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7일 토요일

五年間에 自作農增加 七十六戶

南朝鮮踏査記 (1938年)
農業朝鮮 本社特派員 韓長庚氏 通信 (抄)

五年間에 自作農增加 七十六戶

泗川을지내서 慶南唯一의 棉花王國이오 또 更生成績이 좃타는 統營郡 光道面 牛洞里를 찾엇습니다 좁고좁은 山谷을 이구비저구비 도라서 臥牛山밑에 이르니 이곳이 卽 牛洞이오 部落이 二三個所에 散在하야 앞에는 논과 棉田이 노여잇고 뒤에는 靑靑한 산이 둘려잇는데 먼저 눈에 뜨이는것이 돌입니다 밭에도 全部 자각돌 길에도 全部자각돌입니다 이 자각돌밭에서 무엇이 生産되느냐고 물엇드니 俗談에 「미영밭에 돌을던저라」는 말과같이 棉作地로서는 돌밭이 適當하다고합니다 部落복판을 지내서 이 洞里의 指導者 金甲謙氏를 찾엇습니다 氏는 親切하게 막어주어 時間이 가는줄도 모르고 이약이를 주고받고 하엿습니다 이 部落의 沿革으로 말하면 洞民은 主로 農業을 經營하여왓는데 營農法이 粗放하야 收入이적고 또 勤勞를 실혀하야 或은 도박으로 或은 酒色으로 昭和三年頃(1928)에는 祖先傳來하던 土地를 모다 歇價로 팔어버러고 洞民의 大部分이 貧農으로 떠러저서 春夏窮節에는 草根과 木皮로써 목숨을 이어가지 안하면 안될 慘境에 빠젓다고 합니다 이때에 金甲謙氏는 洞里의 將來를 걱정하야 有志二三人과 相謀하고 部落復興을 期함에는 爲先 이 洞里의 地質에맞고 가장 經濟的作物인 棉花를 積極栽培하는 以外에 他道가업다하야 棉花改良稧를 組織하고 郡面當局 周到한 指導下에 棉花栽培法의 改良에 努力하고 洞民이 또한 서로 協力하야 지금과 같은 조흔 成績을 얻엇는데 現在 稧圓數가 百三十七인이오 棉作段別이 三十一町이여서 每戶平均 約七百坪이오 每戶棉花販賣收入이 約 六十圓입니다 그러고 그間의 實蹟을보면
一. 昭和六年에 이 洞民全體의 負債額이 一萬圓이던것이 지금에는 千數百圓에 不過하고
一. 昭和八年에는 自作農이 九戶, 自作兼小作農이 六十一戶, 小作農이 七十二戶이던것이 지금에는 自作農이 八十五戶 自作兼小作農이 四十一戶, 小作農이 十九戶입니다
그런데 이部落耕地 全部가 田이 約四十町步, 畓이 約五十町步여서 每戶平均田畓이 一千八百餘坪에 不過하고 더욱이 昭和八九年頃까지도 大部分이 小作農 又는 自作兼小作農이엿는데 엇더케하야 能히 一家族의 生活을 維持하고 그남어지로 土地를 사고 負債를 갚엇슬가 나와 金甲謙氏의 問答은 主로 이 點에 잇섯습니다
牛洞에는 天惠가 매우 좃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는 그것을 利用할만한 精神이 업섯기때문에 全洞里가 한동안 極度의 疲弊에 빠젓지만 이 精神이 한번 更生됨으로부터 모든 天惠를 모조리 利用하게 된것이 經濟更生의 第一步를 進行한 始初이엿고 그처음 着手가 棉花栽培이엿습니다 金甲謙氏는 洞民의 更生意識을 喚起함에는 먼저 實物을 보여주는것이 急務라하야 苦心硏究한 結果 耕起, 施肥, 播種, 除草, 麥間作等에 獨特한 方法을 發見하야 一般으로는 一段步平均에 百七八十斤 生産되든것을 平均 二百六十斤으로 增殖식히고 棉作과 麥作을 連年 繼續的으로 間作하는데 亦是 獨特한 技術로써 一段步에 보리 三石식 生産하야 生活上 적지안흔 餘裕가 생겻습니다
또한가지는 洞里의 背後에잇는 廣大한 林野입니다 그 林野는 洞民에게 比較的 平均하게 分黨되고잇서 每戶에 一町步 乃至 五六町步가되는데 山林收入은 自家用 柴草를 대이고도 每戶平均 四十圓의 收入이 잇다고합니다 山林이 잇고보니 畜産도 相當하야 全洞에 牛가 百五十餘頭 山羊이 또한 百餘頭가잇서 洞民의 한 富源이 되고잇습니다 勿論 以前에도 이만한 富源이 업는것은 아니엿스나 그때에는 나무 한짐을 팔던지 소한마리를 팔던지하면 그것이 家用에 보태우지 못하고 全部 술값과 도박 資金으로 업서젓습니다 그러든것이 棉花栽培에 依하야 棉作과 麥作의 收入이 增加하야 朝夕걱정이 조곰 緩和되고 또 洞民의 更生意識이 確立되고보니 나무한짐을 팔아도 家用에 보태우고 길을가다가 소똥 한덩이가잇서도 논과 밭에 던저주고하야 생활이 점점넉넉하여 젓습니다 더욱이 從來에는 男子가 도박을하고 술울먹고 집에도라오면 婦人은 시장한 배를 움켜쥐고 앉엇고 아해들은 밥을달라고 울고잇서 집안이 殺風景이더니 農事에 힘을써서 부즈런이 일을하게된 뒤에는 男子가 밖으로부터 드러오면 婦人과 아해들이 반가운 얼골로써 對해주고 비록 반찬업는 보리밥일망정 그릇우에 수북하게 담겨서 집안에 和氣가 엉키우니 이에서 더한 趣味가 업섯다고 합니다
술맛과 도박맛만을 알든 그들은 半生동안에 일즉이 맛보지못하던 家庭味와 人生味를 맛보게되니 이때에 처음으로 勤勉과 着實이 우리 人間生活에 잇서서 얼마나 貴重한것임을 깨닷게되고 진작 精神을 차리지 못한것을 後悔하는 사람도 잇섯다고합니다 利用價値는 만흐되 賣買價格은 헐한 논밭을 每坪二三十錢으로사서 지금과 같이 만흔 自作農이 생겻다고 합니다
나는 金甲謙氏를 作別하고 洞口(동구)를 나오면서 다시 그 部落(부락)을 살펴보니 내가 過去 五六年間巡廻한 地方에도 이 洞里와같은 天惠를 가진곳이 적지안하엿습니다 그러되 牛洞과같은 更生을 한곳은 적엇습니다 여기서 다시금 指導者 한사람의 힘이 얼마나 큰것을 늣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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