의착(依着)치 아니하는 것이다. 사람의 정신력(精神力)이 비록 영이(靈異)하다 하더라도 그 형질(形質)이 일정(一定)한 체형(體型)으로 응결(凝結)되고 그 의착(依着)한 정신(精神)도 스스로 거기에 적응(適應)치 아니할 수 없으므로 역시(亦是) 인류(人類)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 적응(適應)한 정신(精神)만을 가질 수 있고, 일보(一步)라도 그의 범위(範圍)와 한도(限度)를 넘어가면 거기에는 상상(想像)조차 할 수 없는 불가사의(不可思議)의 세계(世界)가 층생첩출(層生疊出)하나니, 대공간(大空間)의 극한(極限), 대시간(大時間)의 종시(終始), 종자(種子)의 기원(起源), 생명(生命)의 원시(原始) 같은 문제(問題)는 모두 사람의 정신력(精神力)으로서 해결(解決)할 수 없는 경지(境地)이다. 원류(猿類)나 가견(家犬) 등(等)이 아무리 지혜(知慧)롭다 하더라도 인간(人間)들이 음식(飮食)을 먹는 정도(程度)의 의미(意味)는 알 수 있을는지 모르나, 무슨 까닭에 학교(學校)의 교실(敎室)로 출입(出入)하고, 국회(國會)의 의사당(議事堂)으로 왕래(往來)하는지는 상상(想像)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니, 이는 교육(敎育)이나 정치(政治)가 원견(猿犬) 등(等)의 생활(生活)에 적응(適應)할 일이 아닌 까닭이다.
또 만물(萬物)은 모두 대대(對待)로 써 조직(組織)되어 청탁(淸濁)․정조(精粗)․후박(厚薄) 등(等)의 차이(差異)가 있으므로, 사람도 그 형질(形質)의 청탁(淸濁)․정조(精粗)․후박(厚薄) 등(等)에 따라서 그 정신작용(精神作用)에 불소(不少)한 차이(差異)가 있으니, 사람의 지혜(智慧)에 상지(上智)와 하우(下愚)의 구별(區別)이 있고 재능(才能)에 천리(千里)의 재(才)와 백리(百里)의 재(才)가 있고, 기예(技藝)에 특수(特殊)한 소질(素質)이 있는 것 등(等)은 모두 형질(形質)에 적응(適應)한 품성(稟性)의 차이(差異)이니, 소위(所謂) 교육(敎育)과 수양(修養)의 힘으로 써 사람마다 위대(偉大)한 인물(人物)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물(萬物)은 그 출생(出生)하는 때에 자체생활(自體生活)에 적응(適應)한 기관(器官)과 운동능력(運動能力)을 갖추고 있는지라, 사람도 형질(形質)이 출생(出生)하는 때에 그 형질(形質)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 적응(適應)한 정신(精神)이 의착(依着)되고 있으므로, 출생후(出生後)의 교육(敎育)과 수양(修養) 등(等)에 의(依)하여 그 의착(依着)된 한도(限度)까지는 우(愚)를 변(變)하여 지(智)를 만들고 야(野)를 변(變)하여 문(文)을 만들어, 써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아울러 행(行)할 수가 있다. 만일 교육(敎育)과 수양(修養)이 없으면 그 의착(依着)한 천품(天稟)의 정신(精神)도 발휘(發揮)할수 없으니, 동일(同一)한 국내(國內)에서 지방(地方)에 따라서 민도(民度)의 상하(上下)와 문화수준(文化水準)의 고저(高低) 등(等)이 있는 것은 이 까닭이다.
그리하여 출생전(出生前)에 구성(構成)된 형질(形質)과 거기에 의착(依着)한 천성(天性)을 선천조직(先天組織)이라 하고, 출생후(出生後)에 그 형질(形質)에 적응(適應)한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사상(思想)을 후천운행(後天運行)이라 하며, 선천조직(先天組織)은 사상(思想)이 발생(發生)할 이전(以前)에 형성(形成)되어 천시(天時)를 수종(隨從)하는 것이므로 이는 운명(運命)이 되고, 후천운행(後天運行)은 자기(自己)의 사상(思想)으로 써 시의(時義)를 행(行)하는 것이므로 이는 자유의지(自由意志)가 되는 것이다.
‣천명(天命)과 운명(運命)과의 관계(關係)
역(易)에 「天道變化 各正性命 = 천도(天道)가 변화(變化)하여 각각(各各) 성명(性命)을 정(正)한다」【註二】하고, 또 「昔者 聖人之作易也 將以順性命之理 = 옛적에 성인(聖人)이 역(易)을 지음에 장차(將且) 써 성명(性命)의 이(理)를 순(順)한다」【註三】하니, 성(性)은 물(物)의 품수(稟受)한 천성(天性)이오, 명(命)은 천(天)의 부여(賦與)한 천명(天命)이니, 이 천명(天命)이라 함은 무엇이며, 운명(運命)과의 관계(關係)는 어떠한가. 천명(天命)이라 함은 물(物)의 형성(形成)됨과 함께 그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부여(賦與)되는 것으로서 부여(賦與)하는 면(面)으로 볼 때에는 천명(天命)이 되고, 품수(稟受)하는 면(面)으로 볼 때에는 천성(天性)이 되는 것이니, 중용서(中庸書)에 「天命之謂性 = 천(天)이 명(命)함을 성(性)이라 이른다」함은, 명(命)과 성(性)이 일물(一物)의 양면작용(兩面作用)임을 말한 것이다. 천명(天命)과 천성(天性)은 형질(形質)이 구성(構成)됨과 동시(同時)에 자체(自體)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부여(賦與)되고 품수(稟受)된 것으로서, 그 형질(形質)에 적응(適應)한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것은 천명(天命)에 속(屬)하고, 자체(自體)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기 위(爲)하여 사물(事物)을 적의(適宜)히 재제(裁制)하는 정신작용(精神作用)의 본원(本源)은 천성(天性)에 속(屬)하는 것이니, 즉(卽) 천명(天命)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체(體)이오 천성(天性)은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용(用)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부여(賦與)된 천명(天命)은, 각개체(各個體)의 형질(形質)에 적응(適應)한 천성(天性)으로 하여금, 그 개체(個體)의 형질(形質)에 적응(適應)한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도록 운행(運行)하여, 사람의 생활(生活)로 하여금 그 형질(形質)에 적응(適應)한 범위외(範圍外)를 나가지 못하게 하니, 이가 곧 운명(運命)이오, 운명(運命)을 선천조직(先天組織)이라 함은 형질(形質)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이 천시(天時)를 수종(隨從)하는 동시(同時)에 또한 기정(旣定)된 천명(天命)에 지배(支配)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사람의 천성(天性)은 정(情)으로 발로(發露)하여 본능(本能)이 되고, 본능(本能)에는 계한(界限)이 없는지라, 이 계한(界限)없는 본능(本能)에 의(依)하여 무한(無限)히 창조(創造)하고 무한(無限)히 성장(成長)하고 또 무한(無限)히 구원(久遠)하려하는 자유의지(自由意志)를 가지고 있으므로, 자유의지(自由意志)는 스스로 운명(運命)과 대대(對待)하게 되나니, 자유의지(自由意志)를 후천운행(後天運行)이라 함은 사상(思想)의 힘이 시의(時義)를 행(行)하는 동시(同時)에 또한 미래(未來)를 향(向)하여 발전(發展)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천명(天命)을 순(順)하는 때는 천명(天命)이 조우(助祐)하고 천명(天命)을 순(順)치 아니할 때는 천명(天命)이 조우(助祐)치 아니하고 또한 재앙(災殃)이 있나니, 역(易)에 「順天休命 = 천(天)의 휴명(休命)을 순(順)한다」【註四】하고 또 「天之所助者順也 = 천(天)의 조(助)하는 자(者)는 순(順)함이다」【註五】함은, 천명(天命)을 순(順)하는 자(者)를 조우(助祐)함을 말함이오, 「天命不祐行矣哉 = 천명(天命)이 우(祐)치 아니함을 행(行)하랴」【註六】함은, 천명(天命)을 순(順)치 아니하는 자(者)를 조우(助祐)치 아니함을 말함이다.
이와 같이 사람은 천명(天命)과 천성(天性)을 아울러 가지고 있어, 그것이 운명(運命)과 자유의지(自由意志)로 되는지라, 그러므로 운명(運命)은 체(體)가 되고 자유의지(自由意志)는 용(用)이 되어, 통일체내(統一體內)에서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하고 대대균등(對待均等)의 이(理)에 의(依)하여 양자(兩者)는 서로 반반(半半)한 교호작용(交互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함에는 반드시 운명(運命)의 경역(境域)과 자유의지(自由意志)의 범위(範圍)가 대대(對待)하고, 운명(運命)은 수렴작용(收斂作用)으로써 천명(天命)의 경역외(境域外)로 발전(發展)하는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제약(制約)하려하고 자유의지(自由意志)는 발현작용(發顯作用)으로써 기정(旣定)된 운명(運命)을 개척(開拓)하려 하나니, 고어(古語)에「인(人)의 화복(禍福)은 운수(運輸)에 있다」함은, 운명(運命)의 경역(境域)을 말함이오, 「사(事)의 성패(成敗)는 노력(勞力)에 있다」함은, 자유의지(自由意志)의 범위(範圍)를 말함이니 운수론(運數論)은 조직체(組織體)의 체대용소(體大用小)의 이(理)를 취(取)함이오, 노력론(努力論)은 운행력(運行力)의 용대체소(用大體小)의 이(理)를 취(取)함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활(生活)은 반(半)은 운명(運命)의 지배(支配)를 받고 반(半)은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하여 동작(動作)하고 있어, 운명(運命)으로부터 오는 화복(禍福)과 자유의지(自由意志)로부터 오는 성패(成敗)가 각기(各其) 반반(半半)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운명(運命)과 자유의지(自由意志)는 일물중(一物中)에 혼륜(渾淪)되어 있는지라, 그 한계(限界)에 대(對)하여는 어느 것이 자유의지(自由意志)의 범위(範圍)에 속(屬)하고, 어느 것이 운명(運命)의 경역(境域)에 속(屬)하는지는, 예지(豫知)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세간(世間)의 만사만물(萬事萬物)은 그것을 운명(運命)으로 해석(解釋)하면 운명(運命)이 아닌 것이 없고 또 자유의지(自由意志)로 해석(解釋)하면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아닌 것이 없다. 더욱이 자유의지(自由意志)의 역량여하(力量如何)에 따라서 운명(運命)에 속(屬)하는 경역(境域)에 스스로 광협(廣狹)․대소(大小)의 차(差)가 생(生)하는 것이니, 의지력(意志力)이 박약(薄弱)하여 오직 환경(環境)의 지배(支配)속에서만 생활(生活)하는 것은 운명(運命)의 경역(境域)이 광대(廣大)한 것이오, 그에 반(反)하여 모든 고난(苦難)을 무릅쓰고 환경(環境)을 개척(開拓)하고 나가는 것은 자유의지(自由意志)의 범위(範圍)가 광대(廣大)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땅히 능동적(能動的)으로 인사(人事)를 다하여 천명(天命)을 대(待)할 것이오, 다만 수동적(受動的) 태도(態度)로써 성패(成敗)와 화복(禍福)을 운명(運命)의 소관(所關)으로만 추탁(推托)할 것이 아니다.
‣관상학(觀相學)의 원리(原理)
사람이 향진(向進)하고 있는 미래(未來)의 경지(境地)는 실(實)로 유심(幽深)하여 예측(豫測)하기 어렵고, 또 자기(自己)에게 부여(賦與)된 천명(天命)이 무엇인가를 알기 어려운 것이니, 이 미래(未來)와 천명(天命)을 전지(前知)하려 하는 것은 인생(人生)의 최대(最大) 소원(所願)이며, 이 소원(所願)을 성취(成就)하기 爲하여 생겨난 것이 곧 관상학(觀相學)이다.
관상학(觀相學)은 역(易)의 상리(象理)를 응용(應用)한 것으로서 그 원리(原理)를 보면 충어조수(虫魚鳥獸) 등(等)은 각기(各其) 독자(獨自)한 형질조직(形質組織)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에 의착(依着)한 정신(精神)이 각이(各異)할 뿐만 아니라, 그 생활(生活)․수명(壽命) 등(等)이 또한 그 유(類)에 따라서 각이(各異)하니, 동물(動物)의 생활(生活)에 수서(水棲)․육서(陸棲)․비류(飛類)․주류(走類) 등(等)의 유(類)가 있고 그 천수(天壽)도 그 유(類)에 따라서 대개(大槪) 일정(一定)한 한도(限度)가 있어, 이삼월(二三月)의 물(物)이 있고 수년(數年)의 물(物)이 있고 혹(或)은 이삼십년(二三十年)․혹(或)은 수백년(數百年)의 물(物)이 있는 것이 그 일례(一例)이오, 이러한 생활(生活)․수명(壽命)은 그 유(類)의 천명(天命)이며, 만물(萬物)에는 모두 그의 형질(形質)의 조직여하(組織如何)에 따라서 천명(天命)이 각이(各異)함으로 그 습성(習性)과 운명(運命)이 또한 각이(各異)한 것이다. 이 이(理)에 의(依)하여 동일(同一)한 유(類)라 하더라도 각개(各個)의 형질조직(形質組織)이 상이(相異)한 때에 그 개성(個性)과 운명(運命)이 또한 상이(相異)할 것은 자명(自明)한 이(理)이다. 이와 같이 형질(形質)의 조직(組織)이 상이(相異)하면 개성(個性)과 운명(運命)이 또한 상이(相異)한지라, 사람도 인류(人類)라는 처지(處地)로써 보면 인류공통(人類共通)의 천명(天命)과 천성(天性)을 가지고 운명(運命) 성정(性情) 등(等)이 상동(相同)한 것이지만, 개인(個人)으로써 보면 전인류중(全人類中)에 동일(同一)한 용모(容貌)를 가지고 있는 자(者)는 일인(一人)도 없음과 같이 각개인(各個人)이 모두 독자(獨自)한 형질조직(形質組織)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독자(獨自)한 형질(形質)에 적응(適應)하여 개성(個性)이 상이(相異)함은 물론(勿論)이오 수요(壽夭)․현우(賢愚)․귀천(貴賤) 등(等) 운명(運命)도 각이(各異)치 아니할 수 없으니, 이것이 관상학(觀相學)의 원리(原理)이다. 그러나 운명(運命)은 선천조직(先天組織)에 속(屬)하고 자유의지(自由意志)는 후천(後天) 운행(運行)에 속(屬)하는데, 조직(組織)은 안정체(安貞體)로서 항구(恒久)하고 있으므로, 체(體)로써 운명(運命)을 예지(豫知)할 수는 있으나, 운행(運行)은 유동(流動)하는 용(用)으로서 부단(不斷)히 변화(變化)하고 있으므로, 용(用)으로써 운명(運命)을 예지(豫知)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관상학(觀相學)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네 가지가 있으니,
一.은 관상학(觀相學)은 골격(骨格)․형용(形容) 등(等) 체(體)의 조직(組織)으로써 운명(運命)을 점(占)함으로 인생생활(人生生活)의 체(體)에 속(屬)하는 부면(部面), 즉(卽) 부모(父母)․형제(兄弟)․처자(妻子)․재산(財産) 등(等)에 관(關)한 운명(運命)은 알 수가 있으나, 용(用)에 속(屬)하는 사상(思想)․학술(學術)․기능(技能) 등(等) 자유의지(自由意志)는 알기 어려운 것이다.
二.는 사람에게는 체대용소(體大用小)한 자(者)와 용대체소(用大體小)한 자(者)가 있는지라, 체대용소(體大用小)한 자(者)는 자유의지(自由意志)의 힘이 미약(微弱)하여 운명(運命)에 지배(支配)되는 면(面)이 광대(廣大)함으로 이러한 사람에 대(對)하여는 관상학(觀相學)으로써 그 운명(運命)을 알 수가 있으나, 용대체소(用大體小)하여 자유의지(自由意志)의 힘이 강대(强大)한 자(者)는 의지(意志)의 힘이 능(能)히 그 운명(運命)을 개척(開拓)하는 면(面)이 광대(廣大)함으로 운명(運命)을 예점(豫占)하기 어려운 것이다.
三.은 고래(古來)로 「골상(骨相)이 심상(心相)만 같지 못하다」하여, 사람을 음해(陰害)하고 불선(不善)을 적루(積累)한 자(者)는 길상(吉相)이 흉상(凶相)으로 변(變)하고, 사람을 제활(濟活)하고 음덕(陰德)을 적루(積累)한 자(者)는 흉상(凶相)이 길상(吉相)으로 변(變)한다는 뜻을 말하고, 수경집(水鏡集)이라는 상서(相書)에는 「사람을 상(相)하는 법(法)이 그 형용(形容)․골격(骨格)을 취(取)하는 자(者)가 십(十)의 오(五)이오, 그 가변(可變)함을 득(得)하는 자(者)가 또한 십(十)의 오(五)이라」하여, 불변(不變)하는 골격(骨格)과 가변(可變)하는 의지(意志)의 작용(作用)이 반반(半半)함을 말하니, 이 가변(可變)하는 면(面)이 있는 까닭에 운명(運命)을 예점(豫占)하기 어려운 것이다.
四.는 운명(運命)이라 함은 개인(個人)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個人)에게 운명(運命)과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있음과 같이 통체조직(統體組織)인 사회(社會)에도 또한 운명(運命)과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있으니, 역사(歷史)의 발전(發展)은 다만 자연환경(自然環境)에 의(依)하여 기계적(機械的)으로 일정(一定)한 기간(期間)에 일정(一定)한 단계(段階)를 밟아서 진행(進行)하는 것이 아니오, 거기에는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가 강력(强力)히 작용(作用)하여 있고 또 다만 국민(國民)의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하여 임의(任意)로 건설(建設)․변개(變改)되는 것이 아니오, 거기에는 부단(不斷)히 운명(運命)의 제약(制約)을 받고 있으니 사회(社會)의 흥망(興亡)․성쇠(盛衰)도 또한 반(半)은 운명(運命)이오, 반(半)은 자유의지(自由意志)이다. 그리하여 개인(個人)과 사회(社會)는 대대관계(對待關係)로써 호근(互根)하고 있는지라, 개인(個人)의 운명(運命)과 사회(社會)의 운명(運命)이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하고, 개인(個人)의 의지(意志)와 사회(社會)의 의지(意志)가 또한 교호(交互)로 작용(作用)하여, 개인(個人)의 면(面)과 사회(社會)의 면(面)으로부터 오는 화복(禍福)이 또한 반반(半半)하고 있는 것이다. 전장(戰場)에서 다수(多數)한 생명(生命)이 일시(一時)에 상해(傷害)되는 것은, 그들의 운명(運命)이 모두 그날 그 시(時)에 상해(傷害)되기로 부여(賦與)된 것이 아니오, 국력(國力)이 부강(富强)하고 정치(政治)가 청신(淸新)한 나라의 국민생활(國民生活)이 모두 안락(安樂)한 것은, 그들의 운명(運命)이 모두 천복(天福)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이는 모두 사회(社會)로부터 오는 화복(禍福)이니, 그러므로 개인(個人)의 운명(運命)만으로서 화복(禍福)을 예점(豫占)치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의 화복(禍福)이 유래(由來)하는 길은 실(實)로 다기다양(多岐多樣)한지라, 그러므로 인생(人生)의 일생행로(一生行路)는 운명(運命)과 자유의지(自由意志)가 반반착종(半半着綜)한 미지(未知)의 지역(地域)을 탐검(探檢)하고 있는 것이다.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의 교호작용(交互作用)
운명(運命)은 선천(先天)에 속(屬)하고 자유의지(自由意志)는 후천(後天)에 속(屬)하나, 그러나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은 고정불변(固定不變)하는 것이 아니오, 금일(今日)의 선천(先天)은 곧 전일(前日)의 후천(後天)이며, 금일(今日)의 후천(後天)은 또한 후일(後日)의 선천(先天)이 되는 것이다. 전일(前日)의 부조시대(父祖時代)의 생활(生活)은 부조(父祖)가 자관(自觀)하면 부조(父祖)의 자유의지(自由意志)인 후천(後天)에 속(屬)하나, 금일(今日)의 아등(我等)으로서 반관(反觀)하면 아등(我等)의 운명(運命)인 선천(先天)이 되는 것이오, 또 아등(我等)의 금일생활(今日生活)은 아등(我等)이 자관(自觀)하면 아등(我等)의 자유의지(自由意志)인 후천(後天)에 속(屬)하나, 후일(後日)의 자손시대(子孫時代)로서 반관(反觀)하면 또한 자손(子孫)들의 운명(運命)인 선천(先天)이 되는 것이니, 우리의 부조(父祖)가 깊은 음덕(蔭德)을 심은 것은 부조(父祖)의 자유의지(自由意志)가 되나, 그 여음(餘蔭)으로 인(因)하여 우리가 행복(幸福)한 생활(生活)을 향유(享有)하고 있음은 우리의 운명(運命)이 되며, 우리 자신(自身)의 불근신(不謹愼)으로 인(因)하여 악질(惡疾)에 걸림은 우리의 자유의지(自由意志)가 되나, 그 악질(惡疾)로 인(因)하여 자손(子孫)들에게 악질(惡疾)을 유전(遺傳)함은 자손(子孫)들의 운명(運命)이 되는 것이다. 역(易)에 「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 선(善)을 쌓는 집은 반드시 여경(餘慶)이 있고, 불선(不善)을 쌓는 집은 반드시 여앙(餘殃)이 있다」【註七】하니, 선불선(善不善)을 쌓는 것은 선인(先人)의 자유의지(自由意志)인 후천(後天)에 속(屬)하는 행위(行爲)이나, 경앙(慶殃)을 받는 것은 후인(後人)의 운명(運命)인 선천(先天)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일(今日) 우리들의 후천의지(後天意志)에 의(依)한 국가건설방책(國家建設方策)의 선불선(善不善)은 곧 스스로 후일(後日) 우리 자손(子孫)들의 벗어날 수 없는 선천운명(先天運命)이 되는 것이다. 인류(人類)의 역사(歷史)는 유구(悠久)히 흘러가는지라, 우리가 천행(踐行)하고 있는 일상생활(日常生活)은 모두 유구(悠久)히 흘러가는 역사(歷史)의 한 마디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 역사(歷史)의 한 마디에 처(處)하여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우리 자손(子孫)들의 선천운명(先天運命)을 창조(創造)하고 있는 것이다.
註一. 隨卦彖傳
註二. 乾卦彖傳
註三. 說卦傳 第二章
註四. 大有卦 大象傳
註五. 繫辭上傳 第十一章
註六. 無妄卦彖傳
註七, 坤卦文言
   
第八章 결론(結論)
‣사람의 생존(生存)하는 목적(目的)
사람은 무슨 까닭에 살고 있는가 하는 문제(問題)는 우리 인생(人生)의 사람마다 자신(自身)의 문제(問題)이다. 혹(或)은 먹기 위(爲)하여 산다 하고, 혹(或)은 살기 위(爲)하여 먹는다 한다. 만일 먹기 위(爲)하여 산다고 하면, 이는 사람의 사는 목적(目的)이 오직 먹는 데에 있을 뿐이오 다른 아무런 뜻도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먹는 것만이 사람의 사는 목적(目的)은 아니다. 또 살기 위(爲)하여 먹는다고 하면, 먹고살아서는 무엇을 하려는가, 아무런 할 일이 없이 다만 살기 위(爲)하여 산다고 하면, 이도 또한 사람의 사는 것이 아무런 뜻도 없고 희망(希望)도 없고 광명(光明)도 없고 스스로 염세증(厭世症)이 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니, 그러므로 다만 살기 위(爲)하여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역학(易學)은 이 문제(問題)에 대(對)하여 무엇이라고 해답(解答)하고 있는가.
역(易)에 「易簡而天下之理得矣 天下之理得而成位乎其中矣 = 이(易)하고 간(簡)하매 천하(天下)의 이(理)가 득(得)하고 천하(天下)의 이(理)가 득(得)하매 위(位)를 그 중(中)에 이룬다」【註一】하고, 또 「與天地相似故不違 = 천지(天地)로 더불어 서로 같은지라 고(故)로 위(違)치 아니한다」【註二】하고, 또 「夫大人者與天地合其德 = 그 대인(大人)은 천지(天地)로 더불어 그 덕(德)을 합(合)한다」【註三】하여, 사람이 이간정치(易簡政治)를 행(行)하여 천지(天地)로 더불어 삼재(三才)의 위(位)를 이루고 행위(行爲)와 덕업(德業)이 천지(天地)로 더불어 상사(相似)한 것이 곧 현인(賢人)․성인(聖人)․대인(大人)임을 말하니, 이는 천지(天地)는 현인(賢人)․성인(聖人)․대인(大人)의 준칙(準則)이 되고, 현인(賢人)․성인(聖人)․대인(大人)은 만인(萬人)의 준칙(準則)이되고 있으므로, 사람이 천지(天地)를 본받아서 천지(天地)와 상사(相似)하게 되는 것이 곧 사람의 살고 있는 목적(目的)이라 함을 말함이다. 그러면 천지(天地)라 함은 무엇을 말함인가, 역리(易理)로써 보면 천지(天地)는 무한(無限)히 부성(富盛)하고 무한(無限)히 광대(廣大)하고 또 무한(無限)히 구원(久遠)하니, 만물(萬物)을 부유(富有)하여 포함(包涵)치 아니함이 없는 것이 곧 부성(富盛)이오, 제애(際涯)가 없이 넓고 큰 것이 곧 광대(廣大)이오, 일신우신(日新又新)하여 끝없이 계승(繼承)하는 것이 곧 구원(久遠)이다. 그러므로 부성(富盛)․광대(廣大)․구원(久遠)이 곧 사람의 사는 목적(目的)이 되는 것이다.
‣본능(本能)은 생존목적(生存目的)을 달성(達成)하는 수단(手段)
그런데 사람에게는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삼정(三情) 즉(卽) 삼본능(三本能)이 있으니, 본능(本能)은 사람이 출생(出生)할때에 천지(天地)로부터 품수(稟受)한 것으로서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발단(發端)이 되는 동시(同時)에 또한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수단(手段)이 되는 것이니, 수단(手段)과 목적(目的)은 체용관계(體用關係)로써 호근(互根)하고 있어, 그 수단(手段)이 있는 곳에 반드시 목적(目的)이 있는지라 그러므로 본능(本能)의 속에는 생존(生存)의 수단(手段)과 목적(目的)이 함께 함재(含在)되어 있는 것이다. 감응본능(感應本能)은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이 상교(相交)하여 차세대(次世代)를 무한(無限)히 창조번연(創造蕃衍)하려 하나니 이는 천지(天地)의 부성(富盛)을 본받음이오, 췌취본능(萃聚本能)은 식물(食物)을 섭취(攝取)하여 자체(自體)를 무한(無限)히 성장확대(成長擴大)하려 하나니 이는 천지(天地)의 광대(廣大)를 본받음이오, 항구본능(恒久本能)은 위해(危害)를 방비(防備)하여 생명(生命)을 무한(無限)히 연장존속(延長存續)하려 하나니 이는 천지(天地)의 구원(久遠)을 본받음이다. 부성(富盛)․광대(廣大)․구원(久遠)은 천지(天地)의 운행(運行)하는 전형(全形)이므로 창조번연(創造蕃衍)․성장확대(成長擴大)․영구존속(永久存續)은 또한 사람의 생존(生存)하는 목적(目的)이 되지 아니할 수 없고, 음양상교(陰陽相交)․식물섭취(食物攝取)․위해방비(危害防備)는 그 목적(目的)을 달성(達成)하기 위(爲)한 수단(手段)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육체(肉體)의 면(面)으로부터 본 것이니, 사람의 일신(一身)은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의 양면(兩面)이 있으므로 정신(精神)의 면(面)에도 생존(生存)하는 목적(目的)이 있고, 또 사람은 개체(個體)와 통체(統體)가 교호작용(交互作用)하고 있으므로, 통체(統體)의 면(面)에도 또한 생존(生存)하는 목적(目的)이 있는 것이다.
정신(精神)의 면(面)으로는 차세대(次世代)를 널리 교양(敎養)함은 부성(富盛)의 상(象)이오, 학문(學問)을 취적(聚積)하고 인격(人格)을 크게 함은 광대(廣大)의 상(象)이오, 학술사업(學述事業)을 후세(後世)에 전(傳)함은 구원(久遠)의 상(象)이니, 이것이 또한 삼본능(三本能)에 기(基)한 것이라, 공자(孔子)의 학문론(學問論)에 「黙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哉 = 묵(黙)하여 식(識)하고 학(學)하여 염(厭)치 아니하고 사람을 가르침에 권(倦)치 아니함이 무엇이 내게 있으리오」【註四】하여, 이 삼사(三事)는 모두 내가 능(能)치 못하노라 함을 말하니, 묵이식(黙而識)은 전언왕행(前言往行)을 다식(多識)함이니 곧 부성(富盛)이오, 학불염(學不厭)은 식견(識見)을 넓힘이니 곧 광대(廣大)이오, 회불권(誨不倦)은 차세대(次世代)의 교육(敎育)이니 곧 구원(久遠)이라, 이 삼사(三事)는 생존목적(生存目的)을 달성(達成)하는 사업(事業)인 까닭에 공자(孔子)가 스스로 불능(不能)하노라고 겸사(謙辭)한 것이다.
사회(社會)의 면(面)으로는 호구(戶口)의 번식(繁殖)은 부성(富盛)의 도(道)이오, 민생(民生)의 풍후(豊厚)는 광대(廣大)의 도(道)이오, 교육(敎育)의 보급(普及)은 구원(久遠)의 도(道)이니, 이가 또한 삼본능(三本能)에 기(基)한 정치(政治)의 삼사(三事)이다. 공자(孔子)의 정치론(政治論)에 「子適衛冉有僕 子曰 庶矣哉 冉有曰 旣庶矣又何加焉 曰富之 曰旣富矣又何加焉 曰敎之 = 자(子)가 위(衛)에 갈새 염유(冉有)가 복(僕)하더니, 자(子) 가라사대 서(庶)한저, 염유(冉有)가로되 이미 서(庶)하면 또 무엇을 더하리까 가라사대 부(富)케 할지니라, 가로되 이미 부(富)하면 또 무엇을 더하리까 가라사대 가르칠지니라」【註五】하니, 서(庶)는 호구(戶口)의 중서(衆庶)함이오, 부(富)는 생활(生活)의 풍족(豊足)함이오, 교(敎)는 교육(敎育)의 보급(普及)함이니, 이 삼사(三事)가 겸비(兼備)한 연후(然後)에 정치(政治)가 천지(天地)를 본받아서 생존(生存)하는 목적(目的)을 달성(達成)하는 것이다.
‣무한(無限)한 즐거움
삼본능(三本能)에 의(依)하여 생존(生存)의 목적(目的)을 달성(達成)함에는 반드시 「무한(無限)」과 「즐거움」의 두 가지가 병행(倂行)치 아니하면 안되나니 생존작용(生存作用)에 어떠한 한계(限界)가 있으면 무궁(無窮)히 생생(生生)치 못하고, 즐거움이 없으면 생발(生發)의 기(氣)가 약동(躍動)치 못한다.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은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이 모두 제애(際涯)가 없으니 이는 무한(無限)이며, 역(易)에 「鼓萬物而不與聖人同憂 = 만물(萬物)을 고(鼓)하되 성인(聖人)으로 더불어 우(憂)를 한가지로 하지 아니한다」【註六】하니, 기(氣)의 운행(運行)은 우(憂)한즉 체색(滯塞)하고 낙(樂)한즉 건행(健行)하는데, 사람의 체울증(滯鬱症) 같은 것이 주(主)로 우수사려(憂愁思慮)로부터 생(生)하는 것은 기(氣)가 체색(滯塞)한 까닭이라, 천지(天地)는 만물(萬物)을 고무(鼓舞)하여 일계일성(一繼一成)하고 일현일장(一顯一藏)함이 모두 건건류행(健健流行)하여 아무런 체색(滯塞)이 없음으로, 일점(一點)의 우수(憂愁)의 상(象)이 없고 즐거움으로 충만(充滿)되어 생기(生氣)가 약동(躍動)하나니, 이가 곧 천지(天地)는 우(憂)치 아니한다 함이다. 사람의 본능(本能)에는 본시(本是) 천지(天地)와 같이 「무한(無限)」이 따르고 있으나, 즐거움이 반드시 따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항상(恒常) 즐거움을 추구(追求)하여 발동(發動)하나니 역(易)에 「樂則行之 憂則違之 = 즐거움은 곧 행(行)하고 근심은 곧 위(違)한다」【註七】함은, 인생(人生)의 행로(行路)에는 반드시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함이오, 또 「樂天知命故不憂 = 천(天)을 즐겨하고 명(命)을 아는지라, 고(故)로 근심치 아니한다」【註八】함은,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을 본받는 것을 즐겨하고, 자기(自己)에게 부여(賦與)된 천명(天命)이 무엇인가를 아는 까닭에 근심치 아니한다 함이니, 이는 모두 사람은 무한(無限)히 천지(天地)를 즐겨하면서 살아야 함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육체(肉體)의 면(面)으로는 자손(子孫)의 번연(蕃衍)과 신체(身體)의 성장(成長)과 생명(生命)의 장수(長壽)에 무한(無限)한 즐거움을 느끼는 때에 그 사람은 그 사람으로서의 살고 있는 목적(目的)을 달성(達成)한 것이오, 정신(精神)의 면(面)으로는 영재(英材)를 얻어서(空間的)교육(敎育)하고 학문(學問)을 쌓아서 인격(人格)이 커지고 덕업(德業)이 영구(永久)히(時間的)후세(後世)에 유전(流傳)함에 무한(無限)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또한 그 사람으로서의 살고 있는 목적(目的)을 달성(達成)한 것이다.
또 통체(統體)의 면(面)으로는 국가민족(國家民族)의 호구(戶口)가 날로 증식(增殖)하고 민중(民衆)의 생활(生活)이 날로 부유(富裕)하고 문화(文化)가 날로 향상(向上)됨에 무한(無限)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은 또한 그 사람으로서의 살고 있는 목적(目的)을 달성(達成)한 것이며, 이 원리(原理)는 일국내(一國內)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인류(世界人類)에 대(對)하여도 한가지로 적용(適用)되는 것이다.
   
‣즐거움도 만인만색(萬人萬色)
그러므로 마음의 즐거움은 동일(同一)한 것이로되, 즐거움의 범위(範圍)는 사람에 따라서 서로 동일(同一)치 아니하다. 혹(或)은 육체(肉體)에 대(對)한 본능(本能)이 만족(滿足)을 얻는 때에 무한(無限)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혹(或)은 정신(精神)의 면(面)이나 통체(統體)의 면(面)에 대(對)한 본능(本能)이 만족(滿足)을 얻는 때에 비로소 무한(無限)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또 혹(或)은 호의호식(好衣好食)으로써 육체(肉體)를 양(養)함을 즐겨하고, 혹(或)은 권세(權勢)를 마음대로 행사(行使)함을 즐겨하고, 혹(或)은 포의한사(布衣寒士)의 청빈(淸貧)한 생활(生活)을 하면서 정신적(精神的)으로 천지(天地)와 상사(相似)한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것을 즐겨하니, 즐거움도 실(實)로 만인만색(萬人萬色)이다. 공자(孔子)가 「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回也 = 어질다 회(回)여 일단사(一簞食)와 일표음(一瓢飮)으로 누항(陋巷)에 있음을 사람이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할 것이어늘 회(回)가 그 낙(樂)을 고치지 아니하니 어질다 회(回)여」【註九】하니, 회(回)는 안자(顔子)이오 낙(樂)이라 함은 천지(天地)와 상사(相似)하려하여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을 본받는 것을 즐겨 함이니, 이러한 즐거움은 식도락자(食道樂者)나 세도락자(勢道樂者)들의 상상(想像)조차 할 수 없는 경지(境地)이다. 또 고래(古來)의 역사(歷史)를 펴 보건대 사람을 무함음해(誣陷陰害)하고 국민(國民)에게 죄(罪)를 지으면서 권세(權勢)를 잡는 것을 무한(無限)한 즐거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는 또한 즐거움의 변태성(變態性)이라, 이러한 사람들은 동류(同類)나 아첨배(阿諂輩)이외(以外)에 진정(眞情)으로 교우(交友)하여 주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스스로 부성(富盛)을 버리고 고립(孤立)에 빠짐이오, 수인(讐人)의 보복(報復)이 있을 가 두려워하여 단신(單身)으로 산야(山野)를 소요(逍遙)하거나 필마(匹馬)로 여행(旅行)을 다니지 못하고 외출(外出)할 때에는 반드시 호위(護衛)를 따르게 하니, 이는 스스로 광대(廣大)한 천지(天地)를 버리고 소천지(小天地)에 쭈그림이오, 그 취적(聚積)한 재화(財貨)로써 일시(一時) 구복(口腹)의 즐거움을 얻을 수는 있으나, 인격적(人格的)으로는 죽은지 이미 오래고, 더욱이 시대(時代)는 항상(恒常) 이역(移易)하고 사필(史筆)은 사(私)없이 엄직(嚴直)한지라, 권세(權勢)를 부리는 당일(當日)에는 능(能)히 민중(民衆)의 입을 막을 수가 있으되, 시대(時代)가 바뀐 뒤나, 그 몸이 죽은 뒤의 사필(史筆)을 미리 억제(抑制)할 수는 없으니, 이는 그 자손(子孫)에게 무한(無限)한 치욕(恥辱)을 남겨서 스스로 구원(久遠)한 생생(生生)을 버림이라, 이조(李朝)의 연산(燕山)․중종(中宗)․명종(明宗)․광해(光海) 등(等)의 시대(時代)에 권세(權勢)가 흔천동지(掀天動地)하던 간신(奸臣)들의 자손(子孫)이 수백년(數百年)을 지나도록 머리를 들고 명랑(明朗)한 천지(天地)를 보지 못한 것이 그 일례(一例)이다. 사람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이 개체(個體)의 사욕(私慾)에 편경(偏傾)하면 도리어 악(惡)으로 흐름과 같이, 즐거움이 개체(個體)의 쾌락(快樂)에 편경(偏傾)하면 도리어 근심으로 화(化)하는 것이니, 남을 상해(傷害)하여 불선(不善)으로 얻은 즐거움은, 즐거움이 아니오 곧 근심의 씨이다.
공자(孔子)가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 소사(疏食)를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굽혀 베개 하더라도 낙(樂)이 또한 그 가운데에 있다, 의(義)치 아니하고 부(富)하고 또 귀(貴)함은 나에게 부운(浮雲)과 같으니라」【註十】하니, 이는 부귀(富貴)를 얻기 위(爲)하여 불의(不義)한 일을 행(行)하여, 민중(民衆)으로부터 고립(孤立)하고 광대(廣大)한 천지간(天地間)을 마음대로 활보(闊步)치 못하고 더러운 이름을 구비(口碑)와 사서(史書)에 전(傳)하기보다, 차라리 청빈생활(淸貧生活)로써 천지대자연(天地大自然)을 즐겨 하리라 함을 말함이다. 공자(孔子)는 부귀(富貴)를 싫어함이 아니라, 「崇高莫大乎富貴 = 숭고(崇高)함이 부귀(富貴)보다 대(大)함이 없다」【註十一】하고, 또 「聖人之大寶曰位 = 성인(聖人)의 대보(大寶)는 가로되 위(位)라」【註十二】하여, 성인(聖人)이 부귀(富貴)의 대위(大位)에 있은 연후(然後)에 인정(仁政)을 행(行)할 수가 있다고 말하면서 또한 불의(不義)의 부귀(富貴)를 배척(排斥)하는 것은, 불의(不義)의 부귀(富貴)는 즐거운 일이 아닌 까닭이다.
‣근심과 즐거움
그러므로 사람은 천지대자연(天地大自然)의 즐거운 운행(運行) 속에 살고 있으면서, 정치(政治)의 임무(任務)를 맡은 때에는 이간정치(易簡政治)를 행(行)하여 천하민중(天下民衆)으로 더불어 함께 태평(泰平)을 즐겨 할지오, 초야(草野)에 처(處)한 때에는 이간정치(易簡政治)의 은택하(恩澤下)에서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써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을 양(養)하고 친척(親戚)․붕우(朋友)로 더불어 함께 그 생존(生存)을 즐겨 할지니, 이것이 곧 천지(天地)와 상사(相似)하게 되는 운동(運動)이다.
사람이 천지(天地)와 상사(相似)하게 되면, 비록 적고 적은 일속신(一粟身)이지만 천지대자연(天地大自然)의 속에 혼륜화합(渾淪和合)하여, 천지(天地)가 곧 내오, 내가 곧 천지(天地)라는, 무한(無限)한 즐거움의 경지(境地)에 도달(到達)할 것이니, 이가 곧 인생(人生)의 사는 목적(目的)이다.
그러나 천지(天地)에는 정대(正大)의 정(情)이 있으므로 그 운행(運行)이 자연(自然)스럽고 조화(調和)하여 스스로 즐겁게 행(行)하고 있으나, 사람은 편(偏)하고 국(局)하여 정대(正大)의 정(情)이 없음으로 인생(人生)의 행로(行路)에는 육체적(肉體的)으로는 기한질고(飢寒疾苦) 등(等)이 있고, 정신적(精神的)으로는 우수사려(憂愁思慮) 등(等)이 있고, 사회적(社會的)으로는 시세(時勢)의 불리(不利)와 정치(政治)의 불순(不順) 등(等)이 있어, 즐거움보다 근심이 더 많은 것이다. 역(易)에「比樂師憂 = 비(比)는 낙(樂)하고 사(師)는 우(憂)한다」【註十三】하니, 비(比)는 조화(調和)이오 사(師)는 투쟁(鬪爭)이라, 투쟁(鬪爭)과 조화(調和)는 호근(互根)하고 있어 투쟁(鬪爭)을 통(通)하여 조화(調和)를 얻음과 같이, 근심과 즐거움도 또한 호근(互根)하여 근심을 지나서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人生)은 즐거움을 얻기 위(爲)하여 근심하고, 근심하면서 즐거움을 추구(追求)하여, 천지(天地)와 상사(相似)한 ,부성(富盛)․광대(廣大)․구원(久遠)의 경지(境地)에 이르러 천지(天地)로 더불어 삼재(三才)의 위(位)를 이루는 때에, 비로소 무한(無限)한 즐거움을 향유(享有)하게 되나니, 이때가 곧 일생(一生)동안 더듬고 있는 목적지(目的地)에 도달(到達)하는 때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개체(個體)인 동시(同時)에 또한 통체(統體)의 일원(一員)이라, 이러한 목적지(目的地)는 개체(個體)의 독행(獨行)만으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오, 반드시 통체(統體)인 사회(社會)에 이간정치(易簡政治)가 행(行)하여, 사회전체(社會全體)가 무한(無限)한 즐거움을 향유(享有)하는 때에 비로소 그 개체(個體)도 또한 함께 무한(無限)한 즐거움을 맛보아 이 목적지(目的地)에 도달(到達)하는 것이다.
註一. 繫辭上傳 第一章
註二. 繫辭上傳 第四章
註三. 乾卦文言
註四. 論語 述而篇
註五. 論語 子路篇
註六. 繫辭上傳 第五章
註七. 乾卦文言
註八. 繫辭上傳 第四章
註九 論語 雍也篇
註十. 論語 述而篇
註十一. 繫辭上傳 第十一章
註十二. 繫辭下傳 第一章
註十三. 雜卦傳
   
【附錄 一】
易學과 우리 國文과의 關係
‣제자원리(制字原理)
우리 국문(國文)은 그 제자(制字)의 원리(原理)를 천지(天地)의 자연법칙(自然法則)에서 본받은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오, 역학(易學)이 또한 자연법칙(自然法則)을 상(象)한 학문(學問)이므로, 국문(國文)과 역학(易學)은 한가지로 자연법칙(自然法則)에서 발원(發源)하여 그 파류(派流)가 두 길로 나뉘운 것이다. 즉(卽) 자연법칙(自然法則)이 인생(人生)과 사회(社會)의 생존원리(生存原理)를 구명(究明)하는 학문(學問)에 응용(應用)된 것이 곧 역학(易學)이오, 자연법칙(自然法則)이 성음학(聲音學)에 응용(應用)되어 문자(文字)로 나타난 것이 곧 우리 국문(國文)이라, 그러므로 우리 국문(國文)은 역학(易學)으로 더불어 동일(同一)한 계통(系統)에 연계(連繫)된 학문(學問)이오, 따라서 국문중(國文中)에는 역학(易學)을 본받은 것이 적지 아니한 것이다.
훈민정음(訓民正音)의 제자해(制字解)에 「凡有生類 在天地之間者 捨陰陽而何之 故 人之聲音 皆有陰陽之理 顧人不察耳 今正音之作 初非智營而力索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理旣不二則 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 = 무릇 생류(生類)가 천지간(天地間)에 있는 자(者)가 음양(陰陽)을 버리고 어디로 가리오, 그런 고(故)로 사람의 성음(聲音)에도 다 음양(陰陽)의 이(理)가 있는데 사람이 살피지 아니할 뿐이라, 이제 정음(正音)의 지음은 지(智)로 영(營)하고 역(力)으로 색(索)함이 아니오, 다만 그 성음(聲音)을 인(因)하여 그 이(理)를 극(極)할 따름이라. 이(理)가 이미 이(二)치 아니하니 어찌 천지귀신(天地鬼神)으로 더불어 그 용(用)을 한가지로 하지 못하리오」하니, 이는 정음(正音)의 지음이 천지음양(天地陰陽)의 이(理)를 취(取)함을 말함이오, 또 그 서문(序文)에 「訓民正音 象形而字倣古篆 因聲而音叶七調 三極之義 二氣之妙 莫不該括 = 훈민정음(訓民正音)은 형(形)을 상(象)하되 자(字)는 고전(古篆)을 본받고 성(聲)을 인(因)하되 음(音)은 칠조(七調)에 맞추니, 삼극(三極)의 의(義)와 이기(二氣)의 묘(妙)함이 널리 포괄(包括)되지 아니함이 없다」하니, 삼극(三極)이라 함은 역(易)에 이른 바의 「삼극지도(三極之道)」【註一】인데,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대대(對待)의 이(理)를 말함이오, 이기(二氣)라 함은 역(易)에 이른 바의 「이기감응(二氣感應)」【註二】인데, 음양(陰陽)의 이기(二氣)를 말함이며, 또 「東方有國 不爲不久 而開物成務之大智 蓋有待於今日也歟 = 동방(東方)이 나라를 유(有)한지 오래지 아니하지 아니하되 물(物)을 개(開)하고 무(務)를 성(成)하는 대지(大智)는 대개(大槪) 금일(今日)에 대(待)함이 있을진저」하니, 개물성무(開物成務)라 함은 역(易)에 이른 바의 「夫易開物成務」【註三】인데, 문물(文物)을 개명(開明)하고 세무(世務)를 성수(成遂)함을 말함이니, 이 삼극(三極)․이기(二氣)․개물성무(開物成務) 등(等) 용어(用語)는 모두 역학(易學)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하여 정음이십팔자(正音二十八字)는 각각(各各) 그 형(形)을 상(象)하여 지은 것인데, 초성(初聲)은 사시(四時)의 이(理)를 취(取)하고 【註四】중성(中聲)은 삼재(三才)의 이(理)를 취(取)하니【註五】이 사시(四時)와 삼재(三才)의 이(理)가 또한 역학(易學)의 원리(原理)와 전연(全然) 일치(一致)되는 것이다. 이제 제자해(制字解)의 요지(要旨)를 해설(解說)하면 대개(大槪) 다음과 같다.
‣초성(初聲)은 사시(四時)의 이(理) 初聲은 十七字
아음(牙音) = ㅋ ㄱ 후음(喉音) = ㅎ ᅙ ㅇ
설음(舌音) = ㅌ ㄷ ㄴ 반설음(半舌音) = ㄹ
순음(脣音) = ㅍ ㅂ ㅁ 반치음(半齒音) =
치음(齒音) = ㅊ ㅈ ㅅ
(초중성(初中聲)에서 후음(喉音) 「ᅙ」와 반치음(半齒音)「ㅿ」는 지금 사용(使用)치 아니함으로 약(略)하고, 아음(牙音) 「ㆁ 」은 종성(終聲)에만 사용(使用)하는데 실제(實際)에는 「ㅇ」으로 대용(大用)하고 있다)
아음(牙音) 「ㄱ」은 설근(舌根)이 후(喉)를 폐색(閉塞)하는 형(形)을 상(象)하고, 설음(舌音)「ㄴ」은 설(舌)이 상악(上顎)(웃닛몸)에 붙는 형(形)을 상(象)하고, 순음(脣音) 「ㅁ」은 구형(口形)을 상(象)하고, 치음(齒音) 「ㅅ」은 치형(齒形)을 상(象)하고 후음(喉音) 「ㅇ」은 후형(喉形)을 상(象)하며 성(聲)의 출(出)함이 조금 여(厲)(힘이 强한것)한 자(者)는 획(劃)을 더하니 즉(卽) 「ㄱ」이 「ㅋ」으로되고, 「ㄴ」이 「ㄷ」「ㅌ」로되고, 「ㅁ」이 「ㅂ」 「ㅍ」으로, 되고 「ㅅ」이 「ㅈ」 「ㅊ」으로되고, 「ㅇ」이 「ㅎ」으로 된 것이오, 오직 아음(牙音)「 」은 특수(特殊)하고 반설음(半舌音) 「ㄹ」은 설형(舌形)의 이체(異體)이다.
후(喉)는 수(邃)(깊은것)하고 윤(潤)(윤택(潤澤)한 것)하니 수(水)가 됨으로 성(聲)이 허(虛)하고 통(通)하며, 사시(四時)로는 동(冬)이 되니, 동(冬)이라 함은 물(物)의 귀장(歸藏)함이 심수(深邃)함을 상(象)함이오, 아(牙)는 착(錯)(교착(交錯)한것)하고 장(長)하니 목(木)이 됨으로 성(聲)이 후음(喉音)과 같으되 실(實)하여, 목(木)이 생장(生長)하여 형체(形體)가 있음과 같고, 사시(四時)로는 춘(春)이 되니 춘(春)이라 함은 동(冬)의 다음에 춘(春)이 와서 목(木)이 생장(生長)함을 상(象)함이오, 설(舌)은 예(銳)하여 동(動)하니 화(火)가 됨으로 성(聲)이 전(轉)하여 양(颺)(날리는 것)하며, 사시(四時)로는 하(夏)가 되니 하(夏)라 함은 물(物)이 신장(伸長)하여 발양(發揚)함을 상(象)함이오, 치(齒)는 강(剛)하고 단(斷)하니 금(金)이 됨으로 성(聲)이 설(屑)(조촐한 것)하고 체(滯)하며, 사시(四時)로는 추(秋)가되니 추(秋)라 함은 물(物)의 수렴(收斂)함을 상(象)함이오, 순(脣)은 방(方)하고 합(合)하니 토(土)가 됨으로 성(聲)이 함(含)하고 광(廣)하며, 사시(四時)로는 계하(季夏)가 되고 또 정위(定位)가 없이 사계(四季)에 기왕(寄旺)하니, 계하(季夏)라 함은 하말(夏末)에 만물(萬物)을 생육(生育)함이 극성(極盛)하여 지(地)의 작용(作用)이 함홍(含弘)함을 상(象)함이오, 사계(四季)에 기왕(寄旺)한다 함은 순(脣)이 일구(一口)를 통(統)하여 후(喉)․아(牙)․설(舌)․치(齒)를 모두 함축(含蓄)함으로 일세(一歲)를 통할(統轄)함을 상(象)함이다. 오직 아음(牙音)의 「 」은 비록 아(牙)에 속(屬)하여 설근(舌根)이 후(喉)를 폐(閉)하고 성(聲)과 기(氣)가 비중(鼻中)으로 나오나 그 성(聲)이 후음(喉音)과 같으므로 목(木)의 생장(生長)하는 상(象)을 취(取)하지 아니하고 동(冬)의 후(後)에 목(木)의 맹아(萌芽)가 시생(始生)함을 상(象)하여 후형(喉形) 「ㅇ」에 일아형(一芽形)을 가(加)한 것이다.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l • 의 十一字는 體音이니 十一歸體의 理이오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ㅈ ㅎ 의 十字는 用音이오 ㅊ ㅋ ㅌ ㅍ 는 모두 用音의 合音이다. ㅏ 는 天이 비로소 사람을 生함이므로 一이 되니 一은 數의 始로서 人類創生의 始를 象함이오 ㅣ 는 十이니 十은 數의 終으로서 사람의 成道를 象함이다. • 는 天이니 ㅡ ㅣ • 는 地에서 人이 成道하여 다시 天으로 圜함을 象함이다.
用音은 四時의 用을 象하여 ㄱ 에서 始하고 ㅎ 에서 終하니 ㄱ 는 春의 象이오 ㅎ 는 冬의 象이니 四時의 用音은 十數에서 成하고 ㅊ ㅋ ㅌ ㅍ 의 合音은 春夏 季夏 및 秋의 音이 各音과 合한 音으로서 秋陰 ㅈ 의 다음에 位하여 三顯에서 一藏으로 넘어 감을 象하니 이는 ㄱ ㄷ ㅂ ㅈ 의 生長成의 三顯하는 音이 一藏하는 ㅎ 音과 合한 것이다
‣중성(中聲)은 삼재(三才)의 이(理) 中聲은 十一字
• 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중성(中聲)의 제자(制字)는 전(專)혀 천(天)․ 지(地)․ 인(人)을 상(象)한 것이니, 「•」는 설(舌)이 축(縮)(收縮하는것)하고 성(聲)이 심(深)하니, 천(天)이 개(開)하여 환전(圜轉)하는 상(象)이 있으므로 천(天)을 상(象)하여 형(形)이 원(圓)하고 「 ㅡ」는 설(舌)이 조금 축(縮)하고 성(聲)이 심(深)치도 아니하고 천(淺)치도 아니하니, 지(地)가 벽(闢)하여 물(物)을 적재(積載)하는 상(象)이 있으므로 지(地)를 상(象)하여 형(形)이 평(平)하고, 「 ㅣ」는 설(舌)이 축(縮)치 아니하고 성(聲)이 천(淺)하니, 인(人)이 생(生)하여 직립(直立)하는 상(象)이 있으므로 인(人)을 상(象)하여 형(形)이 입(立)하니 「 • ㅡ ㅣ」는 천(天)․ 지(地)․ 인(人)의 삼재(三才)의 형(形)을 상(象)하여 지은 것이다.
「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의 팔성(八聲)은 천(天)․ 지(地)․ 인(人)의 상교(相交)하는 상(象)을 취(取)한 것이니, ㅗ의 성(聲)은 • 와 동일(同一)하되 구(口)가 축(蹙)하고 그 형(形)은 •와 ㅡ 가 합(合)하여 성(成)하며 ㅜ 의 성(聲)은 ㅡ 와 동일(同一)하되 구(口)가 축(蹙)하고 그 형(形)은 ㅡ 와 • 가 합(合)하여 성(成)하니, 이는 모두 천지(天地)가 초교(初交)하는 뜻을 취(取)함이다. ㅏ의 성(聲)은 ㅗ와 동일(同一)하되 구(口)가 장(張)하고 그 형(形)은 ㅣ와 •가 합(合)하여 성(成)하며, ㅓ의 성(聲)은 ㅜ와 동일(同一)하되 구(口)가 장(張)하고 그 형(形)은 ㅣ와 •가 합(合)하여 성(成)하니, 이는 모두 천지(天地)의 작용(作用)이 사물(事物)에 발현(發顯)하여 인(人)을 대(待)하여 성수(成遂)하는 뜻을 취(取)함이다.
ㅛ의 성(聲)은 ㅗ와 동일(同一)하되 ㅣ에서 기(起)하고 ( ㅣ와 ㅗ를 합(合)하여 발음(發音)하면 ㅛ가되는 것) ㅑ의 성(聲)은 ㅏ와 동일(同一)하되 ㅣ에서 기(起)하고 ( ㅣ와 ㅏ를 합(合)하여 발음(發音)하면 ㅑ가 되는 것) ㅠ의 성(聲)은 ㅜ와 동일(同一)하되 ㅣ에서 기(起)하고 (ㅣ와 ㅜ를 합(合)하여 발음(發音)하면 ㅠ가 되는 것) ㅕ의 성(聲)은 ㅓ와 동일(同一)하되 ㅣ에서 기(起)하니 (ㅣ와 ㅓ를 합(合)하여 발음(發音)하면 ㅕ가 되는 것) ㅗ ㅏ ㅜ ㅓ 는 천지(天地)에서 시(始)하여 초출(初出)함이 되고 ㅛ ㅑ ㅠ ㅕ 는 ㅣ에서 기(起)하여 인(人)을 겸(兼)하여 재출(再出)함이 되나니, 그 원(圓)(•)을 일개(一個)로 한 것은 초출(初出)의 뜻을 취(取)하고 그 원(圓)을 이개(二個)로 한 것은 재출(再出)의 뜻을 취(取)함이다.
또 ㅗ ㅏ ㅛ ㅑ의 원(圓)이 상(上)과 외(外)에 위거(位居)함은 그 천(天)에서 출(出)하여 양(陽)이 되는 까닭이오, ㅜ ㅓ ㅠ ㅕ의 원(圓)이 하(下)와 내(內)에 위거(位居)함은 그 지(地)에서 출(出)하여 음(陰)이 되는 까닭이며, •가 팔성(八聲)에 통관(通貫)함은, 천지운행(天地運行)의 이(理)에 양(陽)이 음(陰)을 통(統)하여 만물(萬物)에 주류(周流)함과 같고, ㅛ ㅑ ㅠ ㅕ가 모두 인(人)을 겸(兼)함은, 인(人)은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으로서 능(能)히 천지(天地)로 더불어 삼재(三才)가 되는 까닭이다. 우리 국어(國語)에 음성(陰性)과 양성(陽性)이 있으니, 예(例)컨대 청색(靑色)을 파란빛이라 함은 원(圓)이 외(外)에 있으므로 양성(陽性)이 되고, 퍼런빛이라 함은 원(圓)이 내(內)에 있으므로 음성(陰性)이 되며, 비대(肥大)한 상(象)을 통통하다 함은 원(圓)이 상(上)에 있으므로 양성(陽性)이 되고, 퉁퉁하다 함은 원(圓)이 하(下)에 있으므로 음성(陰性)이 되는 것이다. 지금 국어문법(國語文法)에 글의 토(吐)의 「하야」를 모두 「하여」로 써서 음성(陰性)으로 통일(統一)하고 있는데 원래(元來) 어음(語音)이라 함은 내(內)로부터 외(外)에 발현(發顯)하는 것이므로 양성(陽性)을 띠고 명랑(明朗)한 것이 그 본색(本色)이니, 시(時)와 경우(境遇)에 따라서 양성적(陽性的)으로 표현(表現)할 수도 있고 음성적(陰性的)으로 표현(表現)할 수도 있으나. 양성적(陽性的)으로 표현(表現)할 수 있는 어음(語音)을 인위적(人爲的)으로 말살(抹殺)하고, 도리어 음성음(陰性音)을 전용(專用)한다는 것은, 어음(語音)의 본색(本色)에 합(合)치 아니할 뿐만 아니라 또한 부지부식중(不知不識中)에 사람의 기성(氣性)으로 하여금 음울침담(陰鬱沈曇)한 면(面)으로 향(向)하게 하는 것이다.
‣초(初)와 종(終)의 순환(循環)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의 합성(合成)한 문자(文字)에는 동정(動靜)이 호근(互根)하고 음양(陰陽)이 교변(交變)하는 뜻이 있으니, 동(動)하는 자(者)는 천(天)이오 정(靜)한 자(者)는 지(地)이오 동정(動靜)을 겸(兼)한 자(者)는 인(人)이라, 초성(初聲)은 발동(發動)하는 뜻이 있으니 곧 천(天)의 사(事)이오, 종성(終聲)은 지정(止定)하는 뜻이 있으니 곧 지(地)의 사(事)이오, 중성(中聲)은 초성(初聲)의 생(生)(天의 發動하는 뜻)함을 승수(承受)하고 종성(終聲)의 성(成)(地의 止定하는 뜻)함에 접속(接續)하니 곧 인(人)의 사(事)이다. 종성(終聲)에 다시 초성(初聲)을 사용(使用)함은 천(天)이 지(地)를 통(統)하는 뜻이오, 초성(初聲)이 종성(終聲)으로 되고 종성(終聲)이 다시 초성(初聲)으로 되는 것은, 일원(一元)의 기(氣)가 주류(周流)하여 궁(窮)치 아니하고, 사시(四時)의 운(運)이 순환(循環)하여 단(端)이 없으므로 정(貞)하면 다시 원(元)하고 동(冬)하면 다시 춘(春)하여 생생불궁(生生不窮)함을 상(象)함이다. 동정(動靜)이 호근(互根)한다 함은 동(動)은 초성(初聲)이오 정(靜)은 종성(終聲)이므로, 초성(初聲)과 종성(終聲)이 호역(互易)하여 초성(初聲)이 종성(終聲)에 근착(根着)하고 종성(終聲)이 초성(初聲)에 근착(根着)한다는 뜻이오, 음양(陰陽)이 교변(交變)한다 함은 양(陽)은 동(動)이오 음(陰)은 정(靜)이니, 또한 동정(動靜)의 호근(互根)과 같은 뜻이다. 정(貞)하면 원(元)한다 함은 역학(易學)의 「원형이정(元亨利貞)」【註六】의 상(象)을 취(取)한 것이니, 역학(易學)에 원(元)은 춘(春)의 象이오 형(亨)은 하(夏)의 상(象)이오 이(利)는 추(秋)의 상(象)이오 정(貞)은 동(冬)의 상(象)이라, 초성(初聲)이 종성(終聲)으로 되는 것은, 춘(春)이 가면 동(冬)이 오고 원(元)이 가면 정(貞)이 오는 상(象)이오, 종성(終聲)이 다시 초성(初聲)으로 되는 것은, 동(冬)이 종(終)하면 춘(春)이 시(始)하고 정(貞)이 종(終)하면 원(元)이 시(始)하는 상(象)이다.
‣만성(萬聲)의 생생(生生)
이상(以上)에 말한 것이 제자원리(制字原理)의 개요(槪要)인데, 그 원리(原理)가 사시(四時)와 삼재(三才)의 이(理)에서 나온 것으로서, 역학(易學)으로 더불어 서로 표리(表裏)가 되고 있는 것이다. 대저(大抵) 언어(言語)라 함은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성(聲)을 통(通)하여 그 의사(意思)를 발표(發表)하는 것이오, 문자(文字)라 함은 천지자연(天地自然)의 성(聲)을 기록(記錄)한 부호(符號)이라, 그러므로 언어(言語)를 기록(記錄)함에는 또한 천지자연(天地自然)의 문자(文字)가 있은 연후(然後)에 언어(言語)와 문자(文字)가 서로 체(體)와 용(用)이 되어 변화(變化)하기 궁(窮)함이 없는 것이다. 세계문자중(世界文字中)에서 자연(自然)의 성(聲)과 자연(自然)의 문자(文字)가 서로 배합(配合)한 것은 오직 우리 국문(國文)이 있을 뿐이니, 이가 우리 국문(國文)이 천지(天地)의 생생(生生)하는 대덕(大德)과 역학(易學)의 생생(生生)하는 원리(原理)를 체득(體得)하여 만성(萬聲)이 생생(生生)하는 소이(所以)이다.
註一. 繫辭上傳 第二章 「六爻之動 三極之道也」
註二. 咸卦彖傳 「二氣感應以相與」
註三. 繫辭上傳 第十一章「夫易何爲者也 夫易開物成務」
註四. 乾卦文言 「與四時合其序」 繫辭上傳 第六章 「變通配四時」등(等)
註五. 繫辭下傳 第十章 「有天道焉 有地道焉 有人道焉 兼三才而兩之 故六」
註六. 乾卦에 「元亨利貞」
【附錄 二】
역학(易學)으로 본 귀신문제(鬼神問題)
‣귀신(鬼神)의 유무(有無)
귀신(鬼神)의 유무(有無) 문제(問題)는 실(實)로 천고(千古)의 의안(疑案)이오, 더욱이 귀신(鬼神)이 사람에게 화복(禍福)을 준다는 말은 종교(宗敎)에도 있고 일반(一般) 민간(民間)에도 널리 퍼져 있는데, 역학(易學)은 이에 대(對)하여 어떠한 해답(解答)을 내리고 있는가.
역(易)에 「日中則昃 月盈則食 天地盈虛 與時消息 而况於人乎 况於鬼神乎 = 일(日)이 중(中)한즉 측(昃)하고 월(月)이 영(盈)한즉 식(食)하나니, 천지(天地)의 영허(盈虛)도 시(時)로 더불어 소식(消息)하곤 하물며 사람이며 하물며 귀신(鬼神)이랴」【註一】하니, 이는 천지간(天地間)에 사람의 이외(以外)에 또한 귀신(鬼神)이 있어, 천지일월(天地日月)과 같이 영허소장(盈虛消長)하고 인생(人生)이나 사회(社會)와 같이 흥망성쇠(興亡盛衰)하고 있음을 말함이다. 또「夫大人者 與天地合其德 與日月合其明 與四時合其序 與鬼神合其吉凶 先天而天不違 後天而奉天時 天且不違而况於人乎 况於鬼神乎 = 그 대인(大人)은 천지(天地)로 더불어 그 덕(德)을 합(合)하고 일월(日月)로 더불어 그 명(明)을 합(合)하고 사시(四時)로 더불어 그 서(序)를 합(合)하고 귀신(鬼神)으로 더불어 그 길흉(吉凶)을 합(合)하고 천(天)에 선(先)하되 천(天)이 위(違)치 아니하고 천(天)에 후(後)하매 천시(天時)를 봉(奉)하나니, 천(天)도 또한 위(違)치 아니하곤, 하물며 사람이며 하물며 귀신(鬼神)이랴」【註二】하니, 이는 대인(大人)의 행동(行動)은 천지(天地)․일월(日月)․사시(四時)의 운행(運行)하는 자연법칙(自然法則)과 일치(一致)하고 또 귀신(鬼神)의 작용(作用)과도 일치(一致)하여, 대인(大人)이 선(善)하다고 하는 것을 귀신(鬼神)도 선(善)하다 하고, 대인(大人)이 불선(不善)하다고 하는 것을 귀신(鬼神)도 불선(不善)하다하며, 대인(大人)의 행동(行動)은 천(天)도 어기지 아니하는데, 어찌 사람이나 귀신(鬼神)이 그를 어길 수가 있으랴 함을 말함이니, 이것도 천지간(天地間)에 사람 이외(以外)에 따로 귀신(鬼神)이 있어, 사람의 길흉(吉凶)에 대(對)한 재단(裁斷)을 하고 있음을 말함이다. 또 「天道虧盈而益謙 地道變盈而流謙 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盈而好謙 = 천도(天道)는 영(盈)을 휴(虧)하고 겸(謙)을 익(益)하며, 지도(地道)는 영(盈)을 변(變)하여 겸(謙)에 유(流)하며, 귀신(鬼神)은 영(盈)을 해(害)하고 겸(謙)을 복(福)하며 인도(人道)는 영(盈)을 오(惡)하고 겸(謙)을 호(好)한다」【註三】하니, 이는 천지인(天地人)이 모두 교영(驕盈)한 자(者)를 손(損)하고, 겸양(謙讓)한 자(者)를 도와주는데, 귀신(鬼神)도 또한 교영(驕盈)한 자(者)에게 해(害)를 주고 겸양(謙讓)한 자(者)에게는 복(福)을 준다 함을 말함이다.
이상(以上)으로 써 보면 역학(易學)은 완전(完全)히 유신론(有神論)인 동시(同時)에 귀신(鬼神)은 천지인(天地人)과 같이 소장성쇠(消長盛衰)하면서 사람의 선악(善惡)에 대(對)하여 길흉(吉凶)과 화복(禍福)을 주는 작용(作用)이 있다는 것이다. 특(特)히 이상(以上)의 제론(諸論)은 모두 천(天)․지(地)․신(神)․인(人)을 병칭(倂稱)하면서 또한 반드시 사람과 귀신(鬼神)을 대거(對擧)하고 있는 것은, 사람과 귀신(鬼神)과의 사이에 깊은 관련(關聯)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의 生死와 鬼神
孔子의 死生․鬼神論에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知事鬼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 계로(季路)가 귀신(鬼神)을 섬김을 물은대 공자(孔子)가라사대 능(能)히 사람을 섬기지 못하거니 어찌 능(能)히 귀신(鬼神)을 섬기리오, 감(敢)히 사(死)를 묻나이다, 가라사대 생(生)을 알지 못하거니 어찌 사(死)를 알리오」【註四】하니. 이는 사(死)의 도(道)는 곧 생(生)의 도(道)이오, 귀신(鬼神)의 도(道)는 곧 사람의 도(道)이니, 사생인귀(死生人鬼)는 일이이(一而二)․ 이이일(二而一)한 것이라, 사람의 생전(生前)에 정신(精神)이 여하(如何)히 발생(發生)되고 또 지각(知覺)이 여하(如何)한 형태(形態)로서 여하(如何)히 취적(聚積)되고 있는가를 지득(知得)한 연후(然後)에, 가(可)히 써 사(死)와 귀신(鬼神)의 이(理)를 알 수 있음을 말함이다. 그러면 사람의 생전(生前)의 정신지각(精神知覺)이라 함은 여하(如何)한 것인가.
만물(萬物)은 모두 정(精)과 기(氣)로써 조직(組織)되고, 인신(人身)에는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의 양물(兩物)이 대대(對待)하고 있으므로, 육체(肉體)는 정(精)의 응성(凝成)함이오, 정신(精神)은 기(氣)의 발용(發用)함이다. 역(易)에 「剛柔者晝夜之象也 = 강유(剛柔)는 주야(晝夜)의 상(象)이라」【註五】하니, 강(剛)은 주(晝)의 상(象)을 말함인데, 주(晝)는 명(明)하고 열(熱)함으로 강(剛)은 명(明)과 열(熱)을 생(生)하는 작용(作用)이 있다. 화석(火石부싯돌)의 예(例)로써 보건대 석중(石中)에서 화(火)가 발생(發生)하는 것은 석중(石中)에 화(火)가 있는 것이 아니오, 석(石)의 질(質)을 결합(結合)시키고 있는 기(氣)는 가장 강(剛)하고, 강(剛)과 강(剛)이 상촉상마(相觸相摩)하는 때에 명(明)하고 열(熱)한 화(火)가 일어나는 것이니, 이 화(火)는 강(剛)의 비약적운동(飛躍的運動)의 산물(産物)이다. 사람의 뇌(腦)는 그 질(質)이 가장 정수(精粹)함으로 그에 의착(依着)한 기(氣)는 또한 강건(剛健)하고, 그 강건(剛健)한 기(氣)가 물(物)의 기(氣)와 상감상응(相感相應)하는 때에 사물(事物)을 광조(光照)하는 명(明)과 사물(事物)을 상영(相迎)하는 열(熱)이 생(生)하여, 감정(感情)․사고(思考) 등(等)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출현(出現)하나니, 이 정신작용(精神作用)은 석중(石中)의 화(火)와 같이 뇌(腦)에 의착(依着)한 기(氣)의 비약적운동(飛躍的運動)의 산물(産物)이다. 사람의 정신(精神)은 그 본질(本質)(剛)이 화(火)와 같고 또 그 발생(發生)함이 화(火)와 같은지라, 그러므로 물(物)의 강(剛)과 강(剛)이 상촉(相觸)치 아니하면 화(火)가 생(生)치 아니함과 같이, 사람이 아무 생각함도 없고 감촉(感觸)함도 없으면 정신작용(精神作用)이 나타나지 아니하며, 화(火)는 물(物)에 의착(依着)치 아니하면 형상(形象)을 이루지 못함과 같이, 사람은 뇌(腦)가 건전(健全)치 못하면 건전(健全)한 기(氣)가 의착(依着)치 못함으로 그 정신작용(精神作用)이 또한 건전(健全)치 못하며, 물질(物質)에 의착(依着)한 화염(火焰)은 공중(空中)에 유동(流動)하여 곧 소산(消散)할 듯 하되, 마침내 소산(消散)치 아니하고 일정(一定)한 형상(形象)을 이루고 명(明)과 열(熱)을 발(發)하는 것은, 물질(物質)은 체(體)가 되고 화염(火焰)은 용(用)이 되어, 물질(物質)의 수렴작용(收斂作用)에 의(依)하여 화염(火焰)이 근착(根着)하고 있는 까닭이니, 사람의 뇌(腦)에 의착(依着)한 기(氣)도 뇌질(腦質)의 수렴작용(收斂作用)에 의(依)하여, 비록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아니하나, 어떠한 형상(形象)을 이루고 유산(遊散)치 아니하며, 소위(所謂) 경험(經驗)․학문(學問)․지식(知識)같은 것도, 그 기(氣)의 속에 포장(包藏)되어 기억(記憶)되는 것이니, 사람의 기억력(記憶力)이 강(强)하다 함은 이 기(氣)를 강(强)하게 수렴(收斂)한 까닭이다. 물질(物質)이 정수(精粹)할수록 화염(火焰)이 강(强)하여 그 광(光)과 열(熱)의 힘이 원급(遠及)하는 것이니, 사람도 뇌질(腦質)이 정수(精粹)할수록 그 의착(依着)한 기(氣)가 청정(淸淨)하고 강건(剛健)하여, 순결(純潔)한 감정(感情)과 고원(高遠)한 사고력(思考力)과 사람을 제압(制壓)하는 위엄(威嚴)을 가지는 것이며, 화(火)가 상극(相克)하는 수(水)를 만날 때에 화력(火力)이 약(弱)한 자(者)는 식멸(息滅)되는 것이나, 화력(火力)이 강(强)할 때는 도리어 반발력(反撥力)을 증대(增大)하는 것이니, 사람도 기(氣)가 약(弱)한 자(者)는 외부(外部)의 압력(壓力)을 받을 때에 쉽게 굴복(屈伏)하나, 기(氣)가 강건(剛健)한 자(者)는 도리어 반발작용(反撥作用)을 일으켜서 그 저항력(抵抗力)을 증대(增大)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전(生前)에 이미 기(氣)의 작용(作用)이 정신(精神)을 생(生)하고 있으므로, 사후(死後)에도 또한 기(氣)의 작용(作用)이 없지 아니한 것이다. 역(易)에 「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 精氣爲物 遊魂爲變 是故 知鬼神之情狀 = 시(始)를 원(原)하고 종(終)을 반(反)한지라 고(故)로 사생(死生)의 설(說)을 알고, 정(精)과 기(氣)가 물(物)이 되고 혼(魂)이 유(遊)하여 변(變)이 되는지라 이런 고(故)로 귀신(鬼神)의 정상(情狀)을 안다」【註六】하니, 원(原)이라 함은 전(前)에 추(推)함이오 반(反)이라 함은 후(後)에 요(要)함이라, 시생(始生)하기 전(前)의 일을 추구(推求)하면 가(可)히써 사후(死後)의 일을 알 수 있고, 사후(死後)의 형상(形象)을 반요(反要)하면 가(可)히써 미생전(未生前)의 일을 알 수 있으며, 또 정(精)과 기(氣)가 취(聚)하여 물(物)이 되는데, 사후(死後)에 기(氣)가 유산(遊散)하여 어떠한 운동(運動)을 생(生)함을 혼(魂)이라 하고 혼(魂)의 변화(變化)하는 상태(狀態)가 곧 귀신(鬼神)이며 사후(死後)의 혼(魂)은 곧 생전(生前)의 정신(精神)이므로, 사후(死後)의 귀신(鬼神)은 또한 생전(生前)의 심(心)의 작용(作用)과 같은데, 사람의 자연발로(自然發露)하는 생존본능(生存本能)인 정(情)에 대(對)하여 의지(意志)가 그를 결단(決斷)하고 실천(實踐)하는 것으로서 정(情)은 체(體)가되고 의지(意志)는 용(用)이 됨과 같이 사후(死後)의 귀신(鬼神)은 귀(鬼)는 체(體)이오 신(神)은 용(用)이니, 이 까닭에 귀(鬼)에는 정(情)이 있고 신(神)에는 상(狀)이 있으니, 정(情)은 감응(感應)에 의(依)하여 자연발로(自然發露)함이오 상(狀)은 발용(發用)하여 변화(變化)를 행(行)함이다. 그러므로 귀(鬼)와 신(神)은 합언(合言)하면 심(心)과 같고 분언(分言)하면 귀(鬼)는 정(情)과 같고 신(神)은 의지(意志)와 같은 것이다.
이상(以上)의 이(理)를 요약(要約)하여 말하면, 사람이 시생(始生)할때에 먼저 음양양성(陰陽兩性)의 기(氣)가 감응(感應)하고 다음에 양성(兩性)의 정(精)이 췌취(萃聚)하여 형체(形體)를 이루는 것인데, 사람의 어느 중요(重要)한 기관(器官)에 기(氣)의 운행(運行)이 끊어지면, 정(精)은 독음(獨陰)이되고 기(氣)는 독양(獨陽)이되어 서로 분산(分散)함으로 사(死)가 되며, 생전(生前)의 기(氣)는 화(火)와 같이 어떠한 형상(形象)을 이루고 있으므로 사후(死後)에 유산(遊散)하는 기(氣)도 어느 기간(期間)안에는 그 작용(作用)을 보유(保有)하고 있는 것이며, 생전(生前)의 정신(精神)은 기(氣)의 비약적(飛躍的) 운동(運動)의 산물(産物)임과 같이 사후(死後)의 귀신(鬼神)은 유혼(遊魂)의 변화(變化)하는 산물(産物)이며, 생전(生前)의 정신(精神)은 반드시 기(氣)에 의착(依着)하고 있음과 같이 사후(死後)의 귀신(鬼神)도 반드시 천지간(天地間)을 운행(運行)하는 기(氣)에 의착(依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사(死)하는 즉시(卽時)로 기(氣)가 모두 소멸(消滅)치 아니하고 혼(魂)의 작용(作用)을 행(行)할 수 있는가, 서화담(徐花潭)은 「造化鬼神은 神易陰陽의 極致라」하여 鬼神死生說一篇을 지은바 그 요지(要旨)는 「死生人鬼只是 氣之聚散而己 氣之淡一淸虛者 聚之大者爲天地 聚之小者爲萬物 聚散之勢 有微著久速耳 大小之聚散於太虛 以大小之有殊 雖一草一木之微者 其氣終亦不散 况人之精神知覺 聚之大且久者哉 形魄見其有散 似歸盡沒於無 此處率皆不得致思 氣之聚之有漸以至博厚 爲天地爲吾人 人之散也 形魄散耳 聚之淡一淸虛者 終亦不散 散於太虛淡一之中同一氣也 其知覺之聚散 只有久速耳 雖散之最速有日月朞者 乃物之微者 爾其氣終亦不散 何者氣之淡一淸虛者 旣無其始又無其終 此理氣之所以極妙底 雖一片香燭之氣 見其有散於目前 其餘氣終亦不散 烏得謂之盡於無耶 = 死와生, 人과鬼는 다만 이 氣의 聚散뿐이다. 氣의 淡一淸虛한 者가 聚함이 大한 者는 天地가 되고 聚함이 小한 者는 萬物이 되며, 聚散하는 勢는 隱微하고 나타나고 오래고 빠름이 있으니. 大小의 界함이 太虛에 聚散함에, 大하고 小함으로 써 다름이 있음이라, 비록 一草一木의 적은 者라도 그 氣는 마침내 또한 散치 아니하곤, 하물며 사람의 精神知覺이 聚함이 大하고 또 久한 者이랴. 形魄은 그 散함이 있음을 보매, 無에 盡沒함에 歸하는듯하나, 此處에 모두 시러곰(能히) 致思치 못함이니라, 氣의 聚함이 漸이 있어 써 博厚함에 이르러, 天地가 되고 吾人이 되며 사람의 散함은 形魄이 散함이오, 聚함이 淡一淸虛한 者는 마침내 또한 散치 아니 하나니라.
太虛淡一의 中에 散함에 한가지 一氣이라, (花潭이 易學의 鬼神說微旨에 對하여 그 底蘊을 敷衍하려 하다가 뜻만 있고 成就치 못함을 恨한다 함이 이곳을 말함인 듯하다 ) 그 知覺의 聚散함은 다만 오래고 빠름이 있나니라, 비록 散함이 가장 速한 것도 一日․ 一月․ 一年의 것이 있으니, 곧 物의 적은 者이로되 그 氣가 마침내 또한 散치 아니 하나니, 무슨 까닭인고, 氣의 淡一淸虛한 者는 이미 그 始가 없고 또 그 終이 없음이니, 이가 理氣의 써 極妙한바이다. 비록 一片香燭의 氣도 그 目前에 散함이 있음을 보나, 餘氣는 마침내 또한 散치 아니하나니, 어찌 시러곰(能히) 無에 盡한다고 이르랴」【註七】하니, 이 뜻을 요약(要約)하면, 만물(萬物)이 취(聚)한 자(者)는 반드시 산(散)함이 있는데, 취(聚)함이 대(大)한 자(者)는 산(散)함이 오래고 취(聚)함이 소(小)한 자(者)는 산(散)함이 속(速)한지라, 사람의 사후(死後)에 기(氣)도 태허중(太虛中)에 산(散)하나, 그 취(聚)함이 대(大)하고 구(久)한 지각(知覺)은 어느 기간(期間)을 소산(消散)치 아니하니, 이가 곧 귀신(鬼神)이라 함을 말함이니, 그러므로 생전(生前)의 정신지각(精神知覺)이 곧 사후(死後)의 귀신(鬼神)이다.
‣神 ․ 人 ․ 動 ․ 植 의 四등(等)類
<!== Removed Tag Filtered (v:shapetype) --> 天地․ 雷風․ 水火․ 山澤의 八物은 生存作用을 行하는 組織體의 根本이오, 八物은 모두 陰陽으로 配合되고 있으므로, 이 組織體를 老․長․中․少의 四등(等)類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 Removed Tag Filtered (v:shapetype) -->그런데 이 四등(等)類를 易理에 依하여 生物類에 擬하여 보면, 山澤은 植物類가 되고 水火는 動物類가 되고 雷風은 人類가 되고 天地는 鬼神이 되는 것이다.
이제 이 四등(等)類의 性情을 보건대,
一. 易에 「神也者 妙萬物而爲言者也 = 神이라 함은 萬物을 妙하게 하여 言을 하는 者라」【註八】하니, 爲言이라 함은 사람의 意思가 言辭를 通하여 發表됨과 같이, 神의 作用이 萬物의 生生化化에 나타남을 象함이며, 神의 妙와 雷風 水火 山澤의 動․撓․潤․燥․終始․說의 作用을 對擧함을 보면, 神이라 함은 天地의 作用임이 明白하니, 이를 精․氣의 理로써 보면, 山澤은 形이오 水火는 精이오 雷風은 氣이오 天地는 神이다.
이 형정기신(形精氣神)을 다시 생물(生物)의 사등류(四等類)에 배(配)하면, 식물류(植物類)는 형(形)이오 동물류(動物類)는 정(精)이오 인류(人類)는 기(氣)이오 귀신(鬼神)은 신(神)이다. 이것을 다시 정신작용(精神作用)의 면(面)으로써 보면 형(形)은 질(質)이오, 정(精)은 감각(感覺)․감정(感情) 등(等)이오. 기(氣)는 이성(理性)이오, 신(神)은 영통(靈通)이라, 식물(植物)은 형질(形質)을 주(主)로 함으로 정신작용(精神作用)이 질색(窒塞)하여 통(通)치 못하며, 형질(形質)은 혹(或) 발산(發散)하여 정(精)이 되는 것이므로 식물중(植物中)에는 감각(感覺)을 가지고 있는 자(者)가 있다. 동물(動物)은 감각(感覺)․감정(感情)을 주(主)로 함으로 그 생활(生活)은 주(主)로 본능(本能)에 의(依)하여 행(行)한다. 그러나 정(精)은 취합(聚合)하면 형(形)을 이루고 발산(發散)하면 기(氣)로 화(化)하는 것이므로, 동물중(動物中)에는 혹(或) 식물(植物)과 같이 질색(窒塞)한 자(者)도 있고, 혹(或) 사람과 같이 이성(理性)을 가지고 있는 자(者)도 있다. 사람은 이성(理性)을 주(主)로 함으로 그 생활(生活)이 주(主)로 사상(思想)에 의(依)하여 행(行)한다. 그러나 기(氣)는 취합(聚合)하면 정(精)을 이루고 발산(發散)하면 신(神)으로 화(化)하는 것이므로, 사람중(中)에는 혹(或) 동물(動物)과 같이 주(主)로 감정(感情)에 의(依)한 본능생활(本能生活)을 하는 자(者)도 있고, 혹(或) 귀신(鬼神)과 같이 영통(靈通)한 자(者)도 있는 것이다.
二. 사등류(四等類)를 공간생활(空間生活)로써 보면 역(易)에「 本乎天者親上 本乎地者親下 = 천(天)에 본(本)한 자(者)는 상(上)을 친(親)하고 지(地)에 본(本)한 자(者)는 하(下)를 친(親)한다」【註九】하니, 지(地)는 질(質)의 응고(凝固)함이오, 천(天)은 기(氣)의 유행(流行)함이라, 식물(植物)은 순연(純然)히 지(地)에 본(本)함으로 지(地)의 질(質)에 고착(固着)하여 자유(自由)로 이동(移動)치 못하고, 동물(動物)은 자유(自由)로 이동(移動)하여 육상(陸上)을 주행(走行)하는 자(者), 공중(空中)을 비행(飛行)하는자(者), 수중(水中)을 잠행(潛行)하는자(者) 등(等)이 있으나 지(地)를 떠나지 못함으로, 반(半)은 천(天)에 본(本)하고 반(半)은 지(地)에 본(本)한다. 그러나 체(體)가 평면(平面)으로 되어 있어 지(地)를 상(象)함으로 오히려 본호지(本乎地)의 유(類)에 속(屬)한다. 사람은 자유(自由)로 이동(移動)하고 지(地)를 떠나지 못함은 동물(動物)과 일반(一般)이나, 체(體)가 직립(直立)하여 입체(立體)로 되어 공중(空中)을 통관(通貫)하고 있으므로 오히려 본호천(本乎天)의 유(類)에 속(屬)한다. 동물(動物)과 사람이 반천반지(半天半地)하여 이미 서로 대응(對應)하고 있는지라. 조직(組織)의 대대법칙상(對待法則上) 이 천지간(天地間)에는 순연(純然)히 본호지(本乎地)한 식물(植物)과 대응(對應)하여, 순연(純然)히 본호천(本乎天)한 일물(一物)이 없지 못하나니, 이가 곧 귀신(鬼神)이오, 역(易)에「神無方 = 신(神)은 방(方)이 없다」【註十】함은, 귀신(鬼神)은 천(天)의 유행(流行)하는 기(氣)에 의착(依着)하여, 일정(一定)한 방소(方所)가 없이 주행(周行)함을 말함이다. 귀신(鬼神)은 방(方)이 없음으로, 그의 유행(流行)에는 산천(山川)의 격조(隔阻)도 없고, 거리(距離)의 제한(制限)도 없고. 완전(完全)히 공간(空間)을 초월(超越)하고 있으니, 역(易)에「唯神也 故不疾而速 不行而至 = 이 신(神)한 고(故)로 질(疾)치 아니하여도 속(速)하고 행(行)치 아니하여도 지(至)한다」【註十一】함은, 귀신(鬼神)은 공간(空間)을 초월(超越)하여 백천만리외(百千萬里外)의 일을 안전(眼前)에 보고 동석(同席)에서 듣고 있음과 같이 한다 함을 말함이다.
그런데 귀신(鬼神)은 어떠한 형태(形態)를 가지고 있는가, 식물(植物)의 체(體)는 도립(倒立)하여 직선(直線)으로 되어 있고, 동물(動物)의 체(體)는 평면(平面)이 되고, 사람의 체(體)는 상(上)을 관통(貫通)하여 삼각형(三角形)의 입체(立體)로 되어 있으니, 동물(動物)과 사람이 이미 평면(平面)과 입체(立體)로써 서로 대응(對應)하고 있는지라, 조직(組織)의 대대법칙상(對待法則上) 또한 직선(直線)과 대응(對應)하는 원형(圓形)이 없지 못한다. 만물(萬物)이 원(圓)한즉 유동(流動)하는지라, 그러므로 이 원형(圓形)은 곧 귀신(鬼神)이니, 역(易)에 「蓍之德 圓而神 = 시(蓍)의 덕(德)은 원(圓)하고 신(神)하다」【註十二】함은, 귀신(鬼神)이 원(圓)함을 말함이다.
三. 사등류(四等類)를 시간생활(時間生活)로써 보면, 시간(時間)에는 현재(現在)․과거(過去)․미래(未來)가 있는지라, 식물(植物)은 무지(無知)하여 시간(時間)을 알지 못하고 동물(動物)은 주(主)로 현재(現在)를 알고 약간(若干)의 과거(過去)를 기억(記憶)하며, 사람은 현재(現在)와 과거(過去)를 알고 약간(若干)의 미래(未來)를 추상(推想)하며, 귀신(鬼神)은 시간(時間)을 초월(超越)하여 미래(未來)를 통견(洞見)하나니, 역(易)에 「神以知來 = 신(神)하여 써 내(來)를 지(知)한다」【註十三】하고, 또 「知幾其神乎 幾者動之微 吉之先見者也 = 기(幾)를 지(知)함이 그 신(神)한저 기(幾)라 함은 동(動)의 은미(隱微)함이오 길(吉)의 먼저 보이는 자(者)이라 」【註十四】함은, 귀신(鬼神)은 시간(時間)을 초월(超越)하여 미래(未來)에 발생(發生)할 일을 명견(明見)하고 있음을 말함이다.
四. 사등류(四等類)를 개체(個體)와 통체(統體)의 면(面)으로써 보면 개체(個體)는 체(體)이오 통체(統體)는 용(用)이라, 식물(植物)은 스스로 이동(移動)치 못함으로, 체(體)만 있고 용(用)이 없어 고립(孤立)한 개체생활(個體生活)을 하고 있으며, 동물(動物)은 본호지(本乎地)의 유(類)에 속(屬)하고 있으므로, 주(主)로 개체생활(個體生活)을 행(行)하나, 정(精)이 발산(發散)하여 기(氣)로 화(化)하는 일이 있으므로, 혹(或) 군취(群聚)로써 통체생활(統體生活)을 행(行)하는 자(者)가 있으며, 사람은 주(主)로 통체생활(統體生活)을 행(行)하나, 기(氣)가 취합(聚合)하면 정(精)을 이루는 일이 있으므로, 사람중(中)에는 혹(或) 사욕(私慾)만을 위(爲)하는 개체생활(個體生活)을 행(行)하는 자(者)가 있으며, 귀신(鬼神)은 일정(一定)한 방소(方所)가 없으므로, 지공(至公)하여 사(私)가 없고 지명(至明)하여 사(邪)가 없고, 통체(統體)에 주편(周遍)하여 만물(萬物)을 재성(裁成)하나니, 역(易)에 「利用出入 民咸用之 謂之神 = 용(用)을 이(利)하여 출입(出入)하여 민(民)이 다 용(用)함을 신(神)이라 이른다」【註十五】함은, 만민(萬民)의 일용(日用)을 이(利)롭게 하여 그 생존(生存)을 모두 농후(濃厚)케 하는 것이 곧 귀신(鬼神)의 작용(作用)임을 말한 것이다.
‣귀신(鬼神)의 이(理)와 정치(政治)
이와 같이 귀신(鬼神)이라 함은 생전(生前)의 정신지각(精神知覺)이 사후(死後)에 소산(消散)치 아니하고 귀신(鬼神)이 되며, 그 작용(作用)은 영통(靈通)하고 변화막측(變化莫測)하여 공간(空間)과 시간(時間)을 초월(超越)하고 심원(深遠)과 미래(未來)의 일을 통지(洞知)하며, 길흉(吉凶)과 화복(禍福)을 주고 특(特)히 기(氣)의 교영(驕盈)한 자(者)를 해(害)하고 겸허(謙虛)하는 자(者)를 복우(福佑)한다. 그러나 귀신(鬼神)은 영원(永遠)히 존재(存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같이 소장(消長)․성쇠(盛衰)가 있어, 어느 기간(期間)을 지나면 스스로 소산(消散)하는 것이다.
그리고 식물(植物)과 동물(動物), 동물(動物)과 사람과의 사이에 생존작용상(生存作用上) 서로 분리(分離)할 수 없는 관련(關聯)이 있음과 같이 사람과 귀신(鬼神)과의 사이에도 서로 감응(感應)하는 이(理)가 있으니 이를 천인감응(天人感應) 또는 신인감응(神人感應)이라 한다. 역(易)에 「易無思也 無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 = 역(易)은 사(思)도 없고 위(爲)도 없고 적연(寂然)히 동(動)치 아니하다가 감(感)하매 드디어 천하(天下)의 고(故)를 통(通)하나니, 천하(天下)의 지신(至神)함이 아니면 누가 능(能)히 이에 여(與)하리오」【註十六】하고, 또 「天數二十有五 地數三十 凡天地之數 五十有五 此所以成變化而行鬼神也 =천수(天數)가 이십오(二十五)이오 지수(地數)가 삼십(三十)이오, 무릇 천지(天地)의 수(數)가 오십오(五十五)이니, 이가 써 변화(變化)를 이루고 귀신(鬼神)을 행(行)하는 바이라」【註十七】하니, 이것은 모두 귀신(鬼神)과 사람이 서로 감응(感應)함을 말함이오, 또 「變化云爲 吉事有祥 = 변화(變化)하고 운위(云爲)함에 길사(吉事)는 상(祥)이 있다」【註十八】하니, 이는 사물(事物)의 변화(變化)와 언어(言語)․동작(動作)에 길(吉)한 일에는 경복(慶福)의 징조(徵兆)가 나타나고, 흉(凶)한 일에는 재이(災異)의 징조(徵兆)가 나타남을 말함인데, 이것도 귀신(鬼神)과 사람의 감응(感應)하는 이(理)에 의(依)하여 장차(將且) 길흉(吉凶)이 있을 때에는 귀신(鬼神)이 먼저 그 전조(前兆)를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역(易)에는 귀신(鬼神)의 영통(靈通)․변화(變化)․감응(感應) 등(等) 작용(作用)으로써 천지(天地)의 자연법칙(自然法則)에 합(合)하고 이상적(理想的) 생존작용(生存作用)을 행(行)하는 것이라 하여, 귀신(鬼神)의 이(理)를 실제(實際)의 정치면(政治面)에 응용(應用)하고 있으니, 귀신(鬼神)의 이(理)라 함은 신도(神道)․신화(神化)․신물(神物) 등(等)으로 정치(政治)를 행(行)하여, 민중(民衆)으로 하여금 마치 새가 공중(空中)을 비행(飛行)하고 짐승이 임중(林中)을 주약(走躍)하고 고기가 수중(水中)을 잠영(潛泳)하되 스스로 그 비행(飛行)․주약(走躍)․ 잠영(潛泳)하는 까닭을 알지 못함과 같이, 자연(自然)스러운 정치(政治)속에서 그 생존(生存)을 즐겨 하되, 그것이 누구의 덕택(德澤)인줄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신도(神道)라 함은 역(易)에 「聖人以神道 設敎而天下服矣 = 성인(聖人)이 신도(神道)로써 교(敎)를 설(設)하매 천하(天下)가 복(服)한다」【註十九】함과 같이, 이간정치(易簡政治)를 말함이오, 신화(神化)라 함은 역(易)에「神而化之 使民宜之 = 신(神)하고 화(化)하여 민(民)으로 하여금 의(宜)케 한다」【註二十】함과 같이, 사물(事物)이 궁(窮)에 이르는 때에 자연(自然)스럽게 변통(變通)하여, 백성(百姓)이 모두 스스로 그 소의(所宜)를 얻음을 말함이오, 신물(神物)이라 함은 역(易)에「是興神物 以前民用 = 이에 신물(神物)을 흥(興)하여 써 민용(民用)에 전(前)한다」【註二十一】함과 같이, 민중(民衆)이 기한(飢寒)한 후(後)에 비로소 경직(耕織)을 준비(準備)하는 것이 아니라, 장차(將且) 기한(飢寒)이 있을 것을 예료(豫料)하여 미리 그에 대비(對備)하고, 제방(堤防)이 터진 후(後)에 비로소 치수(治水)를 논의(論議)하는 것이 아니라, 터지지 아니 하도록 미리 수축(修築)하는것 등(等)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역(易)에 귀신(鬼神)의 이(理)를 천명(闡明)한 것은 다만 귀신(鬼神)을 말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오, 전(專)혀 그 이(理)를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에 응용(應用)하기 위(爲)함이다.
註一. 豐卦彖傳
註二. 乾卦文言
註三. 謙卦彖傳
註四. 論語 先進篇
註五. 繫辭上傳 第二章
註六. 繫辭上傳 第四章
註七. 徐花潭先生集 鬼神死生說篇
註八. 說卦傳 第六章
註九. 乾卦文言
註十. 繫辭上傳 第四章
註十一. 繫辭上傳 第十章
註十二. 繫辭上傳 第十一章
註十三. 同上
註十四. 繫辭下傳 第五章
註十五. 同上
註十六. 繫辭上傳 第十章
註十七. 繫辭上傳 第九章
註十八. 繫辭下傳 第十二章
註十九. 觀卦彖傳
註二十. 繫辭下傳 第二章
註二十一. 繫辭上傳 第十一章
【附錄 三】
역학(易學)으로 본 수(數)와 상(象)과의 관계(關係)
‣수(數)와 상(象)
사람의 지식(知識)에는 두 가지의 최대최고(最大最高)한 것이 있으니 그 하나는 공간적(空間的)으로 유심(幽深)한 사물(事物)을 통지(洞知)하는 것이오 또 하나는 시간적(時間的)으로 미래사(未來事)를 선견(先見)하는 것이다 역학(易學)은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을 완수(完遂)하기 위(爲)하여 이 두 가지 지식(知識)을 사람에게 가르치는 학문(學問)이니, 역(易)에 「夫易 聖人之所以極深而硏幾也 唯深也 故能通天下之志 唯幾也 故能成天下之務 = 그 역(易)은 성인(聖人)의 써 심(深)을 극(極)하고 기(幾)를 연(硏)하는 바이라, 이 심(深)한 고(故)로 능(能)히 천하(天下)의 지(志)를 통(通)하고, 이 기(幾)한 고(故)로 능(能)히 천하(天下)의 무(務)를 성(成)한다 」【註一】한바, 심(深)은 유심(幽深)함이오 기(幾)는 미래사(未來事)의 기미(機微)이라, 이는 유심(幽深)을 통지(洞知)하는 까닭에 천하(天下)의 의지(意志)를 통조(通照)하고, 기미(機微)를 선견(先見)하는 까닭에 천하(天下)의 업무(業務)를 성수(成遂)함을 말함이다. 그런데 만물(萬物)의 조직(組織)과 운행(運行)에는 반드시 수(數)와 상(象)이 있으니, 상(象)은 수(數)가 아니면 입(立)치 못하고, 수(數)는 상(象)이 아니면 나타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수(數)를 주체(主體)로하여 볼 때에는 수(數)는 체(體)가되고 상(象)은 용(用)이 되며, 상(象)을 주체(主體)로하여 볼 때에는 상(象)은 체(體)가되고 수(數)는 용(用)이 되어, 수(數)와 상(象)은 체용관계(體用關係)로써 일이이(一而二), 이이일(二而一)의 작용(作用)을 행(行)하는데, 역학(易學)이 유심(幽深)을 탐색(探索)하고 미래(未來)를 추지(推知)하는 방법(方法)은 주(主)로 수(數)와 상(象)의 이(理)를 응용(應用)하고 있으니, 역(易)에「知來者逆 是故易逆數也 = 내(來)를 지(知)하는 자(者)는 역(逆)하는지라 이런 고(故)로 역(易)은 역수(逆數)라」【註二】하고, 또 「極其數 遂定天下之象 = 그 수(數)를 극(極)하여 드디어 천하(天下)의 상(象)을 정(定)한다」【註三】함은, 이 뜻을 말함이오, 서화담(徐花潭)이 「理之錯綜處 在數上分曉 = 이(理)의 착종(錯綜)한 곳은 수(數)의 상(上)에서 분효(分曉)한다」【註四】함은, 수(數)로써 이(理)를 명효(明曉)함을 말함이니, 지금 자연과학(自然科學)이 수학(數學)과 물상(物象)으로써 자연계(自然界)의 사물(事物)을 천명(闡明)하는 것도 또한 이 이(理)에 의(依)한 것이다.
그러나 자연계(自然界)의 수(數)와 상(象)은 수학(數學)이나 물리학(物理學) 등(等)으로써 정확(正確)하게 표출(表出)할 수가 있으나, 복잡(複雜)하고 미묘(微妙)하고 기복곡절(起伏曲折)이 많은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 대(對)하여는, 수학(數學)이나 물리학(物理學)만으로서 공식(公式)을 만들기도 어렵고 이론(理論)을 전개(展開)하기도 어려운 것이니, 이는 사람에게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있는 까닭이다. 즉(卽) 인생사회(人生社會)에는 사람의 자유의지(自由意志)가 강력(强力)히 작용(作用)하고 있어 사물(事物)의 변화(變化)가 자연계(自然界)보다 격심(激甚)하고 또 전변번복(轉變飜覆)이 무상(無常)한 까닭에 금일(今日)의 공식(公式)이 반드시 명일(明日)의 공식(公式)으로 되는 것이 아니오, 이곳의 물리학적(物理學的) 계산(計算)이 반드시 저곳에도 적용(適用)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람은 자연물(自然物)의 일분자(一分子)이오 그 사람으로서 구성(構成)된 사회(社會)도 또한 자연물(自然物)의 일부(一部)이니 자연물(自然物)에 적용(適用)되는 수(數)와 상(象)이 인생사회(人生社會)에 적용(適用)되지 못할 이(理)가 없음으로 그를 척도양형(尺度量衡)하는 수(數)는 대체(大體)를 파악(把握)하는 개산(槪算)이 아니면 안되고, 그 상(象)은 전체(全體)를 통관(通觀)하는 개황(槪況)이 아니면 안된다. 지금에 흔히 쓰고 있는 사회통계(社會統計) 같은 것은 그 조사범위(調査範圍)나 조사사항(調査事項) 등(等)으로 볼 때에 그 대부분(大部分)은 결(決)코 정확(正確)한 것이 아니오 개산(槪算)과 개황(槪況)에 불과(不過)한 것이지만 이것으로써 사회상태(社會狀態)를 대강(大綱) 파악(把握)하고 통관(通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역학(易學)은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원리(生存原理)를 구명(究明)하는 학문(學問)이라, 공간적(空間的)으로는 개체(個體)를 아는 동시(同時)에 또한 통체(統體)를 알고, 분석(分析)을 아는 동시(同時)에 또한 종합(綜合)을 알며, 시간적(時間的)으로는 현실(現實)을 아는 동시(同時)에 또한 이상(理想)을 알고 금일(今日)을 아는 동시(同時)에 또한 미래(未來)를 아는 학문(學問)이므로, 역학(易學)이 쓰고 있는 수(數)와 상(象)은 범위(範圍)와 준사(準似), 즉(卽) 개산(槪算)과 개황(槪況)이다. 개산(槪算)과 개황(槪況)이 비록 정확(正確)치 못한 듯 하나, 변화무상(變化無常)한 사회사물(社會事物)에 있어서는, 수학적(數學的)공식(公式)이나 물리학적(物理學的)계산(計算)보다, 이 대체(大體)를 파악(把握)하고 전체(全體)를 통관(通觀)하는 개산(槪算)과 개황(槪況)이 도리어 정확(正確)한 것이다.
‣하도(河圖)와 낙서(洛書)
역(易)에 「河出圖 洛出書 聖人則之 = 하(河)에서 도(圖)가 나오고 낙(洛)에서 서(書)가 나오니 성인(聖人)이 칙(則)하다」【註五】함은, 성인(聖人)이 역학(易學)을 지을 때에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본받음을 말함이오, 또「天一地二天三地四天五地六天七地八天九地十 天數五 地數五 五位相得而各有合 天數二十有五 地數三十 凡天地之數五十有五 = 천(天)이 일(一)이오 지(地)가 이(二)이오 천(天)이 삼(三)이오 지(地)가 사(四)이오 천(天)이 오(五)이오 지(地)가 육(六)이오 천(天)이 칠(七)이오 지(地)가 팔(八)이오 천(天)이 구(九)이오 지(地)가 십(十)이니, 천수(天數)가 오(五)이오 지수(地數)가 오(五)이라, 오위(五位)가 상득(相得)하여 각각(各各) 합(合)함이 있으니, 천수(天數)가 이십오(二十五)이오 지수(地數)가 삼십(三十)이니 무릇 천지(天地)의 수(數)가 오십오(五十五)라」【註六】하여, 일(一)로부터 십(十)까지를 천지수(天地數)의 원수(原數)라 하고, 일삼오칠구(一三五七九)의 기수(奇數)를 천수(天數)라 하니 천수(天數)는 곧 양수(陽數)이오, 이사육팔십(二四六八十)의 우수(偶數)를 지수(地數)라 하니 지수(地數)는 곧 음수(陰數)이다. 하도(河圖)는 일(一)로부터 십(十)까지의 수(數)를 모두 쓰고, 낙서(洛書)는 일(一)로부터 구(九)까지의 수(數)만을 쓰는 것이니, 이가 역학(易學)의 수리(數理)의 근원(根源)이다.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이(理)를 수학(數學)으로써 보건대 수(數)의 원체(原體)는 십(十)을 일단계(一段階)로하여 십(十)․이십(二十)․삼십(三十) 등(等)으로 표시(表示)하고 있으나, 실제(實際)로 사용(使用)하는 수자(數字)는 일(一)로부터 구(九)까지만 있고, 십(十)은 다시 일(一)로써 표시(表示)하고 있으니, 일(一)로부터 십(十)까지는 수(數)의 체(體)이오, 일(一)로부터 구(九)까지는 수(數)의 용(用)이다, 그러므로 하도(河圖)는 수(數)의 체(體)가되어 음수(陰數)와 양수(陽數)가 모두 교합(交合)하는 조직체(組織體)를 상(象)함이오, 낙서(洛書)는 수(數)의 용(用)이되어 양(陽)이 발동(發動)하는 운행력(運行力)을 상(象)함이다. 이 이(理)를 사물(事物)에 의(擬)하건대 태양(太陽)의 광선(光線)에는 칠색(七色)이 있으나 적외선(赤外線)과 자외선(紫外線)을 합(合)하면 모두 구선(九線)이되니, 태양(太陽)의 구선(九線)은 양(陽)이 발동(發動)하는 낙서(洛書)의 수(數)와 같은 것이오, 태양(太陽)의 광선(光線)은 구선(九線)이 있으나 지상(地上)의 만물(萬物)에 비치는 광선(光線)은 구선(九線)의 외(外)에 월(月)을 통(通)하여 구선(九線)을 통일(統一) 반영(反映)하는 제십선(第十線)이 있어 합(合)하여 십선(十線)이 되니 일월(日月)의 십선(十線)은 음양(陰陽)이 교합(交合)하는 하도(河圖)의 수(數)와 같은 것이다. 인체(人體)로써 보면 양성(陽性)은 이목구비(耳目口鼻)의 칠규(七竅)와 전후(前後) 양음(陽陰)의 이규(二竅)를 합(合)하여 구규(九竅)가 있으니, 이는 낙서(洛書)의 상(象)이오, 음성(陰性)은 구규(九竅)의 외(外)에 음양(陰陽)의 교합작용(交合作用)을 행(行)하는 제십규(第十竅)가 있으니, 이는 하도(河圖)의 상(象)이다. 월(月)은 광선(光線)의 제십선(第十線)이 되어 지상(地上)의 조석풍우(潮汐風雨)에 대(對)한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있는데, 사람의 음성(陰性)이 또한 월(月)의 행도(行度)를 따라서 제십규(第十竅)로써 월경작용(月經作用)을 행(行)하고 있으며, 십수(十數)는 일(一)로부터 구(九)까지를 통일(統一)한 수(數)임과 같이, 월광선(月光線)은 태양(太陽)의 구선(九線)을 통일(統一)하여 반영(反映)하는 것이오, 사람의 제십(第十)도 다른 구규(九竅)와 같은 일편(一偏)의 역(役)을 행(行)하는 것이 아니라, 실(實)로 구규(九竅)를 통일(統一)한 완전인간(完全人間)을 생산(生産)하는 임무(任務)를 다하고 있으며, 사람의 임신(姙娠)은 대체(大體)로 음력(陰曆)으로 십개월(十個月)을 요(要)하니 이는 하도(河圖)의 십수(十數)이오, 모복중(母腹中)에서 구차(九次)의 일월합삭(日月合朔)을 지나서 출생(出生)하니 이는 낙서(洛書)의 구수(九數)이다. 하도(河圖)는 체수(體數)이오 낙서(洛書)는 용수(用數)이라, 태아(胎兒)는 십개월(十個月)로써 체(體)를 삼아 태중(胎中)에서 양육(養育)되고, 일월(日月)의 구합삭(九合朔)으로써 용(用)을 삼아 외부(外部)에 출분(出奮)하는 것이니, 이가 음력(陰曆)이 태모(胎母)의 월수계산상(月數計算上), 극(極)히 중요(重要)한 소이(所以)이다.
‣구륙(九六)과 칠팔(七八)
역학(易學)에는 사물(事物)의 유행(流行)․변화(變化)를 상(象)할때에 양(陽)에는 구수(九數)를 쓰고 음(陰)에는 육수(六數)를 쓰고 있으니, 역(易)에 효(爻)라함은 변동(變動)하는 뜻을 취(取)한 것인데 양효(陽爻)를 구(九)라하고 음효(陰爻)를 육(六)이라 함은 이 까닭이다. 원수중(原數中)의 일삼오칠구(一三五七九)는 양수(陽數)인데, 양(陽)은 발현작용(發顯作用)을 행(行)하고 발현작용(發顯作用)은 진행(進行)하는 선단(先端)에 그 주요(主要)한 작용(作用)이 있으므로,, 양수(陽數)의 최선단(最先端)인 구수(九數)를 쓰고, 이사육팔십(二四六八十)은 음수(陰數)인데, 음(陰)은 보흡작용(保翕作用)을 행(行)하고 보흡작용(保翕作用)은 중앙부(中央部)에 그 주요(主要)한 작용(作用)이 있으므로 음수(陰數)의 최중앙(最中央)인 육수(六數)를 쓰는 것이다. 생물(生物)의 예(例)로써 보건대 식물(植物)의 발서작용(發舒作用)을 행(行)하는 성장점(成長點)은 지엽(枝葉)․표피(表皮) 등(等) 선단(先端)에 있고, 보흡작용(保翕作用)을 행(行)하는 수렴처(收斂處)는 간(幹) 경(莖) 등(等)의 심부(心部)에 있는 것이다.
구륙(九六)의 수(數)는 또 생성수(生成數)로써 설명(說明)되고 있으니, 역리(易理)에 일이삼사오(一二三四五)까지를 생수(生數)라하고, 육칠팔구십(六七八九十)을 성수(成數)라하니, 예(例)컨대 생수(生數)라함은 초목(草木)의 종자(種子)가 발아(發芽)하기까지와 태아(胎兒)가 출산(出産)하기까지의 단계(段階)를 말함이오, 이 단계(段階)는 발육(發育)만 있고 수장로사(收藏老死) 등(等) 변화(變化)가 없음으로 생수(生數)에는 변화(變化)가 없고, 성수(成數)는 초목(草木)의 간경지엽(幹莖枝葉) 등(等)이 발현(發顯)한 후(後)나, 사람이 출생(出生)한 후(後)와 같으므로, 거기에는 영고장로(榮枯壯老) 등(等)의 변화(變化)가 있는 것이다. 양(陽)은 생장(生長)․성대(盛大) 등(等) 작용(作用)이 있고, 음(陰)은 수렴(收斂)․축소(縮少) 등(等) 작용(作用)이 있는지라, 성수(成數) 육칠팔구십(六七八九十)의 중(中)에서 칠구(七九)는 기(奇)하여 양(陽)에 속(屬)함으로 생장작용(生長作用)이 있고 육팔십(六八十)은 우(偶)하여 음(陰)에 속(屬)함으로 수축작용(收縮作用)이 있는 것이다. 칠(七)은 양(陽)의 생장(生長)하는 시초(始初)이므로 소양(少陽)이되고, 구(九)는 양(陽)의 생장(生長)의 종결(終結)이므로 노양(老陽)이되니, 노양(老陽)은 그 생장(生長)이 궁(窮)하고 물(物)이 궁(窮)하면 변(變)하는지라, 양(陽)이 구(九)에 이르면 노(老)하여 반드시 수축작용(收縮作用)으로 전화(轉化)하고, 구(九)가 수축(收縮)하면 십(十)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강(下降)하여 팔(八)이 된다. 그러므로 팔(八)은 음(陰)의 수렴작용(收斂作用)의 시초(始初)로서 소음(少陰)이 되고 소음(少陰)이 더욱 수축(收縮)하면 육(六)이 됨으로 육(六)을 노음(老陰)이라 한다. 음(陰)이 육(六)에 이르러 노(老)하면 반드시 변(變)하는데, 음(陰)이 변(變)하는 때는 그 내부(內部)에 양(陽)을 태생(胎生)하나니, 그러므로 노음(老陰)이 생산(生産)한 태아(胎兒)는 소양(少陽)인 칠(七)이된다.
노소음양(老少陰陽)의 수(數)를 수학(數學)으로 써 보건대, 양(陽)은 원(圓)하고 음(陰)은 방(方)한지라, 원수중(原數中)에서 원(圓)을 이루는 자(者)는 오직 육(六)으로써 일(一)을 포(包)하는 것이 있으니, 그 중(中)을 허(虛)하게하면 육(六)이되고 그 중(中)을 실(實)하게하면 칠(七)이되며, 방(方)을 이루는 자(者)는 오직 팔(八)로써 일(一)을 포(包)하는 것이 있으니 그 중(中)을 실(實)하게하면 구(九)가되고 그 중(中)을 허(虛)하게하면 팔(八)이된다. 양(陽)의 성(性)은 중실(中實)하고 음(陰)의 성(性)은 중허(中虛)함으로, 양(陽)은 오직 칠(七)이 원(圓)하고 실(實)하여 성양(盛陽)이되니 이가 곧 소양(少陽)이오, 음(陰)은 오직 팔(八)이 방(方)하고 허(虛)하여 장음(壯陰)이되니 이가 곧 소음(少陰)이다. 구(九)가 비록 실(實)하나 그 적(積)이 방(方)함으로 음(陰)으로 변(變)할 기(機)를 가지고 있으니, 이 까닭에 구(九)는 노양(老陽)이되는 것이오, 육(六)이 비록 허(虛)하나 그적(積)이 원(圓)함으로 양(陽)으로 변(變)할 기(機)를 가지고 있으니, 이 까닭에 육(六)은 노음(老陰)이 되는 것이다.
구육칠팔(九六七八)의 수(數)와 노소음양(老少陰陽)의 이(理)가 사물(事物)에 나타나는 몇 가지 예(例)를 보면, 양수(陽數)는 구(九)에 극(極)하고 음수(陰數)는 육(六)에 극(極)하는지라, 천지간(天地間)의 일월수화(日月水火)는 음양(陰陽)의 원체(原體)인데, 화(火)의 양(陽)이 극(極)한 것은 태양(太陽)이오 수(水)의 음(陰)이 극(極)한 것은 설화(雪花)이니, 그러므로 태양(太陽)의 광선(光線)이 발현(發顯)을 극(極)한 것은 구선(九線)이되고, 설화(雪花)가 응결(凝結)을 극(極)한 것은 육화(六花)가 되는 것이다. 또 남녀(男女)의 생장기(生長期)로써 보면 여자(女子)는 소음(少陰)의 기(氣)를 상(象)함으로 소양수(少陽數)인 칠(七)을 만나는 때에 음양(陰陽)이 교합(交合)하고, 남자(男子)는 소양(少陽)의 기(氣)를 상(象)함으로 소음수(少陰數)인 팔(八)을 만나는 때에 음양(陰陽)이 교합(交合)한다. 그러므로 대체(大體)로 여자(女子)는 초칠세(初七歲)에 신기(腎氣)가 성(盛)하고 이칠(二七)의 십사세(十四歲)에 월경(月經)이 통(通)하고 칠칠(七七)의 사십구세(四十九歲)에 생식작용(生殖作用)이 그치며 남자(男子)는 초팔세(初八歲)에 신기(腎氣)가 실(實)하고 이팔(二八)의 십육세(十六歲)에 정기(精氣)가 일(溢)하고 팔팔(八八)의 육십사세(六十四歲)에 치발(齒髮)이 쇠모(衰耗)하는 것이다. 또 노양(老陽)이 전화(轉化)하여 소음(少陰)을 생(生)하니 이는 음(陰)이 양(陽)에서 생(生)함이오, 노음(老陰)이 포태(胞胎)하여 소양(少陽)을 생(生)하니 이는 양(陽)이 음(陰)에서 생(生)함이라, 그러므로 사람의 유전(遺傳)도 대체(大體)로 남자(男子)는 모(母)를 유전(遺傳)하고 여자(女子)는 부(父)를 유전(遺傳)하는 경향(傾向)이 많다고 한다, 또 생수(生數) 일이삼사오(一二三四五)는 복중(腹中)에 있는 태아(胎兒)를 상(象)한 것이라 생수(生數)의 총수(總數)는 합(合)하여 십오(十五)이오 하도(河圖)의 중앙궁(中央宮)이 또한 십오(十五)이니, 이 중앙궁(中央宮)을 사람의 일생(一生)으로써 보면 태아시대(胎兒時代)와 같고, 태아자체(胎兒自體)로써 보면 제부(臍部)와 같다. 그러므로 태아(胎兒)는 오직 제부(臍部)로써 호흡(呼吸)․섭양(攝養)의 작용(作用)을 행(行)하며, 태아(胎兒)가 출산(出産)하는 때는, 생수(生數) 십오(十五)가 외부(外部)에 발현(發顯)하는 것이므로 발현(發顯)하는 생수(生數)가 곧 변화(變化)하는 성수(成數)로 되나니, 소위(所謂) 노양노음(老陽老陰)의 구륙(九六)도 합(合)하면 십오(十五)가 되고 소양소음(少陽少陰)의 칠팔(七八)도 합(合)하면 십오(十五)가 되는 것은 태아(胎兒)와 출산아(出産兒)가 동일(同一)한 체(體)이므로 태아(胎兒)의 수(數)와 출산아(出産兒)의 수(數)는 또한 그 본수(本數)가 동일(同一)한 까닭이다. 또 소양(少陽)은 물(物)의 장성기(長盛期)이니 하(下)로부터 상승(上升)하여 생장(生長)하는 상(象)이오, 소음(少陰)은 물(物)의 성숙기(成熟期)이니 상(上)으로부터 하강(下降)하여 퇴폐(頹廢)하는 상(象)이라, 그러므로 사회(社會)의 발전(發展)같은 것도 그의 흥왕(興旺)은 하부(下部)로부터 진출(進出)하는 신생세력(新生勢力)의 창조작용(創造作用)에 의(依)하여 이루어지고 그의 쇠약(衰弱)은 상층(上層)에 반거(盤據)한 기성세력(旣成勢力)의 부패작용(腐敗作用)으로부터 시작(始作)하는 것이다.
역학(易學)의 사상책수(四象策數)에 노양(老陽)은 삼십육(三十六)이오 노음(老陰)은 이십사(二十四)이오 소양(少陽)은 이십팔(二十八)이오 소음(少陰)은 삼십이(三十二)이니, 이가 또한 구륙칠팔(九六七八)의 발전(發展)한 것인데, 노양(老陽)과 노음(老陰)을 합(合)하면 육십(六十)이되고 소양(少陽)과 소음(少陰)을 합(合)하면 또한 육십(六十)이 된다. 그러므로 천지(天地)의 수(數)에 음양(陰陽)의 배합(配合)에는 육십(六十)의 수(數)가 있는 것이다. 이 육십(六十)은 원수(原數)의 중수(中數)로서도 설명(說明)되나니, 천수(天數) 일삼오칠구(一三五七九)에 오(五)가 중수(中數)이오 지수(地數) 이사육팔십(二四六八十)에 육(六)이 중수(中數)이라, 오륙(五六)의 수(數)는 인체(人體)의 오장(五臟)과 육부(六腑)가 그 일례(一例)이다. 장부(臟腑)에는 음양(陰陽)의 양면(兩面)이 있으니, 오장(五臟)은 체(體)는 음(陰)이오 용(用)은 양(陽)이므로 그 수(數)가 오(五)가되고, 육부(六腑)는 체(體)는 양(陽)이오 용(用)은 음(陰)이므로 그 수(數)가 육(六)이 된 것이다. 장부(臟腑)에 모두 음양량면(陰陽兩面)이 있음과 같이, 천수(天數) 오(五)에도 음양(陰陽)이 있으므로 그 수(數)는 십(十)이되고, 지수(地數) 육(六)에도 음양(陰陽)이 있으므로 그 수(數)는 십이(十二)가되니 육갑설(六甲說)의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는 이에 근원(根源)하며,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가 주회(湊會)하여 육십갑자(六十甲子)가되어, 지금의 술수학(術數學)에 널리 응용(應用)되고 있으며, 역학(易學)에는 육십(六十)으로써 물(物)의 발전과정(發展過程)의 일절(一節)을 이룬다 하여, 역(易)의 서괘(序卦)에는 제육십괘(第六十卦)에 절괘(節卦)를 배(配)한 것이다.
역(易)에는 또 대연수(大衍數) 오십(五十)과 시수(蓍數) 사십구(四十九)와 괘수(卦數) 육십사(六十四)가 있는데 이는 소양칠(少陽七) 소음팔(少陰八)과 관련(關聯)되고 있으니, 역(易)에 「大衍之數五十 其用四十有九 = 대연(大衍)의 수(數)가 오십(五十)이오 그 용(用)은 사십구(四十九)라」【註七】한바 오십(五十)과 사십구(四十九)는 칠수(七數)와 관련(關聯)하고 있다. 지금의 수학(數學)에 방원(方圓)을 비례(比例)할때에 오직 직경(直徑)이 칠(七)인 자(者)가 방주(方周)가 이십팔(二十八)이오 원주(圓周)가 이십이(二十二)이니, 이것이 양적(兩積)이 서로 비례(比例)하는 율(率)이 되는데, 이십팔(二十八)과 이십이(二十二)를 합(合)한 것이 곧 오십(五十)이다. 원(圓)은 양(陽)이오 방(方)은 음(陰)이라, 이 오십(五十)은 음양(陰陽)이 동일(同一)한 직경(直徑)으로된 양주(兩周)의 교합(交合)한 것으로서, 대연(大衍)의 수(數)가 되는 것이다. 또 구고법(句股法)(피다고라스 原理) 은 구(句)가 삼(三)이오 고(股)가 사(四)이오 현(弦)이 오(五)이니 구삼고사(句三股四)는 또한 칠(七)에서 생(生)한 것이며, 구(句)의 자승(自乘)한 적(積)이 구(九)이오, 고(股)의 자승(自乘)한 적(積)이 십육(十六)이오 현(弦)의 자승(自乘)한 적(積)이 이십오(二十五)로서 또한 합(合)하여 오십(五十)이라는 대연수(大衍數)가 되는 것이다. 오십(五十)은 대연수(大衍數)의 체(體)인데 이것을 개방(開方)하면 칠(七)이되어 일수(一數)가 부진(不盡)하고 사십구(四十九)에 그치니 부진(不盡)하는 일수(一數)는 대연체(大衍體)의 중심(中心)이 되어 변동(變動)치 아니하고, 사십구(四十九)는 대연(大衍)의 용(用)이되는 것이다. 역(易)에 「蓍之德圓以神 卦之德方以知 = 시(蓍)의 덕(德)은 원(圓)하여 써 신(神)하고, 괘(卦)의 덕(德)은 방(方)하여 써 지(知)하다」【註八】한바, 시수(蓍數)는 사십구(四十九)를 쓰니 사십구(四十九)는 칠칠(七七)이오 칠(七)은 소양(少陽)의 수(數)로서 원(圓)을 이루고 있으며, 괘수(卦數)는 육십사(六十四)를 쓰니 육십사(六十四)는 팔팔(八八)이오 팔(八)은 소음(少陰)의 수(數)로서 방(方)을 이루고 있음을 말함이다. 대연수(大衍數) 오십(五十)이라는 수(數)는 음성(陰性)의 생식작용(生殖作用)이 그치는 사십구세(四十九歲)의 다음해이라, 인생(人生)의 쇠로(衰老)는 실(實)로 이때로부터 시작(始作)하여 일생중(一生中)의 일대전환기(一大轉換期)를 짓고 있으니, 고어(古語)에 「사람이 오십(五十)에 시쇠(始衰)한다」하고, 또 「오십(五十)인 자(者)가 백(帛)이 아니면 덥지 아니하다」한 것 등(等)은 대연수(大衍數) 오십(五十)이 인생생활(人生生活)에 큰 관련(關聯)을 가지고 있음을 말함이다.
이와 같이 구륙칠팔(九六七八)의 수(數)는 만물(萬物)이나 인생(人生)의 생존(生存)에 관련(關聯)되고 있으므로 천지(天地)의 시운(時運)과 인생사회(人生社會)의 발전(發展)에도 그 근저(根柢)에는 이 수(數)가 유행(流行)하고 있는 것이다.
‣구륙칠팔(九六七八)은 생명(生命)의 호흡(呼吸)
이상(以上)에 말한 바의 구륙칠팔(九六七八)의 수(數)는 만상(萬象)의 체(體)가되는 동시(同時)에 또한 용(用)이된다. 그런데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는 모두 사시(四時)의 상(象)이 있으니,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일년(一年)의 사시(四時)임과 같이 주야조석(晝夜朝夕)은 일일(一日)의 사시(四時)이오, 생장수장(生長收藏)은 생물일생(生物一生)의 사시(四時)이오, 구륙칠팔(九六七八)은 수(數)의 사시(四時)이니, 노양구(老陽九)는 하(夏)이오 노음육(老陰六)은 동(冬)이오 소양칠(少陽七)은 춘(春)이오 소음팔(少陰八)은 추(秋)이다. 그리하여 동하(冬夏)의 한서(寒暑)가 기후(氣候)의 양극(兩極)이되고 온량(溫凉)이 그 중간(中間)에 행(行)함과 같이 천지(天地)가 위(位)를 설(設)하매 일월(日月)이 기중(其中)에 행(行)하고, 건곤(乾坤)이 열(列)을 성(成)하매 역(易)이 기중(其中)에 입(立)하고, 구륙(九六)이 음양(陰陽)의 양극(兩極)에 입(立)하매 칠팔(七八)이 그 중간(中間)에 행(行)하는 것이다. 구(九)는 건(乾)의 수(數)이오 육(六)은 곤(坤)의 수(數)이라 건(乾)의 덕행(德行)은 평이(平易)하고 곤(坤)의 덕행(德行)은 간약(簡約)함으로, 구륙(九六)은 또한 천지(天地)의 이간작용(易簡作用)이되며, 칠팔(七八)은 고동(鼓動)․시행(施行)하는 수(數)로서 산택(山澤)․뇌풍(雷風)․수화(水火)가 되나니, 그러므로 사회(社會)에 있어서는 이간정치(易簡政治)가 그 위(位)를 정(定)하고 예악(禮樂)이 그 중(中)에 유행(流行)하는 것이다.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모두 생명(生命)을 가지고 있고, 생명(生命)을 가지고 있는 자(者)는 반드시 호흡운동(呼吸運動)을 행(行)하는지라. 소강절(邵康節)은 말하되「冬至之後爲呼 夏至之後爲吸 此天地一歲之呼吸也 = 동지(冬至)의 후(後)는 호(呼)가되고 하지(夏至)의 후(後)는 흡(吸)이되니 이는 천지(天地)의 일세(一歲)의 호흡(呼吸)이라」【註九】한바, 호(呼)는 만물(萬物)을 발서(發舒)하여 써 출현(出顯)함이오 흡(吸)은 만물(萬物)을 수렴(收斂)하여 써 입장(入藏)함이라, 그러므로 현장(顯藏)은 일세(一歲)의 호흡(呼吸)이오 유명(幽明)은 일일(一日)의 호흡(呼吸)이오 생물(生物)의 생성(生成)은 일생(一生)의 호흡(呼吸)이오 구륙(九六)은 수(數)의 호흡(呼吸)이오 이간정치(易簡政治)는 민중(民衆)의 호흡(呼吸)이다. 생물체(生物體)의 기맥순환(氣脉循環)이 순조(順調)롭지 못한 때에 호흡운동(呼吸運動)이 건체(蹇滯)하여 천촉(喘促)․질식(窒息) 등(等) 현상(現象)이 생(生)함과 같이, 정치(政治)가 이간(易簡)치 못하면 민중(民衆)의 생활(生活)이 험조(險阻)하여 건전(健全)한 호흡작용(呼吸作用)을 행(行)치 못한다.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구륙수(九六數)의 자연(自然)스러운 운행(運行)에 의(依)하여 자연(自然)스러운 호흡(呼吸)으로써 그 생명(生命)을 호전(護全)하고 있으되, 오직 우리 인생(人生)은 소위(所謂) 자유의지(自由意志)를 가지고 있는 까닭에, 그 정치(政治)가 이간(易簡)할 수도 있고 또 험조(險阻)할수도 있으니, 이 자유의지(自由意志)에 의(依)한 자유행위(自由行爲)는 결(決)코 진선진미(盡善盡美)한 것이 아니오, 거기에는 반드시 대대양면(對待兩面)이 있어 선악(善惡)이 상수(相隨)하고 미추(美醜)가 병행(並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유의지(自由意志)로써 사회(社會)의 생존사업(生存事業)을 행(行)함에는 시운(時運)의 추이(推移)와 세태(世態)의 변천(變遷)에 대(對)하여 총명예지(聰明叡知)로써 항상(恒常) 수(數)를 구극(究極)하고 상(象)을 관찰(觀察)하여 써 유심(幽深)을 탐색(探索)하고, 미래(未來)를 선견(先見)하여, 국가(國家)와 민중(民衆)으로 하여금 건전(健全)한 호흡운동(呼吸運動)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안되나니, 건전(健全)한 호흡(呼吸)이 곧 생명(生命)이오, 또한 생생불궁(生生不窮)하는 생존작용(生存作用)이다.
註一. 繫辭上傳 第十章
註二. 說卦傳 第三章
註三. 繫辭上傳 第十章
註四. 徐花潭先生集
註五. 繫辭上傳 第十一章
別表에 河圖洛書의 圖面을 揷入함
註六. 繫辭上傳 第九章
註七. 同上
註八. 繫辭上傳 第十一章
註九. 皇極經世觀物外篇
【附錄 四】
역학(易學)으로 본 시운(時運)의 변천(變遷)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는 시운(時運)의 상징(象徵)
하도(河圖)는 북(北)의 일육(一六)은 수(水)이니 동(冬)의 상(象)이오, 동(東)의 삼팔(三八)은 목(木)이니 춘(春)의 상(象)이오, 남(南)의 이칠(二七)은 화(火)이니 하(夏)의 상(象)이오, 서(西)의 사구(四九)는 금(金)이니 추(秋)의 상(象)이오, 중앙(中央)의 오십(五十)은 토(土)이니 일세(一歲)의 상(象)이니, 사시(四時)의 수(數)가 모두 본위(本位)에 안정(安定)하고, 중앙(中央)의 오(五)와 십(十)을 중심(中心)으로하여 사시(四時)의 기(氣)가 융화(融化)하여 통일체(統一體)를 이루고, 또 그 수(數)가 일(一)로부터 십(十)까지가 구전(具全)하여 수(數)의 체(體)가되어 음양(陰陽)이 조화(調和)하는 상(象)이며, 낙서(洛書)는 일(一)로부터 구(九)까지만 있으므로 수(數)의 용(用)이되어 양기(陽氣)가 발현(發顯)하는 상(象)이니, 이 까닭에 하도(河圖)의 중앙(中央)에 있는 오(五)와 십(十)이 낙서(洛書)에는 팔방(八方)에 산포(散布)하여 종(縱)으로나 횡(橫)으로나 또는 사대방(斜對方)으로나 모두 십오(十五)를 이루고 있으며, 또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는 사구(四九)와 이칠(二七)의 위(位)가 상역(相易)하니, 이는 금(金)과 화(火), 하(夏)와 추(秋)의 기(氣)가 상전(相轉)하여 상극작용(相克作用)을 행(行)함이라, 무릇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생(生)의 속에 극(克)이 있고 극(克)의 속에 생(生)이 있어 생생극극(生生克克)으로 써 생생불궁(生生不窮)하나니, 낙서(洛書)는 양기(陽氣)가 발현(發顯)하여 상생상극(相生相克)의 작용(作用)을 행(行)하고 있음을 상(象)한 것이다.
하도(河圖)는 복희도(伏羲圖)의 준칙(準則)이되고, 낙서(洛書)는 문왕도(文王圖)의 준칙(準則)이되니 【註一】복희도(伏羲圖)는 하도(河圖)의 음양(陰陽)이 조화(調和)함을 상(象)하고 문왕도(文王圖)는 낙서(洛書)의 양기(陽氣)가 발현(發顯)함을 상(象)한 것이다. 이를 식물(植物)의 생리(生理)에 의(依)하건대 하도(河圖)는 음양(陰陽)을 보합(保合)하고 있는 과실(果實)의 상(象)이오, 낙서(洛書)는 간경지엽(幹莖枝葉) 등(等)이 발서(發舒)하는 상(象)이다. 그러나 과실(果實)에도 장차(將且) 발아(發芽)하려하는 춘(春)의 과실(果實)과 장차(將且) 성숙(成熟)하려하는 추(秋)의 과실(果實)이 있는지라, 복희도(伏羲圖)는 괘획(卦劃)이 모두 내부(內部)로부터 외부(外部)를 향(向)하여 발현(發顯)하는 상(象)을 표시(表示)하고, 또 그 수(數)가 일(一)과 팔(八)이 상대(相對)하여 구(九)가되고, 이(二)와칠(七), 삼(三)과 육(六), 사(四)와 오(五)가 모두 상대(相對)하여 구(九)가되어, 음양보합(陰陽保合)의 속에 양기발동(陽氣發動)의 기(機)를 포함(包含)하고 있으므로, 복희도(伏羲圖)는 신아(新芽)가 장차(將且) 발동(發動)하려하는 춘(春)의 과실(果實)의 상(象)이다. 문왕도(文王圖)는 그 괘획(卦劃)이 또한 내부(內部)로부터 외부(外部)를 향(向)하여 장성(長成)하는 상(象)을 표시(表示)하고 있으나, 낙서(洛書)의 상대방(相對方)에 일(一)과 구(九)가 십(十)이되고 이(二)와팔(八), 삼(三)과칠(七), 사(四)와육(六)이, 모두 십(十)이되어, 용(用)의 속에 체(體)를 함유(含有)하여 장차(將且) 과실(果實)을 결성(結成)하려하는 기(機)를 포장(包藏)하고 있는 것이다.
복희도(伏羲圖)는 주야(晝夜)와 사시(四時)의 조직(組織)을 상(象)한 것인데, 이 원리(原理)를 주야(晝夜)의 상(象)으로써 표시(表示)하면 상오(上午) 일시반(一時半)부터 사시반(四時半)까지를 신(晨)이라하고, 사시반(四時半)부터 칠시반(七時半)까지를 조(朝)라하고, 칠시반(七時半)부터 십시반(十時半)까지를 조양(朝陽)이라하고, 십시반(十時半)부터 하오(下午) 일시반(一時半)까지를 오(午)라하고, 하오(下午) 일시반(一時半)부터 사시반(四時半)까지를, 석양(夕陽)이라하고, 사시반(四時半)부터 칠시반(七時半)까지를 석(夕)이라하고, 칠시반(七時半)부터 십시반(十時半)까지를 혼(昏)이라하고, 십시반(十時半)부터 익일(翌日) 상오(上午) 일시반(一時半)까지를 야반(夜半)이라 하는바, 이를 음양(陰陽)으로 나누면 상오(上午)는 양(陽)이오 하오(下午)는 음(陰)이며, 다시 상오중(上午中)에 신(晨)과 조(朝)는 음(陰)이오, 조양(朝陽)과 오(午)는 양(陽)이며, 하오중(下午中)에 석양(夕陽)과 석(夕)은 양(陽)이오, 혼(昏)과 야반(夜半)은 음(陰)이며 다시 이것을 음양(陰陽)으로 나누면 신(晨)은 음(陰)이오 조(朝)는 양(陽)이며, 조양(朝陽)은 음(陰)이오 오(午)는 양(陽)이며, 석양(夕陽)은 양(陽)이오 석(夕)은 음(陰)이며, 혼(昏)은 양(陽)이오 야반(夜半)은 음(陰)이다. 이를 도(圖)로써 표시(表示)하면 다음의 페이지와 같다. (陽은 • 陰은••)
이리하여 천지(天地)․수화(水火)․뇌풍(雷風)․산택(山澤)이 각기(各其) 상대(相對)하여 대대작용(對待作用)을 행(行)하면서 통일체내(統一體內)에 보합(保合)되어 있는 것이다.
   
문왕도(文王圖)의 순서(順序)는 설괘전(說卦傳)에 말한바와 같고, 거기에는 천지(天地)․수화(水火)․뇌풍(雷風)․산택(山澤)과 같은 대대(對待)는 없으나,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대대(對待)가 없으면 운동(運動)이 지식(止息)되는 것이므로, 문왕도(文王圖)에도 또한 음양소장(陰陽消長)의 형태(形態)를 가진 대대(對待)가 매매(每每) 상대(相對)하고 있다. 건진감간(乾震坎艮)은 양괘(陽卦)이오, 곤손이태(坤巽離兌)는 음괘(陰卦)이라, 역리(易理)에 양괘(陽卦)의 성(性)은 상승(上升)함으로 그 발현(發顯)하는 작용(作用)이 상(上)에 있으니, 그 상(上)의 일효(一爻)를 떼어내어 발현(發顯)함을 억제(抑制)하고, 그 반대(反對)되는 일효(一爻)를 하(下)에 가(加)하여 하강(下降)을 조장(助長)하면 음성(陰性)으로 전화(轉化)하며, 음괘(陰卦)의 성(性)은 하강(下降)함으로 그 응수(凝收)하는 작용(作用)이 하(下)에 있으니, 그 하(下)의 일효(一爻)를 떼어내어 응수(凝收)함을 억제(抑制)하고, 그 반대(反對)되는 일효(一爻)를 상(上)에 가(加)하여 상승(上升)을 조장(助長)하면 양성(陽性)으로 전화(轉化)하는 것이다. 이 이(理)에 依하여
건괘(乾卦)에 상(上)의 양효(陽爻)를 떼어내고 그 반대(反對)되는 음효(陰爻)를 하(下)에 가(加)하면 음괘(陰卦) 손(巽)이되고, 손괘(巽卦)에 하(下)의 음효(陰爻)를 떼어내고 그 반대(反對)되는 양효(陽爻)를 상(上)에 가(加)하면 양괘(陽卦) 건(乾)이되니, 이 건손(乾巽)의 상대(相對)는 곧 음양소장(陰陽消長)의 대대(對待)이다.
진괘(震卦)에 상(上)의 음효(陰爻)를 떼어내고 그 반대(反對)되는 양효(陽爻)를 하(下)에 가(加)하면 음괘(陰卦) 태(兌)가되고, 태괘(兌卦)에 하(下)의 양효(陽爻)를 떼어내고 그 반대(反對)되는 음효(陰爻)를 상(上)에 가(加)하면 양괘(陽卦) 진(震)이되니, 이 진태(震兌)의 상대(相對)는 곧 음양소장(陰陽消長)의 대대(對待)이다.
감괘(坎卦)에 상(上)의 음효(陰爻)를 떼어내고 그 반대(反對)되는 양효(陽爻)를 하(下)에 가(加)하면 음괘(陰卦) 이(離)가되고, 이괘(離卦)에 하(下)의 양효(陽爻)를 떼어내고 그 반대(反對)되는 음효(陰爻)를 상(上)에 가(加)하면 양괘(陽卦) 감(坎)이 되니, 이 감리(坎離)의 상대(相對)는 곧 음양소장(陰陽消長)의 대대(對待)이다.
간괘(艮卦)에 상(上)의 양효(陽爻)를 떼어내고 그 반대(反對)되는 음효(陰爻)를 하(下)에 가(加)하면 음괘(陰卦) 곤(坤)이되고, 곤괘(坤卦)에 하(下)의 음효(陰爻)를 떼어내고 그 반대(反對)되는 양효(陽爻)를 상(上)에 가(加)하면 양괘(陽卦) 간(艮)이되니, 이 간곤(艮坤)의 상대(相對)는 곧 음양소장(陰陽消長)의 대대(對待)이다.
 
생존작용(生存作用)의 생(生)․ 장(長)․ 성(成)

만물(萬物)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동(冬)의 대화단계(大和段階)는 물(物)의 귀장기(歸藏期)이므로 운동(運動)하는 작용(作用)이 거의 없으나, 춘(春)의 대시(大始) 하(夏)의 유형(流形) 추(秋)의 변화(變化)는 운동(運動)이 가장 왕성(旺盛)하여, 이 삼시기(三時期)에 거의 자체(自體)를 완성(完成)함으로 이를 또한 생(生)․장(長)․성(成)이라 하나니, 과실(果實)의 예(例)로써 보건대 신아(新芽)가 발생(發生)하려하는 대시단계(大始段階)는 「생(生)」이 되니, 복희도(伏羲圖)는 이를 상(象)한 것이오, 간경지엽(幹莖枝葉)이 서장(舒長)하는 유형단계(流形段階)는 「장(長)」이 되니, 문왕도(文王圖)는 이를 상(象)한 것이다. 그런데 과실(果實)의 생존작용(生存作用)은 간경지엽(幹莖枝葉)이 서장(舒長)한 후(後)에 반드시 다시 과실(果實)을 결성(結成)하는 변화단계(變化段階)가 있는 것이오 이 변화단계(變化段階)가 곧 「성(成)」이 되는 것이며, 더욱이 문왕도(文王圖)에는 장차(將且) 과실(果實)을 결성(結成)하려하는 기(機)를 포장(包藏)하고 있으므로, 문왕도(文王圖)의 다음에는 변화단계(變化段階)의 「성(成)」을 상(象)한 팔괘도(八卦圖)가 출생(出生)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역(易)의 설괘전(說卦傳)에 팔물(八物)의 작용(作用)을 설명(說明)한바
第一段에 「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 = 천지(天地)가 위(位)를 정(定)하고 산택(山澤)이 기(氣)를 통(通)하고 뇌풍(雷風)이 서로 박(薄)하고 수화(水火)가 서로 사(射)치 아니한다」하고.
第二段에 「雷以動之 風以散之 雨以潤之 日以暄之 艮以止之 兌以說之 乾以君之 坤以藏之 = 뇌(雷)는 써 동(動)하고 풍(風)은 써 산(散)하고 우(雨)는 써 윤(潤)하고 일(日)은 써 훤(暄)하고 간(艮)은 써 지(止)하고 태(兌)는 써 열(說)하고 건(乾)은 써 군(君)하고 곤(坤)은 써 장(藏)한다」하고.
第三段에 「帝 出乎震 齊乎巽 相見乎離 致役乎坤 說言乎兌 戰乎乾 勞乎坎 成言乎艮 = 제(帝)가 진(震)에출(出)하고 손(巽)에제(齊)하고 이(離)에상견(相見)하고 곤(坤)에치역(致役)하고 태(兌)에열언(說言)하고 건(乾)에전(戰)하고 감(坎)에노(勞)하고 간(艮)에성언(成言)한다」하고.
第四段에 「神也者 妙萬物而爲言者也 動萬物者莫疾乎雷 撓萬物者莫疾乎風 燥萬物者莫熯乎火 說萬物者莫說乎澤 潤萬物者莫潤乎水 終萬物始萬物者 莫盛乎艮 = 신(神)이라 함은 만물(萬物)을 묘(妙)하게하여 언(言)을 하는 자(者)이오, 만물(萬物)을 동(動)하는 자(者)는 뇌(雷)보다 질(疾)함이 없고, 만물(萬物)을 요(撓)하는 자(者)는 풍(風)보다 질(疾)함이 없고, 만물(萬物)을 조(燥)하는 자(者)는 화(火)보다 한(熯)함이 없고, 만물(萬物)을 열(說)하게 하는 자(者)는 택(澤)보다 열(說)함이 없고, 만물(萬物)을 윤(潤)하는 자(者)는 수(水)보다 윤(潤)함이 없고, 만물(萬物)을 종(終)하고 만물(萬物)을 시(始)하는 자(者)는 간(艮)보다 성(盛)함이 없다」하고.
第五段에 「故 水火相逮 雷風不相悖 山澤通氣然後 能變化 旣成萬物也 = 고(故)로 수화(水火)가 상체(相逮)하고 뇌풍(雷風)이 상패(相悖)치 아니하고 산택(山澤)이 기(氣)를 통(通)한 연후(然後)에 능(能)히 변화(變化)하여 다 만물(萬物)을 성(成)한다」한지라.
第一段은 복희도(伏羲圖)의 조직(組織)된 상(象)을 말함이니, 계사상전(繫辭上傳)의 첫머리에 「천존지비(天尊地卑)」는 곧 「천지정위(天地定位)」이오, 「비고이진(卑高以陳)」은 곧 「산택통기(山澤通氣)」이오, 「동정유상(動靜有常)」은 곧 「뇌풍상박(雷風相薄)」이오, 「방이유취(方以類聚) 물이군분(物以群分)」은 곧 「수화불상사(水火不相射)」이니, 방취(方聚)․물분(物分)이 수화불상사(水火不相射)가 되는 까닭은 역(易)의 화수미제괘(火水未濟卦)의 대상전(大象傳)에 「愼辨物居方 = 신(愼)하여 물(物)을 변(辨)하고 방(方)에 거(居)한다」한바, 방취(方聚)는 수(水)의 상(象)을 말함이오, 물분(物分)은 화(火)의 상(象)을 말함이다.
第二段은 복희도(伏羲圖)의 괘서(卦序)와, 복희도(伏羲圖)로부터 문왕도(文王圖)로 변화(變化)하는 과정(過程)을 상(象)함이니 계사상전(繫辭上傳)에 「鼓之以雷霆 潤之以風雨 日月運行 一寒一暑 乾道成男 坤道成女 = 고(鼓)하기를 뇌(雷)로써하고 윤(潤)하기를 풍우(風雨)로써하고 일월(日月)이 운행(運行)하고 한번 한(寒)하고 한번 서(暑)하여 건(乾)의 도(道)는 남(男)을 이루고 곤(坤)의 도(道)는 여(女)를 이룬다」한바, 이를 복희도(伏羲圖)로써 보면 뇌정(雷霆)은 동편(東便)의 진(震)과 이(離)이오, 풍우(風雨)는 서편(西便)의 손(巽)과 감(坎)이오, 일월(日月)은 동서(東西)의 이(離)와 감(坎)이오, 한서(寒暑)는 서북(西北)․입동(立冬)의 간(艮)과 동남(東南)․입하(立夏)의 태(兌)이오, 건도성남(乾道成男)은 건이군지(乾以君之)와 상응(相應)하여 정남(正南)의 양성(陽盛)의 방(方)에 있어 물(物)을 주재(主宰)함을 상(象)함이오, 곤도성녀(坤道成女)는 곤이장지(坤以藏之)와 상응(相應)하여 정북(正北)의 음성(陰盛)의 방(方)에 있어 물(物)을 함장(含藏)함을 상(象)함이니, 이는 복희도(伏羲圖)의 순서(順序)를 말함이오, 동(動) 산(散) 윤(潤) 조(燥) 지(止) 열(說) 군(君) 장(藏)은 문왕도(文王圖)로 변화(變化)할 팔물(八物)의 작용(作用)을 말함이다.
第三段은 문왕도(文王圖)의 순서(順序)이다.
第四段은 문왕도(文王圖)의 순서(順序)를쓰면서 팔물(八物)의 작용(作用)이 제이단(第二段)과 상이(相異)하니, 이단(二段)의 건곤(乾坤)은 사단(四段)의 신야자(神也者)가되고, 이단(二段)의 풍산(風散)은 사단(四段)의 풍요(風撓)가되고, 이단(二段)의 우윤일훤(雨潤日暄)은 사단(四段)의 수윤화한(水潤火熯)이되고, 이단(二段)의 태열(兌說)은 사단(四段)의 택열(澤說)이되고, 이단(二段)의 간지(艮止)는 사단(四段)의 종만물시만물(終萬物始萬物)이되니, 이단(二段)으로써 복희도(伏羲圖)로부터 문왕도(文王圖)로 넘어가는 과정(過程)을 상(象)한 것이라고 하면 사단(四段)은 확실(確實)히 문왕도(文王圖)로부터 미래(未來)의 새로운 괘도(掛圖)로 넘어가는 과정(過程)을 상(象)한 것이다.
第五段은 다시 복희도(伏羲圖)와 비슷한 상(象)을 말하고 있으나, 또한 상이(相異)한 점(點)이 적지 아니하니, 일단(一段)의 뇌풍상박(雷風相薄)은 오단(五段)의 불상패(不相悖)가되고, 일단(一段)의 수화불상사(水火不相射)는 오단(五段)의 상체(相逮)가되며, 또 일단(一段)에는 산택(山澤), 뇌풍(雷風), 수화(水火)의 순서(順序)로 되어 있으나 오단(五段)에는 수화(水火), 뇌풍(雷風), 산택(山澤)의 순서(順序)로되어 상하(上下)가 도역(倒逆)하고 있으니, 이 오단(五段)은 복희도(伏羲圖)와 문왕도(文王圖)를 후계(後繼)하는 미래(未來)의 괘도(卦圖)가 되지 아니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제 일단(一段)과 오단(五段)의 내용(內容)을 살펴보건대
一. 일단(一段)에 뇌풍상박(雷風相薄)은 양자(兩者)가 서로 충격(衝擊)하여 고동(鼓動)하고 발산(發散)하는 상(象)이오, 수화불상사(水火不相射)는 양자(兩者)가 함께 유행(流行)하는 상(象)이니, 과실(果實)로써 보면 신아(新芽)가 발생(發生)함을 상(象)함이오, 오단(五段)에 수화상체(水火相逮)는 양자(兩者)가 호근(互根)하여 서로 의부(依附)하는 상(象)이오, 뇌풍불상패(雷風不相悖)는 양자(兩者)가 상박(相薄)치 아니하고 서로 조화(調和)하는 상(象)이니, 이는 과실(果實)이 성숙(成熟)함을 상(象)함이다.
二. 뇌풍(雷風)은 기(氣)이오 수화(水火)는 정(精)이오 산택(山澤)은 형(形)이니, 물(物)이 생장(生長)하는 자(者)는 형(形)이 개탁(開坼)하여 정(精)이 발현(發顯)하고, 물(物)이 성숙(成熟)하는 자(者)는 정(精)이 응수(凝收)하여 형(形)이 결성(結成)하는지라, 일단(一段)의 형(形)․기(氣)․정(精)의 순서(順序)는 형(形)이 기(氣)의 작용(作用)에 의(依)하여 형(形)으로부터 정(精)에 이(移)하는 상(象)이니, 곧 과실(果實)의 피각(皮殼)(形)이 개탁(開坼)되면서 신아(新芽)(精)가 출생(出生)함을 상(象)함이오, 오단(五段)의 정(精)․기(氣)․형(形)의 순서(順序)는 정(精)이 기(氣)의 작용(作用)에 의(依)하여 정(精)으로부터 형(形)에 이(移)하는 상(象)이니, 곧 과실(果實)이 그 내부(內部)에 정기(精氣)를 포축(包蓄)하면서 피각(皮殼)이 응수(凝收)하는 상(象)이다.
이와 같이 제오단(第五段)은 복희도(伏羲圖), 문왕도(文王圖)의 뒤를 계승(繼承)하여 「성(成)」의 단계(段階)를 상(象)한 미래(未來)의 괘도(卦圖)가 있을 것을 예언(豫言)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칠십여년(七十餘年) 전(前)에 아국(我國)의 김일부(金一夫)로부터 제오단(第五段)을 상(象)한 「정역팔괘도(正易八卦圖)」라는 새로운 괘도(卦圖)가 나오니, 이 괘도(卦圖)는 하도(河圖)에 근거(根據)하여 일(一)로부터 십수(十數)까지를 쓰고, 도상(圖象)의 조직(組織)은 복희도(伏羲圖)와 비슷하나 복희도(伏羲圖)는 음(陰)이 체(體)가되고 양(陽)이 용(用)이되어 내부(內部)로부터 외부(外部)에 발현(發顯)하는 작용(作用)을 상(象)하고, 정역도(正易圖)는 종래(從來)에 용사(用事)하던 양(陽)이 체(體)로 전화(轉化)하고, 음(陰)이 용(用)이되어 수렴작용(收斂作用)으로써 내부(內部)를 향(向)하여 통합(統合)하는 작용(作用)을 상(象)한 것이다. 역리(易理)에 생장작용(生長作用)은 음(陰)이 체(體)가되고 양(陽)이 용(用)이되며, 성숙작용(成熟作用)은 양(陽)이 체(體)가되고 음(陰)이 용(用)이되나니, 이는 동지후(冬至後)의 생장기(生長期)는 음(陰)이 체(體)가되고 양(陽)이 용(用)이되며, 하지후(夏至後)의 성숙기(成熟期)는 양(陽)이 체(體)가되고 음(陰)이 용(用)이되는 이(理)에 기(其)한 것이다.
복희도(伏羲圖)와 문왕도(文王圖)는 생장기(生長期)를 상(象)하고, 정역도(正易圖)는 성숙기(成熟期)를 상(象)한 것이므로, 과실(果實)로써 보면 복희도(伏羲圖)의 과실(果實)과 정역도(正易圖)의 과실(果實)은 동일(同一)한 과실(果實)이로되, 전자(前者)는 양기(陽氣)가 음체(陰體)인 구각(舊殼)을 떠나서 발현작용(發顯作用)을 행(行)하는 상(象)이오, 후자(後者)는 모수(母樹)에 의착(依着)하여 음체(陰體)가 양기(陽氣)를 함축(含蓄)하여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하는 상(象)이니, 실(實)로 복희도(伏羲圖)는 문왕도(文王圖)의 모체(母體)이오 문왕도(文王圖)는 또한 정역도(正易圖)의 모체(母體)이다. 그러므로 정역도(正易圖)가 문왕도(文王圖)를 계승(繼承)한 점(點)은 이도(二圖)가 모두 양괘(陽卦)가 서북(西北)으로부터 정동(正東)까지에 있고 음괘(陰卦)가 동남(東南)으로부터 정서(正西)까지에 있는 것이며, 그 주요(主要)한 차이(差異)는 문왕도(文王圖)는 양(陽)의 세력(勢力)이 독성(獨盛)함에 반(反)하여 정역도(正易圖)는 음양(陰陽)이 통일체내(統一體內)에 보합(保合)하여 서로 조화(調和)하는 것이다.
이 삼도(三圖)를 생존작용(生存作用)의 환직(圜直)의 이(理)로써 보건대, 복희도(伏羲圖)가 문왕도(文王圖)를 생(生)하고 문왕도(文王圖)가 정역도(正易圖)를 생(生)한 것은 직선운동(直線運動)이 되고 복희도(伏羲圖)가 하도(河圖)에 근거(根據)하고 문왕도(文王圖)가 낙서(洛書)에 근거(根據)하고 정역도(正易圖)가 다시 하도(河圖)에 근거(根據)하는 것은 환주운동(圜周運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종래(從來)에는 복희도(伏羲圖)를 선천(先天)이라하고 문왕도(文王圖)를 후천(後天)이라하니, 이는 문왕도(文王圖)가 복희도(伏羲圖)에서 나온 까닭이다. 그러나 정역도(正易圖)가 나온 이후(以後)에는 생장기(生長期)를 상(象)하는 복희(伏羲)․문왕(文王)의 이도(二圖)는 모두 선천(先天)이되고, 성숙기(成熟期)를 상(象)하는 정역도(正易圖)가 후천(後天)이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삼도(三圖)와 시운(時運)의 상(象)

사시(四時)의 교대(交代)는 천지일월(天地日月)의 자연(自然)스러운 운행(運行)으로부터 생(生)하고, 사시(四時)의 교대(交代)에 의(依)하여 만물(萬物)의 생장성(生長性)의 상(象)이 나타나는지라, 인생사회(人生社會)의 발전(發展)에도 또한 사시(四時)와 같은 교대(交代)와 생장성(生長性)의 상(象)이 없지 아니하니, 이 천지일월(天地日月)의 운행법칙(運行法則)을 상(象)한 괘도(卦圖)는 성인(聖人)이 우리 인류(人類)에게 시운(時運)을 계시(啓示)하는 표상(表象)이다. 이제 삼괘도(三卦圖)로써 인생사회(人生社會)의 생존작용(生存作用)에 의(擬)하건대,
복희도(伏羲圖)의 단계(段階)는 비록 양(陽)이 용사(用事)하고 있으되 아직 음체(陰體)가 장성(壯盛)함으로 음양(陰陽)이 조화(調和)하는 시운(時運)이라, 사회(社會)의 면(面)으로는 여자(女子)가 체(體)가되어 주권(主權)을 잡고 있으니, 이것이 소위(所謂) 고대(古代)의 모계사회(母系社會)이오, 정치(政治)의 면(面)으로는 아직 관력(官力)이 성대(盛大)치 아니하고 상하(上下)가 모두 조화(調和)하는 상(象)이오, 윤리도덕(倫理道德)의 면(面)으로는 인심(人心)이 순박(淳朴)하여 호상부조(互相扶助)하는 상(象)이니, 복희후(伏羲後) 수천년후(數千年後)에 중국(中國)의 하국(夏國)은 「충(忠)」을 숭상(崇尙)하고 은국(殷國)은 「질(質)」을 숭상(崇尙)함과 같음은 이 시운(時運)에 속(屬)하는 상(象)이오, 그 후(後)에 주국(周國)이 「문(文)」을 숭상(崇尙)함과 같음은 문왕도(文王圖)의 양기발동(陽氣發動)의 시운(時運)에 속(屬)하는 것이다.
이제 문왕도(文王圖)와 정역도(正易圖)의 시운(時運)을 상(象)으로써 비교(比較)하여 보건대, 문왕도(文王圖)는 낙서(洛書)의 이(理)가 행(行)하여 제십위(第十位)가 폐흡(閉翕)된 까닭에 모든 사물(事物)에 반드시 은폐(隱蔽)된 흑막(黑幕)이 있으니, 정치(政治)가 일부(一部)특수계급(特殊階級)의 손에 농락(籠絡)되고 민중(民衆)에게 공개(公開)치 아니하여, 소위(所謂) 궁정정치(宮廷政治) 귀족정치(貴族政治)같은 비밀정치(秘密政治)가 행(行)하고, 권력쟁탈(權力爭奪)을 위(爲)한 모함(謀陷)․중상(中傷) 등(等) 음모(陰謀)가 성행(盛行)함과 같은 것이 그 일례(一例)이며, 정역도(正易圖)는 하도(河圖)의 이(理)가 행(行)하여 제십위(第十位)가 개탁(開坼)됨으로 모든 은폐(隱蔽)가 제거(除去)되고 민중(民衆)이 직접(直接)으로 정치(政治)에 참여(參與)하여 국가(國家)의 행정(行政)이 전부공개(全部公開)되는 상(象)이며, 하도(河圖)의 제십위(第十位)는 여성(女性)의 상(象)인데, 이것이 폐흡(閉翕)된 문왕도시운(文王圖時運)에는 여성(女性)이 규중(閨中)에 폐칩(閉蟄)되고, 남권(男權)이 강성(强盛)하여 남존여비(男尊女卑)가 된 것이오, 정역도(正易圖)는 제십위(第十位)가 개탁(開坼)됨으로 여성(女性)이 전부개방(全部開放)되는 상(象)이며, 더욱이 정역도(正易圖)는 양(陽)이 체(體)가되고 음(陰)이 용(用)이 됨으로 여성(女性)이 사회(社會)의 각부면(各部面)에 진출(進出)하여 용사(用事)하는 상(象)이다. 문왕도(文王圖)는 양(陽)이 내부(內部)로부터 외부(外部)를 향(向)하여 발현(發顯)하는 것이므로, 세력(勢力)을 가진자(者)가 민중(民衆)을 압복(壓服)하고 스스로 군주(君主)가 되어 천하(天下)에 호령(號令)하며, 그의 수족(手足)으로 되어 있는 특권계급(特權階級)이 전권(專權)하여 관존민비(官尊民卑)가 된 것이오, 정역도(正易圖)는 음(陰)이 용사(用事)하여 외부(外部)로부터 내부(內部)를 향(向)하여 통합(統合)하는 것이므로, 민중(民衆)이 용사(用事)하여 국가(國家)의 원수(元首)를 민중(民衆)이 직접(直接) 추대(推戴)하고 정치(政治)의 기구(機構)도 민중(民衆)의 의사(意思)에 의(依)하여 조직(組織)되는 상(象)이니, 이가 지금의 소위(所謂) 민주주의(民主主義)이다. 국제적(國際的)으로는 문왕도(文王圖)는 양(陽)이 외부(外部)에 발현(發顯)하는 것이므로 국세(國勢)의 강대(强大)한 자(者)가 외부(外部)로 세력(勢力)을 확장(擴張)하여 타국(他國)을 침략(侵略)하는 상(象)이오, 정역도(正易圖)는 양(陽)이 체(體)가되어 통일작용(統一作用)을 행(行)함으로, 세계각국(世界各國)은 모두 합(合)하여 통체(統體)를 조직(組織)하나, 음(陰)이 용사(用事)하여 개체(個體)를 주(主)하고 수렴작용(收斂作用)을 행(行)함으로 각국(各國)은 각기(各其) 자체(自體)의 분야(分野)를 지키고 타국(他國)을 침략(侵略)하는 일이 없이 서로 화평(和平)하여 함께 생생존존(生生存存)하는 상(象)이다. 윤리도덕(倫理道德)의 면(面)으로는 윤리도덕(倫理道德)은 양(陽)이오 물질생산(物質生産)은 음(陰)이라, 문왕도(文王圖)는 양용(兩用)이 독성(獨盛)하고 음체(陰體)가 미약(微弱)함으로 세력(勢力)을 가진자(者)가 하층(下層)의 생산계급(生産階級)을 박해(剝害)하며, 음양(陰陽)이 서로 유리(遊離)한 까닭에 양(陽)이 의착(依着)할 체(體)를 상실(喪失)하여, 그 소위(所謂) 윤리도덕(倫理道德)은 부유(浮游)․허위(虛僞)에 흘러서 인정(人情)과 신의(信義)가 박약(薄弱)한 상(象)이오, 정역도(正易圖)는 양(陽)이 체(體)가되어 내부(內部)에 위(位)하고 있으므로 사람의 마음속에 윤리도덕(倫理道德)의 관념(觀念)이 깊이 근착(根着)하고, 물질생산(物質生産)이 용사(用事)함으로 생활자료(生活資料)는 스스로 풍족(豊足)하게 되는 상(象)이다. 그러므로 문왕도(文王圖)의 시운(時運)에는 「爲富不仁 爲仁不富 = 부(富)를 위(爲)하면 인(仁)치 못하고 인(仁)을 위(爲)하면 부(富)치 못한다」하여, 윤리도덕(倫理道德)과 재화(財貨)는 양립(兩立)치 못한 것이나, 정역도(正易圖)의 시운(時運)은 음양(陰陽)이 조화(調和)함으로, 윤리도덕(倫理道德)과 물질생산(物質生産)이 함께 발달(發達)하여, 부(富)한 자(者)도 인(仁)하게 되고 인(仁)한 자(者)도 부(富)하게 되는 상(象)이다.
정치(政治)에는 권력정치(權力政治)와 도덕정치(道德政治)의 두 가지가 있다. 권력정치(權力政治)는 권력(權力)․의무(義務)․통어(統御)․형벌(刑罰) 등(等)을 규정(規定)한 법률(法律)을 기초(基礎)로하고, 도덕정치(道德政治)는 인정(人情)․윤리(倫理)․감응(感應)․화성(化成) 등(等)을 규정(規定)한 전례(典禮)와 인심(人心)을 통창(通暢)케하는 풍악(風樂)을 기초(基礎)로 하는지라, 법률(法律)은 금제(禁制)를 주(主)하니 금제(禁制)는 소극적(消極的)이오 수렴작용(收斂作用)이므로 음(陰)이되고, 예악(禮樂)은 지도(指導)를 주(主)하니 지도(指導)는 적극적(積極的)이오 발현작용(發顯作用)이므로 양(陽)이된다. 문왕도(文王圖)는 음(陰)이 체(體)가되고 양(陽)이 용(用)이됨으로, 이 시운(時運)에는 국가(國家)의 정치(政治)는 법률(法律)을 체(體)로하고 예악(禮樂)을 용(用)으로하여 주(主)로 권력정치(權力政治)를 행(行)하니, 이 까닭에 정치(政治)와 민중(民衆)과의 사이에 감응작용(感應作用)이 행(行)치 못하여 이간정치(易簡政治)를 보기 어려운 것이다. 정역도(正易圖)는 양(陽)이 체(體)가되고 음(陰)이 용(用)이됨으로 이 시운(時運)의 정치(政治)는 예악(禮樂)을 체(體)로하고 법령(法令)을 용(用)으로하여 주(主)로 도덕정치(道德政治)를 행(行)하게 되나니, 도덕정치(道德政治)는 인심(人心)의 감화(感化)를 주(主)함으로 지도(指導)함이 평이(平易)하고 승종(承從)함이 간약(簡約)하여 비로소 이간정치(易簡政治)가 행(行)하는 것이다. 세간(世間)에는 법률조목(法律條目)이 많은 것으로써 일종(一種)의 문명국(文明國)으로 생각하는 경향(傾向)이 없지 아니하나, 이는 문왕도시운(文王圖時運)의 권력정치(權力政治)에 이관목습(耳慣目習)한 소치(所致)로 인(因)하여 폐각(弊殼)을 탈각(脫却)치 못한 구사상(舊思想)이다. 법령(法令)이 번다(繁多)하면, 번다(繁多)할수록 그의 대대작용(對待作用)의 발생(發生)에 의(依)하여 인심(人心)이 더욱 각박(刻薄)하여져서 오직 탈법(脫法)의 길을 찾기에 광분(狂奔)하고 간위(奸僞)가 점증(漸增)하는 것이니, 이는 사실(事實)이 명시(明示)하는 바이다.
역리(易理)에 음(陰)은 개체(個體)를 주(主)하고, 양(陽)은 통체(統體)를 주(主)함으로, 물질(物質)은 음(陰)이오 정신(精神)은 양(陽)이며, 조직(組織)은 음(陰)이오 운행(運行)은 양(陽)이며, 분석(分析)은 음(陰)이오 종합(綜合)은 양(陽)이다. 문왕도(文王圖)는 양(陽)이 용사(用事)함으로 주(主)로 정신(精神)의 운행(運行)․종합(綜合)에 관(關)한 학문(學問)이 발달(發達)하니, 이가 소위(所謂) 철학(哲學)이다. 그러나 이 시운(時運)에는 음양(陰陽)이 서로 유리(遊離)하여 양(陽)이 의착(依着)할 체(體)를 상실(喪失)한 까닭에 소위(所謂) 철학(哲學)은 흔히 공리공론(空理空論)에 흘러서 실천성(實踐性)이 적은 상(象)이오, 정역도(正易圖)는 음(陰)이 용사(用事)함으로 주(主)로 물질(物質)의 조직(組織)․분석(分析)에 관(關)한 학문(學問)이 발달(發達)하는 상(象)이니, 이가 지금의 소위(所謂) 과학(科學)이며, 더욱이 정역도(正易圖)는 음양(陰陽)이 조화(調和)하고 있으므로 이 시운(時運)에는 실천성(實踐性)이 있는 철학(哲學)과 윤리도덕(倫理道德)의 관념(觀念)에 입각(立脚)한 과학(科學)이 아울러 발달(發達)하는 상(象)이다.
지금에 소위(所謂) 신사조(新思潮)라하여, 여성개방(女性開放)․민주정치(民主政治)․과학보급(科學普給)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정역도(正易圖) 시운(時運)을 맞이하여 새로 일어난 사조(思潮)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신사조(新思潮)는 반드시 음양(陰陽)의 조화(調和)를 전제(前提)로하지 아니하면 안되나니, 만일 음양(陰陽)이 조화(調和)치 못하면 소위(所謂) 여성개방(女性開放)은 무절제(無節制)한 음란(淫亂)에 흐르기 쉽고, 소위(所謂) 민주정치(民主政治)는 방종(放縱)한 개인자유(個人自由)에 빠지기 쉽고, 소위(所謂) 과학보급(科學普給)은 향락(享樂)을 위주(爲主)하는 물질만능(物質萬能)사상(思想)에 타락(墮落)되기 쉬운 것이다. 이 이외(以外)에 또 하나의 신사조(新思潮)가 있을 수 있으니, 그는 국제간(國際間)에 침략주의(侵略主義)가 없어지는 것이다. 전시운(前時運)에는 양(陽)이 편승(偏勝)하고 십위(十位)가 폐색(閉塞)된 까닭에 강대국(强大國)이 세력(勢力)을 국외(國外)에 확장(擴張)하여 약소국가(弱小國家)를 정복(征服)하고, 또 국제적파당(國際的派黨)을 만들고 비밀조약(秘密條約)을 체결(締結)하여, 온갖 음모(陰謀)를 꾸미는 것인데, 정역도시운(正易圖時運)은 음양(陰陽)이 조화(調和)하고 십위(十位)가 개탁(開坼)되고 있으므로, 각국(各國)은 각기(各其) 강역(疆域)을 보전(保全)하여 자주정치(自主政治)를 행(行)하고 외국(外國)의 침략(侵略)도 없고 아무런 음모(陰謀)도 없고, 평화(平和)로히 서로 내왕(來往)하여 유무(有無)를 상통(相通)하면서 공생공존(共生共存)하는 상(象)이니, 이것이 또한 장래(將來)할 신사조(新思潮)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또 미래(未來)에 한가지 중요(重要)한 변화(變化)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은 곧 대지상(大地上)의 기후(氣候)의 변화(變化)이다. 문왕도시운(文王圖時運)에는 음양(陰陽)이 서로 유리(遊離)한 까닭에 서열(暑熱)과 한냉(寒冷)이 각기(各其) 편재(偏在)하여 서로 조화(調和)되지 못하고 시기(時期)와 지방(地方)에 따라서 한서(寒暑)가 극단(極端)에 이르는 것이나, 정역도시운(正易圖時運)은 생장단계(生長段階)로부터 성숙단계(成熟段階)로 넘어가는 것이므로, 대지(大地)의 운행궤도(運行軌道)도 어떠한 변화(變化)를 생(生)하고, 또 음양(陰陽)이 조화(調和)하여 한서(寒暑)가 모두 전시운(前時運)보다 격심(激甚)치 아니하고 따라서 만물(萬物)의 생장수장(生長收藏)에도 지대(至大)한 변화(變化)가 생(生)하는 상(象)이다.
그런데 문왕도(文王圖)의 시운(時運)에 양(陽)이 용사(用事)함으로 남존여비(男尊女卑)․관존민비(官尊民卑) 등(等) 모든 폐해(弊害)가 생(生)한 것인데, 만일 정역도(正易圖)의 시운(時運)이 되면 또한 이와 상대(相對)되는 폐해(弊害)가 생기지 아니할까 하면, 문왕도(文王圖)는 생장기(生長期)이므로 운행단계(運行段階)에 속(屬)하니 운행(運行)은 용대체소(用大體小)한지라, 그러므로 이 시운(時運)에는 양용(陽用)이 대(大)하고 음체(陰體)가 소(小)한 위에 또 양(陽)이 용사(用事)함으로, 스스로 양(陽)이 편승(偏勝)하고 음(陰)이 편패(偏敗)하는 상(象)이 생(生)한 것이오, 정역도(正易圖)는 성숙기(成熟期)이므로 조직단계(組織段階)에 속(屬)하니 조직(組織)은 체대용소(體大用小)한지라, 그러므로 이 시운(時運)에는 비록 음(陰)이 용사(用事)하여 음대양소(陰大陽小)하고 있으되 양체(陽體)가 대(大)함으로 음용(陰用)이 양체(陽體)를 억제(抑制)치 아니하고 호대호소(互大互小)로써 서로 균등(均等)하여 음양(陰陽)이 조화(調和)하는 상(象)이다.
‣지금은 인류역사(人類歷史)의 전환기(轉換期)

시운(時運)을 관찰(觀察)함에는 수(數)와 상(象)이 있다.
수(數)라 함은 연수(年數)를 말함이니, 역(易)에「二篇之策 萬有一千五百二十 當萬物之數 = 이편(二篇)의 책(策)이 일만일천오백이십(一萬一千五百二十)이니 만물(萬物)의 수(數)에 당(當)한다」【註二】한바, 만물(萬物)이라 함은 천지태일체(天地太一體)의 전체수(全體數)를 개산(槪算)하여 말한 것인데, 이 전체수(全體數)는 공간(空間)에만 있는 것이 아니오, 또한 시간(時間)에도 있는 것이므로, 일만일천오백이십(一萬一千五百二十)은 역사(歷史)의 일환주년수(一圜周年數)에 당(當)하는 것이오, 이를 사시(四時)에 나누면 일시절(一時節)의 연운(年運)은 이천팔백팔십년(二千八百八十年), 약(約) 삼천년(三千年)에 당(當)하고 있다. 그런데 삼도(三圖)의 생장성단계(生長成段階)를 역사(歷史)에 의(擬)하건대, 복희(伏羲)가 팔괘도(八卦圖)를 지음으로부터 은국말(殷國末)에 이르는 약삼천년간(約三千年間)은 「생(生)」의 단계(段階)와 준사(準似)하고, 문왕(文王)이 팔괘도(八卦圖)를 지음으로부터 지금에 이르는 약삼천년간(約三千年間)은 「장(長)」의 단계(段階)와 준사(準似)하고, 정역팔괘도(正易八卦圖)가 출생(出生)한 지금의 시세(時勢)는 「성(成)」의 단계(段階)와 준사(準似)하다. 김일부(金一夫)의 대역서(大易序)의 기(記)에 「天地傾危二千八百年」이라 함은 문왕괘도(文王卦圖)에 건곤(乾坤)이 실위(失位)한지 이천팔백년(二千八百年)인 금일(今日)에 건곤(乾坤)이 득위(得位)하는 정역도(正易圖)가 출생(出生)한다는 뜻을 말함이니, 이가 또한 이천팔백팔십년(二千八百八十年)으로써 일시절(一時節)의 시운(時運)을 삼은 것이다. 이 연수(年數)로써보면 지금은 문왕괘도(文王卦圖)의 이후(以後) 약삼천년(約三千年)의 「장(長)」단계(段階)를 지나서 정역도(正易圖)의 「성(成)」단계(段階)로 넘어가는 과도기(過渡期)에 처(處)하여 있는 것이다.
黃道上의 春分點은 恒常 一定치 아니하여, 地球의 歲差運動으로 因하여 每年 東쪽으로부터 西쪽으로 移動하는데, 約 二萬五千七百年을 一週期로하여 다시 本位置로 돌아온다. 그러므로 約 一萬二千八百餘年 後에는 只今의 春分點이 秋分點으로되고, 지금의 秋分點이 春分點으로되나니, 이것은 春分點과 秋分點이 百八十度 떨어져 있는 까닭이다. 天球上에서 黃道와 赤道의 交叉點이 二個가 있으니, 太陽이 天球의 南半球에서 北半球로 건너가는 交叉點이 春分點이오 그 反對가 秋分點이다. 그러므로 百八十度 떨어저 있다. 一萬二千八百餘年을 四節로 나누면, 一節의 年數는 約 三千二百餘年이다.
一分間 呼吸數를 十八로하면 一日에 二千五百九十餘回이니 이는 春分點의 移動週期 二萬五千七百年과 비슷하다.
대저(大抵) 시운(時運)의 생장성(生長性)은 천지(天地)의 일합일벽(一闔一闢)하는 대호흡(大呼吸)이오, 시운(時運) 이천팔백팔십년(二千八百八十年)은 호흡(呼吸)의 일절(一節)이다. 그런데 시운(時運)의 호흡년수(呼吸年數)는 사람의 호흡수(呼吸數)와 관련(關聯)되어 있으니, 사람의 일분간(一分間) 호흡수(呼吸數)는 십오내지십팔(十五乃至十八), 평균(平均) 십육가량(十六假量)이오, 일일(一日)의 일천사백사십분(一千四百四十分)으로 계산(計算)하면 일일(一日) 호흡수(呼吸數)는 대개(大槪) 이만삼천사십(二萬三千四十)이라, 이를 주야(晝夜)에 나누면 각(各) 일만일천오백이십(一萬一千五百二十)으로서 이편(二篇)의 책수(策數)에 당(當)하고, 또 이를 복희도(伏羲圖)의 조직(組織)인 조석(朝夕), 오야(午夜), 신혼(晨昏), 조양(朝陽), 석양(夕陽) 등(等) 팔기(八氣)에 나누면 일기(一氣)의 호흡수(呼吸數)는 이천팔백팔십(二千八百八十)으로서 일시절(一時節)의 연운수(年運數) 이천팔백팔십년(二千八百八十年)에 당(當)하고 있으니, 천지시운(天地時運)의 이천팔백팔십년(二千八百八十年)은 결(決)코 우연(偶然)한 것이 아니다. 역(易)에 「闔戶謂之坤 闢戶謂之乾 一闔一闢謂之變 往來不窮謂之通 = 호(戶)를 합(闔)함을 곤(坤)이라 이르고 호(戶)를 벽(闢)함을 건(乾)이라 이르고, 일합일벽(一闔一闢)함을 변(變)이라 이르고, 왕래(往來)하여 궁(窮)치 아니함을 통(通)이라 이른다」【註三】하니, 천지(天地)의 변통(變通)은 곧 합벽왕래(闔闢往來)하는 호흡운동(呼吸運動)이다.
상(象)이라함은 형세(形勢)를 말함이니, 역(易)에「離也者明也 萬物皆相見 南方之卦也 = 이(離)라함은 명(明)함이라 만물(萬物)이 모두 상견(相見)하니 남방(南方)의 괘(卦)라」【註四】한바, 이괘(離卦)는 정남(正南)에 위(位)하여 시절(時節)로는 정하(正夏)가 되고 천하(天下)가 대명(大明)한 상(象)이라, 지금에 대지상(大地上)에 있는 육지(陸地)가 모두 발견(發見)되고, 인적(人跡)이 이르지 못하는 남북량극(南北兩極)의 권내(圈內)까지 모두 알려지며 종래(從來)에 서로 교제(交際)가 없던 세계각국(世界各國) 각종족(各種族)이 모두 상견(相見)하고 있으니, 이는 지금 정하대명(正夏大明)의 시운(時運)에 당(當)하고 있는 상(象)이다. 정하(正夏)는 하지(夏至)의 일음(一陰)이 하(下)로부터 생(生)하는 시기(時期)이라, 하지이전(夏至以前)은 생장단계(生長段階)이므로 이를 선천(先天)이라 할 수 있고, 하지(夏至)이후(以後)는 성숙단계(成熟段階)이므로 이를 후천(後天)이라 할 수 있으니, 이것을 인사(人事)에 의(擬)하면, 선천(先天)은 복희(伏羲)․문왕(文王)․이도(二圖)의 시대(時代)이니 곧 구세대(舊世代)이오, 후천(後天)은 정역도(正易圖)의 시대(時代)이니 곧 신세대(新世代)이다. 그런데 역경(易經)의 상경(上經)은 선천(先天)을 상(象)하고 하경(下經)은 후천(後天)을 상(象)하여 선천(先天)의 장종기(將終期)에 감괘(坎卦)와 이괘(離卦)를 배(配)하니, 감(坎)은 수(水)이오 이(離)는 화(火)이라 ,수화(水火)가 동거(同居)하여 상극상멸(相剋相滅) 하고 있으며, 또 감(坎)은 함정(陷穽)이오 이(離)는 망고(網罟)이라, 사람이 함정(陷穽)에 빠지고 그물에 걸리는 상(象)이니, 이는 수화(水火)로써 상공(相攻)하고 사람이 도탄(塗炭)에 빠져서, 인류역사(人類歷史)가 있은후(後) 최대(最大)의 난경(難境)이다. 또 십이월(十二月)의 소식괘(消息卦)로써 보면 지금은 사월(四月)로부터 오월(五月)로 넘어가는 대과괘(大過卦)의 시(時)에 당(當)하고 있으니, 대과괘(大過卦)는 이음(二陰)이 사양(四陽)을 포함(包涵)하여, 비록 양성(陽盛)의 시기(時期)이로되 도리어 음기(陰氣)가 성만(盛滿)하고, 장차전도(將且顚倒)하여 하지(夏至)의 일음(一陰)을 생(生)하는 상(象)이라, 음양(陰陽)이 구상(俱傷)하여 상장(喪葬)의 상(象)이 있으니, 지금에 이 시운(時運)을 당(當)하고 있으므로 살벌(殺伐)의 기(氣)가 대행(大行)하여 천하(天下)가 모두 큰 과오(過誤)를 범(犯)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以上)의 이(理)를 총언(總言)하면 지금은 선천(先天)으로부터 후천(後天)으로 과도(過渡)하는, 인류역사(人類歷史)의 일대전환기(一大轉換期)이다. 이 시기(時期)를 지나면 하경(下經)의 함항시대(咸恒時代)가 되나니, 함(咸)은 성인(聖人)이 인심(人心)을 감응(感應)케하여 천하(天下)가 화평(和平)하는 상(象)이오, 항(恒)은 성인(聖人)이 그 도(道)에 항구(恒久)하여 천하(天下)가 화성(化成)하는 상(象)으로서, 산택(山澤)과 뇌풍(雷風)이 용사(用事)하여 예악(禮樂)이 대행(大行)하는 치세(治世)가 되는 것이다.
지금 정하(正夏)의 시운(時運)은 하(夏)의 유형단계(流形段階)에 당(當)하여 모든 규이(睽異)․함험(陷險)․건난(蹇難) 등(等)이 나타나는 때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스스로 그것을 변통(變通)하여 제(濟)하는 시용(時用)이 있으니, 이 시용(時用)을 찾아서 시의(時義)를 행(行)하는 것이 곧 난경(難境)을 타개(打開)하는 길이다. 이 시용(時用)을 역리(易理)로써 보면 다음의 세 가지가 있다.
규이(睽異)의 시용(時用)은 곧 차등(差等)과 균평(均平)이니,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은 상규상이(相睽相異)한 체(體)가 상동상류(相同相類)한 용(用)으로 화(化)하는 것이므로, 세계각국(世界各國)은 비록 그 종족(種族)․정치형태(政治形態) 등(等)이 상이(相異)하더라도 또한 서로 교여(交與)할수 있으며, 또 비록 국토(國土)와 국력(國力)의 대소(大小)․강약(强弱) 등(等)이 동일(同一)치 아니 하더라도, 차등(差等)한 조직(組織)을 기초(基礎)로하여 균평(均平)한 운행(運行)을 행(行)할수 있는 것이니, 소위(所謂) 강대국(强大國)들이 교영(驕盈)한 태도(態度)를 버리고 약소국가(弱小國家)를 침략(侵略)치 아니하고, 대지상(大地上)의 모든 국가(國家)가 서로 균평(均平)한 처지(處地)에서 교제(交際)하여, 함께 생생존존(生生存存)하는 것이 곧 규이(睽異)의 시용(時用)이다.
함험(陷險)의 시용(時用)은 곧 투쟁(鬪爭)과 조화(調和)이니, 천지(天地)의 운행과정(運行過程)에 투쟁상태(鬪爭狀態)가 생(生)하는 것은 모두 조화(調和)를 얻기 위(爲)한 투쟁(鬪爭)이오, 어느 개체(個體)의 위력(威力)을 과시(誇示)하기 위(爲)한 투쟁(鬪爭)이 아니다. 지금의 인류역사(人類歷史)는 한 나라도 고립(孤立)한 것이 없고 모두 세계사(世界史)의 일환(一圜)으로 연계(連繫)되어 있는지라, 이러한 기운(氣運) 속에서 한 개체(個體)의 세력확장(勢力擴張)을 위(爲)하여 타국(他國)을 억압(抑壓)하는 것은 인류사회(人類社會)의 조화(調和)를 파괴(破壞)하고 타(他)의 생존(生存)을 조해(阻害)하는 악행위(惡行爲)이다. 더욱이 천지(天地)의 생존법칙(生存法則)은 어느 일편(一便)에 한 세력(勢力)이 이루어지면 그 반면(反面)에 그에 대항(對抗)하는 대대세력(對待勢力)이 발생(發生)하는 것이라, 세간(世間)의 사물(事物)에는 독강독대(獨强獨大)가 있는 것이 아니오, 세력(勢力)의 경쟁(競爭)은 결국(結局) 공도동복(共倒同覆)이 되는 것이니, 침략주의(侵略主義) 국가(國家)들은 그 근성(根性)을 버리고 세계(世界)와 함께 조화(調和)하는 것이 곧 함험(陷險)의 시용(時用)이다.
건난(蹇難)의 시용(時用)은 곧 안정(安定)과 유동(流動)이니, 천지(天地)의 운행(運行)은 반드시 먼저 그 체(體)를 안정(安定)한 연후(然後)에 유동(流動)하는 것이라, 이 전도기(顚倒期)를 당(當)하여 이미 안정(安定)하고 있는 사회(社會)는 능(能)히 난경(難境)을 면(免)할 수가 있으나 안정(安定)치 못한 사회(社會)는 시운(時運)의 전도(顚倒)와 자체(自體)의 동요(棟撓)가 병지(並至)하여 중대(重大)한 위기(危機)에 봉착(逢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정(內政)을 정정(整正)하여 자체(自體)를 안정(安定)케 함이 곧 건난(蹇難)의 시용(時用)이다.
‣대운중(大運中)의 소운(小運)과 지역(地域)의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은 천지(天地)의 대운(大運)을 말한 것이오 대운(大運)의 속에 소운(小運)의 유행(流行)이 있고, 또 각지역(各地域)에 따라서 음양성(陰陽性)의 기운(氣運)이 상이(相異)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동일(同一)한 대운(大運)이라 하더라도, 그 시기(時期)와 지리(地理)를 따라서 그 시운(時運)에 적지 아니한 차이(差異)가 있는 것이다. 소운(小運)의 유행(流行)이라함은 음양(陰陽)의 유행(流行)하는 기운(氣運)은 때를 따라서 소장(消長)과 성쇠(盛衰)가 있어, 그것이 사람의 생활(生活)과 사회(社會)의 변동(變動)에 영향(影響)하고 있음이다. 이제 음양(陰陽)의 기운(氣運)이 인체(人體)의 생리(生理)에 영향(影響)한 일례(一例)를 보건대, 중국(中國)의 송조말엽(宋朝末葉)에는 병(病)의 발원(發源)이 대개(大槪) 양기(陽氣)의 부족(不足)함에 있으므로, 張潔古․李東恒 등(等) 제현(諸賢)의 약방(藥方)이 모두 중궁(中宮)을 보(補)하고 양기(陽氣)를 부조(扶助)하는 약(藥)을 주(主)하고, 명조말(明朝末)에 이르러서는 병(病)의 발원(發源)이 대개(大槪) 음허(陰虛)함에 있으므로 朱丹溪 이하(以下) 제의(諸醫)가 모두 음기(陰氣)를 보(補)하고 하초(下焦)를 자익(滋益)하는 약(藥)을 주(主)하니, 이는 때를 따라서 기운(氣運)의 유행(流行)이 상이(相異)한 까닭이다.
지역(地域)의 상이(相異)라함은 지리(地理)의 동서(東西), 남북(南北) 또는 고저(高低), 조습(燥濕) 등(等)을 따라서 음양(陰陽)의 유행(流行)이 동일(同一)치 아니하여 또한 인생생활(人生生活)에 영향(影響)하고 있음이다. 이제 동양(東洋)과 서양(西洋)의 대체(大體)의 예(例)로써 보건대, 동양(東洋)은 양방(陽方)에 속(屬)하고 서양(西洋)은 음방(陰方)에 속(屬)함으로 음양(陰陽)의 기운(氣運)이 상반(相反)하는 것이 적지 아니하다 종횡(縱橫)으로써보면 동양(東洋)의 가족제도(家族制度)는 부전자수(父傳子受)하는 종적(縱的)이오, 서양(西洋)의 가족제도(家族制度)는 부부(夫婦)를 중심(中心)으로하는 횡적(橫的)이니, 종(縱)은 양(陽)이오 횡(橫)은 음(陰)이며, 서적(書籍)같은 것도 동양(東洋)은 종서(縱書)하고 서양(西洋)은 횡서(橫書)하는 것이다. 종합(綜合)․분석(分析)으로써 보면 종합(綜合)은 양(陽)이오 분석(分析)은 음(陰)이라, 동양(東洋)의 학문(學問)은 종합(綜合)을 주(主)하니 모든 인문학(人文學)과 한의학(漢醫學)이 그 일례(一例)이오, 서양(西洋)의 학문(學問)은 분석(分析)을 주(主)하니 지금의 과학(科學)과 의학(醫學)의 여러 분과(分科)가 그 일례(一例)이며, 문장(文章)의 구절(句節)같은 것도 동양(東洋)은 종합(綜合)된 일구(一句)를 한마디로 쓰고, 서양(西洋)은 구(句)를 분해(分解)하여 일단어(一單語)를 한마디로 쓰며, 문자(文字) 같은 것도 아국국문(我國國文)은 초중종성(初中終聲)의 종합(綜合)이오, 서양문(西洋文)은 분해식(分解式)이며, 음식(飮食) 같은 것도 동양(東洋)은 비빔밥식(式)의 종합식(綜合式)이오, 서양(西洋)은 일미(一味)씩 분식(分食)하며, 신체(身體)의 생리(生理)에도 이러한 현상(現象)이 있어, 대소변(大小便)같은 것도 동양인(東洋人)은 공제(共濟)이오 서양인(西洋人)은 분제(分濟)이다. 음양(陰陽)의 상구(相求)로써 보면 동양(東洋)은 채식(菜食)이 많고 서양(西洋)은 육식(肉食)이 많으니, 채식(菜食)은 그 성(性)이 대체(大體)로 양(凉)하고, 육식(肉食)은 대체(大體)로 온(溫)한지라, 동양(東洋)은 양(陽)에 속(屬)함으로 그를 조화(調和)하기 위(爲)하여 채식(菜食)을 주(主)하고, 서양(西洋)은 음(陰)에 속(屬)함으로 또한 그를 조화(調和)하기 위(爲)하여 육식(肉食)을 주(主)하는 것이니, 사상의학(四象醫學)의 이(理)에 장부(臟腑)에 냉(冷)이 많은 소음인(少陰人)은 육식(肉食)을 요(要)하고, 열(熱)이 많은 소양인(少陽人)은 채식(菜食)을 요(要)하는 것이 또한 그 까닭이며, 시력(時曆)에 있어서, 자래(自來)로 동양(東洋)은 태음력(太陰曆)을 쓰고, 서양(西洋)은 태양역(太陽曆)을 쓰니, 이는 양성(陽性)은 음성(陰性)을 구(求)하고, 음성(陰性)은 양성(陽性)을 구(求)하는 이(理)에 의(依)한 것이다. 이외(以外)에도 상하(上下), 내외(內外), 좌우(左右) 등(等)에 상대(相對)되는 것이 적지 아니하니 의관(衣冠)에 있어서 동양(東洋)은 갓을 쓰는 것을 예(禮)라하고 서양(西洋)은 모자(帽子)를 벗는 것을 예(禮)라하며, 가옥건축(家屋建築)의 의식(儀式)에 있어서 동양(東洋)은 상량식(上梁式)을 행(行)하고 서양(西洋)은 정초식(定礎式)을 행(行)하며, 문(門)을 열 때에 동양(東洋)은 밖으로 열고 서양(西洋)은 안으로 열며, 식사(食事)할 때에 동양(東洋)은 우수(右手)로 먹고 서양(西洋)은 좌수(左手)로 먹으며, 수지(手指)로 수(數)를 계산(計算)할 때에 동양(東洋)은 무지(拇指)에서 하나를 시작(始作)하고 서양(西洋)은 소지(小指)에서 하나를 시작(始作)하는 등(等) 일일(一一)히 매거(枚擧)할 수 없으니, 이는 우연(偶然)함이 아니오 실(實)로 지리(地理)와 풍토(風土)의 음양대대(陰陽對待)로부터 자연(自然)히 발생(發生)한 것이다.
西洋 主分析 故個人自由主義發達 東洋主綜合 故家族宗族鄕里 등(等) 血統主義 發達
東洋人 看地圖 上爲南 下爲北 左爲東 右爲西 西洋人 上爲北 下爲南 左爲西 右爲東 此 東洋人 南面爲主 西洋人 北面爲主故也
음양상구(陰陽相求)의 이(理)에 의(依)하여 동양(東洋)과 서양(西洋)이 서로 타(他)의 유여(有餘)함을 수입(輸入)하여 아(我)의 부족(不足)함을 보익(補益)하는 것은 생존작용상(生存作用上) 절실(切實)한 일이다. 그러나 음양상구(陰陽相求)라 함은 아(我)의 본체(本體)를 살리면서 타(他)의 작용(作用)을 받아들여 용(用)을 삼는 것이오, 결(決)코 아(我)의 본체(本體)를 폐기멸각(廢棄滅却)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본체(本體)를 폐기멸각(廢棄滅却)하면 이는 음양상구(陰陽相求)가 아니오 곧 타(他)가 편승(偏勝)하고 아(我)가 편패(偏敗)하는 자멸작용(自滅作用)이다. 그 일례(一例)를 들건대 동양(東洋)의 한의학(漢醫學)은 종합의학(綜合醫學)이므로 안병(眼病)이 생(生)한 때에 간장(肝臟)을 치료(治療)하는일도 있고, 이병(耳病)이 생(生)한 때에 신장(腎臟)을 치료(治療)하는 일도 있으니, 이는 동양의학(東洋醫學)의 본체(本體)이다. 만일 안이병(眼耳病)이 생(生)한때에 안이(眼耳)만을 대증(對症)하는 서양의학(西洋醫學)을 주(主)하고 한의학(漢醫學)의 본체(本體)를 폐기멸각(廢棄滅却)한다면, 이는 의학(醫學)의 퇴보(退步)이며, 지금 세간(世間)에 정치(政治)․학술(學術)․윤리도덕(倫理道德) 등(等) 각(各) 부면(部面)에 긍(亘)하여 본체멸각(本體滅却)의 경향(傾向)이 적지 아니한 것은, 모두 음양상구(陰陽相求)의 원리(原理)를 알지 못하고 자아(自我)의 본체(本體)를 자각(自覺)치 못하는 우거(愚擧)이다.
이와 같이 대운(大運)의 속에는 소운(小運)이 있고, 또 각지역(各地域)에 따라서 기운(氣運)이 동일(同一)치 아니한지라, 그러므로 비록 대지상(大地上)의 전인류(全人類)가 모두 동일(同一)한 시운(時運)의 속에 살고 있으되, 그 국민(國民)의 변통(變通)의 재(才)와 창조(創造)의 역(力)이 능(能)히 시(時)와 처(處)의 유행(流行)하는 기운(氣運)을 관찰(觀察)하여 시의(時義)를 선행(善行)하는 사회(社會)는 음양(陰陽)이 조화(調和)하여 흥왕(興旺)하고, 그러한 재(才)와 역(力)을 가지지 못한 사회(社會)는 음양(陰陽)이 편승편패(偏勝偏敗)하여 쇠패(衰敗)하는 것이다.
註一. 伏羲․文王의 八卦圖에 金一夫의 正易圖를 添附함 【別表】
註二. 繫辭上傳 第九章
註三. 繫辭上傳 第十一章
註四. 說卦傳 第五章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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